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46화 (4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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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루시아의 다이어트는 계속 되었다.

그리고 루이가 팔칸에 도착하는 날, 루시아는 가장 예쁜 옷을 차려입고서 오라버니를 마중하러 나갔다.

“오라버니!”

한달음에 달려 나간 루시아는 와락, 루이의 품에 안겼다.

배가 고픈 탓에 팔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루이의 품에 안기니 없던 힘도 절로 생기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건 루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려 네 달 만에 마주보게 된 어린 누이였다. 루이는 함박 미소를 띠며 루시아를 다정히 끌어안아주었다.

“그 동안 별일 없었지?”

“네, 오라버니도 별일 없으셨지요?”

“하하, 날 걱정해주는 것이냐? 고맙구나.”

루이는 기쁘게 웃음을 터트리며 루시아와 함께 자신의 궁으로 향했다.

‘다, 다행이다……. 살이 빠졌나봐.’

한편 루시아는 속으로 안도하며 웃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가 자신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이 쪘니, 뭐니 하면서……. 다행이도 평상시와 같았다.

루시아는 평상시와 같은 오라버니의 모습에 안도하며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편히 의자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데…….

꼬르륵.

“……!”

방심한 탓일까? 루시아의 뱃속에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응? 방금 그 소리…….”

“꺄, 꺄아아……! 방금 뭐였죠? 천둥? 천둥이었나요? 방금 콰과광! 하고 천둥이친 거 맞죠?”

“…….”

“무서워라! 이렇게나 날이 맑은데……. 이걸 보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는 거죠? 그렇죠?”

“어, 으. 으응…….”

동의를 구하듯이 몇 번이고 물음을 던지는 루시아의 태도에 루이는 그만 저도 모르게 긍정을 표시하고 말았다.

‘진짜……! 왜 이럴 때에 배에서 소리가 나는 거야……!! 분명 오늘 아침밥을 안 먹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낼 필요는 없잖아!’

루시아는 마치 세수를 하듯이 양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며 ‘왜 하필 이럴 때에 왜! 왜!’라고 속으로 소리쳤다.

“루시아? 어디 아픈 거냐?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니에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진짜로……!”

“그, 그래?”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루이의 태도에 루시아는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분명 들키고 말거라고 말이다!

이에 루시아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오라버니는 어떤 기억이 가장 머릿속에 남아있나요? 역시 카샤의 가루를 발견하셨을 때인가요?”

“확실히 그것도 있지만…….”

루이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가장 머릿속에 남는 기억…….

그것은 역시 회귀 이전의 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군.’

단두대 앞에 선 채로 군중들의 야유성을 받던 일.

자신에게 온갖 아첨과 아부를 하던 귀족들이 태도를 싹 바꾸어 루이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더니, 반란군의 수장인 철가면에게 바치던 일.

아벨이 쏜 화살에 오른쪽 어깨를 맞아 사경을 헤맸던 일.

오필리아가 보급을 끊은 탓에 하루에 죽 한 그릇조차도 먹기 힘들었던 일.

왕이 되기 위해서 둘째 왕자와 넷째 왕자를 제 손으로 쳐낸 일.

정쟁에서 패한 루시아가 성탑에 올라가서 떨어져 자살한 일.

셀 수 없이도 많은 일들이 루이의 머릿속을 떠돌아 돌아다녔다. 지독히도 끔찍한 일들이었다. 너무나도 끔찍해서 온 몸이 저려왔다.

당장이라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루이는 마음을 차분히 다그치며 입을 열었다.

“……루시아, 네가 내 궁에 찾아온 일이 생각나는구나.”

“…….”

이런 루이의 말에 순간 루시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내 궁에 네가 가장 처음으로 발을 들여 주었지.”

잿빛으로 가득했던 루이의 왕궁이 루시아의 등장으로 비로소 색을 얻게 되었다.

무채색의 세계가 조금씩 색을 얻어서는 밝은 빛을 내었다.

반짝반짝 빛을 내던 그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루시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번만큼은 루시아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저, 저도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루시아는 자기 손을 꼭 잡아주는 루이의 손길을 느끼며 수줍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듯 남매는 그 동안 나누지 못 한 이야기를 해가 질 때까지 나누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자, 루이는 슬슬 둘째 공주인 비비안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물론 이번에도 루이의 옆에는 아름답게 옷을 차려입은 루시아가 함께 하고 있었다.

“멋지네요.”

루시아가 작게 감탄하며 파티장 안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이름 높은 명문가를 외척으로 가진 둘째 공주답게 생일 파티의 규모가 남달랐다. 별다른 가문을 등에 업지 못 하고 있는 루이나 루시아로서는 꿈에도 꾸지 못 할 그런 생일 파티였다.

하지만 루이는 루시아와는 다르게 결코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만간 일그러질 테지.’

흉하게 일그러질 생일 파티다.

더없이 행복해야 될 생일 파티가 둘째 왕자 밀튼에 의해서 더없이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16살 성년이 되는 생일 파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하고, 화려하고, 멋져야 될 그런 생일 파티가 말이다.

“너희도 왔구나. 루이, 루시아.”

이번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 둘째 공주 비비안이 루이와 루시아 곁으로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이에 루이와 루시아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비비안이 16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리고 그 축하에 비비안은 꽤나 만족한 듯이 깔깔, 목소리를 높여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너희가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걸 호사를 누려보겠니? 마음껏 즐기다가거라. 호호, 그럼 나는 바쁘니 이만.”

이리 말한 비비안은 휑하니 자리를 떠났다.

어찌 보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녀가 바쁘다는 건 정말로 사실이었다. 실제로 비비안은 여러 남성들의 구애를 받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다들 좋은 외척을 가지고 있는 비비안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두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비안과 결혼할 생각을 가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억척스럽고 추하게 생긴 그녀였다.

그 누가 결혼하려 하겠는가? 아무리 사정이 급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끔찍한 선택을 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역겹군.”

이렇듯 비비안이 마음에 드는 남성과 함께 파티장 한 가운데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돌연 밀튼 왕자가 이리 말했다. 분명 더없이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밀튼 왕자의 목소리는 파티장 안을 가로질러 모두를 침묵시켰다.

동시에 뚝 하고 음악 소리도 멈추었다.

“……암퇘지가 꿀꿀 거리며 돌아다니는 꼴이 추악하기 그지없구나. 내가 웬만해선 참고 봐주려고 했는데, 이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너 같은 게, 나와 같은 핏줄이란 게 믿겨지지가 않아.”

“…….”

“차라리 사람 말을 하지 말고 돼지처럼 꿀꿀 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어떻겠느냐? 그렇다면 차라리 봐줄만 하겠구나.”

이러한 밀튼의 말에 순간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비비안에게 있어서 더없이 완벽한 생일 파티가 일순간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그 입 다무세요!”

파티장 안을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에 당황한 비비안이 이리 소리쳐보지만, 그 누구 한 명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루시아조차도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킥킥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마치 웃음에 전염된 것처럼 말이다.

‘그 때의 나도……. 웃었었지.’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망신을 당하는 비비안을 보며 통쾌하다고 생각했었다.

‘……바보같았어.’

루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더없이 큰 상처를 받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더욱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춤을 추고 있던 남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 파티의 주인공인 둘째 공주, 비비안만이 파티 중앙에 덩그러니 선 채로 어쩔 줄 몰라해하고 있었다.

“하하하!”

“호호호!”

사방에서 울리는 웃음소리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비비안은 양 손을 들어 자신의 두 귀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더 집요하게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어 괴롭혔다.

돼지, 추악한 것, 괴물…….

온갖 비아냥거림이 그녀의 마음을 좀먹었다.

결국 버티지 못 한 비비안이 파티장 밖으로 도망치려고 하자, 그 때를 기다리고 있던 루이가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가 비비안의 손을 붙잡았다.

“도망치지 마세요.”

“…….”

“당당히 고개를 드세요, 비비안 누님. 당신은 이 파티의 주인공입니다. 당신이 도망친다면 저들은 평생 누님을 놀려댈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 싶으십니까?”

“아, 아니…….”

“그렇다면 고개를 드세요. 제가 상대해드리겠습니다. 춤을 추시죠.”

이리 말한 루이는 비비안을 파티장 중앙으로 이끄는 동시에 악사에게 금화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러자 금화를 건네받은 악사가 재빨리 악기를 켜기 시작했다.

오로지 비웃음만이 가득했던 파티장 안에 다시금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비안 누님.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루이…….”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십시오. 그리고 웃으세요.”

그 말과 동시에 루이가 비비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자, 그녀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가 자신에게 이리도 다정하게 속삭여주었던 적이 있던가?

진실 되게 조언을 해주었던가?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아주었던가?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성입니다.”

라고 말한 루이는 천천히 비비안을 리드하며 춤을 추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루이는 진실 되게 그녀를 존중하며 춤을 추었다.

그녀의 본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와 비비안은 결정적으로 같았다.

근본이 같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루이는 변한 둘째 공주, 비비안을 보고 동정했었다.

아름답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악하게 대접받는 그녀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안타깝고, 안타까워서……. 이해득실을 떠나서 그녀를 구해주고 싶었다.

“…….”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춤이 끝나자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둘째 왕자 밀튼이 눈살을 찌푸리며 파티장 밖으로 나갔다.

회귀 이전에는 둘째 공주 비비안이 파티장을 나갔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둘째 왕자 밀튼이 파티장 밖으로 나갔다.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루이를 바라보는 비비안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이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에 도달했군요.

라이프세이버 님 : 루시아도 사랑스럽지만, 살 뺀 비비안도... 크흠.

디블라스 님 : 넵, 감사합니다.ㅎ

누굴지? 님 : 왜 자꾸 루시아와 엮으시나요? 히로인으로 오필리아도 있고, 데이지도 있는데요.ㅠ

다크체리 님 : 없어요! 없다고요!

으함 님 : 으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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