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32화 (32/158)

0032 / 0158 ----------------------------------------------

[엘프의 숲]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엘프들이 항복 의사를 내비쳐왔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엘프 사냥꾼들이 데리고 있던 삼십 여명의 어린 엘프들 또한 해방시켜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에 루이는 지그를 불러내어 그가 데리고 있는 어린 엘프 삼십 여명을 자신에게 팔도록 강요했다.

지그로서는 조금 배가 아픈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손해 보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고분히 그 뜻에 따랐다. 일단 적게나마 돈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신의 목숨을 무사히 건졌으니 말이다.

‘어린 엘프 정도야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

이리 생각하며 지그가 물러나려고 하자, 루이가 돌연 손짓해서 그를 멈춰 세웠다.

그 후, 손뼉을 치자 천막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그실과 헤메스가 들어왔다. 이에 지그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루이를 바라보자, 이에 소년은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따로 준비해 놓은 금화 상자를 내놓았다.

“금화 5000개다.”

“…….”

그 말에 세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곧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러자 루이의 말대로 상자 안에는 금화 5000개가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담겨져 있었다. 한순간 눈이 멀 것만도 같은 빛이었다.

“여, 영주님. 이것이 대체…….”

“이번 엘프들의 몸값이다. 편의상 500명으로 계산해서 두당 금화 10개로 계산했다. 왜? 너무 적으냐?”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지그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가 구태여 자신들에게 이런 큰돈을 줄 이유가 하등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 엘프들을 모두 사로잡아서 노예 시장에 내다판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 엘프들을 모두 온전히 잡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통상적으로 엘프 사냥에서 사로잡는 엘프의 숫자는 4분지 1에서 5분지 1 수준이다. 게다가 노예 상인에게 넘길 때까지의 경비를 생각해본다면 루이에게 받는 금화 5000개가 더 수지맞았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자고로 예부터 이유 없는 돈은 없다고 했다.

하물며 금화 5000개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지그,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이리도 선뜻 큰 금액을 내놓은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구나.”

“소, 송구합니다.”

“괜찮다.”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는 지그의 태도에 루이는 가볍게 손가래질 치며 그의 고개를 들게 했다.

“……사실 나도 노예 사냥꾼들에게 억한 심정은 없다. 오히려 호의를 가지고 있지. 자네들이 있어야지 내 영지민의 숫자를 늘릴 수 있을테니 말이야. 솔직히 터놓고 말해서 내 영지민의 절반 이상이 노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앞으로 저희가 사로잡는 노예를 모두 영주님에게 팔라는 그런 말씀이십니까?”

“하하, 그것도 좋지. 하지만 조만간 내가 너희를 따로 긴히 불러서 쓸 일이 있다.”

“쓸 일이하고 하심은……?”

“당연히 노예사냥이지 않겠느냐?”

이러한 루이의 말에 지그를 비롯한 두 사람이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 11살 어린 소년의 입에서 노예사냥이란 단어가 이리도 쉽게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그가 가장 먼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노예사냥을 염두에 두어두고 계신 곳이 있으십니까?”

“말이 많구나, 지그.”

계속해서 캐묻는 지그의 태도에 루이가 짐짓 눈살을 찌푸리며 엄포를 내어놓자, 그제야 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에 루이는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차후 너희를 부를 테니, 영지에 연락책을 맡을 부하를 하나씩 놔두어라. 알겠느냐?”

“네!”

이런 루이의 말에 세 사람은 군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딱히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예사냥을 어디서 할 것인가, 왜 멀쩡한 영지병들을 놔두고서 자신들을 쓰려고 하는 것인가, 여러 가지 의문이 남긴 했지만 말이다.

세 사람은 각자 의문을 품은 채로 막사를 벗어났다. 이후, 루이는 지그에게서 받아낸 어린 엘프 삼십 명을 엘프 마을로 보냈다.

“정말로 보내주었군요.”

어린 엘프를 건네받은 엘프들은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설마하니, 인간 쪽에서 이리도 순순히 어린 엘프를 건네줄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엘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정말로 우리를 영지민으로 받아들일 생각인건가?’

저마다 다들 상념에 잠긴 채로 기력을 잃고 쓰러져있는 엘프 아기들을 살펴보았다.

“소년은 단 한 번도 나와 한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말이다. 소년은 믿을만한 자다.”

이러는 와중에 엘프 노예가 입을 열어 말했다. 그녀는 어떠한 거짓도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호소했다. 딱히 강하지도, 그렇다고 약하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동족들을 설득시키기 충분했다.

더욱이 이들 모두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게다가 솔직히 터놓고 말해서 루이라는 소년이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들은 노예 사냥꾼들의 손에 마을이 불에 타고, 유린당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다들 한 동안 말없이 상대를 쳐다보다가 이내 하나 둘씩,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을 밖으로 나갔다.

“항복하겠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엘프를 선두로 모두가 루이의 앞에 부복했다.

다행이도 이들 모두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루이는 그 모습에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오백 여명의 엘프들을 반겼다.

이렇듯 엘프 오백 여명을 손에 넣은 루이는 곧바로 하멜른으로 돌아갔다.

“에, 엘프다!”

“엘프 노예들인가…….”

“소문대로 아름답군.”

하멜른 안으로 들어서자, 아니나 다를까 영지민들이 엘프들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에 몇몇 엘프들이 불쾌함을 표시하긴 했지만, 성정이 온순한 엘프들답게 싸움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았다. 더욱이 이 앞에는 루이가 있었다.

아무리 예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영주가 보는 앞에서 싸움이나 시비를 걸, 이들이 아니었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루이는 엘프 구경에 정신이 팔려있는 영지민들을 지나쳐 영주관으로 향했다.

그러자 저 멀리 밖으로 나와서 루이를 기다리고 있는 아놀드와 아자젤, 그리고 데이지를 비롯한 시종 시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놀드의 몸을 일으켜주었다.

“잘 갔다 왔나, 아놀드?”

“물론입니다. 여기 화답이 있습니다.”

그 말에 루이는 아놀드가 건네주는 편지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테일 백작의 답변이 적혀있었다. 답변에는 다행히도 약혼을 허락한다는 긍정의 답변이 적혀있었다. 약혼식은 지금으로부터 두 달 뒤로 테일 백작의 장남과 에드윈 백작이 서로 결투를 벌이기 바로 나흘 전이었다.

참으로 공교로운 날짜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걸로 테일 백작의 장남이 자비를 베풀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군.’

쿡쿡,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아놀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는 엘프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후, 아자젤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엘프들의 아름다운 미모에 잔뜩 홀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엘프 처녀 한 명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구애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그 구애의 눈길을 받고 있는 엘프 처녀 또한 그 시선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모양인지,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종족 불문하고 저리도 꼬실 수 있는 건지…….

“아자젤.”

루이는 쯧쯧, 혀를 차며 그를 불렀다. 그리고 그 부름에 정신이 번뜩 든 아자젤이 황급히 표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그래, 내가 이전에 말한 고아원은 어떻게 되었나?”

“이미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테베에 남아있던 아이들까지 모두 무사히 데려왔습니다. 숫자는 마흔다섯 명으로 당초 말씀드렸던 숫자보다 훨씬 많기는 하지만……. 아놀드와 상의한 바로는 그 숫자 모두 수용하기에 충분하리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리 말하며 아놀드에게 동의를 구하듯이 눈짓을 주는 아자젤이다. 이에 아놀드는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영내에 있는 고아들까지 데려와 키우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아이들을 잘 키워내어 충성심을 이끌어낸다면 분명 차후 영주님을 보필한 충성스런 병사들로 거듭날 것입니다.”

“흐음.”

그 말을 듣고 나니 구미가 당기는 루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루이의 나이는 11살이었다. 지금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이라고 하면 적게는 다섯 살, 많게는 열세 살 정도일게 틀림없었다. 물론 이보다 적거나 많은 경우가 있긴 하겠지만 그다지 차이는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아이들을 잘 키워내서 충성심을 최대한 이끌어낸다면 차후 자신의 일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나쁘지 않군.”

이리 말한 루이는 뒤에 서있는 나이 많은 엘프를 돌아보았다.

그는 루이에게 갑작스런 시선을 받은 탓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점잖게 표정을 바꾸었다.

“자네.”

“카샨이라고 한다.

자네라는 말에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정정시켰다. 이에 루이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 카샨.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번에 구한 어린 엘프들도 우리 고아원에서 키우는 게 어떻겠는가?”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그 아이들은 우리의 방식으로 훌륭히 키워내겠다.”

“고집 피우지 말게. 엄밀히 따지면 그 아이들은 자네들과 무관한 아이들이 아닌가? 그러니 고아원에서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하는 편이 나을 걸세. 그리고 그렇게 정히 걱정이 되거든 고아원에서 일할 엘프를 몇 명 뽑아서 보내게. 물론 봉급은 주도록 하지.”

“…….”

이러한 루이의 제안에 카샨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고아원이 설립되었습니다!

Chalybs 님 : 곧 따라잡습니다. 으, 아직 예지몽 완결이 멀었는데... 벌써부터 압박감이 느껴지는군요.

homstead 님 : 쿠폰 감사합니다!

으함 님 : 엘프는 에로에로하죠. 후후.

천화백부 님 : 이 세계의 엘프는 막 그렇게 엄청 강하지 않습니다. 강했다면 벌써 엘프 왕국을 만들었겠죠.ㅎ 물론 엘프의 특성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날렵한 움직임이라든가, 탁월한 동체시력, 정령과의 친화력 등이요.

양산형마법사 님 : 아닙니다. 엘프 노예의 고향은 좀 더 북쪽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