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빛 한 바구니, 고양이 두 스푼-69화 (6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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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마법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녹색 마법사는 또 다시 검은 마법사가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쓱쓱 닦아내고는 정중한 자세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검은 마법사가 아닌 우준과 그 일행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녹색 마법사는 채민이 말하던 그 일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주를 풀기 위해 이 세계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그들.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던 그들.

그들이었다!

겨우 멈추었던 눈물이, 그들을 보는 순간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척 추할 거라고, 그들이 비웃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아니겠는가.

처음 찾아온 손님을 앞에 두고 사내라는 녀석이 눈물만 펑펑 쏟아내는데…

하지만 비웃음은 들려오지 않았고, 왜 우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그대로 서서 녹색 마법사를 지켜봤을 뿐이다.

녹색 마법사는 겨우 눈물을 멈추고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오십시오."

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오두막 내부가 사실은 굉장히 넓은 장소라는 것에 상당히 감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 듯,

우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채민이를 찾으러 왔습니다."

녹색 마법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악랄한 검은 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채민을 가져갔다고 말하면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리고 채민을 인형에 가둬서 검은 마법사에게 넘긴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면

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두려웠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잘근잘근 씹는데, 우준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채민이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 녀석이 뭐라고 말했든, 그 녀석은 우리의 소중한 동료입니다.

데려가야 합니다."

녹색 마법사는 우준을 쳐다봤다.

채민에게 걸린 불행의 저주.

채민은 자신이 저주 때문에 고민했지만 우준과 그의 친구들은 그런 저주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설령 죽음이라도 불사할 듯한, 굳은 눈빛을 가진 우준이 채민에게는 있었다.

"이곳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죠?"

우준이 다시 물었다.

녹색 마법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검은 마법사. 그가 데리고 갔습니다."

"왜요?"

리현이 끼어 들었다.

"검은 마법사라는 사람이 왜 우리 채민이를 데려간 거지요?"

리현에게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리현의 말투 자체가 당최 질책하는 듯한 말투였기에

녹색 마법사는 찔끔했다.

그걸 본 강전이 리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넌 이 기집애야, 말투가 너무 사나워. 저 곱게 생긴 아가씨가 네 말투에 바짝 얼어붙었잖아."

"아, 아가씨가 아닙니다!"

녹색 마법사가 버럭 외치자 강전이 빙긋 웃었다.

"목소리 크구만. 왜 지금까지 그렇게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던 거유?"

"아…"

녹색 마법사가 얼굴을 붉혔다.

'설마… 내가 너무 기운이 없어 보여서 일부러…?'

"아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이 녀석, 진짜로 당신이 여자인 줄 알았을 걸요.

꽃미남 남자한테 호의를 베풀 만큼 착한 녀석은 아니거든요."

"야, 야. 넌 날 무슨 개망나니 바람둥이로 보는 모양인데…"

"개망나니는 맞지만 바람둥이로는 보지 않아. 네 성격에 바람을 피울만한 여자를 찾을 수나 있겠어?"

"아, 진짜! 이 기집애가 정말!"

녹색 마법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사람들이군요.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채민.'

"마음을 읽으십니까?"

"맞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당신 표정이 드러난 생각을 읽은 것뿐이에요.

지금은 이 녀석 덕분에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잠깐 사라졌거든요."

리현이 브리엔을 가리켰다.

브리엔에게 시선을 옮긴 녹색 마법사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처음 만나지만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은 마법사 따위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능력을 지닌, 그 능력의 끝을 파악할 수 없는…

"설마… 당신은…"

브리엔이 한 손을 올렸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누구냐가 아니지.

넌 검은 마법사의 속박의 반지에 속박되어 있는 마법사인가?"

녹색 마법사가 고개를 숙였다.

"네, 맞습니다."

"속박의 반지?"

가인이 고개를 갸웃하자, 브리엔이 녹색 마법사 대신 대답했다.

"이 세계에 딱 하나 있는 반지인데, 요새 검은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속박시켜서 자신의 종으로 부릴 수 있게 하는 반지지.

여러모로 편리한 반지야. 속박된 사람은 죽은 후에도 영혼이 되어 소유자의 종으로 남으니까…"

"어떻게 그런…"

영혼을 볼 줄 아는 가인이 끔찍하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검은 마법사라는 건 어떤 사람이야?"

비인이 물었다.

"한 500년 정도 산 애송이던데… 사람들의 영혼을 인형에 가두어 두고 마력이 필요할 때마다

그 영혼을 하나씩 꺼내서 사용하지. 인간의 영혼이라는 게 흑마법에는 상당히 좋은 연료로 사용이 되거든.

그 영혼을 태우면 마력이 엄청 강해져서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룰 수도 있으니까…"

"그런 개자식이 있단 말이야?"

리현이 버럭 했다.

태운다는 말에 더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태우는 능력을 가진 차희가 불에 타서 죽은 후이기 때문에 더 했다.

"진짜 나쁜 놈이네, 그놈. 뭐 그런 놈이 다 있어?"

"그 분이 말하기를…"

"잠깐."

우준이 말을 막았다.

"네?"

"왜 그 분이야? 너 그 놈을 존경해? 그 놈 사랑해?"

"엥?"

어울리지 않는 질문에 다들 멍하니 우준을 쳐다봤다.

"너 그 분 존경하냐고?"

"그, 그럴 리…가요…"

"그럼 그 분이라고 하지 마. 네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

사실은 그 개새끼라고 말하고 싶잖아. 안 그래?"

"아, 하지만… 난 그런 심한 말은…"

"그렇게 말한다면 들어주지."

"아, 그렇게 말씀하셔도…"

"안 그러면 안 들어."

이쯤 되면 완전히 생떼 수준이다.

이번에도 일행은 동시에 생각했다.

'강우준이 미쳤구나.'

하지만 녹색 마법사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 개새끼가 말하기를…"

"그래, 그거 듣기 좋군."

우준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난 우준이의 생각의 끝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가인이 중얼거렸다.

"채민의 영혼을 가장 먼저 사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네. 그러니까 얼른 가서 채민의 영혼을 구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

"그리고 또 할 말 있잖아."

"할 말이라니…"

이번에 일행은 우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모두 빙그레 웃으며 마법사를 쳐다봤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마법사는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힌트를 주지. 난 무척 강해. 이제 오지랖이 좀 넓어져도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또 할 말은?"

녹색 마법사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우준에게 다가가 두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속박의 반지를… 없애주십시오."

우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그 개새끼가 너한테 이 지랄, 저 지랄 해대면서 힘들게 하는 데다가,

채민이의 영혼을 가장 먼저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개소리를 지껄여댄다는 말이지?"

"…네."

"그러니까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할 수 없더라도, 내가 괜찮지 않더라도

어떤 방법을 써서든 그 개새끼가 가지고 있는 속박의 반지를 깨부숴 달라는 거잖아. 맞지?"

녹색 마법사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주륵 흘러내렸다.

이제는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아직도 흐르는 이유는,

아까와 다른 의미의 눈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믿음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이 현실로 다가와 눈물이 흘렀다.

"네, 반드시요."

우준이 휙 돌아서며 말했다.

"약속할게, 기다려."

검은 마법사의 성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다.

장애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튀어나오지 않는 평범한 산책로 같은 분위기였다.

날씨도 좋았고, 흙 냄새에 섞인 나무의 향기도 신선해서 가슴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주위를 둘러싼 환경 때문인지 그들은 조금 희망적인 기분으로 쭉쭉 걸어나갔는데,

어느 정도 걷던 중에 더 이상 희망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드넓은 강이 그들의 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일이 너무 술술 풀린다 했어."

강전이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의 여행이 순탄치 않았던 이유가 채민이의 불행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게 확인된 거네."

"그러게 말이야."

리현의 말에 가인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강을 어떻게 건너지?"

"난 수영 잘 해."

우준이 딱 잘라 말했다.

"잘났다, 이 자식아."

강전이 대꾸했다.

"난 물에 못 들어가. 물에 들어가면 니들 다 감전돼서 죽을 거다."

"무시무시하군. 상종 못할 인간."

"소리현! 너 진짜 허구한 날, 나를 갈굴래?"

"이제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군. 왜? 감전 시켜 죽이게?"

"안 예쁜 기집애."

"고마워. 너한테 예뻐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두 사람이 툭탁대고 있을 때,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보던 비인이 말했다.

"저기 저쪽에 사람 사는 집 같은 게 보이는데…"

비인이 가리킨 곳으로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 하나 보였다.

먼 거리여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은 서둘러서 그곳으로 향했다.

오래 걸은 후라 다리가 많이 아프기는 했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오두막은 다 낡아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오두막 주위에는 나무로 된 낮은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는데,

사람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심심해서 만들어 놓은 듯 전혀 실용성은 없었다.

울타리 안쪽으로는 텃밭으로 보이는 땅이 있었는데

잡초가 허리 길이까지 올라오고 먹을 수 있을 만한 식물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관리를 하지 않은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울타리 가장자리에 위치한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그네가 기괴한 분위기를 더욱 살려주었다.

"뭐야? 사람 사는 거 맞아? 발 들여놨다가는 귀신 쓰일 것 같은 분위기인데?"

강전이 중얼거리며 울타리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였다.

휙휙-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강전의 다리에 날카로운 작대기가 우수수 박혔다.

"으앗! 따갑잖아!"

고작해야 5cm정도 크기의 자그마한 이쑤시개 크기의 작대기였기에

큰 위험은 없었지만, 몇 개씩이나 다리에 박히니 무척 따가웠다.

모두 놀라서 강전에게 다가가려는데, 리현이 한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잠깐. 이 안에 덫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아. 지금 이것도 강전이가 뭔가를 밟아서

날아온 것 같은데,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

강전아.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

"야, 이 기집애야! 니들 다치는 건 안 되고, 내가 다치는 건 된다는 거냣!"

"난… 여자잖아."

"우웩."

강전은 투덜대면서도 이 정도의 상처 정도면 위험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지

저벅저벅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삐걱-

이번에는 강전이 뭔가를 밟은 소리가 확실하게 들렸고,

그 순간 왼쪽에서 나이프 몇 개가 날아왔다.

당황한 강전이 피하기도 전에, 리현과 우준, 가인이 무기를 날려 나이프를 쳐서 떨어뜨렸다.

땅에 떨어진 나이프는 끝이 날카롭고 폭이 좁아서

그대로 다리에 꽂혔더라면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데? 강전아. 좀 더 안으로……"

"야! 너 진짜 맞고 싶은 거냐? 앙?"

강전이 버럭 외칠 때, 오두막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웬 쥐새끼들인가 했더니, 사람이었군."

"이봐요, 할아범! 우리 죽을 뻔했다구!"

"걱정하지 마. 이 정도 덫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은 없으니까."

신경질적으로 생긴 노인은 자신이 만든 함정 때문에 사람이 다쳤음에도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 집에 마음대로 불쑥 찾아온 너희들이 잘못이라는 듯 질책의 시선을 보냈다.

"네놈들은 누구지? 내 집에는 왜 찾아온 거냐?"

"혹시… 오두막 앞에 있는 나룻배가 할아버지의 배인가요?"

"그렇다면?"

노인이 희게 센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고집스러운 눈빛을 보아하니, '네놈들이 무슨 부탁을 하던 들어줄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비인은 질리지도 않았는지 꿋꿋하게 말했다.

"저희들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할아버지의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요.

배로 강을 건네다 주실 수 없을까요?"

"없다."

노인은 딱 잘라 대답하고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가족을… 잃으셨군요."

들어가려던 노인이 움직임을 멈췄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건…"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냣!"

노인은 비인의 대답을 들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문 옆에 놓여 있던 녹슨 낫을 들고 비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비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인을 막은 것은 우준이었다.

우준이 노인의 팔을 꽉 붙잡고 노인을 응시했다.

"쉽게 추리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이 화단은 손보지 않은지 2년 가량 되어 보이는군요. 물론 그 전에는 무척 손질이 잘 되어있었겠지요.

아마 손자나 손녀를 위해 예쁘게 꾸민 화단과 나무 그네를 만들어준 것 같네요.

하지만 무슨 사건으로 인해 손자를 잃게 되자, 삶의 의욕을 잃으신 할아버지는 더 이상

화단을 가꿀 필요가 없게 된 거지요."

비인이 술술 이야기하는 것을, 일행은 모두 놀라서 쳐다봤다.

단지 화단과 나무 그네만 보고서 이 정도까지 알아채다니…

"그리고 이건 내 짐작일 뿐이지만… 집 주위에 이렇게 함정을 만들어 놓은 걸로 봐서는

우연한 사고로 손자를 잃은 것이 아니라, 위험한 뭔가가 손자를 헤쳤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덫을 만들어 놓은 거구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손자가 결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만약 손자가 단순히 집을 나갔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라도 돌아올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집 주위에 이렇게 위험한 덫을 쳐놓지는 않았겠지요.

그리고 화단도 계속 가꾸었을 테구요."

"그래…"

완고하기만 하던 노인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며, 주름진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레미얼은 돌아오지 않아… 그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지…"

"할아버지…"

가인이 안타까운 마음에 노인에게 다가가서 노인의 팔을 살짝 잡았다.

가인의 눈동자가 노인만큼이나 큰 슬픔을 담고 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악귀 같은 놈들… 내게 하나뿐인 손녀를… 이제 마지막이었던 가족을…

차라리 죽는다면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그 어린 것을… 그 어린 아이를…"

"죽었습니까?"

우준이 물었다.

노인이 한껏 슬퍼하고 있는데 우준이 너무 직선적으로 질문을 하는 바람에 모두 당황했다.

"아직은 안 죽었겠지. 하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 악귀 같은 놈들에게 잡혀갔다면…"

"그럼 됐습니다."

우준이 이미 힘을 잃은 노인의 팔을 살며시 놓아주며 말했다.

"할아버지의 손녀를 다시 이곳으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되는 거지요?"

노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놈들에게 잡혀가서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건 내가 더 잘 알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인의 눈은 희망으로 빛을 되찾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잃은 공허한 눈에 빛이 떠오르자 일행은 기분이 좀 좋아졌다.

게다가 우준이 하는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 그들은 무척 강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괴롭히던 유괴범도 해치운 판에, 그 때보다 더 강해진 그들은 무엇이 나타난다고 해도

두려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습니까. 잘 알고 계시다면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그것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그 후에 우리가 할아버지의 손녀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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