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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함이라는 것의 매력을 알고 있는가.
눈빛만 마주쳤을 뿐인데도 상대가 몸을 부르르 떨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설 때의 쾌감을 알고 있는가.
그 누가 시비를 걸어오더라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여유가 있을 때의 편안함을 알고 있는가.
첸은 "강함"이라는 것에 매혹되어 있었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에게서는 두려움이 사라졌고 그를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게중에는 한 나라 왕의 아들도 있었다.
강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얻을 수 있었고 사랑스러운 딸을 갖게 되었다.
그 근방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아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누구도 감히 그에게서 그녀를 빼앗아갈 시도를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힘이 더 강해지기를 바랐다.
더 여러 종류의 힘을 얻고 싶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 힘썼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했지만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수시로 여행을 하며 수많은 고수들을 만났고
그들의 실력을 전수 받았다.
그럴수록 그가 지닌 명성은 점점 높아져만 갔고 그의 힘은 점점 강해져만 갔다.
훈련과 여행은 끊임없는 고통이었지만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기에,
그는 힘든 훈련을 즐겁게 해나갈 수 있었다.
몇 십 명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더 강해지고 싶었다.
특별히 한 나라를 지배하고 싶다거나 세상을 발 아래에 두고 싶다는 염원은 없었다.
왕의 총애를 받는 군사 대장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스승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이미 가정을 지키고도 남을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더 강해져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싶어도, 아무리 귀여운 딸에게 목마를 태워주고 싶어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리움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려는 그의 노력이 도리어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그는 계속 강함을 추구했을까?
2년만에 마을로 돌아온 그는 언제나 평화롭고 환한 기운에 쌓여 있던 마을이
어둠에 잠겨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끈끈하고 차가운 공기가 마을을 꽉 짓누르고 있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무거운 공기가 어깨를 짓눌렀다.
마을에 들어서면 밝은 표정으로 그를 맞아주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마을 골목 어귀를 뛰어다니며 꺄르르 웃어대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물은 전부 죽어버리고 어둠의 영혼들이 기어올라와 마을을 집어삼킨 것 같은 분위기에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큰길을 걸었다.
"첸…"
오후 6시쯤 된, 이제 막 해가 떨어지려고 하는 이 시간에는 집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떨어지는 붉은 태양을 구경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첸이 태어나고 자란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의
하루 일과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름답게 타오르는 붉은 해가 떨어지려고 하는 이 시간,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은 오랜 시절 친구이자 좋은 형이었던 로민밖에 없었다.
첸은 아름답던 태양이 마치 피를 머금은 흡혈귀처럼 보인다는 것보다
수척해진 로민의 모습에 더욱 놀라 황급히 로민에게 다가갔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던 로민의 얼굴이 전에 없이 어두워 보이는 까닭에
첸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며 로민의 앞에 섰다.
"로민.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로민의 눈동자에 담긴 깊은 절망의 빛깔이 첸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어떤 일에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첸이지만 지금만큼은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응? 내가 없는 동안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마을의 분위기는 왜 이런 건가?"
첸은 평생동안 누군가를 닦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 때문에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로민이 대답하지 않자 첸은 로민의 팔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로민! 대답 좀 해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우리 마을은… 끝장났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어느 나라에서 이유 없이 쳐들어오기라도 했다는 건가?
사람들은 무사한가? 내 아내는? 내 딸 제이닐은?"
로민의 표정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첸. 내 이야기를 잘 듣게나."
"그래, 난 들을 준비가 되어있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집에 먼저 가봐야겠어.
내 아내와 딸이 무사한지를 먼저 알아야겠어!"
"아니, 내 이야기를 듣게. 그 다음에 가도 늦지 않네. 제발 이곳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
로민의 목소리가 하도 간절해서 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발에서 뿌리가 나와 땅에 단단히 박힌 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로민을 응시했다.
로민은 어디로 들어가서 앉자는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선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지친, 꺼져 가는 불빛 같은 목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
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로민을 붙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로민의 말을 들었다.
"자네가 떠난 것이 2년쯤 전의 일이었던가? 자네가 마을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이 생겼다네.
마을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거지. 그리고 숲에 들어간 다른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산짐승인가 싶었네. 물론 자네가 떠나기 전에 숲에서 위험한 산짐승들을 한바탕 소탕하기는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은가. 잘 숨어있었던 산짐승이 있었을지도…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젊은이들이 무장을 하고 숲으로 들어갔네. 하지만…"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마을을 고요했다.
첸은 이곳이 자신이 사랑했던, 언제나 떠들썩하고 즐거운 마을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숲을 통해서 마을에 들어오는 여행자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거네. 아이들은 자꾸만 사라지고, 숲에 들어간 사람도 사라지고…
우리들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할 무언가가 숲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그래서 아이들에게 숲 근처에 가지 말라고 주의를 시켰네만… 그래도 아이들은 마을에서 하나 둘씩 사라졌어.
우리는 다른 마을에 가서 지원을 요청했지. 자네에게 무술을 배운 젊은이들이 조직을 이루고 숲으로 들어갔네.
결과는 참혹했지.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어.
그들의 생사를 알 수 없으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며 잠도 자지 못한다네.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와도, 혹시나 숲의 무언가가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그것을 퇴치하러 간 젊은이들이 돌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헛된 희망이 반복되었다네.
사람들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갔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큰돈을 들여 다른 나라의 왕에게 부탁했다네.
군사를 모아 숲을 한 번 점검해 달라고… 마을의 일 년 치 생활비를 털어 낸 큰돈이었지.
그 왕은 정의로운 왕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부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훈련을 받은 군사들을 보내줬다네.
그들이 도착하는 날, 마을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였어. 건장한 젊은이들과 노련한 중년 기사들로 구성된 그들은
겉보기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강한 것 같았거든. 질서 잡힌 모습으로 마을의 어느 것에도 손상을 입히지 않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희망에 들떴지. 이번만큼은 잘 되리라고 믿었어.
반드시 아이들의 행방을 알아오고, 숲을 차지하고 있는 괴물을 물리치게 될 거라고…"
로민의 얼굴에 쓴 미소가 떠올랐는데, 그게 너무나 써서 첸마저도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죽은 듯이 빛을 잃은 로민의 눈동자가 첸을 향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건가?"
"그래…"
로민이 말한 정의로운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기사들에 대해서는 첸도 잘 알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 만난 그들은 강했으며 정의로웠고 현명했다.
그들이 쳐들어온다면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조차도 행방이 묘연하다니…
온몸이 차게 식는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이 마을에… 아이들은 없다네."
"설마… 설마, 로민…"
"……"
"아아, 이런… 로민…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해줘, 제발…"
"미안하네, 첸. 나는 노력했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공포다.
아무리 강한 힘을 얻어도 어쩔 수 없는 공포.
"로민, 로민… 아, 내 오랜 친구여.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제발!"
로민의 눈에서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첸은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로민을 노려봤지만 그 눈에서도 빛이 사라졌다.
로민을 잡은 손에 서서히 힘이 빠지고 첸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야. 아니야! 난 다 거짓말이라는 거 알고 있어!
자네, 이거… 환영 인사치고는 너무 거칠다고 생각하지 않나? 응?"
"첸. 현실을 받아들여야 돼."
"저리 비키게! 난 내 아내를 만나봐야겠어! 분명히 집에서는 제이닐과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첸!"
로민이 첸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흥분하여 날뛰는 첸을 막아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마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첸에게 밀쳐져 길바닥에 쓰러진 로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첸! 제발 정신을 차리게! 자네 아내가 제이닐을 잃고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생각해 봤나?
자네가 더 강해지겠다면서 가족들을 뒤로 하고 떠난 후에, 혼자서 제이닐을 돌보다가 제이닐을 잃은,
자네가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아내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자책했을지는 생각해 봤냐고!"
첸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굳고 단단하던 첸의 어깨는 금방이라도 으스러져 버릴 듯이 위태로웠다.
"자네 아내는 자기 때문에 제이닐이 행방불명이 됐다고 언제나 괴로워했다네.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 자네가 돌아오면 자신을 얼마나 질책할지 두려워했단 말이네!
그런데 지금 자네가 이렇게 흥분한 상태로 집에 뛰어들어가 제이닐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면 그녀가 어떻게 되겠는가? 분명히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스라져 버릴 걸세!
알겠나? 그녀는 분명 부서져 버릴 거야. 몸도 마음도 형편없이!"
"아아…"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로민, 난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
자네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좋은 조언을 해주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제발 이번에도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게. 응?"
쓰러져 있던 로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첸에게 다가갔다.
슬픔으로 인해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첸의 어깨가 안쓰러워서 살며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로민도 자식을 잃었지만 아마도 첸의 슬픔이 더 크리라고 생각했다.
로민은 곧 있으면 첸이 자기 자신을 심할 정도로 자책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제이닐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혐오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강했지만 마음은 여리디 여린 어린 아이와 같은 남자였다.
그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고, 덩치만 컸지 마음은 아직 어린 첸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게. 아마도 자네 아내는 소파나 침대에 누워 있겠지.
그러면 말없이 다가가 자네 아내를 꼭 안아주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녀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그녀를 안아주게. 그리고 그녀가 자기 탓이라고 중얼거리면 자네가 말해주게."
"……"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첸의 검고 깊은 눈에서 슬픔의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려 이미 검게 변해버린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로민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첸은 다시 어린 아이일 때로 돌아간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고마워, 형. 정말 고마워…"
로민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첸은 영혼이 빠져나간 모습으로 소파에 구겨지듯 앉아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한 때,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불리었던 아내는 충격과 슬픔, 외로움으로 지쳐 몇 십 년은 늙어 보였다.
그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울음을 참으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우는 아내를 양팔로 꽉 안은 그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리야. 정말 괜찮아."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첸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세상에 태어난 후로 첸의 집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던 제이닐이 없었다.
제이닐이 없다는 사실은 집을 암흑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태양이 마을 하늘 위에서 환하게 빛나도 첸의 눈에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잠긴 깊은 절망 속에서 한숨만이 늘어갈 뿐이었다.
첸은 어떻게 해서든지 숲에 들어가, 알 수 없는 그것을 없애 버리고 제이닐을 구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희망을 잃었지만 첸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제이닐이 살아있다는 것을 믿었다.
여행을 하면서 강한 고수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라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라면 분명 숲에 사는 정체 모를 괴물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반대했다.
"안 되네, 첸. 자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야. 좋은 방법이 아니야."
로민이 나서서 첸을 말렸다.
하지만 제이닐을 잃은 슬픔으로 흥분한 첸의 귀에는 그의 말이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언제나 아름다운 미소로 그를 행복하게 해주던 리야가 어둠에 싸여 집안 구석에 앉아
매일 훌쩍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뭐든 해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대체 뭐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건가? 응? 내가 불러 모으려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저 숲에 들어갔던
어중이떠중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한 사람들이네. 한 명이 하나의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사람도 있어. 그들과 함께라면 분명 저 숲에 사는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야!
언제까지 겁쟁이처럼 이렇게 마을에 틀어박혀 멀거니 숲만 쳐다보고 있을 건가? 응?
그런다고 자네의 아들이, 그리고 우리 제이닐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제발 정신 좀 차리게, 로민!"
철썩-
흥분해서 외치는 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 것은 죠니였다.
첸보다 10cm는 더 큰 죠니가 첸의 얼굴만한 손바닥으로 힘을 실어 첸의 얼굴을 때리자
첸은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죠니를 노려봤다.
"죠니…"
"난 자그마한 마을에 사는 일개 의사일 뿐이야. 게다가 무서워서 저 숲에는 들어가지도 못하지.
약초나 뜯어서 근근히 먹고사는 일개 의사 따위의 일격도 피하지 못하는 자네가 지금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그건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슬픔이 자네를 나약하게 만들었군. 그게 변명일 뿐이라는 것은 자네가 더 잘 알겠지.
숲에 사는 괴물이 자네에게 공격할 타이밍을 가르쳐주고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누구나 방심한 틈을 노리고 덤벼드는 법이야. 안 그래?"
첸이 입술을 깨물었다.
분하지만 죠니의 말이 맞았다.
죠니는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차분하고 지혜로운 깊은 눈동자로 질책하는 기색 없이 첸을 응시했다.
"자네는 지금 너무 흥분해 있어. 자네가 보기에는 우리가 비겁자로 보이겠지.
하지만 자네가 떠나 있는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봐왔고, 너무나 많은 절망을 경험했네.
남들이 우리를 비겁자라고 하더라도 그런 절망은 더 이상 경험하고 싶은 게 우리의 심정이야.
자네를 잃고 싶지 않아. 자네는, 우리의 소중한 친구이지 않은가.
그리고 행여나 자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리야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더 이상 무책임한 가장이 되지 말게. 리야에게는 자네가 필요해."
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분했다. 세상의 모든 강한 힘을 손에 넣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했다.
그리고 절망스러웠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결국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했다.
가족이 가장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자신은 그들의 곁에 있지 못했다.
이게 뭐란 말인가. 이러려고 힘을 추구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난 대체…"
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죠니는 조용히 응시했다.
"난 대체 뭘 해온 거지?"
첸이 천천히 손을 올려 굳은살 박힌 손바닥을 쳐다봤다.
거친 손이 그가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거지?"
괴로운 목소리가 어두운 공기에 사무쳤다.
그리고 다음날, 마을에 몇 명의 낯선 소년과 소녀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