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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숲]
[엘프의 숲]
엘프 노예는 마차 안에서 소년에게 먹는 것을 강요받았다.
팔칸을 떠난 이후, 매일 같이 이어진 강요였다. 엘프 노예는 몇 번이고 소년의 요구를 거절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소년은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먹지 않겠다면 두 번 다신 널 풀어주지 않겠다!’ ‘내가 볼 때, 너는 순진해서 잡힌 게 아니라 약해서 잡힌 거다. 그러니 이거라도 먹고 힘을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만약에 엘프 노예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분명 노예 사냥꾼들에게 속았다고 하더라도 유유히 도망쳐 나왔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약한 게 죄였다.
자신이 약했기에 네 번씩이나 인간들의 손에 붙잡힌 것이었다.
“삼켜라.”
다시금 이어진 소년의 강요에 엘프 노예는 입 안 가득 들어와 있는 끈적이는 액체를 꿀꺽, 하고 삼켰다. 목구멍에 달라붙는 그 끈적이는 감촉이 불쾌했지만, 일단 식도를 타고 넘어가고 나니 부글부글한 게 뱃속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더욱이 맛 또한 최상급이었다.
노예 사냥꾼들에게 사로잡혀, 겨우겨우 구걸하듯 먹던 딱딱한 빵과 묽은 수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 깨끗이 다 핥아먹어라. 이게 다 널 위한 것이다.”
루이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대고서 거만한 목소리로 재차 명령했다.
“하음.”
엘프 노예는 또다시 끈적이는 그것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유난히도 걸쭉한 게, 몇 번을 삼켜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식감이었지만, 엘프 노예는 두 눈을 찔끔 감으며 그것을 꿀꺽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루이가 말한 대로 혀로 그릇을 핥아먹자, 단맛과 짠맛이 감이된 오묘한 맛이 느껴졌다.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아.’
걸쭉한 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엘프 노예는 혀로 그것을 맛보며 천천히 목 안 깊숙이 넘겼다. 그 후,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자, 데이지란 이름을 가진 인간 소녀가 사과를 깎은 뒤에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배가 불러 죽겠단 얼굴로 말이다.
“우욱.”
데이지는 이젠 정말로 한계라는 듯이 양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미 뱃속이 가득 찬 탓에 더 이상 먹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엘프 노예의 앞에 앉아있는 11살 남짓한 소년은 결코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데이지, 겨우 그거 먹고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냐? 자자, 엄살 부리지 말고 좀 더 먹거라. 널 위해서 이렇게나 잔뜩 사두었단다.”
환하게 웃으며 음식을 권하는 루이의 모습이 순간 악마처럼 보였다.
‘아, 악마…….’
엘프 노예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왕자님, 벌써 열여섯 개입니다. 더는 무리에요.”
기어코 데이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이에 엘프 노예 또한 한계라는 듯이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이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스프 그릇을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허! 어릴 땐 무조건 잘 먹어야 되는 법이다. 그래야지 쑥쑥 자라지 않겠느냐? 데이지, 너는 더 먹을 수 있어. 그건 내가 보증하마.”
엄한 목소리로 데이지를 꾸짖은 루이는 과일 바구니 안에서 바나나 하나를 꺼냈다.
그 모습에 데이지는 절망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루이가 건네주는 바나나를 손에 꼭 쥐었다. 더불어 엘프 노예도 울상을 지어보이며 내려놓았던 스프 그릇을 들어올렸다.
“그래, 그렇지.”
그 모습에 루이는 마치 사랑스런 딸들을 지켜보는 아빠마냥 흐뭇하게 미소 지어보였다.
어쩜 이리도 참 복스럽게 먹을까?
양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과일을 집어넣는 게 마치 다람쥐를 닮아서 너무나도 귀여웠다. 특히나 어린 아이에서 점점 한 명의 여성으로 변모해가는 데이지의 신체 변화가 참으로 신비로웠다.
처음 데이지를 보았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깡마른 체구에 볼품없는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양 볼이 어찌나도 홀쭉하게 들어가 있던지, 마치 해골을 보고 있는 듯 했었다. 그런데 분명 이랬던 여자 아이가 점점 살이 오르더니, 가슴과 엉덩이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욱이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루이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작았던 데이지의 키가 어느덧 하나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커진 것이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루이에게 있어선 다소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이란 게, 이토록 쑥쑥 자라는 생물이었던가? 루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데이지를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가슴 속 한켠이 간질간질 거리는 게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왕자님께서 먹는 걸로 엘프까지 고문시키시는군. 이러다가 오우거까지 먹는 걸로 고문하시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한편 같은 마차에 타고 있던 아놀드는 이런 루이와 데이지, 엘프 노예를 번갈아보며 이리 생각했다. 정말이지 참신하면서도 기가 막힌 고문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선의를 가장해서 상대를 고문시킨다는 말인가? 아놀드는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먹을 것을 강요하는 루이를 바라보며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경험했다.
이건 옆에 앉아있는 아벨도 마찬가지였다.
‘내 평생 먹는 걸로 고문하는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굶기는 것은 많이 보았다. 그런데 먹이는 것으로 고문이라니? 이건 딱히 뭐라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은 선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원망을 받지 않는 고문 방법!
자기 가신을 고문하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고문 방법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아벨은 데이지와 엘프 노예의 모습을 번갈아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만약 루이에게 잘 못 걸렸다간 자신 또한 저들처럼 배가 볼록 튀어 날 때까지 계속 음식을 먹어야 될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자, 한 그릇 더 먹어라.”
루이는 손수 엘프 노예의 그릇에 스프를 담아주며 권유했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로 말이다.
============================ 작품 후기 ============================
바로 한 편 더 올릴게요.
거기서 리코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