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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기 시작하다.]
수도로 돌아가는 동안 루이는 아놀드와 함께 영지로 삼을만한 곳을 물색해보았다.
물망에 오른 곳은 총 세 군데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 곳은 회귀 이전에 아놀드가 카샤의 생산지로 삼았던 장소였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은 카샤의 원산지와 가까우면서도 에일른 백작 가와도 긴밀한 관계를 취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장소였다.
그러나 루이는 이러한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리 탐탁치 않게 여겼다.
‘결국 귀족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건가.’
이게 루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원인이었다.
회귀 이전에 귀족들에게 배신당한 루이로서는 귀족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이 마냥 탐탁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두 곳을 고르자니, 한 곳은 카샤의 생산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고 또 한 곳은 몬스터가 나오는 숲과 너무나도 가까이에 붙어있었다.
결국 아놀드가 고른 장소가 카샤를 생산하기에 있어서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더욱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평지가 고르게 펼쳐져 있으니, 인력이 남아돌 때는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어도 될 정도였다.
“왕자님께서 무슨 걱정을 하고 계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일른 백작은 대대로 중립을 고수해온 귀족입니다. 결코 왕자님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
물론 루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왕국이 왕자들의 파벌 싸움으로 급박하게 돌아갈 때도 에일른 백작은 중립을 고수하며 어느 한 편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루이로서는 그게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말이 중립이지, 실제론 중립이란 입지를 이용해서 왕국이 망할 때까지 두 손 놓고 구경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에일른 백작을 비롯한 중립파 귀족들이 하폰을 망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들이 어느 한 편에 가담해서 일찍 내전을 마무리 지어주었다면 왕국의 국토가 피폐해지는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더욱이 내전도 3년씩이나 지속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머리 아프군.’
루이는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고서 도망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루시아가 마음에 걸렸다. 안 그래도 둘째 누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다. 거기다가 자신까지 사라진다면 분명 회귀 이전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다가 자살할지도 몰랐다. 물론 루시아가 왕위 다툼에서 승리해서 하폰 최초의 여왕이 될 지도 몰랐다. 그러나 둘째 왕자를 비롯한 다른 누이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루이,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남자라는 이유와 둘째 왕자보다 성격이 온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 그토록 많은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 했을 것이다.
‘도망치지 말자. 견뎌내자. 이미 주사위는 던졌다.’
마음을 굳게 먹은 루이는 아놀드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이에 아놀드는 크게 기뻐해하며 당장에 마을을 만들 채비를 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렇듯 그가 과한 열정을 보자, 어쩐지 루이의 마음 또한 조금은 들떴다.
회귀 이전과는 다른 삶.
그게 루이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이렇듯 루이가 아놀드와 함께 수도로 돌아오고 있는 동안 하폰의 북부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이민족들이 대공세를 펼쳐 노략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행히 초기 대응이 잘 되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마을이 불에 타고 기껏 심은 작물이 말발굽 아래 짓밟히는 등의 참사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북방의 병사를 증원시켜야 되는 의견이 분분하게 나왔다. 이에 하폰의 국왕은 각 영지에서 정병 일백씩 뽑아 북부를 지원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당연하게도 이바이크 백작 가에도 전해졌다.
당시 이바이크 백작 가에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차남 아자젤이었다. 때문에 이바이크 백작은 왕성에서 명령이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아자젤을 북부로 내쫓으려고 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아자젤은 그보다 더 빠르게 짐을 싼 뒤에 서둘러 영지를 도망쳤다.
본래라면 눈치는 커녕 아무것도 모른 채로 북부로 끌려가야 되었지만, 그에게는 루이가 보낸 한 통의 서신이었기에 일찍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정말이었구나.’
아자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섯째 왕자가 아놀드 상단을 통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거기에는 얼마 뒤에 각 영지에서 대규모로 차출이 시작될 것이니 북부로 끌려가기 싫거든, 수도로 와서 자신의 가신이 되라는 말귀가 적혀있었다. 물론 아자젤은 처음 그 편지를 받고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면식도 없는 다섯째 왕자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믿을 게 되지 못 했다. 그러나 그가 이 편지를 고이 간직해두고 있었던 것은 편지가 왕실의 도장으로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른다. 정말로 왕자가 자신에게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에서 기민한 아자젤은 왕국 정세를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루이 왕자의 말대로 북부에서 대규모 이민족 침략이 시작되자, 감탄성을 터트리며 곧장 수도로 떠날 준비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자젤은 형님에게만 몰래 언질을 한 뒤에 수도로 도망쳐버린 것이었다.
“수도의 아가씨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물론 아자젤의 머릿속에는 다섯째 왕자인 루이를 섬기기보다는 수도의 아가씨들과 어울릴 생각으로 한가득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아자젤은 어서 빨리 수도로 향하고 싶단 생각에서 발걸음을 보다 빠르게 옮겼다.
그리고 그가 수도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나 사창가였다. 그에게 있어서 사창가보다 더 소중한 곳은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백작가를 빠져나올 때, 돈도 두둑하게 챙겨왔기에 그는 이번 기회에 아주 원없이 여자를 안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희망대로 아자젤은 여러 여자들과 질펀하게 하루하루를 즐기며 보냈다. 루이를 찾아가야 된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말이다.
그 정도로 수도 여자들은 최고였다. 아자젤은 이곳이야말로 극락이라 생각하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서 열흘째가 되자, 드디어 그의 돈도 바닥을 보였다. 이제 그만 사창가에서 내쫓길 시간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자젤은 사창가를 벗어나기 보다는 그곳의 여자들을 하나 둘씩 꼬드기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그의 잘 생긴 외모와 열흘 동안 지내면서 수도의 말투를 완벽하게 모방한 덕분에 그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더 해졌다.
더욱이 그의 밤기술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창가의 여자들은 물론이고 귀부인들까지도 은근히 그를 찾을 지경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울상을 짓게 된 것은 포주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자젤은 그야말로 모기보다 더한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창가의 여자들이 일을 해야지 자신들에게 돈이 들어오는데, 여자들이 하나 같이 일은 뒷전이고 아자젤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니 수입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화가 단단히 난 포주들은 깡패 여럿을 고용해서 아자젤을 공격하기로 작당을 했다.
하지만 그것에 순순히 당해줄 아자젤이 아니었다. 아자젤은 포주들이 자기를 공격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왕성으로 내빼버렸다. 때문에 포주들은 깡패들만 잔뜩 고용했을 뿐, 이미 도망쳐버린 아자젤을 보며 닭 쫓던 개신세가 되어버렸다.
“늦게 왔다고 해서 뭐라 하지는 않으시겠지?”
왕성 앞에 선 아자젤은 다섯째 왕자인 루이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병사에게 건네주며 용건을 밝혔다. 그러자 그 병사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아자젤을 루이의 궁까지 안내해주었다.
아자젤은 내심 궁금했다. 다섯째 왕자가 과연 자신에게 무슨 용무가 있기에 부른 것일까? 하지만 이런 궁금증도 잠시, 아자젤은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고 있는 시녀들의 자태에 감탄성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본성을 숨길 순 없는 모양이었다.
여하튼 병사의 안내를 받아서 궁 안에 들어선 아자젤은 마침내 루이를 만날 수 있었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산적을 만나서 그만 고생을 했습니다.”
그 말에 루이는 어린 아이 특유의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며 아자젤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 산적들이 꽤나 아름다운 미인들었나보군.”
이러한 루이의 말에 아자젤은 자신의 행적이 모두 들통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순순히 실토하지 않았다. 본래 거짓말이란 건,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볼 때까지 잡아떼어야하는 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무척이나 아름다운 산적들이었습니다. 어찌나도 아름답던지, 잡혀있는데도 행복하더군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것 참 큰일이었군.”
루이는 과연 아자젤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찌 이런 자가 북방의 그런 우수한 지휘관이 될 수 있었던 건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그곳에서 어떠한 스승을 만난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북방으로 보내야 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루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내 곁에 두면서 내 사람으로 키우자.’
이리 생각한 루이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앞으로 산적 걱정은 하지 말고 이곳에서 편히 지내게.”
“감사합니다, 왕자님.”
“당분간 아름다운 산적을 보지 못 할 테니 말이야.”
“네?”
“보름 뒤에 아르 포아르에 참여하게 되는데, 망극하게도 폐하께서 내게 일천의 정병을 내려주셨네. 그러니 자네는 나와 함께 아르 포아르에 참여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게나.”
이러한 루이의 말에 아자젤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왕자님, 저는 아무래도 산적들을 퇴치하러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곳에 제 짐이 가득 있어서…….”
“걱정 말게. 자네 짐은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루이가 손뼉을 치자, 두 명의 기사가 방 안으로 들어와서 아자젤을 끌고 가버렸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에 고칠게 많아서 고치려고 했는데, 막상 수정본 보니까 수정 이전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아주 조금만 바꿨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