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빛 한 바구니, 고양이 두 스푼-32화 (32/91)

-32-

강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 뭐라고?"

"오빠는 누구야?"

"이 자식아! 네가 아무리 예쁘장하게 생겼어도 그런 말은 듣기 싫거든?

형님이라고 불러, 인마."

강전이 굳은 얼굴로 애써 입술만 비틀어 웃으며

가인의 머리를 타악 때리자,

가인이 한 손으로 맞은 곳을 감싸며 울먹였다.

"이잉… 왜 때려, 오빠? 응?"

"야, 야."

"가만…"

다시 한 번 때리려는 강전을 우준이 저지했다.

"얘는 가인이가 아니야."

"에엥? 뭔 말이냐? 가인이가 아니라니… 아무리 봐도 가인이라구."

"아니, 가인이가 아냐."

우준의 말에 다들 가인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가인이 아니라니.

아무리 봐도 가인과 똑같은데…

"설마… 도플갱어?"

도플갱어에게 죽을 뻔했던 채민이 몸서리치며 묻자 우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뭔가에 씌인 것 같아."

과연 그랬다.

가인의 얼굴은 아까와는 달리, 푸른빛이 돌 정도로 창백했고,

표정 역시 평소 가인의 부드러운 표정이 아닌,

겁에 질린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

"넌… 누구냐?"

"이잉…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이야? 나 무서워, 오빠. 웃어줘."

가인이 칭얼대자 비인이 우준을 옆으로 살짝 밀어내고 가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가인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오빠한테 네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을래?"

"오빠 되게 착하게 생겼어. 오빠가 좋아."

금세 마음이 풀린 가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비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래, 그래."

비인은 아이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목소리는 가인에게 씌인 아이의 영혼을 달래주었고,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비인의 손길은 아이를 안심시켰다.

"난 제이닐이야."

"제이닐? 그게 네 이름이야?"

"응."

"넌 어디서 살아?"

"난 이 숲 건너편의 마을에서 살아.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지만 되게 좋은 곳이야.

애들이랑 놀고 있으면 아주머니들이 불러서 맛있는 것도 줘.

난 우리 마을이 너무너무 좋아. 집들도 다 예쁘고, 친구들도 많거든."

너무나 밝고 명랑하게 말하는 제이닐이 나쁜 영혼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가인이 의식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제이닐이 어떤 영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의지할 만한 사람은 리현밖에 없어서 다들 리현을 쳐다봤지만

리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가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우리들 친구의 몸으로 들어간 거야?"

"우웅? 잘 모르겠어. 난 잠깐 쉬고 있었는데 이 오빠의 근처가 굉장히 따뜻하고 밝게 빛이 났어.

너무 예쁘게 빛나서 한 번 만져보려고 한 건데, 갑자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오빠랑 언니들이 날 쳐다보고 있었는걸. 헤헤."

가인이 해맑게 웃었다.

워낙 여자 같이 생긴 가인이었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방긋 웃는 모습도 잘 어울렸다.

"이 오르골 내 꺼인데 왜 오빠가 가지고 있었어?"

가인은 오르골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반갑다는 듯이 물었다.

"아, 그게…"

강전은 아무리 가인의 몸 안에 제이닐이라고 하는 어린아이가 들어갔다고 해도

가인에게 "오빠"라는 말을 듣는 것은 껄끄러운지,

노란 머리카락을 북북 긁다가 말했다.

"저쪽에서 주었어."

"으응. 그랬구나."

가인의 얼굴에 잠시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가인에게 신경을 쓰고 있던 그들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아이의 영혼들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우준 일행이 못 느끼는 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거 우리 아빠가 사준 거다.

우리 아빠는 싸움이 되게되게 잘하셔.

아빠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되게 많아.

그런데도 아빠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면서 만날 여행을 가시거든.

더 강한 사람을 찾아서… 아빠가 돌아오실 때는 일 년에 두 번뿐이어서

엄마랑 나는 너무 외롭지만… 그래도 아빠는 돌아오실 때마다 나 주려고

예쁜 선물을 많이 사오셔. 그리고 늘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

여행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괴물들 이야기…

내가 들으면서 막 웃으면 아빠는 내 볼에 뽀뽀를 해주면서 말해.

우리 제이닐 없으면 아빠는 못 살 거라고… 여행 가 있는 동안 우리 제이닐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가인의 눈에 눈물이 한 가득 고였다가 흘러 내렸다.

"이제… 제이닐은 아빠 옆에 있어줄 수가 없는데… 우리 아빠 어떻게 살지?"

다들 착잡한 심정으로 가인을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리현이 울음을 터뜨렸다.

단지 어린아이의 죽음 정도로 울음을 터뜨릴 리현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놀라서 리현을 쳐다봤다.

하지만 리현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가인에게 다가가 가인을 꽉 안아주었다.

"제이닐…"

"있잖아. 우리들은 여기에 들어오는 어른들을 다 죽였어.

어른들은 되게 나쁘잖아. 막 우리가 아파서 우는데도 더 아프게 만들고, 그걸 보면서 웃고…

우리한테는 먹기 싫다는데도 억지로 썩은 고기를 먹이면서 자기는 맛있는 거 먹고…

그래서 여기에 들어오는 어른들은 그 아저씨가 우리한테 했던 거랑 똑같은 방법으로 다 죽여버렸어.

하지만… 언니랑 오빠들은 좋은 사람들 같으니까 애들한테 부탁해서

그냥 보내달라고 말해볼게."

제이닐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곳에 있는 어린아이의 영혼들이 사람을 죽여왔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 아저씨라는 자는 누구인가?

"이 숲에서 빠져나가게 되면… 우리 아빠를 찾아가서 이 오르골을 전해줘.

그리고… 내가 꼭 옆에 있어줄 테니까 슬퍼하지 말라고 말해줘.

죽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나 없어도 잘 살아야 된다고 꼭 전해줘."

"그래, 제이닐. 그래…"

리현이 가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가늘게 떨려오는 리현의 목소리가 너무도 아파서 일행들까지도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그럼 애들을 설득하러 가볼게. 벌써 밤이야. 밤에 이 숲은 위험해.

내가 애들을 설득해도… 그 아저씨가 나타나서 언니오빠들을 죽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조심해. 조심해야 돼."

"제이닐… 너…"

리현이 가인의 눈에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맞췄다.

"이제 아프지 않니?"

가인이, 아니, 제이닐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언니가 안아줘서 이제 안 아파."

제이닐이 눈물 범벅이 된 리현의 얼굴을 살짝 만져주며 말했다.

"울지 마, 언니. 난 이제 아프지 않아."

리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지켜보는 가운데, 가인은 갑자기 몸을 축 늘어뜨렸다.

하얗게 질려 있던 가인의 얼굴에 점점 핏기가 돌아왔다.

"으흑…"

가인은 울고 있었다.

눈을 뜨지 못하고 리현의 품에 안긴 채 펑펑 울고 있었다.

리현과 가인의 표정은 똑같은 슬픔, 똑같은 고통을 담고 있었다.

"으흐흐흐…흑…"

일행은 영문도 모르고, 서럽게 우는 두 사람이 눈물을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리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가인의 머리카락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입술에서 한 줄기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리현의 눈동자는 증오와 강한 살의로 불타고 있었다.

"움직이자. 이 숲에서 꼭 죽이고 싶은 놈이 한 명 있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가인 대신에 리현이 말했다.

"난 영혼의 마음을 읽을 수 없지만, 제이닐이 잠시 가인이 몸 속에 들어온 틈에

갑자기 제이닐의 마음이 읽혀졌어. 그 애는… 유괴 당했어.

이 숲에 사는 어떤 미친 쓰레기 같은 악당 놈에게…"

분노로 인해 리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리현의 말에 따르면 유괴범은 벌써 몇 년째 이 숲에 은신처를 두고 주거하고 있었다.

늘 어린 여자아이들을 납치하는데, 때때로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를 납치하는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숲에 들어와서 노는 아이들을 납치하더니,

숲에서 노는 아이들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마을에 숨어 들어가서 아이들을 납치하곤 했다.

처음에는 유괴범을 잡기 위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마을의 젊고 건장한 남자들이 무리를 지어 숲으로 들어가 유괴범의 은신처를 찾고자 했지만,

유괴범이 무슨 이상한 술수라도 사용하는 건지,

숲에 들어가면 며칠이고 헤매다가 녹초가 되어서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그래도 빠져나오는 거라면 나았다.

반 이상의 남자들이 유괴범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유괴범 잡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숲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갖은 위협과 협박을 다 했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숲에 들어갔다가 행방불명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몇 달이고 아이들 관리를 잘 해서 숲에 들여보내지 않으면

유괴범이 마을로 들어와 몰래 아이를 데리고 가곤 했다.

어떤 술수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똘똘한 아이들도 소리 없이 데리고 가는 것을 보면,

만만찮은 상대였다.

유괴범은 아이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변태였다.

처음에는 잡아온 아이들 너 댓 명을 한 방에 가둬두고 문을 잠궈 놓은 채,

며칠 간 그 안에 들어가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식사 때와 간식 때가 오면 먹을 것을 밀어 넣어줄 뿐이었는데,

식사도, 간식도 집에 있을 때 먹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처음에는 잡혀온 두려움 때문에 벌벌 떨고 밥도 못 먹던 아이들이지만,

며칠 유괴범이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조심조심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래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금세 친해져서 장난도 치고,

언젠가 부모님이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으로 얼굴에서 빛을 낸다.

그것이 바로 유괴범이 노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깊은 절망에 밀어 넣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절규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일주일쯤 지나면 유괴범은 오두막으로 들어와 겁에 질린 아이들 앞에서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며

아이들과 친해진다.

순진한 아이들이 유괴범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유괴범은 돌변한다.

그 때부터 온갖 잔인한 수단들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한 도구들도 수 십 가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꼬챙이, 잘 갈아진 칼, 뜨겁게 달구어진 인두, 바늘…

그런 도구들을 이용하여 아이들 중에 한 명을 끌고 와, 다른 아이들 앞에서 처참하게 괴롭힌다.

그렇게 2, 3일을 괴롭히는 아이는 결국 죽고 마는데,

친해진 친구가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본 아이들은 반쯤 미치고 만다.

한 명이 죽고 나면 유괴범은 다시 처음처럼 아이들을 달래고 어른다.

처음에 잡혀 왔을 때와 똑같은 생활이 다시 시작되고,

아이들은 아주 약간이나마

'나는 무사할 거야.'

라는 희망을 갖게 되지만,

그 다음 또 다시 친구가 자기 앞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본 아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잠도 자지 못하고 며칠을 보낸다.

친구가 죽게 되는 그 2, 3일 간, 그들에게 나오는 음식은 썩은 고기나 야채, 벌레인데,

그걸 억지로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유괴범은 차갑게 말하곤 한다.

"먹기 싫지? 응? 그럼 오늘 밤 니들이 저 애를 죽여.

저 애가 빨리 죽으면 빨리 죽을수록 너희들이 이 더러운 음식을 먹게 될 시간도 줄어드니까…"

아직 확실한 도덕적 개념이 없는 아이들은 유괴범이 아이 하나를 실컷 괴롭히다가 오두막을 나가면,

얼마 전까지는 자기들의 친구였던 그 아이의 목을 졸라서 죽여버린다.

단지 썩은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제이닐 역시 그런 일들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렇게 죽게 된 아이들은 뭐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을 죽인 유괴범에 대한, 그리고 자기들을 구하러 오지 않은 어른들에 대한 악의로 똘똘 뭉쳐서

자기들만큼 괴롭게 죽게 되기를 바랐다.

그 결과 이 숲에 들어오면 유괴범의 손에 죽기 전에 영혼들에게 죽게 되는 것이다.

"이런…"

비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다들 침통한 표정이었다.

차희 역시 누군지 모를 그 미친놈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숲을 헤매게 된 이유는 영혼들 때문은 아니라는 건가?"

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너무 잔혹하게 살해당해서 원한이 강해.

원한은 아이들의 영혼에 물리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어.

그 애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나쁜 건지도 모르고 사람을 죽이기는 하지만,

숲을 헤매게 하는 능력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계속 이렇게 아이들의 원령(怨靈;원한을 품은 영혼)이 모이고, 또 모이면

결국은 이보다 더 강한 능력을 갖게 될 거야.

그 전에 유괴범을 없애고 아이들의 원한을 풀어줘야 돼.

그걸로 아이들이 원한을 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이닐은 똑똑한 아이인 것 같으니까 그 애가 잘 설득해줄 거야.

그리고 유괴범을 없애고 나면 이 숲에 걸려 있는 이상한 주술도 사라지겠지.

아이들의 부모님을 데리고 오면 아이들이 마음을 고치지 않을까?"

리현의 말에 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것은 부모님이니까…"

그들 역시 숲을 빠져나가려면 유괴범을 없애야만 했기에

그들은 우선 유괴범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건장한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서 유괴범을 찾으러 들어왔어도 결국 죽었다고 했잖아.

우리들이 해낼 수 있을까?"

차희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해내야지. 못 하겠어도 해내야 돼."

분노한 강전의 몸에서 파지직 전기가 흘렀다.

강전은 이 지저분한 기분을 참을 수 없어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이 세계로 온 후에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담배를 핀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담배 생각이 절실했던 것이다.

"야! 너 담배 있었냐?"

리현이 날카롭게 묻자 강전이 씩 웃었다.

"현대인의 필수잖아."

"그런 거 피면 몸에 안 좋잖아."

채민의 말에 강전이 쓰게 웃었다.

"난 일찍 죽고 싶었거든."

"……"

"뭐, 너네 만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사라지긴 했지만…

지금은 한 대 펴야겠다. 기분이 너무 더러워서 견딜 수가 없거든."

"그럼 나도 한 대 줘봐."

리현이 손을 내밀었다.

"야, 야. 무슨 기집애가 담배를 핀다고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리현이 강전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도 죽고 싶었어."

강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리현에게 담배를 주려고 했지만,

담배곽 안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돛대(한 대밖에 안 남음)다."

"그럼 몇 모금 빨고 남겨서 줘."

"너, 그렇게 집착이 강하면 사랑 못 받는다."

"지랄…"

"기집애가 귀여운 맛이 없어요."

투덜대며 입에 담배를 문 강전은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았다.

강전의 입에서 회색 연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나갔다.

"후아… 이렇게 좋은 걸 잊고 있었다니…"

그리고 강전이 한 모금을 더 빨려고 할 때였다.

이제까지 잠잠하던 영혼들이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영혼들의 요동에 고요하던 숲도 울부짖었다.

달빛이 붉게 물들었다.

"뭐, 뭐야?"

그들은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을 노려보는 영혼들의 눈동자가 빨갛게 변해 차가운 빛을 뿜고 있었는데,

거꾸로 매달린 끔찍한 형상의 영혼들의 눈에서 빨간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충분히 공포에 질릴만한 상황이었다.

영혼들은 정확히 강전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 뭐, 뭐야?"

찌르는 듯한 시선에 당황한 강전이 주춤하며 중얼거렸다.

"왜들 저러는 거지?"

그 때, 한 영혼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강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양쪽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여자아이 영혼은

강전의 목에 들러붙더니 이를 세워 강전의 귀를 물어뜯었다.

"으아아악!"

강전의 몸에서 흐르는 전기도 영혼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우드득-

귀가 잘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강전의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듯, 나무에 매달려 있던 영혼들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

일행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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