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화 (1/158)

0001 / 0158 ----------------------------------------------

[바꾸기 시작하다.]

[하폰 전기]

[바꾸기 시작하다.]

루이 왕자의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해서 파티가 벌여졌다.

하지만 이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두 살 터울 어린 누이나 왔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생일을 맞이하게 된 사람은 하폰 왕국의 다섯 번째 왕자였기 때문이었다.

말이 다섯 번째지. 그 위로는 세 명이 누이가 더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소년은 왕위에서 먼 인물이었다. 때문에 왕자는 언제나 찬밥신세였고, 성격도 유악해서 그 누구 한 명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그나마 신경써주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이번에 생일 파티에 와준 어린 누이 뿐이었다. 때문에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 형, 누나와는 다른 생일 파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규모로 보나, 손님으로 보다 그 대우가 역력히 차이가 났다.

무척이나 야박한 대접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루이 왕자는 열 번째 생일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날까지도 울상을 지었다. 자신의 형들과 누이들의 화려한 생일 파티와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린 왕자에겐 이것이 너무나도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생일 당일 날이 되자, 루이 왕자는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이 당당한 얼굴로 생일 파티장에 나타났다. 하지만 밤새 운 모양인지, 눈가가 빨갛게 부어올라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였기에 다른 누군가가 루이 왕자의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자리에는 그 어떤 손님도 없었다.

텅 빈 파티장을 루이 왕자 혼자서 감당해야만 되는 것이었다.

“오라버니,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루이는 자신을 찾아온 두 살 터울 어린 공주의 인사를 받았다. 반짝반짝 빛을 머금고 있는 금색 머리칼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어릴 적부터 유독 루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공주님이었다.

루이도 그런 어린 누이가 밉지 않았기에 곧잘 놀아주곤 했었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고, 14살이 되었을 때 루이 왕자는 남여의 몸가짐을 이유로 어린 누이를 멀리했다. 때문에 점차 사이가 소원해져 버린 남매였다.

‘정말로 되돌아왔군.’

루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자신이 정말로 과거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 누이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반복했다. 자기만 어려진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것이었다.

루이는 텅 비어있는 파티장 안을 훑어보고는 이윽고 자신의 어린 누이를 바라보았다.

루시아 공주…….

비록 배다른 동생이긴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을 곧잘 따라주던 순수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후, 자신이 먼저 어린 누이를 멀리하자 루시아 공주 또한 자신을 멀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왕위를 두고서 자신과 정쟁을 하다가 결국 싸움에서 밀리자, 성 꼭대기에 올라가 떨어져 자살했다.

어지간히도 독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그러지 못 했을 텐데……. 루이는 지금까지도 루시아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소년은 자신의 앞에서 방실방실 웃고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래, 고맙구나. 차린 건 없지만 편히 즐기거라.”

이러한 루이의 말에 어린 루시아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무엇이 말이냐?”

“꼭 말씀하시는 게 아바마마를 닮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루이는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은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열 살짜리 힘없는 왕자에 불가했다. 루이는 그 사실을 재차 상기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마음이 울적해서 아바마마를 따라 해본 것뿐이다.”

“그런가요? 그럼 저하고 춤 한 곡 추실까요, 오라버니?”

루시아의 제안에 루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는 자신의 손을 맞잡는 루시아의 작은 손에 감탄했다. 보들보들한 게 확실히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덟 살 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어린 누이를 흐뭇하게 바라본 루이는 천천히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헤헤.”

소녀는 춤을 추는 내내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함박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루이 또한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어린 누이가 혹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조심조심 발을 밟았다. 이렇듯 두 아이는 음식을 나르는 시녀들과 홀로 바이올린을 켜는 외로운 음악가를 손님 삼아서 세 곡이나 연속해서 춤을 추었다.

사실 루시아가 네 번째 춤도 제안했지만, 루이는 도무지 체력이 되질 않아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이렇듯 춤을 끝마친 루이는 루시아가 가져온 선물을 살펴보았다.

분명 과거 자신의 열 번째 생일 선물로 루시아가 가져온 것은 혁대였다.

“좋은 혁대구나.”

아니나 다를까, 포장을 풀어보자 고급 가죽으로 만든 혁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루이는 매끄러운 혁대의 감촉을 한번 느껴보고는 감탄했다. 이 정도로 귀한 물건이라면 분명 적잖은 돈을 썼을 게 틀림없었다. 당시에는 이 물건의 값을 몰랐었지만, 이제 와서 따져보니 루시아가 나름 고심해서 고른 물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루이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루시아를 향해 웃어주었다. 그러자 루시아가 수줍게 웃음꽃을 피우며 오라버니가 이렇게 기뻐하니, 자기 또한 기쁘다고 말했다.

이렇듯 손님도 없이 루시아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루이는 문득 이후의 날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 걸 보아하니, 확실히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미래에 있을 일들이 루이의 머릿속에 재차 각인되었다.

불행이라고 한다면 불행이라고 할 수 있었고, 행이라고 한다면 행이라고 할 수 있는 운명이었다.

‘아니, 불행에 가깝지.’

루이는 앞으로 8년 뒤, 왕위에 오를 운명이었다. 두 명의 형을 제 손을 죽이고, 루시아를 자살로 몰아가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루이가 왕위에 오른 뒤에 하폰은 위로 아래로 타국의 침략을 받는데다가 거듭된 흉년으로 국가 재정이 파탄나 버린다. 심지어 귀족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루이를 꼭두각시 왕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실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초라한 허수아비였다. 아니,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거듭된 내전으로 루이의 마음은 이미 망가져있었다.

돌아볼 수 없었다.

결국 루이는 왕위에 오른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강제로 왕위에서 끌어내려졌다.

“…….”

“오라버니!”

회귀 이전의 일을 떠올린 루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휘청이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루시아는 화들짝 놀라며 루이의 몸을 부축해주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 모습이 누가 보더라도 자기 오라버니를 지극히 걱정하는 어린 누이의 모습이었다.

연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어떤 연기를 하겠는가?

루이는 괜찮다며 웃어보이고는 어린 누이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오늘 좀 피곤하구나. 일단은 이쯤에서 끝내고, 내일 따로 또 만나자꾸나.”

루이는 일단 피곤하단 이유로 파티를 끝내고는 루시아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홀로 방안에서 이후에 있을 일들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거듭된 내전으로 피폐해져 버린 국가와 위아래로 침략해오는 적국. 그리고 엎친데 겹친데 찾아온 흉년까지.

생각해보면 내전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내전을 자신이 어떻게 바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전이 발생하게 된 건, 전부 루이의 맏형인 첫째가 병으로 급사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본래 영특했던 왕태자는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평소 몸이 약했던 탓에 20세를 넘기지 못 하고 병으로 죽게 된다. 게다가 따로 자식을 두고 있지 않았기에 결국 자연스레 다음 왕위 계승권은 둘째 왕자에게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이게 문제였다.

평소 행실이 포악하고 급하던 둘째 왕자는 신하들에게 인망이 없었다. 때문에 모두들 셋째 왕자를 지지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내전의 발단이었다.

때문에 이건 루이, 자신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전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숨을 내쉰 루이는 지근거리는 머리를 쥐며 침대에 누웠다.

‘도망칠까?’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었다.

왕태자가 죽으려면 아직 3년이란 기간이 남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아득바득 돈을 모은 뒤에 도망친다면 충분히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었다. 비록 다섯째로 태어나 왕위에서 멀긴 하지만, 왕자라는 이유로 적잖은 생활 자금이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건 도망쳐봐야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루이는 곧 그 생각이 고쳐먹었다.

자신이 왜 과거로 돌아온 것일까? 분명 아단트 여신이 자신의 그릇된 운명을 바로 고치라는 뜻에서 보낸 것일 수 있었다. 여기서 그가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분명 신벌 같은 게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하폰을 올바르게 바꾸는 수밖에는 없었다. 다행히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남은데다가 어린 누이와도 사이가 크게 틀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무엇을 하던, 그 누구 하나 신경 쓸 사람이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은 루이는 홀로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박힌 채로 미래에 있을 일들을 적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들킬 수도 있었기에 다 적은 뒤에 자신만 아는 장소에 꼭꼭 숨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