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4화 (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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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기 시작하다.]

이튿날이 되자, 루이는 서둘러 왕태자가 머물고 있는 궁으로 향했다.

이번에 참여하는 아르 포아르에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사실 아르 포아르는 단순히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용맹을 과시하는 귀족들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다.

그 말은 즉, 아르 포아르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정계에 진출한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이는 달랐다. 루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카샤의 안전적인 확보를 위해서 랄프 산맥의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이지, 남들에게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서 나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간다면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특히나 왕태자의 경우에는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루이가 왕위 계승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일단은 왕자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루이는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서둘러 왕태자인 아슬롯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반면에 아슬롯은 막내가 찾아온다는 말에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왕래가 없던 두 형제였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걸 보아하니,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라 지레 짐작하는 아슬롯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루이.”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녀석……. 열 살이 되더니 아주 의젓해졌구나.”

두 형제는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조금 수척해 보이는구나.’

루이가 보기에 왕태자 아슬롯은 벌써부터 병색이 옅게 드리워져 있었다. 확실히 2년 내에 급사할만했다. 루이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몰래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슬롯의 병을 고쳐주고 싶었지만, 원인도 모르는 병을 어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약을 지어 보내준다고 한들 이미 아슬롯은 국왕 폐하가 보낸 준 약으로 1년 내내 몸을 보신하고 있었다.

때문에 여기서 루이가 맏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도뿐이었다.

‘10살이 되었다고 했던가. 제법 사내 티가 나는구나.’

반면에 아슬롯은 몇 달 만에 본 루이의 모습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칭얼대는 어린아이만 같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어엿한 사내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슬롯은 흐뭇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막내를 격려해주었다.

“그래,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사실……. 어젯밤 폐하께 저 또한 아르 포아르에 참석할 수 있도록 청을 넣었습니다.”

“네가?”

“그렇습니다.”

루이가 아르 포아르에 참여한다는 말에 왕태자는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네 나이가 아직 열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걸 폐하께서 허락하셨다는 말씀이더냐?”

“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들이처럼 구경하는 것입니다. 결코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것 때문에 날 찾아온 것이냐?”

“그것도 있지만 어제 성을 나섰다가 우연찮게 좋은 약을 구했기에 형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이리 말한 루이는 미리 챙겨둔 약 상자를 아슬롯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에 아슬롯은 무척이나 기뻐해하며 약 상자는 받고는 따뜻한 눈길로 루이를 바라보았다.

“네가 내 몸을 생각해주니, 무척이나 기쁘구나. 하지만 맏형으로서 막내를 챙겨주지 못 할망정 챙겨지기나 하니……. 그래,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느냐?”

그 물음에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곧장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부터 영지를 다스리고 싶었습니다.”

“영지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수도 근처의 영지는 모두 주인이 있는 땅이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아르 포아르로 개척한 땅을 얻을까 생각중입니다.”

“개척한 땅을? 아르 포아르로 땅을 개척한다하더라도 몬스터는 여전히 가득하다. 그런 곳을 네가 관리할 수 있겠느냐? 차라리 마음 편히 왕성에서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

“왕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찌 왕성에서 밥만 축낸다는 말입니까? 그저 왕국의 땅을 조금이라도 더 개척시켜서 폐하께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백성은 또 어떻게 이주 시킬 생각이냐?”

“화전민들을 동원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폐하께 정병 일천을 받았으니, 아르 포아르 기간 동안 랄프 산맥을 개척하며 화전민들을 모아 마을을 만들 생각입니다. 어차피 그들은 도망친 농노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강제로 이주시킨다 하더라도 큰 반발은 없을 겁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저도 이제 열 살이 되었습니다. 형님들을 본받아 왕국을 이끌어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

그 말에 아슬롯은 측은한 시선을 보냈다. 사실 이렇게 영지를 받아 수도를 떠난다는 것은 더 이상 왕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도를 벗어난 왕자다. 누가 그를 불러오겠는가?

물론 돌아오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건 바로 영지가 더는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망해서 어쩔 수 없이 돌아오거나, 영지가 아주 흥해서 돌아오는 경우였다.

하지만 아슬롯이 알기론 아르 포아르로 개척한 땅에서 성공했다는 영주는 이제껏 단 한 명도 보지 못 했다. 루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이상, 루이가 나중에라도 수도에 돌아온다고 한다면 필시 망해서 돌아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루이의 관리력을 의심받게 하는 것이었다. 영지를 말아먹고 돌아온 왕자에게 그 누가 고운 시선을 주겠는가? 원래부터 찬밥신세였지만, 그런 일까지 더 해진다면 분명 아주 없는 사람 취급할 게 틀림없었다.

이 상황을 뻔히 아는데도 스스로 아르 포아르로 땅을 개척한 뒤에 그곳을 영지로 삼겠다고 하니, 왕태자 입장에선 그저 측은할 뿐이었다. 그러나 막내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니, 아슬롯 입장에서도 딱히 무어라 막을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후일 혹시라도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정적을 하나 없앨 기회이기도 하니 더욱 더 나설 필요가 없었다.

“네 뜻이 정히 그렇다면 그렇게 하거라. 내가 아르 포아르가 끝나거든 폐하께 말씀을 올리겠다.”

“감사합니다, 형님.”

이렇듯 아슬롯의 협력까지 얻어낸 루이는 힘차게 말을 하고는 서둘러 자기 궁으로 돌아갔다. 이걸로 얼추 준비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것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건 바로 아르 포아르에 개척할 랄프 산맥의 위치였다. 물론 그 대략적인 위치는 루이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위치였다. 루이는 자세한 위치를 알고자, 오늘 오기로 한 엘프 노예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간 기다리자, 점심이 조금 지날 무렵에 예쁘장하게 잘 꾸며진 엘프 노예가 그의 방에 들어왔다.

“…….”

엘프 노예는 상인의 말대로 확실히 사나웠다. 아무리 예쁘고, 깔끔하게 꾸며졌다고는 하나 성정이 포악한 것이었다. 루이는 혹시라도 물릴까 싶어서 섣불리 다가서지 못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무어라 말이라도 붙여야지 카샤에 대한 힌트를 얻어낼 수 있을 게 아닌가?

루이는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자유를 원하지 않느냐?”

“…….”

“내 일을 한 가지 도와준다면 널 자유롭게 놓아주마.”

이러한 루이의 말에 드디어 엘프 노예의 어두운 녹색 눈동자가 들렸다.

세간의 소문으론 엘프는 사람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루이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서 필사적으로 말했다. 실제로 루이가 말하는 건, 진심이었다. 카샤만 찾아낸다면 곧바로 엘프 노예를 풀어줄 생각이었다.

“무엇이……. 입니까?”

존대어가 익숙지 않은 모양인지, 엘프 노예는 뒤늦게 존칭을 사용하며 물음을 던졌다. 과연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더니, 확실히 안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걸 가지고 트집 잡을 루이가 아니었다.

도리어 엘프가 입을 열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편히 말하거라. 그리고 내가 네게 부탁할 일은 한 가지 약초를 찾는 일이다.”

“약초?”

“그렇다. 그 약초는 피부에 바르면 광채가 나고 좋은 향이 나는 약초다. 혹시 아는 게 있느냐?”

이 물음에 엘프 노예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이내 짐작이 가는 바가 있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루이가 듣던 대로 이 노예가 아놀드를 도와서 카샤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루이는 내심 흡족하게 엘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약초가 자라는 곳까지 나를 안내해 줄 수 있겠느냐?”

“나를 어떻게 풀어줄 생각이지?”

“약초만 발견한다면 네가 원할 때, 언제든지 풀어주겠다.”

루이의 대답에 엘프 노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조용히 시간이 흘렀다.

환하게 밝혀진 방 안에서 루이와 엘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름다운 엘프 노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면 저 의심 많은 엘프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루이가 꿀꺽, 마른침을 삼킨 순간 엘프 노예가 입술을 열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세 번이다.”

“…….”

그 말에 루이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묻고 싶었지만, 일단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인간들에게 속은 횟수다. 인간들에게 세 번을 속았고, 어느덧 그게 네 번째가 될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내가 네 거짓에 넘어가야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하나?”

“그건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면 너는 강자고, 나는 약자다. 너희 인간들은 우리가 자살을 하지 못 한다는 것을 알고 몇 번이고 노리개로 삼았다. 나 역시도 너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겠지. 그런데…….”

으득 이를 가는 엘프를 바라보며 루이는 생각했다. 아놀드는 이 상처 많은 엘프 노예를 어떻게 다독였을까? 수없이 생각해보지만 쉬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 직접 행동으로 엘프의 믿음을 얻었을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엘프 노예를 산 뒤에 풀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이는 그럴 수 없었다. 혹시라도 정말로 이 엘프가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카샤를 찾아 랄프 산맥을 이 잡듯이 뒤져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엘프 노예의 말을 듣던 루이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네 말대로 나는 강자고, 너는 약자다. 내 말 한 마디에 네 처우가 결정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상황은 비겁하다. 인정한다. 나는 지금 널 노예로 삼아서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어떻게 바꿀 수는 없다. 네가 스스로 노예라고 생각하는 한 말이다.”

“나는…….”

“네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투쟁해라. 모험을 하고, 몇 번이고 속아라. 그 끝이 비참한 결말이라고 해도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틀림없다. 너는 어째서 인간에게 세 번이나 속은 것이지? 네가 멍청해서? 미련해서? 그렇지 않다. 믿어보고 싶었기에 속은 게 아닌가?”

“궤변이다.”

“그래, 나는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만큼 나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네게 제안하는 것이다. 너는 나를 도와서 약초를 찾고, 나는 약초를 찾는 즉시 널 풀어줄 거다. 그리고 도망쳐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10년, 100년 동안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다.”

“…….”

“아니면 지금 이 기회조차 겁쟁이처럼 뿌리칠 것이냐? 네가 여기서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기회를 잡나, 잡지 않나 결국엔 같다. 하지만 스스로가 자유민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와 거래를 하는 거다. 그래, 이건 강요다! 자유를 잡아라. 나는 분명히 약속하겠다. 네 자유를.”

루이는 강하게 나갔다. 소년에겐 아놀드처럼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아르 포아르를 통한 기회는 단 한번 밖에 없었고, 그걸 잡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허비하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회귀 이전과 같은 결말이 루이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자유…….”

“그럼 묻겠다. 너는 노예인가, 자유민인가?”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강요를 하는 거지?”

엘프 노예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해하지 못 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오로지 네가 알고 있는 그 약초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다른 건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너에게 강요할 수 있는 거다.”

“…….”

“다시 한 번 더 묻겠다. 너는 노예인가, 자유민인가?”

그녀가 힘없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어두운 녹색 눈동자를 배회시키다가 이내 들어 올려 루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자유민이다.”

이렇듯 대답이 흘러나오자, 루이는 만족한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훌륭하다.”

============================ 작품 후기 ============================

쓸 때는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올리려니 뭔가 부끄럽고...

다시보니 부족한 글이네요. ;ㅅ;

천연베이킹소다 님 : 열심히 올릴게요! 응원감사합니다.ㅎ

포세리앙 님 : 네!

[炎風] 님 : 저도 이렇게 다시 올릴 기회를 얻게되서 기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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