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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강전은 온몸을 얻어맞은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가만히 누워있었다.
두통이 너무 심해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누운 채로 천장을 보며 숨을 골랐다.
내부는 상당히 눅눅해서 천장에는 검푸른 이끼가 끼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한 강전은 그제야 자신이 꽁꽁 결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낮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한 뼘 크기의 자그마한 창문으로 한 조각의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어서
내부를 관찰할 정도는 되었다.
단지 목을 움직이기가 몹시 불편했을 뿐이다.
딱딱한 바닥에 쏠린 팔과 다리가 무척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허리에 힘을 줬다.
겨우 상체만 일으킨 강전은 자신이 아주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짙은 회색의 더러운 벽돌로 만들어진 방이었는데, 굵은 나무 기둥으로 막혀 있었고
그 앞에는 방을 만든 것과 같은 색의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감옥인가?'
강전은 엉덩이를 움직여서 벽으로 다가가 등을 기댔다.
축축한 돌벽의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온몸이 불덩이처럼 열이 나고 있는 상태라
시원한 것이 차라리 나았다.
물에 빠졌다가 건져진 상태에서 바로 아무렇게나 방치된 강전은
심한 감기에 걸린 상태였다.
허리께에 매달려 있던 강전의 검은 이미 사라진 후였기에 결박당한 팔과 다리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콜록… 콜록…"
거센 기침을 하며 강전은 머리를 벽에 댔다.
머리에도 약간 시원함이 느껴졌다.
아마 돌벽 사이에 있는 작은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목이 심하게 따끔거리는데다가 두통은 가시질 않고 온몸은 으슬으슬 떨려서
강전은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기랄… 다른 것도 아니고 감기 때문에 죽게 생겼군. 쪽팔리게…'
강전은 눈을 감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곳에 갇히게 된 건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배에서 뛰어내린 강전은 거센 물살에 휘말렸지만 어떻게든 동료들에게 가까운 곳으로 가지 않도록 허우적댔다.
필사적인 노력에 대한 보상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 강전의 손은 돌에 닿았고
강전은 있는 힘을 다해서 돌을 붙잡고 육지로 올라왔다.
기억은 거기까지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어두운 하늘을 보며 눈을 감았던 것 같기도 하고, 동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 하류로 내려가려고
엉금엉금 기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눈을 떠보니 이런 곳이다.
언제 결박을 당했는지도, 언제 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애들은 무사하려나?"
강전은 중얼거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려 애썼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콜록… 콜록!"
폐병이라도 걸린 환자 마냥 자꾸 기침이 새어나와서 괴롭다.
내뿜는 숨결에서도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입안에 단내가 풍겼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뭐라도 먹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다.
"살아야 하는데…"
강전은 겨우 눈을 뜨고는 벽에 대고 있던 등을 퉁기듯이 밀어내 앞으로 고꾸라졌다.
"살아서 녀석들을 다시 만나야 하는데…"
강전은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해서 복도가 있는 곳까지 기어갔다.
온몸이 부서지듯 아픈 상태인 강전에게는 이 좁은 공간이 몇 백 평은 되는 성처럼 넓게 느껴졌다.
아무리 기어도 끝에 닿지 않았다.
'죽겠군, 정말…'
필사의 노력으로 겨우 나무 기둥에 닿았다.
강전은 잠시 멈춰서 거세게 숨을 몰아쉬었다.
색색거리며 아픈 숨이 토해지듯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토할 것만 같았다.
"우욱…"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결국 참지 못하고 토악질을 했다.
먹은 것이 없었기에 신 위액만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뚝뚝 흐르는 위액과 같이 눈물도 뚝뚝 흘렀다.
열 때문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성이 어디론가 사라진 듯 했다.
너무 아프니까 사람이 너무 그리운데, 생각나는 사람이라고는 동료들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생사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지금, 강전은 홀로 남겨졌다는 것이
너무도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으흑…"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함께 해온 동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애들의 웃음, 그 애들의 목소리, 그 애들의 얼굴, 그 애들의 체온이 너무 그립다.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어준다면 이것보다는 나은 기분일 텐데…
어둠이 주위를 감싸서 그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기분에 빠졌다.
"으흐흐…흑…"
죽어버린 차희마저도 너무 그리워서 강전은 계속 괴로운 흐느낌을 흘렸다.
"으흐흑…"
흐느껴 우느라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돌벽에 울리던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강전의 앞에서 멈추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강전은 눈앞에 보이는, 짙은 푸른색의 신발을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주위가 어두웠기 때문에 남자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윤곽은 구별할 수 있었는데,
지극히 평범한 육체와 지극히 평범한 키, 지극히 평범한 눈빛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다.
아마도 어느 나라의 군대에 속해있는 군인인 듯 싶기도 했고,
감옥을 지키는 일개 교도관 같기도 한 그는
약자의 앞에서 상당히 강해지는 타입으로 보였다.
지금은 뒷짐을 지고 거만한 자세로 강전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아마도 자신보다 조금 지위가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굽신굽신거릴 것이 분명하다.
"깨어났군."
목소리는 야비하기 짝이 없어서, 성격이 급한 강전이지만 지금 그에게 잘못 보이면
그가 가차없이 구타를 해댈 것이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몸 상태라도 좋으면 그딴 거 상관하지 않을 테지만, 죽을 것만 같이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맞아봤자 좋을 거 없다는 생각에 강전은 한숨을 내쉬며 성질을 죽이려 노력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다시 동료들을 만나고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벗어나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 평온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강전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될 수 있도록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내가 왜… 이곳에 갇혀 있는 겁니까?"
심한 기침으로 인해 쉬어버린 목소리가 꺼져가는 불꽃처럼 작게 흘러나왔다.
강전이 몹시 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동정의 빛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왜냐고? 너…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더군. 온몸에서 파직거리는 이상한 것이 튀기던데…"
"……"
"우리 나라의 사람들은 말이야, 굉장히 마음이 곱단 말이야. 그래서 마을 입구에 쓰러진 네놈을 살려주려고
다가갔는데, 이상한 힘이 흘러나오니 놀랄 수밖에… 분명 우리 나라의 왕을 죽이려고 온 자객이
틀림없겠지. 멍청하게도 물에 빠져서 기절한 것 같지만 말이야.
그런 네놈을 그냥 둘 수가 있나. 그래도 우리 왕께서 워낙 자비로우셔서 네놈을 살려두시기는 했지만,
네놈도 곧 죽을 운명이야. 우리 왕께 충성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는 한, 네놈은 죽게 될걸. 크크큭."
'살려는 생각에 마을 입구까지는 기어온 모양이군.
빌어먹을… 그런데 왜 기절을 했느냔 말이야. 제기랄…'
강전은 약해빠진 자신의 몸을 탓하며 기침을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폐가 터져 버릴 것처럼 아팠다.
"뭐, 상태를 보아하니, 굳이 이쪽에서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죽을 것 같지만."
"살아야 돼…"
강전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아야 돼…"
"뭐?"
워낙 작은 목소리여서 그의 귀까지는 닿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오늘 왕께서 만찬을 여시는데 각 나라의 귀하신 분들이 초대 받으셨지.
네놈의 이상한 힘을 그 분들이 구경하실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것 같더란 말이야.
곧 있으면 만찬에 초대될 테니 긴장하고 있어라.
네놈 같은 쓰레기가 귀하신 분들 가까이서 뵈면 후둘후둘 떨다가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
남자는 올 때와 같은 걸음걸이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강전은 털썩 드러누웠다.
힘이 하나도 없다.
뭐라도 먹으면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위에 먹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어다니는 쥐라도 발견하면 그것이라도 잡아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지만
살아있는 생물이 돌아다니는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강전은 눈을 감고 다른 생각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보고 싶다, 얘들아…'
동료들과 떨어진지 고작해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과 있었던 시간이 너무도 그리웠다.
'정말 보고 싶다.'
얼마나 그렇게 누워있었을까?
몇 명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에, 강전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미 바깥도 어두워져서 감옥 안에 들어오는 빛이 없었기에,
그들은 등불을 들고 왔는데, 맨 앞에는 아까 강전을 찾아왔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야비한 얼굴에 조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강전은 저 인간이 왜 저리도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강전은 모르겠지만, 그가 강전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이유는
강전이 기절한 채로 마을에 실려왔을 때 먼 발치에서 강전을 본 공주가
"와아. 잘 생겼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잘난 얼굴도 아닌데다가 특별한 능력조차 없어서 여자들에게 멸시 당했던 그로서는
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단지 잘난 얼굴 때문에 공주의 입에서
감탄사를 끌어낸 강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는 튼튼해 보이는 긴 갈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덜컹-
감옥의 문이 열리자, 강전은 저들을 다 죽여버리고 도망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관뒀다.
지금 팔과 다리가 자유롭지 않은 데다가 전기의 힘을 쓴다 해도
체력이 너무 소진된 상태여서 기절해버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고리를 든 남자가 피식피식 웃으며 들어와 팔에 묶인 밧줄에 갈고리를 걸고는
거칠게 강전을 끌어당겼다.
힘이 없는 강전은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다리가 묶여 있는 상태라서 도저히 남자의 빠른 걸음을 따라갈 수 없어,
그만 바닥에 털썩 넘어지고 말았다.
얼굴부터 아래로 넘어져서 턱이 돌바닥에 찧었다.
아프다.
턱보다 마음이 아파서 강전은 이를 꽉 깨물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서 화가 치밀었다.
"일어나, 이 새끼야!"
남자가 강전의 머리를 발로 찼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감옥 안에 울리자 따라온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의 눈에도 강전이 참으로 안쓰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게중에 지위가 높은 듯한 사람이 나섰다.
"너무 거칠게 다루지 마라. 곧 폐하의 손님들께 보일 몸인데 거칠게 다루면
손님들이 폐하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죄인에게조차 자비로운 왕이라는 것을 보여야 하는데, 이런 처사는 좋지 않다."
"아, 예예. 소인이 잘못 생각했습니다. 워낙 이렇게 굴러먹은 놈이라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굽신거리며 사죄하고는 강전의 다리에 묶인 끈을 풀어주었다.
"도망갈 생각하지 마라. 혹시라도 도망쳤다가는 저 분들이 네놈의 목을 베어버릴 거야."
강전은 어차피 도망갈 생각도 없었다.
이 상태로 도망쳐봐야 멀리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서 포기한 것이다.
차라리 왕의 만찬에 초대되어 좀 구경거리가 되고 난 후에 먹을 걸 얻어먹고
체력이 붙으면 그 후의 일을 도모하는 편이 나으리라고 판단했다.
강전은 순순히 걸어서 그들의 뒤를 따라나갔다.
감옥은 성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모양인지, 감옥 앞에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름다움보다는 튼튼함을 강조하여 만들어진 듯한 마차의 뒤에는
죄인을 위한, 두꺼운 나무로 살을 만든 수레가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강전이 잘 하고 있는데도 괜히 강전의 엉덩이를 발로 차며 외쳤다.
"빨리빨리 서둘러!"
강전은 울컥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기분이 더러워서 전기가 파직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계속 되었다가는 정말 쓰러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분노를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강전은 속으로 되뇌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거쳐가야 하는 과정.'
수레에 올랐다.
잘못한 것도 없건만, 단지 이상한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죄인을 싣는 수레에 오르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덜컹거리며 마차가 출발했다.
수레는 마차보다 더 덜컹거리며 마차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길은 꽤 고른 편이었지만 수레는 심각하리만큼 흔들렸다.
몸이 너무 아프다.
'미치겠네, 정말.'
강전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감청빛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반쪽짜리 달과 작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탁 트인 밤하늘을 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아름답다, 하늘은… 정말 아름다워.'
강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얘들아. 지금 니들도 저 하늘을 보고 있는 거 맞지? 보지 못하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스륵-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에, 강전은 바짝 몸을 세웠다.
수레 안에는 강전 한 사람뿐이지만, 강전은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다시, 누군가가 강전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 곧 어깨에 묵직한 느낌이 실렸다.
사람이 어깨에 기댄 정도의 무게.
강전은 좀 더 밝은, 그러나 슬픈 미소를 지으며 편히 몸을 펴고 눈을 감았다.
"차희야… 너구나. 너 아직… 우리 곁에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