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모두의 시선이 차희에게 쏠렸다.
다들 같은 눈빛.
믿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눈빛을 보며 차희는 털썩 주저앉았다.
리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네가 채민이를 죽일 생각을 할 수가 있냐구!"
"나… 나는…"
차희는 목이 메여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동료들의 시선이 아프게 꽂혔다.
그들은 여전히 믿고 싶지 않은 듯 차희를 쳐다봤고,
차희는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다는 괴로움에 눈물만 주륵주륵 흘렸다.
리현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차희를 한 대 때리고 싶지만 참고 있는 듯 했다.
"지금은…"
우준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차희는 몸을 움츠렸다.
무엇보다 우준의 책망을 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야. 우선 채민이를 살려야 돼."
우준의 말에 그들은 정신을 차렸다.
"얼른 가자."
그들은 한 번씩 차희를 쳐다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차희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차희를 일으켜주려고 하지 않았다.
동료들에게서도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은 차희에게 있어서 깊은 절망이었다.
아직 해가 밝았지만 차희는 어둠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우준이 차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우준아…"
차희가 우준을 올려다봤다.
우준의 검은 눈동자는 책망도, 원망도, 비난도 담고 있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차희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자, 차희야."
우준의 목소리 또한 비난이 없었기에 차희는 더욱 더 눈물이 났다.
자신을 믿어준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사실이 더 뼈저리게 다가왔다.
차희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우준을 손을 잡았다.
우준은 힘있게 차희의 손을 잡아 차희를 일으켰다.
그리고 먼저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우준을 뒤따라 가며 차희는 생각했다.
'이제… 끝장이야.'
세상이 어두웠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군."
브리엔은 병실에 있었다.
채민의 곁에 앉아 있는 브리엔의 모습에 일행은 안도를 했다.
브리엔은 일행이 혹시라도 동굴에서 튀어나온 "곰"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먹여야 하지?"
"달여서 먹여야 하지만, 약을 달일 시간은 없을 것 같네. 씹어서 먹여."
"그래."
우준은 자신이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하늘빛의 고양이의 눈물을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그동안 일행은 말없이 채민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브리엔은 일행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들 사이에 존재했던 끈적끈적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지금은 사라진 것 같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하나, 하나의 얼굴을 살피던 브리엔이
차희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평소의 도도하고 당당한, 약간은 표독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던 차희의 표정이 변했다.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차희의 표정은 형편없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차희의 표정을 보며,
'현채민이 아닌, 박차희가 죽게 생겼군.'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양이의 눈물을 삼키기 쉬울 정도로 씹은 우준은 채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리고 혀로 씹어놓은 고양이의 눈물을 밀어넣었다.
차가운 채민의 혀가 우준의 혀에 닿았다.
우준은 채민이 이대로 계속 차가운 채로 남을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사실은 공포에 질렸다.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평생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한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몸이 떨릴 정도지만 간신히 참고 있다는 것을, 다른 일행이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혀 끝으로 고양이의 눈물을 채민의 목구멍 깊이 밀어 넣었다.
채민에게서 입술을 떼고 긴장이 깃는 눈동자로 채민을 응시했다.
꽉 쥔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여 나왔다.
우준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건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바짝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채민만 쳐다봤다.
가장 먼저 환호성을 지른 건, 해윤이었다.
"우와! 됐다!"
채민의 얼굴이 서서히 자신의 색을 찾기 시작했다.
불에 탄 것처럼 까맣던 살갗이 점점 희게 변하더니, 죽은지 몇 시간 지난 시체처럼 핏기 없이 하얗게 변했다가
곧 혈색이 돌고, 원래의 빛을 되찾았다.
움직이지 않던 가슴도 조금씩 움직여 몸 안에 산소를 이끌기 시작했고,
전혀 움직이지 않던 눈꺼풀도 잠자는 사람의 그것처럼 미세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아…"
모두 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으아… 정말… 죽는 줄 알았어."
가인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
해윤이 가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 가인아. 이제 괜찮아."
"아아… 채민아. 다행이다."
리현이 가까이 다가가 채민의 팔에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정말 다행이야."
한숨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기뻐할 때도 우준은 얼어붙은 듯 채민을 응시하고 있었다.
"얌마. 긴장 풀어, 이젠…"
브리엔이 우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준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물었다.
"언제 깨어나지?"
"멍청한 놈. 안 깨어나서 그렇게 바짝 얼어있는 거냐?
독이 중화되느라 몸의 기운을 다 써버렸을 테니, 한숨 푹 자야 일어날 거다.
그러니까 일단 내 궁금증이나 먼저 풀어줘."
"궁금증?"
드디어 우준이 긴장을 조금 풀고 브리엔을 돌아봤다.
브리엔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턱 끝으로 차희를 가리켰다.
"저 기집애. 왜 저렇게 바짝 얼어있는 거냐?"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 법정에 서면 이런 기분일까?'
차희는 공기가 쇳덩어리 같은 무게를 가지고 폐를 짓누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행들이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차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하나하나에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어서
차희의 온몸을 콱콱 찌르는 것 같았다.
온몸에 피가 흐르는 게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브리엔의 시선이 가장 무시무시했다.
브리엔의 눈빛에는 독이 있어서, 몸 아래에서부터 검게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정말이야, 박차희? 네가 채민이한테 독을 먹인 거야?"
가인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가인은 아직도 리현이 말한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리현이 잘못 안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차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 그것은 상당히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우선 진실을 알고 싶었다.
자신들이 믿고 함께 해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차희가
채민을 죽이려고 했다는 게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싶었다.
"그것뿐이 아니야."
리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원래 세계에 있을 때에 남의 마음을 읽음으로써 받게 되었던 수많은 상처들.
믿고 있던 이모가 부모님을 죽이고 유산을 가로채고, 리현까지도 죽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리현은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모두를 증오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단호하고도 슬픈 결심이 우준 일행을 만나며 서서히 빛을 잃고 사라졌는데,
차희의 행동을 알게 되자 다시 살아나 버렸다.
리현은 이런 일에 익숙했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큰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것뿐이 아니라니?"
비인이 리현을 쳐다봤다.
차희 역시 놀란 표정으로 리현을 쳐다봤다.
자신이 했던 몹쓸 행동이 또 있단 말인가.
리현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차희를 노려봤다.
자신에게 있는 소중한 것이 깨어질까 봐 겁에 질린 차희의 얼굴을 보니 동정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현은 고개를 저어 피어오르는 동정심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브리엔이 옆에 있어서 차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지금 차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분명 남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거짓 표정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을 조용히 덮어두고 넘어간다면, 또 다시 채민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게
리현의 생각이었다.
리현이 입술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차희는 단두대에 목을 드리운 사람과 같은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차희에게 있어서는 리현의 선포가 단두대의 칼날이 내려오는 것보다 더한 심판이었다.
"전에… 유괴범을 만났던 숲에서의 일이야."
리현의 목소리에는 모래알만 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리현은 말을 이었다.
리현의 눈은 더 이상 차희를 향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가인이 목에 불이 붙어서 화상을 입은 거 기억해?
우리는 그게 채민이의 불행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 채민이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 말로 충분했다.
모두 한 가지의 표정으로 차희를 쳐다봤다.
차희는 더 이상 그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 병원에서 뛰어나가 버렸다.
차희를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행 사이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일행을 믿고 있던 우준에게는 그 충격이 더 컸다.
"정말…이야, 리현아?"
"난 남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서 상처를 받고 살아온 애야. 그런 내가 남을 속일 리가 없잖아."
가인은 다 나은 상처에 문득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손으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해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희 기집애. 못된 기집애인 줄은 알았는데, 정말 악질이네."
"그래도… 좀 달라진 것 같아 보였는데… 충동적으로 채민이에게 독을 먹였다가
후회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중독된 채민이를 보고 기뻐하는 표정은 아니었으니까…"
비인이 차분하게 말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차희 편을 드는 거야?"
리현이 눈꼬리를 세우고 비인을 쏘아붙이자, 비인이 두 손을 휘휘 저었다.
"편이라니… 굳이 누구 편을 들어야 한다면 난 채민이 편을 들 거야.
단지… 그냥, 좀… 그래 보였다는 거지. 사람이 달라 보일 정도로…"
"나도 그렇게 느꼈어. 내가 깜빡 속았던 거지.
박차희, 그 기집애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기집애인 줄 몰랐거든.
지금도 분명히 연기를 하고 있는 걸 거야. 우리의 동정심을 사기 위해서 말이야."
"아, 씨발!"
강전이 욕설을 내뱉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아, 젠장! 차희 저 기집애는 왜 저렇게 채민이를 미워하는 거야?
채민이가 못된 기집애인 것도 아니고, 여자들의 적인 내숭떠는 여자인 것도 아니고!
조낸 착하고, 조낸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왜 저렇게 미워하는 거냐구!"
브리엔은 말없이 차희가 나간 곳을 응시했다.
모르기는 몰라도 일행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차희의 얼굴에 떠오른 후회와 죄책감은 연기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브리엔을 속일 수는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가 없었다.
"성격이 베베 꼬인 거겠지."
리현이 팔짱을 끼고 우준을 돌아봤다.
우준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그 속은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채민을 죽이려고 한 것이 일행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도 없거니와,
그 사실을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벌써 몇 번이나 채민이 죽을 고비를 넘기게 내버려둔 자신의 무능력함에 화가 치밀어서
주위에 있는 것을 뭐든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강우준. 확실하게 하자."
허공을 응시하던 우준이 리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리현은 우준의 절망감이 읽히는 것만 같아서 잠시 미간을 좁혔다.
"난 박차희가 싫어. 그래도 지금까지는 우리 일행에게 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가야하는 것도 참았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박차희는 위험해. 또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야.
만약 저 애가 같이 간다면 난 일행에서 빠지겠어. 채민이랑 같이…"
"……!"
리현의 단호한 선포에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행에서 빠지겠다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현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만 같았기 때문에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리현은 매섭게 치켜 뜬눈으로 우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준은 말없이 리현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도…"
가인이 입을 열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모두가 가인에게 주목했다.
"나도 차희가 같이 간다면 빠질래. 차라리 리현이랑 채민이랑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가인아…"
비인이 안타까운 눈으로 가인을 쳐다봤지만, 가인은 슬쩍 비인의 시선을 피했다.
해윤이 말했다.
"난 어느 쪽이든 가인이가 선택하는 곳으로 따라갈 거야. 가인이는 내가 지켜야 하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해윤의 목소리는 쾌활하게 들렸다.
"나도다. 일부러 사람을 죽일 계획을 세우는 박차희랑 같이 가느니,
채민이의 불행과 함께 하는 편이 낫겠어. 적어도 채민이의 불행은 일부러 남을 죽일 계획을 세우지는 않잖아."
우준이 비인을 쳐다봤다.
비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난 우준이 네가… 가장 옳은 선택을 할 거라고 믿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네가 선택하는 걸 따를게. 적어도 우리에게 위험한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
우준이 눈을 감았다.
브리엔은 조용히 우준을 쳐다봤다.
우준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우준은 언제나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결정을 내리곤 했다.
그래서 브리엔은 우준 일행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죽음을 위한 신과의 계약 때문에 시작했던 일이 차차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변해갔다.
이번에도 우준은 자신이 예상치 못한 결론을 내릴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거냐. 박차희를 용서하고 받아줄 거냐, 아니면 현채민을 위해 박차희를 버릴 거냐.'
"……어떻게 생각해?"
이윽고 우준의 입술이 벌어지며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 질문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다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준이 곧 눈을 뜨고 브리엔을 쳐다봤다.
"넌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브리엔?"
"하…?"
브리엔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우준이 자신에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역시 넌… 늘 내가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는군.'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브리엔이 말했다.
"그래…"
실망한 목소리에 브리엔은 조금 죄책감이 느껴졌기에, 다시 말을 바꾸었다.
"강우준. 이건 네 책임이 아냐. 어떤 결과가 나오던, 박차희의 행동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결코 네 책임이 아냐. 그러니까 네가 마음에 부담을 가질 것 없다."
"그렇겠지… 하지만, 난…"
"인마."
브리엔이 우준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냐? 내 말은 절대적이야. 내 말에 토달지 마.
넌 책임감 느낄 거 없어. 버리고 싶으면 버리고, 받아주고 싶으면 받아줘.
네가 뭘 원하던, 어떤 선택을 하던, 그 결과를 초래한 것은 박차희의 행동이잖아.
널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난, 결과가 어떻든…"
브리엔이 잠시 말을 멈춘 것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결과가 어떻든, 너와 함께 해주지."
우준 일행이 언제나 그렇듯, 장난식으로 브리엔의 말을 받아치며,
"뭐가 함께 해주지냐. 네 녀석이 함께 하는 거, 조금도 기쁘지 않다구."
따위의 말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우준은 검고 깊은, 매력적인 눈동자로 브리엔을 응시하며 말했다.
"고맙다, 브리엔.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래서 브리엔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그 모습을 본 일행은 잠시 차희의 일을 접어두고
마음껏 브리엔을 비웃었다.
병실 안에 있는 채민이, 그들이 모르는 새에 깨어나 베갯잇이 축축히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내가 싫었구나, 차희야.'
가슴이 뜯기는 기분이었다.
원래의 세계에서 모두에게 버림을 받았다.
다들 채민을 멀리하면 가슴이 아파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믿고 있던 일행 중의 한 명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흐느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고 소리를 죽여 눈물을 흘렸다.
'정말… 내가 그렇게 싫었구나.'
신은 아주 재미있었다.
차희의 마음을 약간 건드린 것뿐인데, 우준 일행은 그것을 감당하기 벅차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온갖 시련에도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우준 일행 때문에 배알이 꼴렸었는데,
이번 시련만큼은 우준 일행에게도 아주 충격을 준 것 같아서 상당히 즐거웠다.
게다가 브리엔조차도 이번 일은 신이 개입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서 더 즐거웠다.
브리엔이 우준 일행에게 휩쓸리는 걸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신은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 앉아 중얼거렸다.
"박차희가 불의 저주였던가? 그럼… 이제 다음으로 넘어갈 시간이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