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 / 0158 ----------------------------------------------
[변화]
[변화]
사람이란 몹시도 약한 존재다.
들짐승처럼 날카로운 이와 발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날짐승처럼 도망치기 위한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몹쓸 다리와 몹쓸 팔, 그리고 한없이 연약한 피부 가죽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머리를 쓴다.
기술, 책략, 모함, 그 밖에 수많은 것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취하는 공통된 방법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무리를 짓는 것.
한 마리씩 있을 때는 한없이 연약한 초식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몇 천 마리씩 무리를 지어놓으면 웬만한 육식 동물의 습격에도 꿈쩍하지 않게 된다.
작은 무리들이 하나의 조직이 되어, 단단한 벽처럼 그들의 안전을 도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여럿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이윽고 마을이라 불리는 공동체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덩치를 부풀려 도시를 이루고 종국에는 하나의 거대한 국가를 만들기에 이른다.
루이가 그러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하멜른이라는 무리를 짓고 더없이 단단한 벽을 세우고 있었다.
높게, 더 높게……. 아무도 이 벽을 넘보지 못 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벽을 높게 세운다고 하더라도 벽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되어버리면 결국에는 망가지고 만다.
병에 걸린 인간과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금방 썩어 문드러져서,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도려내야만했다.
집단이란 하나의 거대한 짐승이다.
짐승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향하고자 하면 오른쪽을 보아야 하고, 왼쪽으로 향하고자 하면 왼쪽을 보아야 했다. 먹이를 발견하면 그 먹이를 향해 달려 나아가야만 했다. 아무리 그 먹이가 가엾고, 불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짐승의 머리가 그리 시킨다면 그 먹이를 사납게 물어뜯어야만 되었다.
먹지 않는다면 그 짐승은 더 이상 짐승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저 병들어 죽어갈 뿐이었다.
‘그리 되기 전에 바로 잡아야겠지.’
루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을 굳게 먹었다.
“주군, 아벨을 불러왔습니다.”
그 때 마침 아자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들어오거라.”
루이는 서둘러 두 사람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아벨과 아자젤,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루이는 어젯밤 아놀드와 이야기 했던 것을 그대로 읊어주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아벨에게만 해도 괜찮았지만, 루이는 이번 기회에 아자젤에게도 자신의 뜻을 내비치고 싶었기에 일부러 이렇게 아자젤까지 불러낸 것이었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리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설명을 끝마친 루이가 두 사람의 의중을 묻자, 아자젤은 곧바로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아벨은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조금 속이 상하긴 했으나, 이내 그 마음을 기꺼이 풀며 아벨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벨, 그대는 내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듭 물음을 던지는 루이의 태도에 아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대답했다.
“이번에 주군께서 데려오신 영지민들의 대다수는 곧바로 하멜른을 떠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굳이 되돌리겠다고 계속해서 잡아둔다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제 생각에는 그들을 하루라도 더 빨리 에드윈 백작령으로 돌려보내심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여전히 앞뒤가 꽉 막혀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아벨이었다.
“…….”
루이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반면에 아자젤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루이와 아벨을 번갈아보다가, 이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리 하심이 어떻습니까, 주군?”
불쑥 입을 열어 화제를 만드는 아자젤의 태도에 루이는 그제야 아벨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아자젤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무엇을 말이냐?”
“명확한 기한을 두는 것입니다. 딱 그 기한까지만 하멜른에서 지내게 한 뒤에 그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멜른에 계속 남을 것인지, 아니면 에드윈 백작령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말입니다.”
이러한 아자젤의 말에 루이는 그 말이 제법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구나, 아자젤.”
이리 대답하며 긍정을 표시한 루이는 다시금 아벨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아벨,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저 또한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군.”
이렇듯 뜻이 일치되자, 루이는 그 기한을 한 달로 정한 뒤에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물론 루이의 마음 같아서는 그 기한을 1년으로 잡고 싶었지만, 아벨의 태도를 보아서는 1년은커녕 반년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리 정한 것이었다.
루이로서는 제법 많이 양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벨 또한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처음 루이의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나갈 때는 사뭇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아자젤과 함께 떠났다.
“이걸로 한 고비를 넘겼군.”
루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서둘러 아놀드를 만나러 갔다.
“오셨습니까, 주군?”
“그래. 일단 자리에 앉지.”
아놀드를 만난 루이는 곧바로 아벨과 합의한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아놀드는 루이보고 아주 잘 했다며 칭찬을 하고는 서둘러 영지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계획을 강구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로 실행한 것은 바로 루이가 영지민들을 데리고서 직접 성벽을 시찰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성벽은 도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가장 첫 번째였다.
물론 병사들도 중요하지만, 역시 눈에 잘 보이는 것만큼 또 안심이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루이는 오백 명의 영지민을 일백 명으로 나누어 총 다섯 차례, 하멜른의 성벽을 구경시켜주었다.
“근무 중 이상 무!”
“절대 이상 없습니다!”
물론 이 때문에 성벽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때 아닌 호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러한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루이는 무사히 오백 명의 영지민들에게 하멜른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가를 잘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오늘 병사들이 고생했으니, 그들에게 포상금을 내려주게.”
이렇듯 무사히 일을 끝마친 루이는 오늘 하루 무려 다섯 차례나 성벽 시찰을 하느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아놀드에게 따로 이야기해서 병사들에게 포상금을 내려주도록 했다. 덕분에 이번에 고생한 병사들의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게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이번에 고생을 하지 않았다며 낄낄대면서 좋아했던 병사들도 나중에 이 포상금 소식을 전해 듣고는 배를 부여잡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 만큼 이번에 루이가 준 포상금은 후했으며, 동시에 병사들로 하여금 다음에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의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주군께선 병사들의 마음을 정말로 잘 헤아려주시는구나.’
이번 일로 아놀드는 루이의 비범함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성격이 급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점차 성장해서 조급한 면이 사라진다면 분명 더없이 훌륭한 영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하튼 루이는 아놀드의 도움을 받아서 차츰차츰 영지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아갔다. 특히나 그들에게 땅을 빌려주는 것이 아닌 아예 소유할 수 있도록 해주자, 이번에 에드윈 백작령에서 데려온 영지민들의 마음이 대다수 루이에게로 기울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땅을 빌려서 하게 되면 그 만큼 많은 농작물들을 세금으로 내야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걸 자신이 소유하게 되면 그만큼 내야되는 세금도 적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농민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일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좋은 곳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치안도 좋은 편이고 말이야.”
“엘프들을 봤나? 내가 오늘 광장에 갔었는데…….”
하루가 지나갈수록 하멜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변화되었다.
물론 변화되는 방향은 긍정적인 쪽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한 달째가 되던 날, 루이는 아벨을 비롯한 에드윈 백작령에서 데려온 오백 명의 영지민을 앞에 두고서 의견을 물었다.
“하멜른에 남고 싶은 자가 있다면 남아도 좋고, 떠나고 싶은 자가 있다면 떠나도 좋다. 그것은 오로지 너희들의 선택이다. 나는 너희를 붙잡지도, 막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 편히 선택하거라.”
이리 말한 루이는 약속대로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백 명 중에 사백 구십 삼 명이 하멜른에 남기를 희망했다.
고향땅으로 돌아가기로 희망한 사람을 불과 일곱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 때, 루이는 일곱 명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 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이내 그 마음을 곱게 접었다. 애당초 약속한대로 그들의 붙잡지도, 막지도 않겠노라고 이야기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루이는 아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벨, 네가 직접 이들을 에드윈 백작령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고 오거라.”
“알겠습니다, 주군…….”
이런 루이의 말에 대답하는 아벨의 표정이 석연찮아 보였다. 이에 의문이 생긴 루이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
이 물음에 아벨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곧 루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이 정녕 저들의 본심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게 또 무슨 말이냐?”
루이가 조금 화난 목소리로 되묻자, 뒤에 있던 아놀드가 급히 달려와 루이에게 말했다.
“주군, 아벨의 말은 아무래도 주군께서 앞에 계시니까 저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못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 말에 루이가 아벨에게 ‘아놀드의 말대로냐?’라고 묻자, 아벨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그 말대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살짝 기가 찬 루이였으나, 이내 확실히 그럴 법도 하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후, 아벨이 직접 앞으로 나와 에드윈 백작령의 영지민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고향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내 곁으로 모이시오! 곧바로 떠날 것이니, 굳이 눈치를 볼 필요는 없소.”
이러한 아벨의 말에 하멜른에 남기를 선택한 영지민의 대다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우린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딴 곳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까?”
이렇듯 영지민들이 야유를 보내오자, 아벨은 저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것이 그들의 본심이란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아벨은 고향땅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 일곱 명과 함께 에드윈 백작령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써보니 의외로 이쪽이 더 마음에 들긴 하군요.
물론 증발해버린 몇몇 이벤트가 아깝긴 하지만요.
그리고 쪽지 주신 루엘령 님, 감사합니다! 힘낼게요!
mvp33 님 : 선추코는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ㅎ
kall9418 님 : 망가지지 않을 선에서 최대한 수정해 놓았습니다. 어차피 작은 스토리였고, 활약상이 아자젤에서 아놀드로 넘어간거라.... 게다가 이후에 아벨이 활약할 껀던지가 조금 사라진 것 뿐입니다
리눅 님 : 넵. 감사합니다.ㅎ
레오칸 님 : 네, 아벨 안 떠나요.ㅎ
천마악 님 : 넵.ㅎ힘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