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25화 (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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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를 발전시키다.]

이튿날 아침서부터 경매소 정문은 수많은 마차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줄을 지어 서있는 마차가 어찌나도 많던지, 꿈쩍도 않은 마차 행렬에 질린 마부들이 고삐를 반쯤 내려놓고 있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것을 본 귀족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서 빨리 경매장 안으로 들어가라고 보챘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은 마차 행렬을 일개 마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다급해진 것은 마차에 타고 있는 귀족들이었다. 시시각각 경매 시간은 다가오고 있는데, 마차는 꿈쩍도 하질 않으니 혹여 이러고 있는 사이에 카샤의 가루가 다른 이에게 홀라당 넘어가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걱정에 결국 대다수의 귀족들이 체면 불구하고 마차에서 내려, 직접 경매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진풍경이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뒤에서 카샤의 가루가 귀족의 무거운 엉덩이를 들게 만든다면서 비웃었다.

“루이 왕자님, 이쪽입니다.”

반면에 루이는 경매소 측에서 따로 마련해준 마차를 타고서 여유롭게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매소 입장에선 루이는 최고의 고객이자 이번 진풍경을 만들어진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왕족이었다.

특별한 대우를 받을만한 이유라면 차고 넘쳤다.

이러한 이유에서 편하게 경매소 안으로 들어선 루이는 2층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안내받았다. VIP 고객을 위한 특별한 자리였다. 1층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들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호화스런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무대가 더없이 잘 보인다는 점이 루이의 마음에 쏙 들었다.

“데이지, 거기에 있는 바나나 좀 줄래?”

자리에 앉은 루이는 탁자 위에 올려져있는 과일 바구니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거 말씀이신가요?”

데이지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되물으며 배를 집어 들었다.

“아니, 그건 배고……. 혹시 바나나는 처음 보는 거냐?”

이 물음에 데이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추운 북부 출신인 데이지가 남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과일을 알 리가 없었다. 더욱이 바나나처럼 잘 상하는 과일은 부유한 귀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그렇군, 그럼 먹는 법도 모르겠군.”

“껍질을 깎으면 되지 않나요?”

“하하, 그것도 괜찮지만……. 이리 다오.”

루이는 오랜만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데이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에 데이자가 고분이 바나나를 건네주자, 루이는 꼭지를 검지와 엄지로 잡은 뒤에 아래로 잡아 당겼다. 그러자 스르륵 하고 거짓말처럼 새하얀 속살을 내보이는 바나나다.

그 모습에 데이지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자,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녀를 자기 쪽으로 불렀다.

“……이리 오거라.”

이 말에 데이지는 루이가 뭘 하려는 건 줄 알았기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술을 벌렸다. 그 후,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오는 바나나의 부드러운 식감을 느낀 데이지는 그대로 입술을 닫으며 깨물어 먹었다.

“아! 마, 맛있어요.”

난생 처음으로 먹어 본 바나나의 단맛에 데이지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루이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아름다운 비취색 눈동자가 루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특히나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며 감탄하는 데이지의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흐흠……. 맛있나? 그럼 좀 더 먹어라.”

양 볼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루이는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데이지에게 남은 바나나를 넘겨주었다. 그 후,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자 이제 막 경매를 시작할 모양인지 연미복을 입은 신사가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척이나 유려한 말솜씨로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저희 펠슨 경매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모두 스물여섯 개의 상품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당연히 카샤의 가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루이 왕자님께서 기꺼이 대량의 카샤의 가루를 내놓으셨기에 오늘은 이전 날들과는 다르게 무려 삼백 개의 카샤의 가루가 준비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상당히 여유가 있게 경매에 참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경매를 알리는 첫 번째 상품은…….”

사회자가 무대 오른편을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자 이번 경매에 등록된 물품들이 하나씩 그 모습을 무대 위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매가 시작된 것이다. 루이는 느긋하게 경매를 지켜보며 데이지와 함께 과일을 먹었다.

“네, 블론 백작님께서 금화 30개! 다시 이스 남작님께서 금화 35개!”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와중에도 사회자는 기막히게 고객을 알아보았다. 설마 모든 귀족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있는 건가? 루이는 내심 감탄하며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여러모로 대단한 재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문과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는 일이었다. 보통의 기억력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저 사회자를 데리고 있으면 파티장에서 참 유용하게 쓰이겠군.’

파티장에서 상대방의 가문과 지위, 이름을 알지 못 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 결례가 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 상대방의 이름을 모르는데 말을 건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더 나아가 상대방의 지위와 가문을 알아야지 존칭의 여부를 따질 것이 아닌가?

이러다보니 많은 귀족들의 기본 소양이 바로 귀족들의 가문과 지위, 이름을 외우는 일이었다. 만약 이걸 외울 자신이 없다면 사교계엔 절대로 발을 들이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좋았다. 자신을 위해서나 가문을 위해서나 말이다.

“후후.”

루이는 데이지의 입가에 묻어있는 바나나를 엄지로 닦아내어주며 악당처럼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 때, 경매를 진행하고 있던 사회자가 왠지 모를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능숙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경매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매끄럽게 진행했다.

“이번에 소개될 스물한 번째 물건은 랄프 산맥 인근에서 잡힌 엘프입니다! 자아. 이 새하얀 살결을 보이십니까? 마치 투명한 폭포수 같지 않으십니까? 게다가 이 검붉은 빛을 띤 갈색 머리카락! 최상급 늑대 가죽의 빛깔을 닮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 만큼 성정이 다소 사납기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련할 정도로 순해빠져서 좋은 말로 몇 번만 달콤하게 속삭여주시면 금세 마음을 풀 것입니다. 더군다나 처녀이기까지 합니다! 자, 이 노예는 사나운 성정을 고려해서 금화 24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엘프 노예가 올라오자 몇몇 사람들이 구입 의사를 밝히며 손을 들었다.

“하?”

그 때, 루이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 엘프가 왜 저기 있어?’

루이가 이토록 당황한 까닭은 바로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스물한 번째 물건인 노예 엘프 때문이었다. 루이는 속으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노예 엘프의 외모를 뜯어보았다. 그러나 이로 보나, 저로 보나 분명히 그 엘프가 분명했다.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풀어준 바로 그 엘프 노예 말이다.

“…….”

어처구니없단 눈길로 노예 엘프를 바라보던 루이는 이내 손을 들어 구입 의사를 밝혔다.

“네, 루이 왕자님께서 금화 40개! 더 없으십니까?”

루이가 손을 든 순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숨을 죽였다. 설마하니 루이 왕자님이 직접 경매에 참여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들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2층의 자리에 앉아있는 루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루이는 그러거나 말 거나, 무대 위에 서있는 엘프 노예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노예 엘프 또한 루이를 알아본 모양인지, 더없이 놀란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문득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해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 자신의 처지를 루이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금화 40개, 감사합니다! 자, 그럼 곧바로 다음 입찰로 넘어가지요.”

이렇듯 엘프 노예를 손에 넣은 루이는 경매소 일꾼으로 보이는 소년에게 손짓해서는 방금 전에 입찰한 노예 엘프를 이리로 데려오게 만들었다.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이리 대답한 소년은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를 경매소 안으로 안내했던 담당자가 직접 엘프 노예를 데리고 왔다. 이에 루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하오나 왕자님, 이 엘프 노예는 성정이 사나워서…….”

“괜찮네. 이전에 본 엘프이니까.”

“알겠습니다.”

루이가 고집을 피우며 말하자, 사내는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러났다. 자리를 떠나는 사내의 모습을 확인한 루이는 엘프 노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쩌다 또다시 붙잡힌 것이냐?”

루이의 물음에 엘프 노예는 귀를 축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네 번째로 속은 것뿐이다.”

“하아…….”

이러한 엘프 노예의 변명에 루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이 얼마나 한심한 엘프라는 말인가?

아니, 이토록 한심하기에 앞서 세 번씩이나 인간들에게 속은 것일지도 몰랐다. 더욱이 루이의 말에도 홀라당 넘어가버리지 않았던가?

루이는 쯧쯧,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하나?”

“…….”

그녀는 완벽하게 절망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눈앞의 소년이 자신을 풀어준다고 하더라도 무사히 마을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프는 완전히 낙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귀를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일단 이거나 먹고 있어라.”

그 모습이 조금은 가엽게 느껴진 루이는 데이지에게 손짓해서 바나나를 가져오게 했다. 그 후, 껍질을 까서 엘프 노예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들어 바나나를 받아먹었다.

“아.”

그것과 동시에 귀를 쫑긋 세우며 감탄성을 터트리는 엘프 노예다.

그 모습이 마치 주인이 건네주는 간식을 받아먹고서 기뻐하는 강아지를 닮아서, 어쩐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루이는 그것을 애써 꾹 참으며 엘프 노예의 검붉은 갈색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자아, 드디어 마지막 스물여섯 번째 물건입니다! 카샤의 가루! 이번 물량은 삼백 개로 넉넉하니, 느긋하게 즐기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너무 느긋해지진 마시길……. 이 물건을 노리시는 분들은 무척이나 많으니까요! 때문에 이 물건은 시작가부터 무척이나 비쌉니다! 하지만 이 물건을 구입하신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드디어 경매의 마지막을 알리는, 동시에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카샤의 가루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자, 그럼 금화 150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많은 사람들이 경매에 나섰다.

덕분에 카샤의 가루는 금화 150개라는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몸값을 엄청나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가격이 얼마나 올라가던지, 루이의 심장이 쿵쿵 뛰다 못 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톤 공작님께서 금화 400개를! 이제까지 나온 가격 중에 최고가입니다!”

그 날, 루이는 난생처음으로 혼절이란 것을 경험했다.

============================ 작품 후기 ============================

루이 혼절잼.

RedRuby 님 : 아뇨, 상관없습니다. 히힛, 그냥 낚시에요

레디다 님 : 로리콘 아닙니다. 로리콘이었다면 데이지에게 펠라치오를... 큼큼.

천화백부  님 : 근친은 안되요! 저 영정각입니다.ㅋㅋ

양산형마법사 님 : 좋아한 여자애가 우연히 어렸을 뿐이야.

천연베이킹소다 님 : 허허, 당연히 있지요.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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