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28화 (28/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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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숲]

마차를 타고 하멜른으로 향하던 루이는 어느덧 마차가 우르델 평원에 도착하자, 넌지시 아놀드를 불러내어 준비한 편지를 건네주었다.

“이걸 테일 백작에게 전해주게.”

“이게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가르쳐주었다.

“약혼에 관한 것이네.”

“약혼이라 하심은…….”

“이번에 테일 백작가의 영애와 약혼을 할까하네. 그러니 자네는 이 편지를 백작에게 건네준 뒤에 답변만 가져오면 되네. 물론 되도록 긍정의 대답을 받아와줬으면 하네.”

이러한 루이의 대꾸에 아놀드는 저도 모르게 굉장히 요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 왕자는 이제 막 11살이 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약혼을 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이 자기 스스로 약혼할 대상을 고른다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11살이라고 하면 이성보다는 놀잇감을 먼저 찾아다니는 호기심 많은 나이였다. 그런데 루이 왕자는 이상할 정도로…….

‘애늙은이…….’

루이 왕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중증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아놀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놀드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루이 왕자가 테일 영애와 서로 간에 면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주책이라고 생각될 지도 모르지만…….

‘……왕자님께서 첫사랑을 품으신 건 아닐까?’

첫사랑!

이 얼마나 달콤한 단어라는 말인가? 아놀드 또한 14살 짐꾼 시절에 첫사랑을 품었었다. 그의 첫사랑 상대는 같은 상단에서 일하던 소녀였다. 그녀는 주로 걸레질과 빨래 같은 잡다한 일을 했는데, 주근깨 가득한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일 때마다 그게 또 어찌나도 사랑스럽던지 아놀드는 매일 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병을 앓았었다.

그러나 이런 열병도 현실의 냉혹함에 깨어지고 말았다.

그 사랑스런 주근깨 소녀가 용병과 눈이 맞아서 상단 일을 그만두었을 때, 얼마나 슬펐던가!

아놀드는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놀드는 만약에 루이 왕자가 첫사랑을 앓고 있는 거라면 무조건 밀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혹시 왕자님께선 테일 영애와 개인적인 면식이 있으십니까?”

“아니, 없네.”

“네?”

“테일 영애를 따로 본 적은 없네. 음, 그렇군. 자네가 날 대신해서 테일 영애에 대해서 알아봐주겠나? 아무래도 약혼할 사이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만난다는 건, 역시 좀 그렇군. 내가 좀 부탁하지.”

이리 말한 뒤에 루이는 아놀드를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아놀드는 잠시나마 로맨틱한 상황을 꿈꾸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는 속으로 툴툴대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는 루이의 명대로 곧장 테일 백작가로 향했다.

테일 백작 가는 우르델 평원 끄트머리에 위치한 영지인데, 동시에 랄프 산맥의 끝자락에 매달려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루이가 다스리고 있는 하멜른과 가깝냐고 물으면 꽤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영지였다.

게다가 차후, 루이가 자신의 영지를 랄프 산맥 전역으로 뻗는다면 테일 백작과 영지를 맞대게 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먼 미래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아놀드는 삼일 밤낮을 꼬박 달려서 테일 백작의 성에 도착했다. 테일 백작의 성은 백작이라는 작위에 걸맞게 꽤 큰 편이었는데, 그것에 비해서 성 내는 꽤 검소했다. 그저 보고 있는 것으로도 사람이 겸손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놀드는 성 안에 들어선 순간, 테일 백작이 어떠한 사람일지 어렴풋이나마 눈치 챌 수 있었다.

‘굉장히 검소하신 분이군.’

달리 말하면 돈이나 재물 따위를 쓰는데 무척이나 인색한 사람이라는 뜻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놀드가 이곳까지 오면서 본 영지민들은 대다수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걸 보았을 때, 딱히 돈 쓰는데 인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시대에 드문…….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한 훌륭한 영주라고 볼 수 있었다.

‘……알려지지 않을만해.’

역설적으로 이런 검소한 영주는 중앙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부패할수록 출세하고, 청렴할수록 좌천한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니, 이 시대뿐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틀림없었다.

안타까움에 고개를 가로저은 아놀드는 성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미리 소식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테일 백작이 아들과 함께 나와서 아놀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군.”

“아닙니다. 수고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점잖게 인사말을 주고 받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 왕자님께서 백작님께 전하라 명하신 편지입니다.”

이리 말하며 아놀드가 편지를 꺼내 건네주자, 테일 백작은 편지에 붙어있는 봉인을 꼼꼼히 살펴본 뒤에 편지를 뜯어 읽어보았다.

“흠.”

편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테일 백작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졌다.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난색하고, 나중에는 화를 내려다가 이내 표정을 가라앉히며 편지를 내려놓았다.

“답변을 곧바로 줄 순 없네. 이틀 뒤에 답변을 내려줄테니, 성에서 편히 쉬게.”

“배려에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놀드는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대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저 편지에 무슨 내용이 적힌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영애와의 약혼 이야기가 적혀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증거로 테일 백작이 장남에게 따로 영애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아놀드가 슬쩍 들었으니 말이다.

이렇듯 아놀드가 테일 백작에게 무사히 편지를 건네주었을 때, 루이는 마차를 타고 일주일을 더 이동한 뒤에 하멜른에 도착했다.

“왕자님, 오셨습니까?”

아자젤은 무척이나 기뻐해하는 목소리로 루이를 반겼다.

얼굴이 해쓱해 보이는 것이 루이가 자리를 비운 한 달 동안 심하게 고생한 모양이었다. 루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아자젤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자신이 없었던 동안에 있던 일을 들었다.

“요 며칠 사이에 카샤의 가루를 훔쳐보려는 자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때문에 병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서 창고를 지키고 있지만, 아무래도 노리는 자들이 하도 많아서 조금 벅찬 상황입니다. 더욱이 임시로 만들어 놓은 감옥에 사람이 가득 차버린 탓에 미수에 그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풀어주었습니다.”

“카샤의 가루를 훔치려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자님?”

“국법대로 하면 어떻게 되지?”

“손목을 자르거나, 훔친 물건과 같은 값을 지불해야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하루 생계가 급해서 저지른 범죄이거나 어린아이들이기에…….”

슬쩍 말꼬리를 흐리는 걸 보아하니, 아자젤은 이대로 루이가 범죄자들을 풀어주었으면 하는 듯이 싶었다. 그러나 루이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것일수록 강하게 몰아붙여야 되었다. 만약 이 자리에 아놀드가 있었다면, 당장에 국법대로 하자며 목소리를 높였을 게 틀림없었다.

“미수에 그친 자들은 손목을 자르고 마을 밖으로 내쫓아라. 그리고 실제로 카샤의 가루를 훔친 자들은 목을 벤 뒤에 마을 광장에 매달아두어라.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와, 왕자님…….”

“아자젤, 너의 뜻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확실히 해야 되는 법이다. 만약 내가 아무런 벌도 주지 않은 채로 저들을 풀어준다면, 다른 이들 또한 법을 우습게보고 카샤의 가루를 훔치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은 그 의미를 잃고, 모두가 무절제해질 것이다. 아자젤, 너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법은 국가의 근본이다. 법을 지키지 않게 되면 국가는 무너지게 된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 뜻에 따라라.”

이런 루이의 말에 아자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하다가 이내 ‘알겠습니다, 왕자님.’이란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걸음을 옮기는 아자젤의 뒷모습에 루이는 이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마치 지나가듯이 말을 툭 하고 던졌다.

“하지만 이 일로 어린 아이들의 손목을 자르는 건, 조금 지나친 처사 같구나.”

“…….”

이러한 루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자젤이 우뚝 발걸음을 멈춰서는 루이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헥헥 대는 늑대를 닮아서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루이는 그 웃음기를 싹 지우며 엄하게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 그 아이들이 카샤의 가루를 훔치려 한 것은 못 먹고 못 배워서 그런 것 같구나. 그러니 아자젤, 네가 따로 시설을 만들어서 그 아이들을 돌봐주거라.”

“고아원을 설립하시란 말씀이십니까?”

“그 아이들에게도 부모가 있을 테니, 고아원이라고 하기엔 뭣하지 않느냐?”

“아닙니다, 그 아이들 모두 고아들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이들 모두 테베 영지에서 왔다고 합니다. 원래는 그곳에서 무리를 지어서 살던 아이들인데, 이번에 하멜른에서 나는 카샤의 가루가 비싼 값에 팔린다는 소문을 듣고서 다 같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 말에 루이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아들이 무리를 지었다는 말이냐? 흥미롭군. 그 숫자가 모두 몇이더냐?”

“스물을 조금 넘습니다. 하지만 테베에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의 숫자까지 합친다면 족히 쉰은 넘을 겁니다.”

신이 나서는 재잘재잘 떠는 아자젤의 태도에 루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그리도 사정을 잘 아는 것이냐?”

“네? 아, 그……. 그것이 그 무리를 이끄는 계집아이가 워낙에 입담이 좋아서……. 하하, 전하께서도 그 아이를 한번 보신다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말 그대로 여장부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가 여자 아이라서 관심을 보인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경고했다.

“여성을 좋아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너무 어린 여자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건 그다지 보기 좋지 않구나. 잘 못 하다간 남들에게 도둑놈이란 소리를 들을 거다, 아자젤.”

“과, 관심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이 말에 아자젤이 다급히 변명해보지만, 루이의 주변에 서있는 데이지와 아벨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특히나 엘프 노예는 아자젤을 마치 음식물 쓰레기 보듯이 보고 있었다.

“……오해입니다!”

이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린 여아를 데리고 있는 부모들이 아자젤만 보면 황급히 도망치기 일쑤라고 한다.

덧붙여 데이지 또래의 어린 시녀들도 아자젤만 보면 줄행랑쳤다고 한다. 덕분에 아자젤은 본의 아니게 한동안 소아성애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고통 받는 아자젤.ㅋㅋㅋ

Lizad 님 : 선명하게 엘프를 핥아봅시다.

발할라의문 님 : 본격 하프 엘프

GoodYear 님 : 히로인과 함께 성장하는 거죠. 흐뭇하군요

halem 님 : 쿠쿠쿠... 엘프는 역시

으함 님 : 가능합니다! 11살에 임...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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