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일어난 상황을 믿을 수 없어서 다들 입을 헤 벌리고
우준과 채민이 끌려들어 간 오두막만 쳐다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우준이 잡혔다는 사실이다.
양손을 꽉 묶이는 것까지 봤으니 희망은 없다.
"구하러 가야하는 거 아닐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비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 우준이는 구하러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리현이 고개를 저었다.
일행의 마음을 될 수 있도록 읽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까부터 우준이 너무 강하게 염원하고 있어서 저절로 머릿속에 우준의 마음이 흘러 들어왔다.
이토록 또렷하게 우준의 마음을 읽은 것은 처음이기에 좀 생소하기까지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채민이가 덫에만 걸리지 않았어도 다들 무사할 수 있었는데…"
차희가 안타깝다는 듯 말하자 해윤은 인상을 찌푸리고 차희를 한 번 노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채민이가 입 꾹 다물고 비명 안 지르던 거 봤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그런 거지?"
"응."
리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보다 더 채민의 마음을 잘 알 수는 없다는 듯이.
"대단하다, 걔는… 진짜 아팠을 텐데… 아까 그 미친놈이 덫을 꽉꽉 밟아대는데도
비명을 참고 있었잖아."
"응. 그랬지."
강전이 벌떡 일어났다.
"아, 씨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거냐?
우준이는 벌써 몇 번이나 우리 목숨을 구해줬잖아! 이번에는 우리가 해야하는 거 아냐?"
"조금만 기다려보자."
리현이 강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강전의 팔에서 파직파직 전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꽃 튀기는데?"
해윤이 강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씨밤바!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라구!"
"그래도 어쩔 수 없잖냐. 지금 우리가 여기서 열을 내고 있어도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잖아.
조금 차분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제길!"
강전은 옆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세게 발로 찼다.
어린 아이들을 끔찍하게 죽이는 유괴범이 우준과 채민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차분히 방법을 찾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잠깐 유체이탈을 해볼게. 우준이랑 채민이가 어떤지 먼저 살펴보고
그 후에 우리가 해야할 일을 정하자."
비인의 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인은 근처 나무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우준은 채민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채민의 발목을 씹어대고 있는 강철 덫이 언제 채민의 발목을 완전히 잘라버릴지 알 수 없었다.
오두막 안에는 우준과 채민 말고도 두 명의 인질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상당히 오래 전에 붙잡혀 온 듯 했다.
잘 먹지 못해서 피골이 상접해진 몰골과 지저분한 옷,
수 차례 고문을 당한 듯 엉망이 되어버린 몸뚱아리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둘 다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는데
한 남자는 열 개의 손톱과 열 개의 발톱이 전부 뽑혀나간 상태였고,
다른 남자는 혀가 잘려나가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제 반항하는 것조차 포기한 듯
완전히 의욕을 상실한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우준은 유괴범의 눈치를 보며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들은 우준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였다.
영혼이 없이 그저 겉껍데기만 생명 활동을 간신히 이어나가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의 살로 요리를 하지는 않으니까…"
나무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담배를 피던 유괴범이 말했다.
"이미 다 커버린 성인의 살덩어리는 질기고 맛이 없거든요.
여자라면 20살까지는 그럭저럭 먹을 만 하지만,
남자들은 고기가 너무 질겨서요.
10살이 되기 전의 아이들의 고기가 정말 최고로 맛있죠.
아, 물론 갓 태어난 신생아도 좋아요."
우준은 대답하지 않고 유괴범을 노려봤다.
"아쉽네요. 당신의 파트너가 임신을 했다면 태아를 꺼내서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채민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데다가 통증이 심해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오두막에 들어오면서부터 거친 숨을 내쉬다가 바로 기절을 한 채민은
우준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채민의 고통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채민의 입술 사이로 간간이 신음이 흘러나올 때마다 우준은 미칠 것만 같았다.
"당신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뭐지?"
"글쎄요… 하나의 여흥이랄까요?"
"여흥?"
"난 당신의 눈동자가 마음에 들어요.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이랑은 아주 다르군요.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강해요. 너무도 단단해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이 부지깽이로…"
유괴범이 옆에 있는 부지깽이를 집어들고 중얼거렸다.
"세게 찔러도 뚫리지 않을까요?"
"뚫릴 거야."
"하하. 겁 먹은 건가요?"
"아니. 그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부지깽이에 눈을 찔린 정도로 봐야할 것을 못 보게 되지는 않을 거야."
"흐음…"
유괴범이 어깨를 으쓱하며 부지깽이를 다시 옆에 내려놓았다.
"봐야할 것이라… 당신이 말하는 봐야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진실. 정의. 그리고 사랑."
"하하하하하. 그건 무슨 영웅담에나 나오는 말 같군요. 정의와 사랑이라…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 유치하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이 유치한 것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치하다고 치부해버리는 거지.
그걸 유치하다고 말하는 당신은 진실과 정의, 사랑을 제대로 볼 자신이 있나?"
유괴범이 입을 다물고 우준을 쏘아봤다.
금방이라도 우준을 죽일 듯한 살의가 불타올랐지만 우준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뭐, 좋아요."
유괴범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게 당신의 삶이라고 해두죠. 나에게는 나만의 정의가 있으니까요."
"그러는 당신의 정의는 뭔데?"
"우리 부모님은 요리사였어요. 두 분은 최고의 요리사였지요.
질 좋은 재료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싼값에 사람들에게 대접했어요.
우리 가게는 언제나 최상의 청결을 유지했고 손님들에게 완벽한 서비스를 선사했어요.
간혹 돈 없는 걸인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부모님은 그들을 불러 세워서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곤 했지요."
유괴범은 느릿느릿 감정이 없는 어조로 말했다.
"부모님은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소문을 들은 왕이나 귀족들이 자기의 전속 요리사가 되어달라고 해도 늘 거절했어요.
부모님의 행복은 많은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거였거든요.
그게 우리 부모님의 정의였죠. 당신이 말하던 게 다 들어있나요?
진실, 그리고 정의, 사랑."
유괴범이 비꼬듯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당신이 말하는 진실, 정의, 사랑 따위는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어요.
왜냐구요? 그걸 보지 못하는 일부의 멍청이들은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증오해서
어떻게든 짓밟아 죽여 없애버리고 싶어하거든요.
권력에 빌붙어 사는 많은 요리사들이 우리 부모님을 질투했죠.
자기들은 도무지 부모님의 실력과 부모님을 향한 사람들의 애정을 따라잡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간질을 시킨 거예요. 왕들, 귀족들의 모임에서 속닥거린 거죠.
우리 부모님이 음식에 뭔가 주술을 걸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이 상태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우리 부모님이 세상을 정복하게 될 거라고…
하하하하. 웃기지 않아요. 세계 정복. 이것도 흔한 영웅담 중의 하나지요."
채민의 몸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채민이 깨어난 것을 눈치챈 우준이 가만히 묶인 손을 뻗어 채민의 머리 위에 올려놨다.
천천히 채민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본 유괴범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그들은 우리 부모님을 의심하고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우리 부모님을 이유 없이 죽였다가는 원성을 들을 게 뻔하니까요.
자,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 부모님을 짓밟았을까요?"
우준은 말없이 유괴범의 말을 기다렸다.
유괴범은 벌떡 일어나 주전자에서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물을 마신 유괴범이 다시 의자에 앉았을 때,
유괴범의 윗옷이 잔뜩 젖어 있는 것을 보고 우준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분명 물을 마시면서 흘린 것 같지는 않았는데
옷이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들은 모함했지요. 그 날은 아마도 피 같이 붉은 달이 떠올라 있었을 거예요.
새빨간 달은 그 날 한 가족에게 생길 불행을 알려주듯이
피 같은 붉은 빛을 지상에 뿌리고 있었지요.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두 명 있었지요.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로 지내다가 결혼을 한 아내는
나에게 아주 헌신적이었고 알뜰해서 집안 살림을 잘 했어요.
팔불출 같겠지만 우리 아이들 역시 정말 똑똑하고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었죠."
유괴범이 결혼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채민은 조금 놀라서 고개를 들어 유괴범을 쳐다봤다.
채민과 눈이 마주치자 유괴범은 채민을 향해 빙긋 웃어줬는데
그 잔혹한 눈빛이 어쩐지 쓸쓸해 보여서 채민은 가슴이 아팠다.
"우리는 부모님의 가게 바로 옆에 집을 하나 마련해서 살고 있었는데,
그 날 친구들과 포커를 치다가 조금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죠.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집안의 불이 전부 꺼져 있었어요.
원래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내는 불 하나 정도는 켜두고 자거든요.
내가 들어가는 길에 가구에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말라고…
그런데 불이 전부 꺼져 있어서 아내가 기분이 많이 상한 건가 싶었죠.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안방으로 향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예요.
비릿한 냄새였는데 우리 가게 도살장에서 자주 맡던 냄새였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죠.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방의 불이 켜지더니
방안에 펼쳐진 광경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내 아내와 아이들이 난도질당해서 죽어있었죠.
그 끔찍한 모습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네요. 아주 선명하게 말이에요.
죽은 아내의 부릅뜬 눈이 나랑 정확하게 마주쳤는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얼어붙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어요. 아내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다가 죽은 듯,
아이들을 품에 꼭 안고 있었지요. 뭐, 그 안에 있는 아이들도 난도질당해 죽임을 당했으니
아내의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채민이 다시 눈을 감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냉랭하게 말하는 유괴범의 눈동자가
슬픔에 잠겨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유괴범이 울며불며 이야기를 했더라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곳에 숨어 있던 자객들에게 죽임을 당했지요.
갑자기 덤벼든 그들은 나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전부 끄집어냈어요."
우준이 미간을 좁혔다.
유괴범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 상태에 빠진 듯 했다.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한다는 말이 자기가 죽었다는 말이라니…
우준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챈 유괴범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나요? 정신 감정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 독버섯이라도 먹어서 혼란에 빠진 것 같아 보이나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난 아주 멀쩡하고 제정신이니까…"
"……"
"어쨌든 우리 가족은 내장이 끄집어내진 채로 부모님의 가게 도살장으로 옮겨졌어요.
그들은 우리 집에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게 치워두고
우리의 시체는 도살장의 구석에 있는, 손질 전의 돼지와 양들 사이에 던져뒀지요.
우리의 내장은 가축들의 내장 위에 아무렇게나 넣어서 섞어버렸구요.
그리고 그들은 우리 부모님을 고발했어요. 뭐라고 고발했을까요?"
"……"
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괴범은 굳이 우준의 대답을 기다린 것은 아닌 듯 말했다.
"우리 부모님의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사실 인육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부모님은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겠어요? 그들이 사람을 보내서 조사한 도살장에는
우리들의 시체가 너부러져 있었는데… 가축의 내장 안에 우리의 내장이 섞여 있었는데…
구경하러 몰려온 사람들이 구역질을 해대고 부모님께 돌을 던졌어요.
지금까지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조차 부모님에게 욕을 퍼부었죠.
부모님은 아들, 며느리, 손자를 잃을 상태에서 이런 일까지 당하자
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게 되었죠.
삶의 의미를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백을 주장하려는 생각조차 없었을 거예요.
끌고 가려고 몰려온 병사들을 뿌리치고 우리의 시체 앞으로 다가왔어요.
우리들은 수거해가려고 가지런히 모아놨기 때문에 네 명이 나란히 붙어 있었죠.
그 앞에서 부모님은 칼을 들고 와 외쳤어요."
"……"
"기억해라, 오늘의 일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더러운 질투와 욕망을…
그리고 네 아이들의 피와 아내의 피와 부모의 피를…"
오두막 안에 유괴범의 목소리가 기괴하게 울렸다.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채민은 눈을 더 꽉 감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심장을 찔러서 죽이고, 곧 당신의 목을 찔러 죽었죠.
내 아이들, 아내의 피가 묻어있는 나의 몸에 부모님의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어요.
사람들은 이 끔찍한 사태에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고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우리의 시체를 수거해갔어요.
그리고 그 날 밤, 또 다시 붉은 달이 떠오른 밤이 오자 나는 살아났어요.
내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부모님이 준 생명을 가지고…"
스토리 빈약한 괴기 공포 영화도 아니고…
유괴범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유괴범은 우준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못 믿겠다면 보여주죠. 그 날의 일이 남긴 흔적을…"
이제껏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채민도 호기심을 억누를 길이 없어서 조심스레 눈을 떴다.
채민까지 눈을 뜨는 것을 확인한 유괴범은 손으로 자신의 윗옷을 잡았다.
우준과 채민은 유괴범이 뭘 하려는 건가 싶어 긴장하고 유괴범의 행동에 집중했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즐기는 듯 유괴범은 천천히 자기의 윗옷을 벗었다.
그리고 유괴범의 윗옷이 벗겨져 유괴범의 몸통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헉!"
비인이 눈을 번쩍 떴다.
비인의 주위를 둘러싸고 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일행은
겁에 질린 듯한 비인의 표정을 보고는 이상히 여겼다.
비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비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일행을 올려다봤다.
"뭐, 뭐야? 우준이랑 채민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참다 못한 강전이 다급히 묻자 비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비인은 자신이 보고 온 끔찍한 형상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영상은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어서 도무지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뭔데? 응?"
"산 사람이 아니야."
"뭐어? 누가! 우준이가? 채민이가?"
"아니… 유괴범이…"
"엥?"
다들 의아했다.
"뭐야, 그게? 그럼 벌써 우준이가 유괴범을 해치운 거냐?"
비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유괴범은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데… 사실은 산 사람이 아니야."
다들 비인이 횡설수설하는 걸로만 생각이 되어서 답답했다.
비인은 조금 빠르게 자기가 보고 온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괴범이 윗옷을 벗으려고 할 때, 나도 대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몹시 궁금했어.
내 육체가 어서 돌아오라고 끈을 당겨댔지만 도저히 끝을 보지 않고는 돌아갈 수가 없어서
억지로 그곳에 남아있었지. 그리고 유괴범이 윗옷을 벗는 순간…"
꿀꺽-
다들 침을 삼켰다.
"옷 아래에 드러난 것은 산 사람의 배가 아니었어. 뻥 뚫려 있었어."
"뭐어?"
"완전히 뚫려 있었다구. 가슴 아래에서부터 배꼽 아래까지 쫙 갈라져서 벌려져 있었어.
그리고 그 안에는 내장이 들어있지 않고 텅 비어 있었어.
유괴범은 그렇게 내장이 없는 텅 빈 몸을 가지고도 살아있는 거야."
"이런…"
가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진짜 유괴범 본인 맞아? 유괴범이 조종하고 있는 인형이나 시체 같은 거 아냐?"
비인이 고개를 저었다.
"유괴범 본인이 분명해. 왜냐하면 말하는 내내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는데
그건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의 눈이었거든."
"미치겠군."
강전이 비인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별 이상한 놈을 다 만나게 됐네. 변태좀비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채민이는 무사해?"
"무사하긴 한데…"
비인이 걱정된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왜? 어떤데?"
"빨리 구하지 않으면… 발목이 잘릴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