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40화 (4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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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냥]

그 동안 하멜른의 영지민들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했으며 경계했다.

무리를 이루어 자신들과는 다른 출신, 계급, 종족의 사람들을 배척했다.

구역을 나누고, 대화를 단절했다.

화전민 출신과 노예 출신 사이의 갈등. 그리고 사람과 엘프 사이의 갈등!

이것이 하멜른에 만연해있었다.

그런데 루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두 달 동안, 그 갈등이 사라져버렸다.

그것도 완전히 말이다!

변화라는 이름의 큰 바람이 하멜른에 분 것이었다.

덕분에 영지민들은 화전민, 자유민, 노예, 엘프라는 출신과 종족을 떠나서 완전하게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하나의 공동체!

하멜른의 영지민이라는 소속감으로 일체된 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놀드는 이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영지민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해준 뒤에 곧바로 성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마을과 도시를 구분 짓는 가장 큰 기준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성벽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성벽이 쳐져 있음으로 해서 상인과 여행자, 외지인들이 도시 내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가 성문으로 한정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한정된 공간에서 영주는 여행자들로부터 일일이 세금을 걷는 게 가능했다.

세금뿐만이 아니다. 범죄자가 있다면 곧바로 체포하는 것도 가능했다.

일종의 검문소인 셈이다.

더욱이 영지민들은 매일 아침, 성벽을 올려다보며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생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벽이 가지는 기능이었다.

“수고가 많았구나.”

이 두 가지를 겨우 두 달 만에 아놀드와 아벨, 카샨이 해낸 것이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루이는 크게 잔치를 열어서 세 명의 공로를 칭찬해주었다. 더불어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상여금을 내려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아놀드는 물론이고 카샨까지도 루이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어깨를 크게 으쓱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어깨를 으쓱일 자격이 얼마든지 있었다.

“주군. 실례를 무릎 쓰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만 한 사람.

아벨만 빼고서 말이다.

“무엇인가, 아벨?”

루이는 아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물음을 던졌다.

“이번에 데려오신 오백 여명의 영지민들……. 정말로 에드윈 백작의 영지민들입니까?”

“그것이 왜 궁금한가?”

“대답해주십시오.”

루이의 되물음에 아벨이 성난 목소리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 재촉에 루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이렇듯 기분 좋은 자리에서 굳이 그런 일을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주군! 그들에겐 엄연히 고향땅이 있습니다.”

“아벨, 네가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고향땅은 이제 이곳 하멜른뿐이라네.”

“에드윈 백작령이지 않습니까!”

자꾸만 말을 돌리는 루이의 태도에 아벨이 기어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아자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벨을 진정시켰다.

“진정하게, 아벨. 주군의 앞이지 않은가?”

“아자젤 경! 그대가 한번 말해보시오! 이번에 잡혀온 사람들의 말대로 전부 강압적으로 끌려온 것이 맞소?”

그 물음에 아자젤은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침착하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나? 전부 주군의 은덕에 감동해서 자발적으로 따라온…….”

“거짓말 하지 마시오! 오늘 온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내 옷깃을 붙잡은 줄 아시오? 무려 마흔 다섯 명이오! 이들 모두 내 옷깃을 붙잡고서 고향땅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애원한 것이란 말이오! 그것도 필사적으로…….”

울분에 섞인 목소리로 소리친 아벨은 곧 루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주군, 그들을 돌려보내주십시오. 그들에겐 돌아가야 될 고향땅이 있습니다.”

“보낼 수 없다. 그들은 오늘부터 나의 영지민이다.”

그러나 루이는 단호했다.

애써 여기까지 데려온 오백 명의 영지민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에드윈 백작령으로 돌려보내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루이는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벨을 마주보았고, 아벨 또한 질 수 없다는 듯이 루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향 땅을 떠난 자의 슬픔을 아십니까?”

“여기서 고향땅을 떠나지 않은 자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하다못해 나 또한 고향인 팔칸을 떠나 이 자리에 있다.”

“주군!”

“어리광부리지 마라, 아벨!”

“어리광은 주군께서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강압적으로 데려온 저들은 분명 차후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다른 이들은 강압적으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심지어 루이도 그러했다.

루이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이곳, 하멜른에 있는 것이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회귀 이전과 같은 비참한 삶의 최후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이곳, 하멜른에 있는 것이었다.

“주군, 부디 저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십시오!”

“나는 저들에게 자비를 내려준 것이다! 만약에 저들이 에드윈 백작령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지금 에드윈 백작은 테일 백작에게 패했다! 그런 그가 패배로 인해 생긴 손실금을 어디서 충당할 것 같은가? 바로 영지민들의 고혈이다! 영지민들을 쥐어 짜내서 손실금을 메우려고 하겠지. 그렇게 되면 과연 몇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나? 설혹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산 것이 아닐 것이다.”

루이는 잠시 숨을 삼킨 뒤에 아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통스럽게 살 바에는 고향땅을 떠나는 게 좋다.”

이 말에 다들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벨이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루이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고통스럽게 살더라도 그곳은 결코 떠나서는 안 되는 땅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그들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몇 대에 걸쳐서 살아온……. 조상의 땅 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을 억지로 데려왔으니, 그들이 과연 영주님에게 충성을 다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충성을 다하게 만들 것이다.”

“틀렸습니다. 그들은 결코 주군께 충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마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제 옷깃을 잡아당겼지만, 다음 날에는 그보다 많은 이들이 제 옷깃을 잡아당길 겁니다.”

“…….”

강하게 소리쳐 말하는 아벨의 태도에 루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벨이 이 정도까지 반발할 줄은 예상지 못한 루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아벨을 바라보던 루이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그들을 돌려보내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

딱 잘라 말하는 아벨의 태도에 루이는 또다시 침묵했다.

“부디 그들의 마음을 헤어져 주십시오, 주군.”

“하지만 아벨, 나에게는 그들이 필요하다.”

“왜 그렇게 조급해하십니까?”

아벨이 한 걸음, 루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루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고 말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분명 회귀 이전과는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아벨이 두렵게 느껴지는 걸까? 더 이상 아벨은 그 때의 아벨이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의 충성스런 가신이었다.

루이는 애써 마음을 다그치며 자세를 똑바로 했다.

“이럴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필요가 대체……!”

“아벨!”

넌 아무것도 모른다, 아벨.

아무것도 몰라.

넌 항상 그런 식이었지. 나는 네가 쏜 화살에 맞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데, 너는 그런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며 화살을 쏘았지. 내 심장이 얼마나 조여 오는 줄도 모른 채, 내 오른쪽 어깨를 항상 쏘아댔지.

욱신거린다. 욱신거려.

지독하게도 아프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루이는 오른쪽 어깨를 꽉 부여잡으며 말했다.

“이만 들어가 보겠다.”

소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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