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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중앙에 놓여져 있는, 커다란 고급 침대를 보아하니
이곳이 아마 공주와 강전의 침실인 듯 싶다.
값어치를 가늠할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보석과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는 것은
이 나라가 물질적으로 꽤나 풍요로운 나라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다리를 꼬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강전에게 일어난 일을 알 수 있을까.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리현은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바로 세웠다.
강전?
아니, 강전은 아닌 것 같다.
강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살의가 느껴진다.
리현은 슬쩍 손을 움직여 허리춤에 잘 감추어둔 도이넨을 손에 쥐었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자 보이지 않는 적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무기만 손에 쥐고 있다면 무서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아, 와라.'
적의 습격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덤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흥. 이쪽이 긴장을 늦추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리현은 네 명의 자객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주와 강전의 생각은 읽을 수 없지만 자객들의 생각은 똑똑히 읽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주의 사주를 받아서 리현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들고 있는 무기는 장검.
표창이나 단검을 던지는 게 아니라면 승산은 이쪽에 있다.
도이넨은 장거리도 가능한 데다가 빨리 회수할 수 있으니 네 명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건 그렇고… 그 공주, 정말 못된 기집애네. 감히 날 엿 먹이려 들어?
이쪽에서 순순히 당해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공주가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자객들은 리현이 긴장을 풀고 있을 때 한꺼번에 덤벼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해치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리현은 그들의 뜻대로 조금 긴장을 늦춘 척 하기로 했다.
입고 있는 시녀 복장의 단추를 몇 개 풀고 침대에 길게 누워 이불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한 손에 쥐고 있는 도이넨은 놓치 않았다.
자객들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고는 동시에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지만 리현이 더 빨랐다.
리현의 도이넨은 정확하게 자객들의 손을 강타했고,
손에 들려있던 장검은 쥐고 있는 손과 함께 통째로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자객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잠시 후, 손목에 지끈한 고통을 느끼며 내려다 봤을 때,
손은 이미 그곳에 달려 있지 않았다.
"크, 크아아악!"
"으앗! 내, 내 손!"
자객들이 아우성치는 틈을 타서, 리현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날을 세워 목덜미를 강타했다.
퍼벅-
급소를 맞은 그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바닥에 툭 쓰러지고 말았다.
네 명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된 힘도 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버린 자객들을 내려다본 리현은 인상을 찌푸리고
도이넨에 묻은 피를 그들의 옷에 쓱쓱 닦았다.
도이넨을 다시 잘 집어넣은 리현은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생각하며 방에서 나왔다.
아직도 한창일 파티장에 가서 공주를 두들겨 팬 후에 강전을 끌고 성에서 도망쳐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적만 신경 쓰던 리현은 몇 명의 병사가 리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긴장을 풀고 밖으로 걸어나오자마자 날카로운 칼날이 리현의 목에 닿았다.
차갑고 소름끼치는 감촉이 목덜미에 느껴지자 리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내가 방심했군. 여기서 죽는 건가?'
병사 중의 한 명이 리현을 노려봤다.
"감히 우리 공주님의 남편 되시는 분을 유혹하려고 하다니…"
"뭐, 뭐라고?"
생뚱맞은 말에 리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누구를 유혹하려고 했다는 거야, 지금? 내가 그 망할 놈을 왜 유혹해?"
"감히 그런 말을 내뱉다니! 네년은 창피 좀 당해봐야 돼!"
"이봐, 그러니까 난 그 사람을 유혹할 생각이 없었다구!"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강전"따위를 유혹하려고 했다는 오해는 죽어도 받고 싶지 않았다.
역시나 병사들은 리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들은 리현이 팔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결박한 후에 거칠게 끌고 파티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리현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우준 일행은
리현을 불렀다는 공주가 혼자서 파티장으로 들어오자 의아해했다.
그러나 곧 공주의 입가에 떠오른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본 후에는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리현을 불러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현이가 위험한 거 아냐?"
가인이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리현이는 강하잖아. 우리보다 훨씬 더 셀걸. 그러니까 이상한 주술 따위가 아니라면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비인이 답했다.
"주술 같은 거 안 걸려 있지?"
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에 주술의 힘은 느껴지지 않아. 사악한 힘도 없고…
그런데도 리현이가 저 공주랑 강전이의 마음을 못 읽는다는 게 정말 이상해.
공주가 특별히 악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겠지."
우준이 말했다.
그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리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때, 갑자기 파티장 문이 벌컥 열리며 옷이 찢긴 여자가 병사들의 손에 끌려 들어와
파티장 한가운데에 밀려서 쓰러졌다.
"앗!"
채민이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것은 채민만이 아니었다.
우준 일행 전부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파티장 한가운데에 쓰러진 여자를 보았다.
리현이었다.
"리현이가 왜 저런 꼴로…"
리현이 흘끗 그들을 쳐다본 후 눈짓을 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표시였기에, 그들은 섣불리 나서는 것을 그만 두고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강전 역시 리현이 그런 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에 놀란 듯 했다.
리현을 일으켜주려고 일어나려던 강전은 공주의 손이 지그시 무릎을 누르자 다시 의자에 앉았다.
우준 일행은 강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공주의 말에 휘둘리는 강전을 몇 대쯤 때려주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인가요?"
공주가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년이, 아, 이런 험한 말을 써서 죄송합니다. 이 여자가 공주님의 침실에 들어가 공주님의 남편 되시는 분을
유혹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걸 잡아왔습니다."
"아니! 그게 정말인가요?"
공주가 화들짝 놀랐다.
옆에서 듣고 있던 왕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감히… 내 딸과 강전의 금슬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딸을 우스갯거리로 만들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아버지, 참으세요. 철없는 미천한 평민이 신분 상승을 위해 한 일일 테니, 한 번쯤 보아 넘기세요."
"그럴 수는 없지! 그토록 색을 밝히는 여자라면 이곳에서 그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게 해주지!
당장 그 년의 옷을 벗겨 이곳에 온 손님들께 내어주어라!"
"아, 그건…"
강전이 일어났다.
"그건…"
"여보…"
공주가 강전을 올려다봤다.
"그건 안 됩니다, 폐하."
강전이 말했다.
"여보, 저를… 저를 우스갯거리로 만들려는 여자인데 감싸주시는 건가요?"
"아, 그건…"
강전은 혼란스러운 듯 했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빛이 사나운 저 여자가 옆에 있는 다정한 눈빛의 공주보다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다치게 하면 절대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의 세포가 그녀를 구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여보, 앉으세요! 제 아버지의 명령입니다. 감히 이 나라의 왕의 명령에 반항해서
왕을 우습게 만들 작정이신가요?"
"……"
"앉으세요!"
병사들은 이미 리현의 옷을 찢으려고 하고 있었다.
강전은 안타까운 듯 리현을 쳐다봤지만 공주의 강경한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런… 이제 우리가 나서……"
해윤이 말하려는데, 이제껏 아무 말도 않던 채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채민아?"
"난 이제 못 참아."
"응?"
채민은 자신을 잡는 가인의 손을 뿌리치고 강전을 향해 걸어갔다.
주위에 있던 시녀들과 병사들이 채민을 막으려고 했지만 채민은 그들을 쉽게 제압했다.
우준 일행도 벙쪄서 채민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너, 넌 뭐야?"
당황한 공주가 외쳤지만 채민은 공주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채민의 눈동자는 강전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너, 적당히 해!"
채민이 버럭 소리쳤다.
"……?"
"이제 그만 좀 하라구, 이 바보야!"
"그게 무슨…?"
짜악-
채민의 손이 인정사정 없이 강전의 뺨을 때렸다.
모두 입이 쩍 벌어졌다.
짜악-
짜악-
"리현이가 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희롱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언제까지 여자 품에 안겨서
시시덕대고 있을 생각이야? 응? 무슨 수작에 걸려서 우리와의 여행을 잊고 이러고 앉아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는 거야! 벗어나야 할 때는 벗어나야지!
네 소중한 동료가 옷이 찢겨나가는데도 여자 말을 당해내지 못해서 가만히 앉아있어?"
짜악-
"언제까지 이렇게 쪽팔리는 짓을 하고 앉아 있을 거야? 응?"
"아…"
"이제 적당히 하고 정신 좀 차려!"
"아파…"
짜악-
"아픔은 느껴? 응? 여자 가슴에 얼굴 묻고 시시덕대느라 아픔 따위 사라졌는지 알았더니, 아픔은 느껴져?
이 좋은 곳에서 잘 먹고 잘 자니까 아픔 따위 못 느끼게 됐는지 알았더니, 아픔은 느껴지나 보지?"
짜악-
인정사정 없이 강전의 뺨을 때리는 채민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워낙 기세가 흉흉했기 때문에 건드렸다가는 자신들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지켜보는 우준 일행도 새파랗게 질렸다.
"채민이가… 변했어…"
"그러게…"
"멋있다…"
짜악-
"적당히 해, 최강전!"
"아파! 아프다굿!"
강전이 버럭 외치며 채민의 손목을 잡았다.
채민은 여전히 강전을 노려보고 있었다.
"으아! 대체 왜 이렇게 때려싸는 거냐? 앙? 조낸 아프다고, 현채민!
너 나한테 무슨 감정 있냐? 앙? 아, 씨발! 졸라 아파 죽겠네!
뺨이 떨어져 나가겠다, 이 기집애야! 너, 소리현이랑 다녀서 이렇게 폭력적이 된 거야, 앙?"
채민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 강전이다."
"뭐?"
"이제 강전이로 돌아왔구나?"
"뭔 소리야? 나 원래 최강전이야. 내가 언제 최강전이 아닌 적이 있…… 으아아앗!
뭐, 뭐야? 뭐야, 이 재수 없게 나풀거리는 옷은? 내가 왜 이딴 옷을 입고 있는 건데?"
강전이 당황하며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던졌다.
강전의 미끈한 몸매가 드러났다.
우준 일행도 채민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 강전이다."
"자아…"
리현이 말했다.
"이제 나 좀 풀어주지들 그래? 묶여 있는 거 성격에 안 맞아."
리현의 말에 우준 일행이 달려나왔다.
우준 일행을 본 강전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니들은 꼴이 그게 뭐야? 왜 그딴 옷들을 걸치고 있는 건데? 너네 다 변태였냐?
아니면 조해윤이랑 다니다가 다들 물들어 버린 거야?"
"어이, 어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난 보는 취미는 있어도 내가 직접 입는 취미는 없다구."
해윤이 휘휘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게 다 널 구하기 위해서 한 짓이잖아, 병신아. 아, 손목 아파라."
결박하고 있던 밧줄이 풀리자 리현은 목을 우둑우둑 꺾었다.
"날 구하기 위해서라니?"
강전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주위를 둘러봤다.
낯익은 성, 낯익은 얼굴들, 생소한 얼굴들.
조금씩 뭔가가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입을 헤에 벌리고 우준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왕과 왕비, 공주도 무척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우리들 말이야, 널 찾으려고 했는데 네가 도저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 거야.
겨우겨우 비인이가 널 찾아냈는데, 네가 이런 곳에서 공주의 남편 행세나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을 노릇 아니겠냐? 네가 진짜 이곳이 좋아서 있는 거라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내가 이딴 곳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
해윤의 말을 끊으며 강전이 버럭 외쳤다.
"그래, 그래. 네가 이런 곳을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해서 찾아온 거지.
무슨 이상한 약이라도 먹었던 거냐?"
공주가 움찔했다.
"아항…"
리현이 씩 웃었다.
"귀여우신 공주님께서 우리의 소중한 친구에게 이상한 약을 먹였던 모양이구만."
"무, 무엄하군요."
공주가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뭣이라? 나한테 약을 먹였단 말이야?"
강전이 얼굴을 구기며 공주를 돌아봤다.
공주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강전을 올려다봤다.
"그게 아니에요. 난… 난 당신을 사랑해서…"
"날 사랑한다구? 웃기고 있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어… 어떻게…"
"대충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는데 말이야.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나한테 약을 먹이고 내 기억을 모두 지웠어도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강전…"
"고 예쁘장한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마!"
"내 딸에게… 그 무슨 망발이냐!"
왕이 소리쳤다.
강전은 차가운 눈으로 왕을 쏘아봤다.
"목숨을 구해줬더니 감히 날 가지고 놀아? 이거 정말 기분 겁나게 더러운데?
내가 네놈들을 다 없애주겠어!"
"병사!"
왕이 병사들을 부르자,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이 대열을 갖췄다.
"이들을 붙잡아라!"
왕이 강전과 우준 일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병사들이 무기를 다잡고 강전을 향해 다가왔지만 강전은 "헹!"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채민아, 물!"
"응?"
채민이 강전을 쳐다봤다.
"물!"
"아아, 오케이!"
채민은 강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았다.
인어의 검을 붙잡았다.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 검이 허공으로 올라가자, 병사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검을 쳐다봤다.
"자, 강전아. 네가 원하는 대로 날뛰어 봐."
채민이 인어의 검이 허공에 둥근 반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순간,
어디서 나타난지 알 수 없는 물결이 넓은 공간에 화르륵 몰아쳤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모두 넋을 잃고 현란한 물의 움직임을 따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물은 우준 일행을 조금도 적시지 않고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만 흠뻑 적셨다.
왕도, 공주도, 왕비도, 병사들도, 초대되어 온 손님들도 물을 뒤집어쓰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걸 확인한 강전은 바닥에 손을 대고 힘을 불어넣었다.
온몸에 파직파직 일고 있던 전기가 물을 매개로 하여 뻗어나갔다.
"으… 으으으…"
강한 전기에 감전된 사람들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쯤이면 됐다 싶은 강전이 손을 떼었다.
부르르 떨던 사람들이 꼭두각시 인형이 줄을 잃은 것 마냥 픽픽 바닥으로 쓰러졌다.
강전이 손을 탁탁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 넓은 공간에서 꼿꼿이 서 있는 사람이라곤 우준 일행뿐이었다.
강전이 픽 웃었다.
"니들, 그 꼴 진짜 웃긴다."
"닥쳐. 우리들도 네놈의 나풀거리는 옷 모양새를 보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
해윤이 투덜대며 입고 있던 여장을 벗어던졌다.
안에는 바지만 입고 있었기에, 해윤의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가인과 비인, 우준도 옷을 벗어던졌다.
"으아! 너무 섹시해. 내가 지금 널 덮쳐도 되겠냐?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냐?"
해윤이 가인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외치자, 우준이 눈을 번뜩였다.
"그 손 치워."
해윤이 얼른 손을 뗐다.
"우준이는 왜 저렇게 날카로워진 거냐?"
강전이 그들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여장한 다음에 우준이한테 추근대는 녀석들이 많았거든. 신경질 났나 봐."
"푸하하하하하. 하긴… 섹시하긴 하더라. 우준이 너 여자로 태……"
번뜩-
우준이 강전을 노려봤다.
"닥쳐. 오늘의 일은 잊는다. 다시는 이 일을 꺼내지 마."
"무시무시하기는…"
강전이 투덜대면서도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아아! 살 것 같다. 니들 없는 동안, 진짜 외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구."
"외로워서 미칠 것 같긴… 여자 치마폭에 쌓여서 꼼짝 못 하드만."
채민이 말했다.
"너, 현채민. 아까 진짜 아팠다구.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려?"
"네가 맞을 짓을 했잖아."
"역시 소리현이랑 다니더니 변했어. 물들었어. 우리 착한 채민이가… 크흑…"
"닥쳐, 최강전. 너 때문에 재미없는 꼴 당할 뻔했으니까."
모두 투덜대고 있었지만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다시 모두가 모였다.
성을 빠져나오며, 강전은 뒤를 돌아봤다.
외로움을 느꼈던, 그러나 외롭지 않았던 그 성.
강전은 내내 누군가가 자기와 함께 해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동료들이 자신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좀 더 명확하고 실체를 가진…
'고맙다, 차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