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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기 시작하다.]
루시아의 보폭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었다.
루이는 어린 누이의 보폭이 왜 이다지도 큰 건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루시아의 보폭이 자신과 똑같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걸음걸이를 무리하게 따라잡으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소녀의 보폭도 커진 모양이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났다. 루이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어린 누이를 무심하게 대했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루이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어린 누이의 발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라버니. 아르 포아르 때, 무슨 옷을 입으실 건가요?”
“청록색은 어떠냐?”
“너무 수수하지 않을까요?”
“그럼 네가 생각하기엔 내가 무슨 색의 옷을 입어야 될 것 같으냐?”
이런 루이의 물음에 루시아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기다렸다는 입을 열었다.
“제가 오라버니의 옷을 지어드려도 될까요?”
아무래도 이 어린 누이의 목적은 이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루시아의 금색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네가 직접 옷을 만들기엔 아직 이르지 않으냐?”
“괜찮아요, 오라버니. 몇 번 만들어 봤는걸요.”
“그래?”
“네, 그러니까 오라버니 옷도……. 잘 지어드릴게요. 안 될까요?”
주인의 허락을 구하는 강아지와도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루이를 올라다보는 루시아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 한 루이였으나, 곧 그것을 꾹 참으며 대꾸했다.
“알았다. 그럼 네가 지어다오.”
“정말로요? 그럼 붉은색으로 해도 될까요? 거기에 장미를 장식한다면 분명 멋질 거예요.”
“남자가 입을 옷인데, 장미는 너무 화려하지 않느냐?”
“그럼 노란색은 어떤가요? 너무 짙게는 말고요.”
어린 누이가 이다지도 화려한 색상을 좋아하는 줄은 처음 알게 된 루이였다. 그러고 보니 루시아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다소 화려했다. 워낙에 루시아의 외모가 출중하다보니 옷이 빛을 바랜 것이었다. 루이는 다정하게 어린 누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네, 그럼 움직이게 편하게 만들게요. 그리고 또…….”
“루시아, 이제 그만 돌아가 봐야겠구나.”
문득 루이가 루시아를 향해 몸을 돌리며 이리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서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 저녁에는 공주들끼리 모여서 만찬을 즐기기로 되어있었다. 그걸 루시아의 유모에게 전해들은 루이였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서 입을 열었다.
“좀 더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네 유모가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 있구나.”
이리 말하며 루이가 유모 쪽으로 눈길을 주자, 유모는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유모는 무서워요.”
“널 생각해주는 거란다.”
“네, 알아요. 그런데……. 가기 싫어요. 오라버니하고 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걸요.”
칭얼거리며 떼를 쓰는 루시아의 태도에 루이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속삭였다.
“오늘 저녁에 만찬 약속이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싫은 걸요. 특히 둘째 언니가 싫어요.”
“싫다니?”
루이가 깜짝 놀라서 묻자, 루시아가 울상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언니는 절 싫어해요. 이따금씩 절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언니들이 안 볼 땐 제 머리를 잡아당기기도 하는 걸요. 저번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나갔어요.”
“…….”
그 말에 루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확실히 둘째 공주의 성격은 포악하다. 그저 포악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마냥 뚱뚱하고 못 생겼다. 추악하기 그지 없는데다가 키까지도 엄청나게 크다. 어찌나도 크던지 나중에 크게 될 루이와 맞먹을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그 누가 둘째 공주를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그 둘째 공주가 빛을 보는 날이 온다. 그녀는 16살 성인이 되는 무도회에서 둘째 왕자에게 대놓고 놀림을 받게 된다. 동시에 주위에 있던 귀족들이 그만 그것을 참지 못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때문에 충격을 먹은 둘째 공주는 무도회장을 도망치듯이 빠져나가고……. 몇 달 뒤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서 돌아온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성격은 더욱 악독해져 돌아온다. 마치 아름다운 공주로 변신한 마녀처럼 말이다.
“오라버니, 이래도 저를 보내실 건가요?”
“루시아,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절 내쫓을 생각뿐이잖아요.”
손가락 한 마디 만큼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투덜대는 루시아의 태도에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착한 아이다. 누님이 그렇게나 괴롭혔는데도 꾹 참았으니까. 정말로 착한 아이야.”
“정말요?”
“그래.”
“그럼 둘째 언니는요?”
“둘째 누님은 나쁜 사람이지. 헬레나 공주의 이야기를 기억하니?”
“네, 기억해요.”
“거기에 나오는 마녀처럼 나쁜 사람이야. 그리고 그 마녀가 어떻게 되는 지도 알고 있니?”
“연못에 빠져서 죽어요.”
“맞아. 그러니 동화처럼 둘째 누님도 언젠가 벌을 받게 될 거다. 그 마녀처럼 말이다. 그러니 둘째 누님을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말거라. 착한 사람인 네가 참아야지. 안 그러니?”
“네, 참을게요. 참으면 동화처럼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될 거야.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루시아처럼 착한 아이는 상을 받을 거란다.”
이리 말하며 루시아의 옷매무새를 고쳐준 루이는 쪽 하고 어린 누이의 뺨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보들보들한 어린 아이의 피부가 무척이나 기분 좋다. 루이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며 엄지로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는 루시아의 뺨을 문질러주었다.
“……자, 그럼 어서 가보거라. 얼른 안 가면 네 유모가 날 잡아먹을 것 같구나.”
루이의 말에 루시아는 킥킥 웃으며 ‘알았어요, 오라버니.’라고 대꾸했다. 그리고는 꾸벅 허리를 숙이며 작별 인사를 한 루시아는 유모와 함께 자기 궁으로 돌아갔다.
‘내가 어떻게 해줄 순 없을까.’
점점 멀어져 가는 루시아의 모습을 보며 루이는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째 공주의 행포는 날이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둘째 공주는 다른 공주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누구 한 명 둘째 공주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지 못 했다.
루이를 포함한 왕자들은 서로를 물어뜯느라고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넷째 형님은 아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루이보다 한 살 많은 넷째 왕자는 왕위 다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세상일 자체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루이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내며 자기 궁으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귀여운 루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