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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숲]
끝없이 펼쳐진 설원 저편에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폐부가 아리도록 쨍한 공기에 숨을 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러나 루이는 이런 공기가 참으로 시원하다고 느꼈다. 아직은 어두컴컴한 가운데, 주변 경계를 나온 병사들이 루이를 발견하곤 재빨리 인사를 한 뒤에 불침번 교대를 위해 불빛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회귀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광경이었다.
아니, 아니다.
몇 번이고 있었던 풍경이었다.
그저 루이가 외면했을 뿐이었다.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잔다. 백성을 보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향락만 보았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영원토록 이어나가기 위해서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물론 몇몇 충신들이 죽음을 각오를 하고서 충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진 루이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듣기엔 너무 늦었다.
아니, 애당초 글러먹었다.
루이는 왕의 그릇이 아니었다.
“…….”
루이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둑어둑한 하늘과 완만한 설원. 그 위를 무리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멋진 풍경이다. 회귀 이전에는 왜 이것들을 살펴보지 않았던 걸까 하고 의문이 들었다.
“하아.”
차디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쉰다.
긴 숨이 찬바람에 이끌려 길게 꼬리를 끄는 대로 시선을 돌린다.
“왕자님, 새벽 공기가 찹니다.”
옆에서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루이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목소리였다.
그래, 이전 날 향락에 취한 루이를 일깨우기 위해서 충언을 고했던 충신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불쑥 찾아가고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들을 자기 쪽으로 데려올 명분이 없었다.
더불어 무슨 낯으로 그들을 찾아간다는 말인가?
쓰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작은 손으로 눈을 뭉쳤다.
“시원하지 않은가? 정신이 확 드는군.”
“오늘도 마차를 타고 이동하셔야 합니다. 몸상하십니다.”
“괜찮네. 그보다 노예 사냥꾼들의 행로는 어떤가? 발견되었나?”
이런 루이의 물음에 아벨은 루이의 손에 쥐어져 있는 눈덩이를 빼앗아들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밤중에 찾아내었습니다.”
눈덩이를 손에 쥐고 있던 루이의 손이 빨갛게 얼어있었다. 아벨은 어린 소년의 손이 이리 변한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그런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거지?”
“눈에 찍힌 발자국으로 보아서는 하루 정도의 거리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걱정 어린 시선으로 루이를 바라보는 아벨과는 다르게, 루이는 감탄 어린 시선으로 아벨을 바라보았다. 사냥꾼 출신이기에 추격에 능통한 줄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유능할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이걸로 엘프의 숲으로 갈 실마리를 찾았군.’
현재 루이는 아벨과 함께 정병 오십을 이끌고 엘프의 숲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엘프 사냥꾼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는 엘프의 숲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엘프의 숲을 찾기 위해서는 엘프 사냥꾼들의 뒤를 은밀하게 쫓는 수밖에 없었다.
엘프 사냥꾼들의 뒤를 쫓다보면 자연스레 엘프의 숲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까닭에서 루이는 하멜른에 도착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아벨과 함께 엘프의 숲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물론 이때도 아자젤이 자기도 따라가고 싶다며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앙탈을 부렸지만, 루이는 이전과 같은 이유로 묵살했다.
더욱이 이번 일은 추격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일부러 아벨을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엘프 사냥꾼들의 뒤를 왜 쫓으시는 겁니까?”
아벨은 아까 루이에게서 빼앗은 눈덩이를 홱 던지며 물음을 던졌다.
순간 푹 하고 떨어진 눈덩이가 눈밭에 구멍을 만들었다.
“이유가 필요한가?”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쌓여있는 눈을 한데 뭉친 뒤에 아벨이 던진 쪽으로 눈덩이를 던졌다. 그러자 푹 하고 떨어진 눈덩이가 눈밭에 두 번째 구멍을 만들었다.
“아닙니다.”
“아니라곤 하지만 의문이 가득해보이는군. 하긴 나라도 의아할 거야. 아놀드였다면 대뜸 이유부터 물어 봤겠지.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늦어도 너무 늦어.”
어린 아이 특유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낸 루이는 세 번째 눈덩이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아벨이 루이의 손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눈이 찹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재밌지 않은가? 아침 운동 삼아서 놀기에 딱 좋은 것 같아.”
“손이 빨갛습니다.”
“어린 아이 손이라서 그래.”
“꼭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시는군요.”
“…….”
그 말에 루이는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는 아벨을 올려다보았다.
머리 세 개만큼 차이 나는 키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더없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루이는 여유를 잃지 않고서 입술을 떼었다.
“……내 몸이 내 것이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을 것 같나?”
“왕자님의 몸은 온전히 왕자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왜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지?”
“제가 전하의 신하이기 때문입니다.”
“신하는 보모가 아니네.”
“하지만…….”
“아아, 미안하네.”
돌연 루이가 머리를 털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화내서 미안하네. 내가 잘 못 말했어.”
“왕자님…….”
“고맙네, 아벨. 나를 걱정해줘서. 솔직히 말해서 자네에게 이런 걱정을 받으니 좀……. 기쁘군.”
“…….”
“자네가 내 손을 녹여주겠나?”
루이가 아벨에게 붙잡혀 있는 자신을 손을 향해 눈짓했다.
아벨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어른의 얼굴이 늘 무서웠던 것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소년의 얼굴은 늘 연약하면서도 가냘프게 보였다. 아벨은 오늘따라 루이 왕자가 가녀려 보인다고 느끼며 소년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 후, 말없이 새빨개진 손을 호호 불어주었다.
“고맙네.”
루이는 자신의 손에 닿는 사내의 숨결을 느끼며 옅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잠시, 숨을 삼키더니 아벨의 얼굴을 말끔히 쳐다보았다. 참으로 신기한 사내다. 회귀 이전에 보았을 땐, 정말로 악귀를 본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상처 입은 늑대였다.
그리고 그 늑대의 상처를 치료해주니, 자신을 향해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반란군의 수장도 이런 식으로 아벨의 상처를 보듬어주었겠지.
“……그나저나 자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못 했군.”
불쑥 꺼낸 루이의 말에 아벨은 잠시 멍한 시선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이내 말을 이었다.
“이번에 길드에서 엘프 사냥꾼들이 무리를 지어 엘프의 숲을 찾아다닌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네. 그리고 그 장소는 다름 아닌 랄프 산맥 인근……. 바로 이곳이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한몫 챙겨 볼까하고 찾아온 것이네.”
“엘프의 숲 말씀이십니까?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 숲입니까?”
“있으니까 있다고 하겠지. 사실 나도 반신반의하는 중이야. 그래서 자네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네.”
“그렇군요.”
이렇듯 납득하는 아벨의 태도에 루이는 쓰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루이의 말에는 약간의 거짓말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루이는 길드에 의뢰를 넣어서 엘프 사냥꾼들의 동향을 살펴봐, 그들이 엘프의 숲을 찾고 있음을 알아내었으니 말이다.
단지 여기서 루이가 한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길드가 루이에게 자발적으로 알려주었느냐, 루이가 길드에 의뢰를 넣어서 정보를 얻었느냐의 정도 뿐이었다.
“아벨.”
“네, 왕자님.”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이리 말한 루이는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돌아서, 아침 햇살을 등진 채 웃었다.
그 모습에 아벨은 참 뜬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변덕스런 루이 왕자님답다고 생각하며 예라고 답했다.
============================ 작품 후기 ============================
엘프들을 잡으러 갑시다. 흐흫
누굴지? 님 : ㅋㅋㅋㅋ 금방 오해 풉니다.
양산형마법사 님 : 저도 그게 궁금하긴 합니다. 아자젤을 누구랑 엮어줘야할지...
halem 님 : 히이익! 페도!
가노라 님 :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러시는거죠? 먹이는 것 때문에 그러신가요? 제가 의도한 건, 할머니가 손녀, 손자들에게 음식 먹이는 것처럼 쓴 건데... 루이 실제 나이가 현재 나이보다 많다는 걸 염두해주셨으면 합니다.
[炎風] 님 : 좋은 선물이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