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68화 (68/158)

0068 / 0158 ----------------------------------------------

[여름날]

하멜른의 아침은 이르게 찾아온다.

테일 백작가의 영애, 에이나는 이른 아침서부터 들려온 소란스런 소리에 눈을 떴다.

천천히, 고개를 든 그녀는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특히나 상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장사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살짝 고개를 돌려, 고아원 쪽을 바라보니 어린 아이들과 어린 오크 그리고 엘프들이 함께 어울려서 바깥 우물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잠시 탄성을 내뱉던 에이나는 그대로 방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복도로 나오자, 한 엘프가 그녀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에이나는 조금 놀라긴 했으나, 금세 환하게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어젯밤 루이가 큰 잔치를 열어준 덕분에 에이나는 쉽게 하멜른에 적응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웠다. 엘프를 마주보기도 힘들었고, 땍땍 거리는 드워프의 말소리를 듣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고 해가 완전히 저물자, 이따금씩 이들이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생김새가 조금씩 다를 뿐, 이들 모두 자신과 같았다. 에이나는 한순간 시야가 환하게 밝혀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게 바로 바깥세상이구나.

나는 이제까지 새장 속에 갇혀있었던 거구나.

그녀에게 있어서 하멜른은 도시, 이상이었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 곳이구나!’

해맑게 웃음을 터트린 에이나는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자신의 약혼자, 루이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아!”

그런데 그 때, 에이나는 복도에서 한 명의 어린 소녀와 마주쳤다.

루이보다 한두 살 정도 어려보이는 소녀는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에이나를 바라보더니 곧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그 모습에 에이나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건가 싶어서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저기…….”

“죄, 죄송합니다.”

에이나가 말을 걸기가 무섭게 소녀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서둘러 뛰어갔다.

‘왜 저러는 거지?’

에이나는 소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 한 채 고개만 갸웃거렸다. 반면에 사과와 함께 뛰어간 어린 소녀, 데이지는 눈물만 훌쩍이며 마음 아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전부터 마음 속 깊이 루이를 연모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약혼녀라는 여성이 영지로 찾아왔으니, 아무리 괜찮은 척 해도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에이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이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그녀는 새로운 소녀와 마주쳤다. 루이와 동갑내기로 보이는 소녀는 무서운 눈초리로 에이나를 쏘아보더니, 곧 흥! 소리와 함께 쌩하니 지나쳐갔다.

‘뭐, 뭐야?’

그 태도에 에이나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하멜른의 영주인 루이의 약혼녀였다.

이렇게 대놓고 무시당할 신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에이나는 자신에게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쌩하니 지나쳐가는 소녀를 쫓아가 입을 열었다.

“이봐요!”

이러한 에이나의 부름에 소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뭐?”

멈춰선 소녀, 오필리아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오만한 태도에 에이나는 기가 막히다 못 해, 자신이 아직도 잠에서 덜 깬 건 아닌가 싶었다. 이에 에이나는 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모르세요?”

이 물음에 오필리아는 으득으득 이를 갈며 에이나를 쏘아보았다.

“굴러온 돌.”

“네?”

“굴러온 돌 주제에 박힌 돌 빼지 말란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설마……!”

오필리아의 말에 에이나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설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녀가 루이의 애첩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충분히 자신을 적대할만한 자격이 있었다. 이에 에이나는 잠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전 루이 님을 빼앗을 생각이 없어요.”

“웃기지마! 그 커다란 가슴으로 왕자님을 유혹한 거잖아!”

이리 소리치며 에이나의 커다란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오필리아의 태도에 에이나는 저도 모르게 양 볼을 붉히고 말았다.

“이, 이봐요!”

“그런 상스러운 가슴에 루이 님이 혹할 것 같아? 절대로! 루이 님은 너처럼 쓸데없이 가슴만 큰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정도가 넘어가는 오필리아의 말에 에이나는 울컥, 화가 치솟는 걸 느꼈다.

“하아? 그러는 그쪽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안 되는 가슴을 가지고 있네요! 너무나도 빈약해서 몸도, 마음도, 가슴도 전부 다 빈약해 보이네요.”

“돼지같이 뒤룩뒤룩 살찐 주제에 어디서 유세야! 역시 가슴이 크면 멍청하다는 건, 지고의 불변이네.”

“그러는 그쪽은 몇 달은 못 먹은 아이처럼 앙살 말라있네요. 제대로 아이나 낳을 수 있을지 의문인데요?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시죠?”

순간 에이나와 오필리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돼지!”

“절벽!”

“늙은 여자!”

“빨래판!”

거의 악을 지르다시피 상대방을 쏘아보는데, 돌연 한 명의 여성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머나, 이건 무슨 일인가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엘프 여성이 서있었다.

엘프 여성, 아만다는 오필리아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오필리아, 에이나 님에게 무슨 무례를 저지르고 계신 거죠?”

“아, 아만다……. 이건, 그러니까…….”

“오필리아?”

이리 말하며 오필리아의 귓가 쪽으로 입술을 가져다대는 아만다의 행동에 오필리아는 급기야 눈물을 찔끔 흘리며 크게 소리쳤다.

“두고 보자!”

그 말과 동시에 오필리아는 아만다의 양 손을 뿌리친 뒤에 도망치듯이 뛰어가 버렸다. 그 광경에 에이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아만다의 모습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에이나 님, 이런 아침부터 어쩐 일이신가요?”

이러한 아만다의 물음에 에이나는 방금 전의 추태를 떠올리고는 양 볼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이나는 크흠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냥 좀……. 말다툼을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방금 그 소녀는…….”

“영주님의 가신입니다.”

“네? 애첩이 아니고요?”

“무슨 오해를 하고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영주님이 특별히 아끼시는 애첩은 없습니다.”

아만다는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에 에이나는 여러 가지 의미로 안도했다가 이내 방금 전, 마주쳤던 소녀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애첩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날 싫어했던 거지? 혹시……. 루이님을 연모하고 있는 걸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리가 있었다.

살며시 한숨을 폭 내쉰 에이나는 아만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다시금 루이의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루이의 침실에 도착한 에이나는 방 문을 손등으로 두 번 두드렸다.

“누구냐?”

그러자 방 문 너머도 루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에이나는 재빨리 입을 열어 말했다.

“에이나입니다, 루이 님.”

“아아, 에이나인가? 들어와라.”

이렇듯 루이의 허락이 들려오자, 에이나는 재빨리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에이나의 눈에 루이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견인족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저…….”

그 광경에 에이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루이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있는 견인족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못 봤겠군. 인사해라. 견인족 마을에서 데려온 소녀다. 이름은 세람이다.”

이렇듯 루이가 견인족 소녀, 세람을 소개하자 무릎을 베고 있던 세람이 고개를 치켜든 뒤에 에이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곧 세람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에이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멍!”

세람의 울음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이제 곧 내가 사랑했던 아내가 완결날 것 같습니다.

매실농축액2 님 : 제 비장의 카드입니다. 후후

나데스 님 :헉! 그러시면 안 됩니다!

수없는씨박 님 : 네, 후작입니다.

향향공주 님 : 엌ㅋㅋ

으뜸볍신처리하기2  님 : 오, 그거 괜찮네요.ㅋㅋ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