-19-
"피를 뒤집어쓴 악마와 같다."
검은 해적단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검은 해적단의 몸에서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들은 잔혹한 살육을 즐겼고,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음악으로 여겼다.
커다란 배 전체가 피범벅이 되어, 검은 해적단이 아닌 피의 해적단이라는 말이 어울릴 형상이
되는 적도 많았다.
그들이 검은 해적단이라고 불리는 것은, 배에 늘러 붙은 피가 변색이 되어 검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돛대에 사람의 머리를 꽂아 자신들의 잔인함을 만방에 알렸다.
누구도 감히 검은 해적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검은 해적단을 증오하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검은 해적단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때때로 검은 해적단을 사칭하는 무리들이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는 적도 있었지만,
그런 사기꾼들조차도 사람들은 손대지 않았다.
진짜 "검은 해적단"일 경우에 그들의 마을에 닥칠 위험 때문에
사소한 사기는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없기에, 검은 해적단은 언제나 당당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검은 해적단의 두목은 특히 심했다.
검은 해적단은 두목은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산채로 뜯어먹는 것을 보며 매력을 느꼈다.
그것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기에 그는 식욕이 돌았다.
그 때부터 그는 매일 인육을 즐기기 시작했고, 해적단을 만든 후에도 그 식성은 버리지 못했다.
해적단의 무리들도 모두 식성을 닮아,
지나가는 배라도 습격하는 날에는 성대한 파티를 열곤 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반찬 삼아서 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을 때부터 두려움과 공포라는 것이 깨끗하게 사라진 줄 알았던 두목은,
난생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꼈다.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멎을 것 같고,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듯한 그 생소한 기분을
공포, 또는 두려움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두목은 알지 못했다.
단지, 지금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이 배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믿을 수 없어서 입을 쩍 벌리고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은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하며 부들부들 떨다가,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어 난간을 붙들었다.
하지만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결국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전 있었던 약탈에서 뒤집어썼던 피를 씻지 않아,
두목의 몸엔 마치 때가 낀 것처럼 덕지덕지 핏덩어리가 말라붙어 있었고,
기분 나쁘게 썩는 냄새가 났다.
몸이 심하게 떨려서 이까지도 딱딱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흔들렸다.
작게 찢어진 두목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간판 위를 한 번 쓱 훑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티 준비에 대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며 킬킬대던,
믿음직스러운 부하들은 전부 고깃덩어리가 되어 간판에 널려 있었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예전처럼 웃고 떠들지 못하리라.
두목은 자신도 곧 저들처럼 붉게 젖어 간판에 너부러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칼날처럼 두목의 목덜미를 스치자
두목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힘없는 손을 들어 목을 쓸었다.
아직 목은 몸에 붙어 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기도 전에,
두목의 목에 차가운 쇳덩어리가 위협적으로 들러붙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치켜든 두목의 눈에 보이는 검은 눈동자는
아무 것도 담지 않은 듯 공허해서 소름이 끼쳤다.
검은 해적단의 손에 비참하게 죽어 가는 이들의 눈빛을 많이 보았다.
죽음 앞에 처한 사람들의 눈엔 공포, 절망, 두려움, 비난, 증오 등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눈을 봤지만 이토록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는 처음이다.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텅 빈 눈동자는
두려울 것 없는 두목의 마음에 크나큰 공포를 던져주었다.
우준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낀 것은 두목뿐만이 아니었다.
단지 칼 한 자루로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거침없이 베어내는 우준의 모습은
마치 사신(死神)과 같아서, 그들이 알고 있는 우준이 아닌 것만 같아 오싹함을 느꼈다.
해석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 번쯤 해적들과 부딪혀야 하지만,
이왕이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획을 짜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적게 싸우고 해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쪽의 희생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뻔할 뻔자였다.
"비야. 너였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준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말의 뜻을 알 수 없어서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우준을 쳐다봤다.
우준은 아주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듯, 조금은 고통스럽고 조금은 행복한,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었다.
"그래. 너였더라면 주저하지 않았겠지."
우준이 눈을 번쩍 떴다.
"그렇다면 나도 주저하지 않겠어."
채민은 우준이 중얼거린 그 '비'라는 것이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준이가… 좋아하는 여자인가?'
먼 곳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존재만으로 우준에게 강한 결단력을 심어줄 수 있는 여자라면
분명 굉장한 여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자."
"계획은?"
"내 뒤만 따라와. 절대 너희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까."
"야, 야. 강우준. 해적이 몇 명인 줄이나 알……"
"알아."
강전의 말을 끊고 대답한 우준이 먼저 간판으로 뛰어올라갔고,
머뭇거리다가 그 뒤를 따른 아이들은 그곳에서 끔찍한 지옥을 보게 되었다.
간판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해적들이 목이 잘려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질척거릴 정도로 간판에 고여 있었다.
"이, 이게 뭐지?"
아직 사태 파악을 못한 가인이 뒤로 물러서며 중얼거릴 때,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붉은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우준이 또 다른 해적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해적들이 뭐라고 지시를 하거나 계획을 세울 틈도 없었다.
우준의 손에 들린 칼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해적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는데도 신경이 죽지 않아,
목 없이 선 채로 더듬더듬 움직이는 몸통을 본 가인이 구역질을 해댔다.
"참아, 차가인."
리현이 차갑게 말했다.
"우준이라고 사람 죽이는 게 쉽겠어? 쟤도 결국 우리 같은 애들이잖아.
그런데 우리 때문에 지금 손에 피 묻히고 있는 거라구.
구역질해대는 건, 우준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눈물이 맺힌 눈으로 리현을 한 번 쳐다본 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꿀꺽꿀꺽 삼켰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구토증을 참기는 힘들었다.
우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해적들이 뭉쳐서 칼을 들고 덤볐지만 우준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체 저 녀석은… 뭐하던 녀석이길래 저렇게 강한 거지?"
강전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손에 무기를 들고 덤비는 해적들의 사이를 누비면서도
몸에 상처 하나 입지 않는 우준의 정체를
그들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우준이 두목으로 보이는 해적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을 때,
그들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피바다가 되어버린 처참한 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가인은 애써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간판 위에 널려 있는 시체들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몇 명이지?"
우준이 입을 열자, 두목이 움찔했다.
"네 부하들은 몇 명이지?"
우준의 목소리엔 감정이 조금도 실려있지 않았기에,
피투성이인 그곳에서 더욱 괴기하게 울렸다.
"스, 스물 세 명…"
"그래."
우준은 자기가 죽은 해적들의 수를 헤아렸다.
지하실에서 죽인 해적이 하나, 위에서 죽인 해적이 스물 둘.
딱 맞아떨어졌다.
"수가 맞군. 복수하겠답시고 달려들 해적들도 없겠어."
"사, 살…"
휘익-
두목이 살려달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우준의 칼이 번쩍 빛났다.
굉장히 빨랐기 때문에, 그것이 목을 가른 후에도 두목의 목은 그대로 몸에 붙어있었다.
두목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눈을 크게 뜨고 우준을 쳐다봤다.
"그럼 죽어라."
우준이 낮게 말하는 순간, 두목의 입에서 왈칵 피가 흘렀고,
위태롭게 붙어있던 목은 스르륵 갈라져 땅으로 떨어졌다.
피가 뚝뚝 흐르는 칼을 들고 한동안 그대로 서 있던 우준이 천천히 몸을 돌렸을 때,
일행들은 바짝 긴장해서 몸을 곧추세우며 우준을 쳐다봤다.
혹시라도 앞에 서 있는 저 잔인하고 강한 남자가 자기들이 알던 우준이 아닐까 봐서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일행들의 모습을 보고서도 우준은 쓴웃음조차 짓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멍한 표정.
"해석을 찾으러 가자."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마음 속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수 십 명이나 죽여야 했던 우준은
살인자라는 괴로운 짐이 어깨를 짓눌러 허파가 일그러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리현과 채민, 차희가 사람들을 풀어주러 갔고,
나머지는 해석이 있는 선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장실 내부는 그들이 갇혀 있던 창고보다 작았고,
그곳보다 더 불쾌한 냄새가 났다.
고기가 썩는 것 같은 불쾌한 냄새도 그렇지만
벽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검붉은 그것들은 꼭 피인 것 같아서
그들은 벽에 몸이 닿지 않도록 조심조심 안으로 걸었다.
구석에 놓여 있는 침대와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탁자,
침대의 반대편에 있는 장식장을 제외하고는 가구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해석은 탁자의 위에 있는 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짙은 갈색의 상자는 붉은 벨벳 쿠션이 들어 있었는데,
해석은 그 위에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었다.
그들의 눈으로 직접 해석을 보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그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온 우준은
물결이 치는 듯한 푸른 해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강전은 감히 해석에 손도 대지 못하고 멀거니 해석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정말 예쁘다."
가인이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해석의 위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따스함이 손바닥을 타고 몸 속 구석구석까지 번져나갔다.
온몸이 따뜻해지며 기분도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주위는 피바다이고 온몸에 피가 묻어 피비린내가 진동함에도 불구하고
평안 속에 거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정말… 너무 대단하다. 기분이 진짜…"
가인과 비인이 해석을 만져보는 동안 우준은 선장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선장실 안에는 해적질을 한 후에 선장이 따로 챙겨둔 좋은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침대 아래에 있는 큼지막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준이 그것을 꺼내자, 강전이 다가왔다.
"와, 이거 좋아 보이는데?"
상자는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고, 방안에 있는 것들 중에 유일하게 깨끗했다.
밝은 갈색의 상자는 금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자물쇠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비취가 박혀 있었다.
"이거 어떻게 열지? 열쇠 없나?"
"두목이 가지고 있겠지."
우준이 중얼거렸다.
"내가… 나가서 가지고 올까?"
강전이 조심스레 묻자 우준이 고개를 저었다.
"시체 뒤지기 싫잖아. 내가 가지고 올게."
"아냐, 인마. 너는 뭐 좋냐? 내가 가지고 올게."
강전이 벌떡 일어나서 서둘러 밖으로 나간 후, 선장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내가… 무섭나?"
우준이 중얼거렸다.
"아니, 안 무서워."
비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난 너 안 무서워. 고마워."
"나, 나도!"
가인이 얼른 말했다.
"그냥 그런 걸 거야."
비인이 말했다.
"뭐랄까…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세계잖아.
우리는 아직 이 세계를 전부 받아들이지 못하고 뒤에서 버벅대고 있는데,
넌 굉장히 빨리 받아들이고 우리를 지키려고 노력했잖아.
그 갭 때문일 거야. 너무 멀어 보여서… 하지만 우리도 노력해서 이곳에 적응하면,
그 때는 지금처럼 네가 멀어 보이지는 않겠지."
"그래."
그 때, 강전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강전의 손에는 작은 열쇠가 몇 개 들려있었다.
"이것들 중의 하나겠지?"
세 번째 열쇠가 자물쇠에 딱 들어맞았다.
철컥-
작은 마찰음과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상자 안에는 금화가 든 적갈색 주머니와 파란색 돌이 박혀 있는 금반지, 칼이 들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금화를 꺼내서 세는 동안 우준은 칼을 집어들었다.
칼집은 금으로 아름답게 세공이 되어 있었고, 녹색과 빨간색의 보석들이 잔뜩 박혀 있었다.
칼자루에는 빨간색의 타원형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칼자루를 잡자 칼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칼자루는 화려한 생김새와는 달리, 잡았을 때 아주 편안한 밀착감이 있었다.
우준이 칼자루를 단단히 잡고 칼을 칼집에서 뽑자,
은푸른색의 형형한 빛을 내뿜으며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으로 날이 서 있는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보기에도 오싹할 정도로 귀기가 서려 있었다.
이 칼은 스웨인이라고 하는 귀검으로,
몇 백 년 전, 한 천재적인 장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칼집의 아름다움부터 시작해서 칼자루의 밀착감, 녹슬지도 무뎌지지도 않는 칼날을 본 사람들은,
귀족이건, 왕이건, 기사건 할 것 없이 이 칼을 원했다.
수 만 루인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할 만큼 이 칼을 원했지만,
칼을 만든 장인은 스웨인을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다.
스웨인에 서려 있는 귀기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웨인은 장인의 죽은 아들의 이름으로,
장인은 이 칼을 마치 자기의 아들이라도 되는 듯이 애지중지했지만,
이 칼을 몹시 탐내던 귀족 중의 하나가 사람을 시켜 장인을 죽이고 칼을 빼앗았다.
스웨인은 자신을 만든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의 피를 처음으로 몸에 묻히게 된 것이다.
그 후, 스웨인은 어느 곳을 가든지 피를 몰고 왔다.
스웨인을 든 자가 전쟁에 나오면 반드시 이긴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그것이 스웨인 때문인지, 이 칼을 다루는 자의 실력이 대단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귀족들과 기사들, 왕들의 손을 거치던 스웨인은
어느 날, 해적들의 손에 들어가게 됐고, 그것을 우준이 발견한 것이다.
"이거야."
우준은 스웨인이 자신에게 큰 힘을 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스웨인이 뿜어내는 범상치 않은 기운은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신이 희생될 것 같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지만, 우준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우준은 검지로 천천히 칼날을 쓰다듬었다.
섬뜩한 차가움이 손끝에 느껴졌다.
"들어라, 칼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비'. 내가 너의 주인일 동안 네 이름은 '비'가 될 거야.
난 힘이 필요해. 너라면 내게 힘을 줄 수 있겠지? 나에게 힘을 줘."
스웨인(이제는 '비'가 되어버린)은 알아들었다는 듯 다시 한 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준은 칼자루를 한 번 굳게 잡은 후에 스웨인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었다.
"칼 멋있다."
가인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져도 될까?"
"응. 우린 어차피 칼을 다룰 줄도 모르는 걸."
가인이 시원스레 대답하자, 강전과 비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실 문이 열리고 차희가 들어왔다.
사람들을 풀어주고, 배 안에 있는 물로 몸을 대충 씻은 차희는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원래 세계에 있었더라면 다들 한 번쯤 돌아볼 만한, 늘씬한 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도 차희의 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쏟아질 남자들의 시선을 기대했던 차희는 조금 실망스러운 듯 했지만,
곧 기품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다 풀어줬어. 배는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우리도 어서 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