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35화 (3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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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숲]

정신이 들고 보니 창문 너머로 작은 새의 지저귐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오필리아의 상태를 확인한다는 것이 그만 의자에 앉은 채로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고개를 든 뒤에 오필리아의 상태부터 확인해보았다.

‘잘 자는군.’

다행스럽게도 소녀는 간밤 동안 푹 잔 모양인지,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로워보여서, 저 소녀가 정말로 그 흑장미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쿡,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문득 자신의 어깨에 담요가 걸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데이지나 오필리아가 자신의 어깨 위에 담요를 덮어주고 간 모양이었다.

‘따뜻하네.’

루이는 한동안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져있는 담요를 쓰다듬다가 이내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그 후, 창문을 열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자,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루이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한창 추운 겨울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겨울은 겨울이었다.

“날씨가 좋군.”

맑게 개어 있는 하늘이 마치 수정을 닮았다.

루이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거리를 둘러보았다.

영주관의 맞은편에 나있는 큰 길에는 이미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특히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랑거리인 행상인들이 광장에 내놓을 물건을 열심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상인들이란…….

가끔 저들을 보면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특히 아놀드의 경우에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게 있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일을 진행시켜도 될 텐데, 그는 항상 루이에게 시간은 금이라며 빠르게 처리하기를 권했다.

솔직히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약간은 숨이 가쁜 것도 사실이었다.

“영주님, 기침하셨습니까?”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방 문 너머로 데이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루이가 ‘들어와라.’라고 말하자, 세숫대야를 들고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데이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숫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래, 이리 가져오거라.”

루이의 말에 데이지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한걸음씩, 루이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 때마다 루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마치 무언가 트집거리를 잡아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흐음.”

데이지가 자신의 앞에 설 때까지, 소녀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본 루이는 곧 무언가를 찾아낸 모양인지, 기쁘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데이지의 안색이 새끼 고양이도 울고 갈 만큼 처량하게 변했다.

“……눈가에 눈곱이 꼈구나. 자, 이리 오거라.”

“영주님, 이건 영주님의 세숫물입니다.”

“괜찮다. 네가 씻고 난 뒤에 내가 씻으면 그만이니까.”

이리 말하며 손짓하는 루이의 행동에 데이지는 울상을 지어보이며 루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자기 무릎 위에 세숫대야를 올려놓자, 루이가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허리를 숙여 자기 손에 물을 묻혔다.

그 후, 손으로 데이지의 얼굴을 닦아내어주자, 어린 아이의 보송보송한 피부가 물기를 머금고서 반짝 반짝 빛을 내었다.

루이는 그것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카샤의 가루가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손바닥에 맞닿는 이 부들부들한 감촉……. 견딜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다.

“자, 흥 해라.”

“흐응~!”

이런 루이의 말에 데이지는 반쯤 포기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흥하고 코를 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도 귀엽던지, 좀 더 계속 괴롭히고 싶은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왜 이런 재밌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좀 더 일찍, 데이지가 아침 세수를 게을리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루이는 자신의 섬세하지 못 한 관찰력을 꾸짖으며 데이지의 얼굴을 깨끗이 닦아내어주었다. 반면에 데이지는 자꾸만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루이의 태도에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쯤이면 나를 어엿한 여성으로 봐주실까?’

물론 자기 스스로가 생각해도 아직 자신이 어리다는 건,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어리다고 해도 여자는 여자였다.

한 명의 여자로서, 왕자님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게 어린 소녀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실제로 오필리아라는 고아원의 소녀가 루이의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질투했던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가 자신에게 직접 찾아와 약을 가져다달라고 했을 때, 그 사정을 얼추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흉한 상처구나.’

곁눈질로 오필리아의 귀 상처를 발견한 데이지는 속으로 납득했다. 하지만 동시에 왜 저런 소녀에게까지 왕자님이 일일이 신경을 써주시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왕자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주시고 계신다는 것부터가 의문투성이였지만 말이다.

여하튼 데이지는 오늘도 풀리지 않은 의문을 품은 채로 세수를 끝마쳤다.

“자, 깨끗해졌구나.”

“그럼 왕자님도…….”

“그래, 해야지. 하지만 그 전에…….”

이리 말한 루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제 깨어난 건지, 실눈을 뜨고서 루이와 데이지를 관찰하고 있는 오필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 오거라, 오필리아.”

이런 루이의 부름에 그제야 오필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제 몸을 떨고 있었다.

“네? 아, 저……. 왕자님, 저는 제가 알아서…….”

“어허. 다친 사람이 어떻게 세수를 한다고? 얼른 이리 오거라.”

짐짓 엄하게 말하는 루이의 태도에 오필리아는 그저 황송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침대에서 나와, 쪼르르 루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데이지와 마찬가지로 자기 얼굴을 내밀었다.

“자, 그럼 세수부터…….”

그 모습에 루이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에 물을 묻혔다. 그 후, 오필리아의 뺨에 손바닥에 대자, 말랑말랑 거리는 어린 아이 특유의 부드러운 피부결이 느껴졌다.

미인은 어릴 때부터 미인이라고 했던가?

오뚝한 콧날이며, 날렵한 턱선. 그리고 고양이를 닮은 눈동자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이것 하나하나가 미래의 흑장미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흥 하거라.”

“흐으으응.”

루이의 말에 오필리아를 여자다움을 지키고자, 살살 코를 풀었다. 그러나 그걸 얌전히 두고 볼 루이가 아니었다.

“좀 더 세게.”

“흐으응!”

이러한 루이의 엄포에 오필리아는 울상을 지으며 코를 풀어왔다.

완전히 어린애 취급!

상대가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나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오필리아는 그제야 앞서 세수를 한 시녀가 왜 울상을 지어보인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나이를 떠나서, 여자로서 슬픈 일이었다!

‘거의 같은 나이인데!’

마음 같아서는 뭐라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의 얼굴을 직접 닦아내어주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왕자님이었다. 자신이 일백 번 죽어,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다가가지 못 할 위치의 사람이었다.

“그래. 잘 했다, 오필리아.”

이렇듯 우울한 기분도 잠시…….

다정하기 짝이 없는 루이의 칭찬에, 또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 모락모락 피어올라서 계속 이렇게 세수를 받고 싶은 기분이 들어버리는 오필리아였다.

‘……좋다.’

결국 오필리아는 언제 수치스러웠냐는 듯이 헤실헤실 웃으며 루이의 손길을 받았다.

반면에 데이지는 그 모습을 보며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저랬지.’

한때는 말이다.

여하튼 오필리아의 세수까지 끝마친 루이는 그제야 자기 세수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두 사람을 데리고 방을 나선 루이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아놀드를 비롯한 아벨과 아자젤이 먼저 자리에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왕자님.”

세 사람의 인사를 받은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좋은 아침이라 대답해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 후, 데이지와 오필리아에게도 자리에 앉게 했다. 이 때, 아자젤이 다른 사람 몰래 오필리아에게 눈길을 보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없었냐는 질문이 담긴 눈길이었다.

그 눈길을 받은 오필리아는 양 손의 검지를 교차시키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해주었다. 이에 아자젤은 그제야 안심하며 루이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했다.

역시 왕자님은 신사였다! 자신과 같은 매너 넘치는 남자!

신사다!

“자, 들지.”

이렇듯 아자젤과 오필리아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 루이가 입을 열며 식탁 위에 올려져있는 수프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큼지막하게 토막 낸 고기를 각종 야채와 함께 푹 끓인 아주 먹음직스런 수프가 뽀얀 김을 내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도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식탁 위에는 수프와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갖가지 산채 요리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특히나 이번에 엘프들이 선물해준 과일 요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과를 닮은 과일을 꿀에 버무린 뒤에 푹 쪄낸 것이었다.

흔히들 이런 과일은 싱싱할 때 깎아먹거나 잘게 잘라서 파이로 해먹는 게 일반적인데, 엘프들은 과일을 쪄내는 방식의 요리가 발달되어 있는 모양인지 조금 색다르게 과일 요리를 해먹고 있었다.

“흐음, 꽤 괜찮은 맛이군. 데이지, 너도 한번 먹어봐라.”

감탄하며 입가에 묻은 꿀을 엄지로 쓱 닦아낸 루이는 꿀과 함께 쪄낸 과일을 칼로 썰어 덜은 뒤에 데이지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이에 데이지는 완전히 포기한 얼굴로 루이가 담아준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놀드가 조금 측은한 눈길을 보내왔지만, 그가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아벨이나 아자젤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면 루이를 자제시킬 수라도 있을 텐데, 불운하게도 아벨과 아자젤 모두 어릴 때는 모조건 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데이지는 오늘도 하염없이 먹어야만 되었다.

반면에 이런 호화스런 아침 식사를 처음 맞이해본 오필리아는 정신없이 이것저것 먹고 있었다. 특히나 꿀에 쪄낸 과일과 곁들어 먹는 고기 수프는 그녀가 이제까지 먹어본 음식들 중에 단연컨대 최고의 음식이었다.

오죽했으면 루이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수프 냄비를 통째로 오필리아의 앞에 가져다 놓겠는가? 이렇듯 루이의 호의를 받으며 이것저것 먹던 오필리아는 문득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루이를 올려다보았다.

“왕자님, 혹시 이것들이 남으면 가져가도 될까요?”

“음? 왜 그러지?”

“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데……. 안 될까요?”

얼핏 보아하니,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이 음식의 맛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오필리아의 고운 마음씨에 감탄하며 그러라고 하려고 했다.

아놀드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꼬마 아가씨, 그건 안 된단다.”

“어째서요?”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란다. 만약 이것들을 고아원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게 되면 마을 아이들이 뭐라 생각하겠니?”

“그야…….”

아놀드의 물음에 무어라 대답하려던 오필리아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는 모양인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놀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이 음식들을 고아원에 가져가서 아이들에게 먹인다면 금세 마을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리고 철없는 마을 아이들이 이것을 보고 부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어떤 아이는 멋도 모르고 집에서 뛰쳐나와 고아를 자청하며 고아원에 들어오려 할지도 몰랐다. 또 어쩌면 고아들과 마을 아이들 간에 사이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이걸 오필리아가 아닌 다른 평범한 아이가 들었다면 아놀드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 했겠지만, 어린 시절을 다른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보낸 오필리아였기에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죄송해요.”

이렇듯 순순히 물러나는 오필리아의 태도에 아놀드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이 정도에서 바로 물러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10살 정도로밖엔 안 보이는데……. 영리한 아이구나. 과연, 아자젤 경이 칭찬할만해.’

아놀드는 새삼 오필리아라는 소녀에 대해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주니 오히려 내가 다 고맙구나.”

이리 말하며 아놀드가 오필리아를 칭찬해주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자젤이 괜히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그것을 아벨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았지만 말이다.

“그럼 이걸 데이지 혼자 다 먹어야겠구나.”

문득 루이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옆에서 수프를 떠먹고 있던 데이지가 달그락 소리와 함께 숟가락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부들부들 손을 떠는 게, 마치 오한을 느끼고 있는 듯이 싶었다.

‘이걸 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데이지가 아놀드에게 급하게 구원을 요청해보지만, 아놀드는 계급이 깡패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저어보였다. 결국 데이지 홀로 고립된 셈이었다. 마치 백만 대군 앞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데이지는 한줄기 광명을 보았다.

그건 바로 오필리아라는 존재였다!

그래, 저 소녀와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이리 생각한 데이지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왕자님, 제가 이걸 다 먹어버린다면 저 소녀가 서운해 할 것입니다.”

“흠,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부디, 함께 먹지요.”

그 말에 루이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오필리아가 서운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날, 오필리아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식사량을 보여주며 데이지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그야말로 대식가!

“오필리아 양,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요!”

데이지는 감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오필리아의 양 손을 꼬옥 붙잡으며 이리 소리쳐 말했다. 그리고 오필리아로서는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선뜻 데이지의 손을 맞잡아주며 이리 대답했다.

“응, 잘 부탁해. 데이지.”

이렇게 두 소녀는 친목을 도모했다.

============================ 작품 후기 ============================

오필리아에게 대식가 속성을 부여했습니다.

걱정마세요, 오필리아는 여전히 미인입니다. 커서도 미인입니다.

음, 빈유 포지션은 누구에게 줘야 될지 고민이군요.

역시... 루시아인가!

Chalybs 님 : 어머나, 세상에!

다크체리 님 : 일단 히로인이죠.ㅎㅎ

리눅 님 : 넵.ㅎ

망한류 님 : 오필리아라는 유능한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바보벌레 님 : 크흠, 크흠. 좀만 기다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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