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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의사는 병원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앞으로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의사에게도 병균이 묻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고, 그것을 보며 의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껏 내가 무료로 돌보아주었던 사람들조차 나를 피하는구나.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인가.'
의사의 마음에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이 크게 자리잡았지만, 애써 억누르며 그들을 설득시키려 했다.
"아직 저것이 무슨 병인지 확실하지도 않고, 이곳에 그녀의 일행이 없으니,
마음대로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소리예요, 그게!"
한 여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입원 중인 자신의 아들을 잘 돌봐주는 의사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이 은혜는 꼭 갚겠다.'
고 몇 번이고 되뇌던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는 듯, 정색을 하고 의사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분명 그 이상한 애들도 저 여자애가 죽으니까 무서워서 도망친 거예요!
자기들도 병에 걸릴까 봐 두려워서, 시체 처리도 하지 않고!
그런 애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의사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오래 알고 지낸 이들은 아니지만, 그들은 결코 무책임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뢰할 수밖에 없던 우준의 깊은 눈동자를, 의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자신의 동료가 아무리 끔찍한 전염병에 걸려 죽었든 들,
소리 없이 사라질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돌아올 겁니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운 거겠지요.
전염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찾으러 갔거나 하는…"
"그럴 리 없잖아요! 저 애는 이미 죽었는데 무슨 약을 찾는다는 말인가요?"
"선생님. 선생님이 그 애들 덕분에 목숨을 건져서 그 애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전부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요?
선생님도 아들과 부인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저렇게 끔찍하게 죽으면 선생님 마음도 편치 않을 거라구요!"
의사는 마을 사람들 틈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찾았다.
의사가 너무도 사랑하는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의사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의사는 그들의 눈빛이 책망인지, 격려인지 알 수 없어서 괴로웠다.
"난…"
"어서 저 애를 불태워요! 그래야 우리들이 살아요! 한 시라도 빨리 태워야 한다구요!"
"난…"
의사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때, 의사의 아들이 달려나와 의사의 손을 잡았다.
"난 아버지를 믿어요."
"얘야…"
"내가 봐도 그 사람들은 동료를 버리고 도망칠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분명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아버지. 저랑 어머니 때문에 소신을 버리지는 마세요."
아들의 눈동자에는 아버지를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아내도 말없이 의사의 팔을 꽉 쥐고 있었지만,
의사는 자신의 부인이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저는… 여러분의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저 아이의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예욧!"
사람들이 외쳤다.
"당신이 안 하겠다면 우리들이라도 하겠어요!"
"맞아! 당신의 그 은혜 갚기 놀음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전멸할 수는 없어!"
"태우자! 어서 불태우자!"
그러면서도 막상 앞서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체를 잘못 건드렸다가 자신에게 병이 옮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의사는 마을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두려움이 많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사람들은 결의를 다지고 몇몇이 뭉쳐 병원 안으로 쳐들어갔고,
침대에 누워있는 채민을 끌고 나왔다.
하얀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있는 채민은 아무리 봐도 큰 병에 걸려 죽은 시체의 모습이었다.
의사와 그의 가족이 성난 사람들을 말리려고 해봤지만,
죽음의 공포 때문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막아서 귀찮게 하는 의사와 가족들을 잡아 밧줄로 꽁꽁 묶어 구석에 던져두었다.
"제발! 제발 그만하십시오!"
의사는 우준 일행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었다.
이대로 시체를 처리한다면 우준 일행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 때야말로 마을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게 될지도 몰랐다.
그 의로운 소년이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우준 일행과 함께 온 브리엔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 매혹적인 새빨간 입술을 가진 브리엔이
사람을 죽이는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채민의 침대 아래에 마른 장작을 쌓았고,
그 위에 석유를 뿌렸다.
의사에게는 석유 냄새가 피비린내 같이 느껴졌다.
의사는 제발 우준 일행 중의 누구라도 나타나,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흉측한 일을 멈춰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손에 든 장작개비에 불을 붙여 침대에 던질 때까지,
나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곰이 잘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며 숲 속 깊은 곳으로 날아가던 브리엔은 생각했다.
'제기랄. 동굴을 착각했군. 그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사는 건, 옆에 있는 동굴이었는데…'
단순히 "곰" 따위 때문에 실컷 겁을 준 자신을 떠올리며
우준 일행이 비웃을 것을 생각하면 배가 살살 아플 정도였다.
'빌어먹을!'
곰은 자그마한 박쥐 주제에 자신의 잠을 깨우고 알짱거리는 브리엔에게 몹시 화가 난 듯,
"우워엉!"하는 괴성을 지르며 열심히 브리엔을 따라왔다.
브리엔은 일단 우준 일행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버리지 않도록
곰의 앞에서 더욱 더 알짱대며 곰을 점점 더 동굴과 먼 곳으로 유인해냈다.
브리엔은 높은 나무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서 동굴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나무 아래에서는 잔뜩 성이 난 곰이 "우웡! 우웡!"하는 괴성을 지르며
나무 줄기를 두드려대고 있었다.
'이제쯤 약초를 찾아서 나왔으려나?'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은 마치 브리엔을 덮칠 것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고,
브리엔은 아무리 팔을 벌려도 하늘을 다 안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기억이 나지도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늘은 하늘, 구름은 구름일 뿐, 브리엔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브리엔은 그저 구름만 떠있는, 다른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늘을 보며
'아,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브리엔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그저 하늘을 보며 탁 트인 기분을 만끽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도 강하고 절망적인 생각에, 브리엔은 날개를 쫙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빌어먹을!"
곰을 내버려두고 빠른 속도로 마을로 향했다.
바람이 아플 정도로 세게 브리엔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이 시릴 정도였지만 브리엔은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마을 놈들이 현채민을 발견하면 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 못 하다니…
이 우둔한 놈! 오래 살았다는 놈이 그런 것도 생각 못 하다니!"
너무나 초조해서 날개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뭔가가 지나갔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빠른 속력이었지만
브리엔은 자신이 공기 중에 멈춰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브리엔은 한숨을 돌렸다.
마을에서는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아직 발견 못 한 건가?'
하지만 마을에 도착한 브리엔은 그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
마을 사람들은 채민의 침대에 불을 붙일 준비를 끝냈던 것이다.
의사 가족이 구석에 묶여, 채민을 불태우지 말라고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의사를 무시하고 장작개비에 불을 붙였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채민의 침대로 그것을 던졌다.
원래대로라면 석유에 젖은 채민의 침대와 그 아래 장작들은 화르륵 타올라야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예상했던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브리엔이 장작을 붙잡았던 것이다.
"멈춰라, 인간."
브리엔이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놀라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앗!"
브리엔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서늘했기에,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눈빛만으로도 파랗게 질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차갑게 빛나는 브리엔의 눈동자를 보며, 의사는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우리 마을을 이제 끝이구나.'
불이 붙은 장작을 손에 들고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는 브리엔의 모습은 악의 화신 같아서,
약간의 인정도, 약간의 동정도 베풀지 않을 것만 같았고,
그것은 미처 몰랐던 마을 사람들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브리엔이 범상치 않은 소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석유 냄새가 브리엔의 후각을 자극하자, 브리엔의 미간이 좁혀지며 잠시 채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채민이 석유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내 동료를 불태우려고 하다니…"
분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붉은 입술의 끝자락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브리엔은 자신이 채민을 "동료"라 칭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걸러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브리엔의 분노는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견뎌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부들부들 떨며 몇몇은 땅에 주저앉고, 몇몇은 혼절했다.
"그건… 그건… 전염병이 마을에 퍼질까 봐…"
이대로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의사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하지만 의사의 목소리는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던 브리엔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의사를 향하자,
의사는 움찔했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고 싶었다.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릴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의사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눈을 부릅뜨고
브리엔을 쳐다봤다.
브리엔이 분노를 걷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넌 마을 사람들을 말리려고 하지 않았나? 전염병 때문이라면, 가장 앞장서서 태우자고 했어야 할 네가
어째서 마을 사람들의 뜻을 따르지 않아 그곳에 묶여 있는 거지?"
"그건…"
"너까지 죽일까 봐 걱정이 되어 그러는 거라면 물러나 있어라.
난 불태우는 것을 거부한 너와 네 가족을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그런… 그런 게 아닙니다!"
의사가 외쳤다.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
"단지… 우리 인간들은 너무도 연약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가끔 공포에 사로잡히면 어찌할 바를 몰라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들은 공포에 질렸기 때문에 당신의 동료를
불태우려고 한 겁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라…"
그것은 브리엔으로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느끼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은 언제나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해왔던 것 같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들을 보며 브리엔은 조소를 흘리기도 하고, 약간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죽고 싶은데도 죽지 못하는 자신과는 달랐기 때문에…
"제발…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제발…"
의사가 간절히 부탁했지만 브리엔의 표정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용서라… 난 그런 거 몰라."
"아아, 제발…"
브리엔은 의사와 그의 가족은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어째서 의사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부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뜻에 거스르면 자기와 자기 가족들까지도 죽게 될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을 텐 데도,
의사는 브리엔을 만류했다.
브리엔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의사의 행동이 우준 일행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우준 일행도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곤 했다.
의사의 행동은 우준 일행의 행동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우준의 말이 떠올랐다.
… 응, 네가 마음에 걸려. …
… 그래도 역시 누군가를 죽이는 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니까. …
그 때의 다정한 눈빛과 걱정이 담긴 음성이 떠올라, 브리엔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칼날을 겨눌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며 브리엔을 쳐다보고 있었다.
브리엔의 입술과 브리엔의 손 끝에 자신의 목숨이 달렸다는 듯,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브리엔의 손에 들려 있던 불이 저절로 꺼졌다.
진한 회색빛 연기 한 줄기가 가늘게 흐트러져 올라갔다.
브리엔이 검게 탄 장작을 사람들 앞으로 휙 던지자, 사람들은 "꺄악!"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 애는 죽은 게 아냐. 독을 마시고 잠이 든 것뿐이지.
이 애의 일행이 해독초를 구하러 갔다. 전염병이 아니니 니들이 전염되어 죽을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애를 씻겨 다시 병원으로 옮겨라.
니들이 이 애에게 불을 붙이려고 했다는 걸, 그 애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서둘러라."
마을 사람들은 브리엔의 자비에 감사하다는 듯 벌벌 떨며 일어나 채민의 침대를 병원 안으로 옮겼다.
브리엔은 말없이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의사에게 다가가 손수 밧줄을 풀어주었다.
오래 묶여 있어서 아픈 손목을 문지르며, 의사의 아들이 물었다.
"당신 일행에게 이 사실을 걸리면, 그들이 우리를 죽일까요?"
충분히 걱정스러운 어조였다.
브리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단지 난, 그 애들이 인간에게 실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고양이의 눈물을 한가득 채집한 그들은 서둘러 동굴을 빠져나왔다.
"브리엔은 먼저 마을로 갔으려나?"
"그냥 냅둬도 어디 가서 죽을 놈은 아니잖아. 아마 우리보다 훨씬 안전할걸.
얼른 마을로 가자. 늦기 전에…"
"일단 알약 하나 더 먹고…"
그들은 알약을 나눠 먹었다.
강전에게 알약을 나눠주던 리현은, 강전의 손에 닿는 순간 약한 전기를 느끼고 얼른 손을 뗐다.
"너… 전기 흘러."
"에? 아? 그러네? 왜 그러지?"
"브리엔이 멀리 가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차희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더라."
차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보였다.
"야, 얼른 알약 먹자. 차희 쓰러지기 전에…"
리현은 말없이 차희를 쳐다봤다.
지금이라면 차희의 꿍꿍이를 알아볼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일행의 마음을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이 됐다.
'읽어볼까? 아냐, 이렇게 쉽게 남의 마음을 읽겠다고 생각해서는 결국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을 거야.'
모두 알약을 먹은 후, 마을을 향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 있었기 때문에 발걸음도 절로 빨라졌다.
알약을 먹었음에도 숨이 벅찰 정도였다.
리현은 차희의 마음을 읽으려는 생각은 버리고, 오직 채민이 무사하기만을 빌며 달렸는데,
오히려 그것이 사단이었다.
남의 마음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을 늦추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순간 차희의 마음이 강하게 리현에게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버린 리현은 발을 헛디뎠고,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앞으로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일행이 달리는 것을 멈추고 리현에게 다가왔다.
"야, 왜 이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네가 넘어지기도 하냐?"
강전이 키득대며 손을 내밀다가 멈칫했다.
자신의 장난에 늘 농담식으로 톡 쏘아붙이던 리현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듯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리, 리현아?"
으드득-
리현이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왜 그래, 너? 그러다가 사람 한 대 치겠다?"
강전이 어색하게 농담을 던졌지만 리현은 말없이 차희를 향해 돌아섰다.
차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리현을 쳐다봤다.
잠시 차희를 노려보던 리현은 주먹을 꽉 쥐며,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왜 채민이한테 독을 먹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