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33화 (3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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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숲]

엘프 오백 여명이 합류함으로서 하멜른의 인구는 약 일천 육백이 되었다.

그 말은 즉, 랄프 산맥과 접하고 있는 마을 경계선의 면적이 한층 더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루이는 카샨을 따로 불러내어 사정을 이야기한 뒤에 지난번에 노예 사냥꾼들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 엘프 이백 명을 병사로 뽑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가지고 있는 병사들로는 모든 영지를 지키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저번에 본 엘프들을 병사로 뽑고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이 말에 카샨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마을을 몬스터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일이었고, 동시에 이것이 자신들을 영지민으로 받아준 루이에 대한 보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루이는 순조롭게 엘프 200명을 병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루이는 이번에 새롭게 받아들인 엘프 부대를 숲의 감시자라고 명명했다.

그 후, 이백 명에 이르는 엘프들을 연병장에 사열시킨 뒤에 충성의 서약을 받았다. 그리고 루이는 카샨을 숲의 감시자 부대의 대장으로 임명했다. 이 때, 카샨이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거절의 뜻을 내비치려고 했지만, 이내 루이가 엄하게 말하자 그는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받아들였다.

이렇듯 충성의 서약이 끝나자, 루이는 특별히 이들에게 봉급을 내려주었다.

“이게 인간들의 화폐인가?”

“신기하군.”

난생처음으로 인간들이 쓰는 화폐를 받게 된 엘프들은 호기심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 누구 한 명, 선뜻 화폐를 사용하려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들과 접촉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엘프들은 화폐 사용을 극도로 꺼려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아놀드는 엘프들의 화폐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그는 일단 떠돌이 행상인으로 위장한 뒤에 엘프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 후,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당과 등을 들고서 어린 엘프들을 유혹했다.

“자, 이거 한번 먹어보렴.”

이렇듯 아놀드가 어린 엘프들에게 당과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며 말하자, 처음에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던 어린아이들도 하나둘씩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서 당과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그 단맛에 푹 빠진 얼굴을 하고서 귀를 연신 파닥파닥 거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한 개 더 쥐어줄 뻔한 아놀드였지만 이내 상인으로서의 냉철함을 떠올리며 단호히 입을 열었다.

“더 먹고 싶다면 이걸 가져오렴.”

이리 말하며 아놀드가 동화를 보여주자, 어린 엘프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이고는 동화를 구하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하나둘씩 동화를 들고 나왔다. 이에 아놀드는 잘 했다는 말과 함께 동화를 받고 당과를 팔았다.

그리고 이 다음날, 아놀드는 평판이 좋은 상인 몇몇을 데리고서 엘프 마을을 찾았다. 그 후, 아름다운 옷이며 식기, 바구니 같은 것을 보여주며 엘프들을 유혹했다. 그러자 어린 엘프들뿐만이 아니라 다 큰 처녀 엘프들 또한 호기심을 보이며 접근했다.

“자자, 이 옷 좀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식기 써보셨나요? 무척이나 비싼 도자기입니다. 여기에 과일을 올려놓고 먹으면 더 맛이 좋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하며 꼬시는 상인들의 말에 처녀 엘프들은 홀라당 넘어가서 동화로 물건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엘프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화폐가 이토록 좋은 물건이구나!

화폐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엘프들은 저마다 필요한 물건을 화폐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어떤 엘프들은 숲에서 채취한 귀한 약초나 과일 따위를 인간 상인들에게 팔았다. 물론 인간상인들 입장에선 귀한 약초와 과일을 얻게 되는 일이었기에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듯 거래가 왕성해지자, 아놀드는 슬슬 광장으로 나오도록 꼬드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일부터 저희는 더 이상 이곳에 방문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마을에 있는 광장에서 물건을 팔 생각입니다. 혹여 이전처럼 물건을 사거나 팔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광장으로 나오세요. 모두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놀드의 말에 엘프들은 처음엔 다들 당혹스런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내 물건을 사고파는 것의 즐거움과 유용함을 깨달은 그들은 다음날, 날이 밝자 하나 둘씩 용기 내어 광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놀드는 일찍이 예고한대로 모든 상인들을 불러 모아, 엘프들을 환영해주었다. 상인들 입장에선 손님이 더 늘어나는 꼴이었으니, 두 손 두 발 다 벌려도 모자랄 환영이었다.

덕분에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하멜른의 광장에는 엘프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게 되었다.

“예상보다 엘프들이 광장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광장을 늘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아놀드였다.

아놀드는 엘프들 덕분에 마을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띄자, 곧바로 루이에게 광장을 하나 더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루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놀드와 함께 여러 번 상의를 거친 뒤에 적당한 곳에 광장을 하나 더 세웠다.

그리고 광장 한 가운데에 엘프와 인간이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뒤에 기념비로 세워두었다.

때문에 영지민들은 그 광장을 악수의 광장이라 불렀다.

이렇듯 악수의 광장이 새롭게 만들어지자, 이제까지 자리가 없어서 들어오지 못 하고 있던 상인들이 하나둘씩 악수의 광장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동시에 영지민들도 악수의 광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악수의 광장은 엘프 마을과 가까이 붙어있는 덕분에 엘프들의 숫자가 유독 많았다.

“자네 들었나? 하멜른에 있는 악수의 광장 말이야.”

“진귀한 과일들이 많다고 하지? 어서 가봐야겠어.”

“자릿값이 금값이야. 어서 가지 않으면 늦을지도 몰라.”

악수의 광장에 엘프들이 몰리자, 더 많은 상인들이 이 소문을 듣고 하멜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물론 하멜른이 랄프 산맥과 인접해있는 탓에 언제 어느 때에 몬스터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찾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엘프들이 가져오는 약초와 과일은 하나같이 전부 진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소문에 의하면 몇몇 엘프들이 멋도 모르고 카샤의 가루를 싼값에 팔기까지 한다고 하니, 상인들로서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몇몇 엘프들이 카샤의 가루를 가져다 달라는 상인들의 부탁을 받고서 카샤의 가루를 상인들에게 판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루이에게 들킨 이후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카샤를 따지 않았다.

물론 이 소식을 모르는 상인들은 혹여 카샤의 가루를 얻을 순 있지는 않을까 싶은 헛된 희망을 품고서 찾아오지만 말이다.

여하튼 하멜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상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마땅히 음지가 있기 마련이었다. 엘프들이 자기 마을이 아닌 광장으로 나와서 활동을 시작하자, 그걸 아니꼽게 본 인간들이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몇몇 인간들은 패거리를 모아서 보호세라는 명분하에 상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거나, 엘프들을 납치하기 이르렀다.

“아벨, 아자젤! 당장 그 놈들을 잡아와라!”

물론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루이가 아니었다.

루이는 아자젤과 아벨에게 명을 내려서 곧바로 건달들을 소탕하게 했다. 그러자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모든 건달들을 잡아서 루이에게 내보이는 아벨과 아자젤이었다.

“내가 명을 내릴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나, 자네들?”

이렇듯 일을 빠르게 처리한 두 사람의 행동에 루이가 놀라움을 표시하며 물음을 던지자, 아자젤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여인들의 정보력을 우습게보시면 안 됩니다, 주군.”

그 말에 루이는 적잖게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아자젤다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벨, 그대는 어떻게 한 건가?”

“엘프들로 이루어진 숲의 감시자들이 예상보다 더 경계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만큼 이쪽에 여분의 병력이 많이 남아서,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다 숲의 감시자들과 훈련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벨의 말에 루이는 흡족한 미소를 띄워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아벨의 휘하 장병 100명 모두 상당한 강군이었다. 일단 눈빛부터가 달랐다. 만약에 지금 이대로 아자젤의 휘하 100명의 여병사들과 싸움을 붙인다면 백이면 백, 아벨의 병사들이 이길 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자젤이 데리고 있는 여병사들이 약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벨이 데리고 있는 병사들이 하루 동안 소화하는 훈련의 양은 무지막지했다. 더욱이 이들 모두 아벨이 직접 고르고 고른 건강한 사내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리도 쉽게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하튼 루이는 이번 성과에 크게 만족해하고는 두 사람을 크게 치하한 뒤에 상여금을 내렸다. 그 후, 이번에 잡아들인 건달들을 죄질에 따라서 크게는 목을 베거나, 작게는 손이나 팔을 잘라서 마을 밖으로 추방했다.

노예로 만드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성정이 나쁜 저들을 노예로 삼아봐야 분쟁 밖에는 더 생기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따로 노예로 삼지는 않았다. 더욱이 노예로 삼는다는 것은 그들의 의식주를 해결시켜준다는 말이었다. 루이로서는 손 팔이 성치 않은 저들을 노예로 삼아서 의식주를 돌보아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렇듯 하멜른에 이제 막 뿌리를 내리려 했던 음지를 싹 다 뽑아낸 루이는 테일 백작의 영지로 떠나기 전에 고아원을 찾아갔다.

이제까지 일이 바빴던 탓에 한 번도 찾아가지 못 한 탓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고아원 안으로 들어서자, 일백 여명의 고아들과 보모로 보이는 중년 여성, 그리고 엘프 여럿이 루이의 눈에 들어왔다. 루이는 이들을 한번 둘러본 뒤에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선물로 가져온 물건들을 들여보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 모두 루이가 가져온 선물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나 공이 유독 인기가 많았다.

루이는 공을 차며 노는 어린 아이들을 보다가 이내 고아원에 같이 온 아자젤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번에 자네가 말한 그 여자 아이는 어디에 있나?”

“저기 있습니다. 오필리아!”

아자젤이 크게 소리쳐 부르자, 남자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공놀이를 하고 있던 여자 아이 한명이 쪼르르 달려왔다.

“왜 불렀어, 아자젤?”

오필리아라고 불린 여자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순간, 루이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상대의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한 탓이었다. 물론 아직 앳된 면이 없잖아 보였지만, 틀림없이 그녀였다.

검은 장미단의 수장, 흑장미!

아벨이 이끄는 부대가 전면전을 장기로 삼았다면, 흑장미가 이끄는 검은 장미단은 후미를 치거나 정보를 조작하는 등의 교란을 장기로 삼았다. 어찌나 지독하게 왕국군을 괴롭히던지, 흑장미라는 이름만 들어도 모든 병사들이 치를 떨었다.

특히나 루이는 흑장미, 그녀가 이끄는 검은 장미단의 흉계에 빠져서 보름이 넘도록 죽으로만 끼니를 때운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치가 떨리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지금 이 자리에서 보게 되니, 루이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이 상황이 정말로 재밌다고 느꼈다.

“하하.”

짧게 두어 번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오필리아에게 손짓했다. 이에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아자젤이 등을 떠밀자, 어쩔 수 없단 듯이 루이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래, 이름이 오필리아라고?”

“네…….”

“그래, 오필리아.”

이리 나직인 루이는 오필리아의 오른쪽 귀를 가리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흑장미는 아주 어렸을 적에 도둑질을 하다가 그만 주인장에게 걸려서 오른쪽 귀가 잘렸다고 한다. 당시 아홉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고 한다. 그런 어린 아이의 오른쪽 귀가 잘린 것이다.

그 때문일까? 흑장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오른쪽 귀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루이는 궁금했다.

그 소문이 사실일까?

“아!”

이런 루이의 손길에 오필리아가 흠칫 몸을 떨며 뒤로 몸을 빼려했다. 그러나 루이의 손이 더 빨랐다. 소년은 지독하게도, 집요하게 손을 뻗어 오필리아의 오른쪽 귀를 만져보았다. 그러자 마땅히 잡혀야 될 귀가 조금도 잡히지 않았다.

오돌토돌하게, 그 흔적이 미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흑장미가 맞았다.

잘린 오른쪽 귀, 흑장미의 어린 시설을 쏙 빼닮은 외모. 그리고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 루이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그녀가 지금 자신의 손에 있음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걸로 반란군의 수장 중에 두 명이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전하?”

이렇듯 루이가 오필리아의 오른쪽 귀를 만지며 웃고 있고, 오필리아는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해하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자 이에 당황한 아자젤이 입을 열어 루이를 불렀다. 그리고 그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루이는 점잖게 손을 빼내며, 혹여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오필리아의 오른쪽 귀를 머리카락을 잘 덮어주었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숨기고 싶은 치부,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

오른쪽 귀가 머리카락에 덮이는 것을 느낀 모양인지, 오필리아가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그 누구보다도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밤, 내 방으로 오거라. 오필리아.”

============================ 작품 후기 ============================

드디어 오필리아까지 등장했군요.

우리의 오필리아! 후후.

Chalybs 님 : 헛, 네! 감사합니다.ㅎㅎ

천연베이킹소다 님 : ㅎㅎ 일찍 오셨네요.ㅎ

으함 님 : 네!

양산형마법사 님 : 네.ㅋㅋ 좀 어리버리하죠.ㅋㅋ

레디다 님 : 헛, 들켰...ㅋㅋㅋ 엌ㅋㅋ 들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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