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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아놀드는 루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루이의 말대로 레베카가 설혹 자신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아놀드, 바로 자신이 루이에게 계속해서 충성을 맹세한다면 분명 레베카도 그 충성심을 루이에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일은 결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기분 좋게 영주관을 벗어난 아놀드는 마차에 타고 있는 엘프들을 데리고서 레베카가 머물고 있는 엘프 마을로 찾아갔다. 그 후, 근처에 있는 엘프들에게 레베카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 뒤에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명의 엘프들과 함께 아놀드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레베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다렸습니다, 레베카 양.”
“…….”
아놀드가 살갑게 인사말을 건네 보지만, 레베카에게선 그 어떤 대답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레베카의 공허한 녹색 눈동자가 어디 한 곳에 초점을 두지 않고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러한 레베카의 상태에 아놀드는 서둘러 마차의 문을 열어, 그 안에 타고 있던 엘프들을 나오게 했다.
“자, 어서 나오십시오.”
이리 말하며 아놀드가 손짓하자,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엘프들이 하나 둘씩 마차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물론 그것은 이곳 엘프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레베카!”
“언니!”
순간 한 명의 엘프 여성이 레베카를 향해 뛰어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물론 레베카 또한 그녀를 언니라 부르며 그녀의 품에 포옥 안겼다. 그렇게 자매로 보이는 두 명의 엘프는 서로의 몸을 끌어안으며 감격스런 해후를 했다.
“무사했구나, 레베카.”
“언니야 말로……. 아아, 다른 사람들도……. 어엉, 언니……. 엉엉.”
“울지마렴, 레베카. 왜 그러니? 울지 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는 레베카의 태도에 언니는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이렇게 동생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싫지만도 않은 모양인지, 맑게 웃으며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다행이군.’
한편 아놀드는 이들 엘프 자매를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설마하니 레베카에게 언니가 있었을 줄이야.’
만약에 여기 있는 엘프 중에 한 명이 레베카에게 그녀의 언니가 노예 사냥꾼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알려주기라도 했다면 도리어 레베카의 상태가 악화될 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자네가 데려온 건가?”
문득 카샨이 아놀드에게 다가와 물음을 던졌다.
“주군께서 하신 일이십니다.”
아놀드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카샨은 이런 아놀드의 거짓말을 알아채지 못 한 모양인지, ‘과연, 영리한 소년이로군.’이라며 루이를 칭찬했다.
이걸로 루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카샨에게 또다시 점수를 딴 셈이었다.
여하튼 아놀드는 카샨에게 따로 부탁해서 마차에 타고 있던 십여 명의 엘프들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부탁에 카샨은 곤란해 하는 기색 없이, 도리어 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남지 않은 동족이네. 우리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받아준다는 말인가? 걱정말게나.”
이렇듯 카샨의 도움으로 이번에 온 십여 명의 엘프들은 무사히 엘프 마을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날 밤, 레베카와 그 언니는 밤이 늦도록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잠에 들었다.
실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루이는 본격적으로 랄프 산맥을 토벌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슬슬 겨울이 끝나고 완연한 봄이 찾아오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땅이 녹기 시작하면 농민들은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텃밭을 일구고 종자를 뿌려야 되었다. 그리고 그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넓은 농토가 필요했다.
물론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하멜른의 농지로도 지금의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루이는 지금보다 더 많은 영지민을 받아드리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니 날씨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루이는 아자젤과 아놀드, 카샨을 모아두고서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에 세 사람은 두말없이 찬성했다.
그들로서도 한번쯤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을 토벌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뜻이 일치되자, 루이는 용병사무소를 통해서 최소한의 용병들만 고용했다.
왜냐하면 용병이란 자들은 분열되어 있고, 야심만만하며 기강이 문란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신의란 것이 없었다.
그들은 동료들과 있을 때는 용감하게 보이지만, 강력한 적과 부딪치게 되면 한없이 약해지고 비겁해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신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한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다.
실제로도 루이는 그것을 회귀 이전에 많이 보았다.
용병들은 단순히 파멸을 지연시키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는 용병들이 고용주에 대한 아무런 애착도 느끼지 않으며, 너무나도 하찮은 보수 이외에는 고용주를 위해서 전쟁에 나가 생명을 걸고 싸울 이유가 하등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가면의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간이며 쓸개며 전부 다 내줄 듯이 행동하던 용병들이 막상 반란이 터지고 난 뒤에 어떻게 행동했던가?
맞붙기 무섭게 도망치고, 탈영했다.
그들은 결코 믿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물론 이 용병 중에 일부는 무기력하지 않으며 다른 적들과 싸울 때, 용맹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고용주로부터 받은 보수와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싸웠다.
그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이에 아벨이 마침내 하멜른에 도착했다.
“늦었구나, 아벨.”
“면목 없습니다, 주군.”
루이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아벨을 한번 바라보고는 그의 뒤에 서있는 일곱 명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 모습에 루이는 ‘어째서 저들을 다시 데려온 것이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구태여 이 자리에서 아벨에게 무안을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생했다. 이만 들어가서 쉬거라.”
이리 말한 루이는 아벨의 어깨를 한번 토닥여주고는 자신의 영주관으로 돌아갔다. 이에 아벨의 뒤에 서있던 일곱 명의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이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아벨 또한 내심 안도의 숨을 내뱉었는데, 설마하니 루이가 자신의 뒤에 서있는 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마운 마음이 드는 아벨이었다.
‘주군도 그 동안 나름 무언가를 생각하신 건가?’
어쩐지 이전보다 훨씬 더 차분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아벨이었다.
여하튼 아벨은 다시금 데려온 일곱 명의 사람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아놀드를 찾아갔다. 그러자 아놀드가 아벨을 격하게 반기며 입을 열었다.
“어쩌다 이리 늦었나?”
“날씨가 궂은 탓에 발이 잡혔었네.”
“그거 참 큰일이었겠군. 하핫.”
짧게 두어 번 웃어 보인 아놀드는 아벨을 자리에 앉힌 뒤에 상단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온 일곱 명의 사람들에게 비어있는 집을 내어주도록 했다.
“그나저나 저 사람들을 다시 데려온 걸 보아하니, 에드윈 백작령의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로군.”
“참혹하더군.”
아벨은 쓰디 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참혹한 광경은 뇌리에서 쉬이 잊혀지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이번에 아벨과 함께 갔던 일곱 명의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었다. 분명 모르긴 몰라도, 빠른 시일 내로 에드윈 백작령의 참혹한 광경이 하멜른 전역에 퍼지게 될 것이다.
“잘 됐군.”
“뭐가 잘 됐다는 말인가?”
순간 아벨의 언성이 높아졌다.
설마하니 아놀드가 이리 말할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하게. 그런 뜻이 아니었네.”
“그런 뜻이 아니었다니?”
이러한 그의 물음에 아놀드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은 뒤에 입을 열었다.
“에드윈 백작령의 상황은 무척이나 안타깝긴 하지만, 그 덕분에 주군의 입장은 더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원래 행복이란 것은 상대적인 것이야. 상대방이 불행해지면 그만큼 자신은 행복해지지. 남의 불행을 지켜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야.”
“악취미로군.”
“하지만 그게 또 사람의 본질이지.”
아놀드의 짓궂은 말에 아벨은 저도 모르게 똥 씹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 한 명이 이 둘의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상인이면서 제법 철학적인 말을 하는군. 아놀드, 어떤가? 지금이라도 철학자로 직업을 바꿔보는 것은?”
아자젤은 그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에 들려있는 포도주를 흔들어 보았다. 이에 아놀드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흥미롭군요. 하지만 이게 어쩐 일인지, 포도주가 더 끌리는군요! 저게 과연 얼마짜리일까 하고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아놀드의 태도에 아자젤은 자리에 앉으며 킬킬대며 웃었다. 그리고는 잔을 가져와 아벨의 앞에 포도주를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하멜른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아벨.”
============================ 작품 후기 ============================
아벨까지 돌아왔습니다.
랄프 산맥 정리 인원이 모두 모였군요.
나데스 님 : 이러지 마세요. 전 순결을 잃은 몸입니다. 맛 없어요.
프란딜 님 : 부하의 공적을 빼앗는 게, 나쁜 놈이죠. 근데 루이 입장에선 딱히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되는 입장이 아니라서, 극악하게 나갈 필요가 없는거죠.
리눅 님 : 넵.ㅎ
레디다 님 : 회귀 이전에도 커플이었으니, 회귀 이후에도 커플 시켜줘야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