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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에이나는 서러운 마음에 루이에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루이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웃기만 했다. 루이가 듣기에 에이나의 말들은 그저 어린 아이의 투정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필리아가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루이가 터울 없이 대해준다고는 하지만 에이나는 엄연히 귀족이었고, 오필리아는 평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에이나는 자신의 약혼녀이기도 했다.
그런 이상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오필리아가 잘 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루이는 좋은 말로 에이나를 달려주며 입을 열었다.
“오필리아는 내가 따로 불러내어 혼을 낼 테니, 영애는 이만 마음을 푸는 게 어떻겠소?”
“영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에이나도 더 이상 떼를 부리지 않았다. 이에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루이는 에이나에게 보답할 겸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가롭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카샨입니다.”
“들어와라.”
루이의 허락이 떨어지자,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가 돋보이는 엘프 남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방 안의 풍경이 한층 더 빛을 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오크 무리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크가? 어째서?”
루이는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오크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여름이라고 하면 가을에 버금갈 정도로 먹을 것이 풍부한 시기였다. 초겨울이라면 모를까 오크들이 하멜른으로 공격해 올 이유가 하등 없었다.
“보복인 것 같습니다. 혹은 저번의 원정에 실패한 것으로 얕보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흠…….”
카샨의 말에 루이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고 말았다. 만약에 카샤의 말이 사실이라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보복도 나름대로 큰일이긴 했지만 얕보이고 있다는 건 더더욱 큰일이었다.
더욱이 하멜른은 한참 확장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와중에 오크들에게 얕보여서 수시로 공격을 받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계획이 늦춰질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전투는 반드시 이겨야겠군.”
“철저히 짓밟으셔야 합니다.”
카샨이 강하게 말하고 나서자, 루이의 얼굴에 수긍의 빛이 떠올랐다.
실제로 카샨의 말대로 오크를 확실하게 짓밟아야만 되었다. 두 번 다신 하멜른을 노릴 수 없도록 말이다.
최소한 여름 가을 동안만큼은 말이다.
“아벨은?”
“이미 성벽에서 영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가도록 하지.”
이리 말한 루이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에이나를 발견하곤 점잖게 말을 이었다.
“……영애는 마저 식사를 하고 계시오.”
이 말과 동시에 루이는 곧장 고개를 돌려 카샨과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어찌 보면 굉장히 매정하게 보일 법도 했지만, 에이나는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이의 약혼녀가 된 순간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더욱이 이곳은 랄프 산맥이었다. 언제 어느 때, 몬스터들의 침공으로 죽는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에이나는 루이가 박차고 나간 문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자신의 약혼자, 루이가 무사히 오크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말이다.
한편 카샨과 함께 영주관을 벗어난 루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성벽 위로 올라가 아벨과 만났다.
“오셨습니까, 영주님?”
아벨은 간단히 경례하는 것으로 루이를 맞이했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치러지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일단은 엄중한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루이는 가볍게 손짓하는 것으로 아벨의 경례를 받았다.
“적은 얼마나 되지?”
“삼백입니다. 하지만 주변 오크들이 계속해서 합류하고 있으니, 하멜른에 도착할 때쯤에는 오백에 달할 겁니다.”
“많군.”
“하지만 이겨내야 합니다.”
그 말대로였다. 여기서 지거나 무승부에 가까운 전투 결과를 만들어낼 시에 하멜른은 무수히 많은 오크들의 침공을 그대로 받아야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오크들이 감히 하멜른을 먼저 공격해오지 못 할 정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루이는 그런 승리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이길 수 있다.”
현재 루이의 곁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던가?
바로 아벨이다.
귀신같은 활솜씨로 몇 번이고 이름 높은 기사를 고꾸라트렸던 사신이었다. 물론 오크의 지휘체계는 인간의 지휘체계와 판이하게 달라서 따로 정해진 지휘자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오크 족장이 있었다.
물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벨이라면 충분히 녀석을 찾아내어 미간에 화살을 꽂아 넣을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영주님의 말씀대로 이길 겁니다.”
“저번의 불명예를 씻을 기회입니다.”
카샨과 아벨, 두 사람 모두 전의를 불태웠다. 오늘따라 두 사람의 의욕이 높아보였다.
좋은 모습이었다. 루이는 차분히 전장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아만다가 엘프들을 이끌고서 나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아만다가 이끄는 엘프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분명 매복이었다. 몇 번을 봐도 실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엘프의 매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하튼 루이는 엘프들의 매복에서 시선을 거두어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지축을 뒤흔드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사뭇 위협적이었다. 인간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되는 체중을 가진 오크 오백 마리가 내는 발소리다웠다.
“취이이익!”
오크들은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하멜른의 나무 성벽 쪽으로 달려들었다.
분명 하멜른 내에 거주하고 있을 인간들을 먹어치울 생각으로 흥분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면 교미를 위해서 흥분했다거나 말이다. 일단 오크들 입장에서 인간 암컷은 실로 훌륭한 번식 도구였으니 말이다.
“사격 준비!”
루이가 큰 소리로 호령하자, 병사들이 재빨리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더불어 나무 성벽을 향해 달려드는 오크들의 발걸음이 보다 빨라졌다. 곧 화살 공격이 올 거라는 것을 안다는 듯이 말이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저 중 오크 일백 마리가 동시에 나무 성벽에 타격을 준다면 제 아무리 단단한 나무 성벽이라고 할지라도 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칫 잘 못 했다간 충격을 견디지 못 한 나무 성벽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누가 오크들을 지휘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녀석들은 인간을 상대해보는 게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그랬지.’
생각해보면 저번 원정 때, 오크들에게 공격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녀석들은 지나치게 영리했다. 오크답지 않게 말이다.
처음에는 랄프 산맥에 사는 오크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았다.
아침서부터 공격해오는 것이나, 오크의 장점을 살려 달려드는 것이나, 무엇하나 오크답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오크는 오크.’
루이는 녀석들이 사거리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선 것을 확인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사격 개시!”
호령에 맞춰, 일백에 달하는 화살들이 오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회귀 이전에 보았던 하늘을 덮는 새까만 화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이것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더욱이 일백에 달하는 화살 중에는 엘프가 쏜 화살도 있었다.
그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취이이익!”
“취익! 췻!”
소나기처럼 쏟아진 화살들이 선두를 달리고 있던 오크들의 몸을 꿰뚫었다. 녀석들은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고, 뒤쫓던 오크들은 화살을 헤치며 쓰러진 오크를 밟고서 전진해왔다.
그 광경이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루이는 멈추지 않고 거듭 화살을 쏘게 했다. 그리고 적당한 때, 매복해있던 엘프들 또한 화살을 쏘며 호응을 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용감히 달려들던 오크들도 적잖게 당황한 듯이 주춤주춤 거리고 말았다.
“크워어어어!”
그걸 본 오크 족장이 크게 소리치며 오크들을 다그쳤다. 자신이 나설 차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녀석이 크게 소리치며 다그친 덕분에 잠시 주춤했던 오크들이 나무 성벽을 향해 달려는 동시에 매복해있던 엘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루이가 노리던 바였다.
“아벨!”
루이가 크게 소리치자, 아벨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서 팽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오크들을 다그치고 있는 오크 족장을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이 때, 오크 족장이 무언가 느낀 모양인지 아벨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녀석은 여기까지 화살이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렸다.
‘익숙하군.’
무척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저 비웃음은 루이, 자신을 비롯한 여러 기사들이 지었던 것이었다.
결코 맞을 리가 없다면서 말이다.
쌔애애애액!
“……!”
그리고 그 자만의 대가는 확실했다.
아벨이 쏜 화살은 빠르게 쏘아져나가 오크 족장의 머리통을 정확히 꿰뚫었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광경인 동시에 너무나도 든든했다.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렸다.
‘낙승이군.’
이런 루이의 생각대로 오크 족장을 잃은 오크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용감히 나무 성벽을 향해 달려들던 오크가 맞는지 의심될 지경이었다. 이를 본 루이는 오크들이 성벽에 접근하지 못 하도록 화살을 계속해서 퍼붓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녀석들이 도망칠 기미를 보이자, 루이는 성벽을 열고서 오크들을 추격했다. 아예 이 자리에서 전부 다 쓸어버릴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이 날 살아서 돌아간 오크의 숫자는 채 수십도 되지 않았다.
루이가 원하던 압도적인 승리를 손에 거머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너무 오랜만에 왔죠? 헤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8연참!
으악으아악 님 : 흐엉, 흐엉! 죄송합니다!ㅋㅋ
도즈 님 :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매실농축액2 님 : 근친은 잘립니다. 이미 한번 당해봤어요.ㅋㅋ
北斗神拳 님 : 멍뭉이 귀엽죠.ㅋㅋ
향향공주 님 : 엌ㅋㅋ 약혼녀 포스
누굴지? 님 : 엌ㅋ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