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3화 (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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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기 시작하다.]

첫 단추를 수월히 맞춘 덕분인지, 루이의 발걸음이 다소 가벼웠다.

루이는 시원하게 걸음을 내딛으며 노예 시장으로 향했다. 하폰의 노예 시장은 국가가 관리하기 때문에 치안이 상당히 좋았다. 더욱이 불법 매매가 없었으며 비싼 값에 바가지를 먹는 경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양지가 있다면 마땅히 음지도 있는 법이었다.

노예 매매가 합법화된 탓에 인신매매가 비일비재로 일어났고, 먹을 곡식이 없는 가난한 농노들은 자기 자식을 노예 상인에게 싼값에 팔기 일쑤였다. 때문에 국가도 이걸 막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노예 매매가 합법인 이상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서 오십시오, 왕자님.”

엊그제 미리 소식을 넣어놓은 덕분에 노예 시장을 총괄하는 상인이 공손히 루이를 맞이해주었다. 루이는 상인의 인사를 받은 뒤에 미리 예약해둔 노예를 살펴보았다.

‘과연…….’

본래는 아놀드가 구입해야 되는 노예였지만, 루이가 간섭함으로서 아놀드가 아닌 루이가 먼저 노예를 만나게 되었다. 루이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자신을 경계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예를 바라보았다.

“너무 다가가지 마십시오, 왕자님. 성격이 여간 포악한 것이 아니라서, 자칫 잘 못 하면 상처가 나실 수도 있습니다.”

루이가 노예 쪽으로 다가서자, 상인이 안절부절 못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왕족이었다. 혹시라도 노예가 왕족의 몸에 상처라도 낸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인은 노예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왕자를 바라보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처분할 걸 하고 후회했다. 본래 상인은 저 엘프 노예를 싼 값에 아무데나 팔려고 했었다. 성격이 너무 사나운 탓에 밤노예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나운 성격을 바꾸려고 한다면 못 바꿀 것도 없었다. 제아무리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해도 거듭된 고문에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엘프.

아름답고 고귀한 숲의 요정이었다. 더욱이 그 값이 천금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을뿐더러, 조교나 고문을 한다고 해서 저 성격이 고쳐질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상인은 몸에 상처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엘프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 엘프 노예의 고집이 어찌나 강하던지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팔지 못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나운 노예에게 왕족이 관심을 보이니, 상인의 입장에선 안절부절 못 하다 못해 지금 당장에라도 노예를 처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확실하군.’

반면에 루이는 저 엘프가 자신이 본 그 엘프임을 확신했다. 붉은빛을 띤 갈색 머리칼에 어두운 녹색 눈동자. 게다가 미형의 얼굴. 이전에 자신이 본 그 엘프 노예였다.

‘……아놀드가 저 엘프를 데리고 다니면서 보물단지라고 자랑했었지.’

실제로 거상이 된 아놀드가 저 엘프를 대동한 채로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루이는 이전 날을 떠올리고는 옅게 웃었다. 그리고는 상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아이를 구입하겠다.”

“하, 하오나 왕자님……. 저 물건은 성정이 사나워서…….”

“걱정 말거라. 본래 나는 길들여지지 않은 물건을 좋아한다.”

이런 루이의 말에 상인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못 이기는 척 하며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값은……. 이 정도가 어떻겠습니까?”

상인답게 재빠르게 엘프 노예의 값을 머릿속으로 튕긴 상인은 루이에게 노예 값이 표시된 종이를 루이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루이는 상인의 펜을 빼앗아 든 뒤에 20이라 적힌 숫자에 선을 긋고 그 위에 15를 적어 넣었다.

보통 엘프 노예의 가격이라 하면 금화 30개를 기본으로 깔고 간다. 하지만 저 노예의 경우, 성정이 포악한 탓에 그 값이 상당히 떨어졌다. 한 마디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상인은 금화 10개를 내린 20을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루이가 알고 있기론 저 노예는 아놀드에게 금화 18개에 팔렸다.

그래서 루이는 협상의 여지를 두고자 금화 15개를 적은 것이었다. 이에 상인이 울상을 지어보이며 19를 적자, 루이는 마지막이라는 듯이 18을 적고는 펜을 꺾었다.

“알겠습니다.”

이렇듯 루이가 강하게 의사를 표시하자, 상인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금화 18개에 엘프 노예를 넘겨주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아놀드가 저 엘프 노예를 구입했을 당시와 같은 가격에 구한 셈이었다.

루이는 상당히 만족한 표정을 띠워 보이며 엘프를 건네받았고, 노예 상인은 자기 나름대로 골칫덩어리를 처분했다는 생각에서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게다가 상인에게 한 가지 더 소득을 본 게 있었으니, 바로 루이의 노예 취향이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라…….’

노예 상인은 이 점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두며 루이를 배웅했다.

“다음에 또 오십시오, 왕자님.”

이렇듯 상인의 배웅을 받으며 성으로 돌아온 루이는 피곤한 몸을 침대 위에 눕혔다. 엘프 노예는 노예 상인이 몸단장을 잘 시켜준 뒤에 내일쯤에나 보내줄 것이 분명했다. 루이는 침대에 누운 채로 다음 계획을 세워보았다.

일단 운명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꼼수로 아놀드가 벌어들일 돈에 한 발 걸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저녁부터가 진짜지.’

가볍게 숨을 들이켠 루이는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저녁에 국왕 폐하와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아둔 까닭이었다. 사실 통상적인 경우에는 이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바로 며칠 전이 루이의 생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해서 겨우 얻어낸 자리였다.

사실 루이의 아버지인 하폰의 국왕은 자식들에게 상당히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첫째 왕자인 왕태자를 제외하곤 나머지 왕자에게 무관심했다. 때문에 둘째 왕자는 이런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자 처음에는 나름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공부든, 검술이든 말이다. 그러나 첫째 왕자에게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하자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둘째 형님만의 문제가 아니지.’

셋째도, 넷째도……. 심지어 루이 또한 조금씩 삐뚤어져 있었다. 루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 살짜리 몸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려고 하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씩 간격을 두어서 일을 처리할 걸 하고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다른 건 몰라도 국왕 폐하와의 만찬만큼은 어떻게 취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취소해선 안 되었다. 만약에 저녁 만찬을 취소하게 된다면 일 년 내내 폐하와 단 둘이서 대면할 기회를 영영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루이는 힘겨운 발걸음을 떼어내며 저녁 만찬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아직 오시지 않은 모양이군.’

루이는 먼저 자리에 앉은 뒤에 폐하를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열리고 폐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루이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폐하께 절을 올렸다. 그 후, 간단히 문안인사를 한 뒤에 마주보았다.

근 십년 만에 다시 마주보게 된 아버지의 모습은 어쩐지 수척해보였다. 루이는 확실히 국왕의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실제로 국왕은 첫째 왕자인 왕태자가 급사하는 것을 계기로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째 왕자와 셋째 왕자가 한참 싸우는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병사하고 만다. 거의 셋째 왕자의 병사 시기와 일치했다. 이 때문에 둘째 왕자가 독살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었지만, 루이가 생각하기에 둘째 왕자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성정이 포악하긴 하지만 근본부터 삐뚤어진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관심이 부족했을 뿐이지.’

루이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국왕을 바라보았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간만이구나. 얼마 전에 네 열 번째 생일이 있었다지?”

“그렇습니다.”

“그래,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느냐?”

그 물음에 루이는 가만히 국왕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루이의 속셈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녁 만찬 자리에 아버지를 초대했다. 누가 보아도 그 속셈이 빤히 보였다.

루이는 침착하게 숨을 들이켰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고, 역사가 급변하는 시발점이었다.

“이번에 돌아오는 아르 포아르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네 나이가 이제 열 살이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전례를 살펴보면 아홉 살에 아르 포아르에 참여한 왕자가 있습니다. 더욱이 어린 나이에 영주에 오른 귀족 중에서도 고작 일곱 살이란 나이에 아르 포아르에 참여한 적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들 모두 훌륭히 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걸 보면 소자도 충분히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전 날 밤새도록 구상한 문구를 읊자, 국왕도 이런 루이의 뜻이 가상하다고 여긴 모양인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애초에 국왕 입장에선 루이가 아르 포아르에 참여한다고 해서 불편해질 건 하등 없었다. 그저 어린 왕자가 아르 포아르 같은 위험한 원정에 참여한다고 하니 잠깐 의문이 들었을 뿐이었다.

“네 뜻이 기특하구나. 알았다. 그렇다면 네게 정병 일천을 줄 테니, 잘 참여해보도록 하거라.”

이렇듯 국왕의 허락을 받아낸 루이는 기쁨을 최대한 감추고 감사의 말을 건넸다. 그 후, 부자는 간단히 저녁 만찬을 끝내고는 미련 없이 헤어졌다.

============================ 작품 후기 ============================

내용을 중간중간 수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금 부분을 넣을 생각입니다. 기대되는군요.

참고로 등장 안 했던, 정확히는 귀찮아서 등장시키지 않았던 영애입니다.

NeoGGM 님 : 후훗..

Deathandeath 님 : 확실히 쇼타는 훌륭한... 크흠.

포세리앙 님 : 감사합니다.ㅎ

SeizeR 님 : 얼른얼른 올려야죠.ㅎ

아스라히i 님 :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ㅎ

천연베이킹소다 님 : 연참은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근데 중간에 어색한 문구 바꾸고, 추가로 내용 넣고, 그리고 19금 넣고...게다가 지금 하고 있는 작품 두개까지! 끄악! 먹고살기 힘들군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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