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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오크를 상대로 대승리를 거두자, 원정의 실패로 침체되었던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다시금 원정대를 꾸려서 오크들을 아주 싹 쓸어버리자며 목소리를 높일 정도였다.
하지만 루이는 성급하게 나서지 않았다.
비록 이번 전투로 오백에 달하는 오크를 한꺼번에 몰살시켰다고는 하지만 랄프 산맥 내에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오크들이 숨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오크뿐만이 아니었다.
작게는 고블린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오우거까지도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루이는 승리에 들뜨기보다는 몸을 추스르며 기회를 엿보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하멜른의 확장이다.’
현재 하멜른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나 아놀드가 제안했던 계획, 즉 상단의 견습생들로 하여금 화전민들을 끌어들이자는 계획이 큰 효과를 발휘하면서 하멜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현재 드워프 램지가 전담하고 있는 성벽 확장 계획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루이는 매일 같이 공사 현장으로 나가서 인부들을 격려해주고, 성과에 따라서 특별 보수를 주기도 했다.
물론 아놀드가 아직 돌아오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과도한 금전 지출은 금물이었지만, 루이는 이런 일로 생색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더욱이 이번 겨울이 지나고 나면 혹독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돈을 아꼈다가 올해 안에 성벽을 완성시키지 못 한다면 돈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루이는 되도록 아낌없이 투자했다. 덕분에 인부들은 루이의 격려를 받으며 보다 빠르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째가 되던 날, 아자젤이 관리하고 있는 마을과 하멜른이 서로 맞닿았다.
좀 더 정확히는 간이 성벽이 그곳까지 이어진 것이진 것이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 날, 루이는 램지와 함께 아자젤이 관리하고 있는 마을을 방문해서 오랜만에 해후를 나누었다.
“주군, 오셨습니까? 자, 어서 안쪽으로 드시지요.”
아자젤은 언제나 그랬듯이 멋들어진 미소를 지어보이며 루이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램지는 그 미소를 보고 재수 없다고 했지만, 루이는 그저 기분이 좋기만 했다. 일단 루이에게 있어서 아자젤은 아벨과 마찬가지로 매우 유능한 가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별일 없었는가? 오크가 몇 번 침범해왔었다고 들었는데?”
“주군의 말씀대로 오크 십여 마리가 마을에 침범해왔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별다른 무리 없이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근래 들어서는 아주 잠잠합니다.”
“녀석들이 여기서 눈길을 뗀 모양이로군.”
확실히 그 말대로 근 한 달 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오크들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램지가 맥주를 꿀꺽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헹! 그 놈들이 눈길을 떼? 그 탐욕스런 놈들이 잘도 눈길을 떼겠군.”
이러한 램지의 말에 루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그럼 아니라는 말인가?”
“당연하지! 아마도 그 놈들 바득바득 어금니를 갈고 있겠지. 그리고 조만간 또 한바탕 치르러 올걸?”
“흠……. 뭔가 방법은 없는가?”
“방법? 방법이랄 게 뭐 있어? 그냥 때려 부숴버려!”
제법 시원스런 램지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오백에 달하는 오크들을 한 번에 격파한 전적이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나 오크들의 교묘한 움직임은 여전히 루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던 루이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아자젤.”
“네, 주군.”
“램지를 도와서 성벽을 완성시키는데 주력해라. 나는 그 동안 오크들을 어찌 할지 강구해보겠다.”
“맡게 주십시오, 주군!”
이처럼 아자젤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 루이는 그 날로 하멜른으로 돌아갔다.
그 후, 루이는 곧장 카샨을 찾아갔다. 오랜 세월 살아온 카샨이라면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샨 또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모양인지, 그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오크는 확실히 집요한 종족입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모든 것을 즉흥적으로 합니다. 즉, 계획이란 게 없는 놈들이란 겁니다. 그러니 녀석들이 어떠한 날을 잡고서 하멜른으로 쳐들어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분명 저번처럼 주변 오크들을 긁어모으며 쳐들어오겠지요.”
카샨의 이야기를 들은 루이는 납득하며 영주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때문에 루이는 이러한 찝찝한 마음을 거두고자, 때때로 에이나를 불러내어 함께 정원을 돌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던 날, 카샤의 가루를 팔러 수도에 갔던 아놀드가 돌아왔다. 이에 루이는 직접 마중 나가서 아놀드를 반겨주었다. 그러자 그는 황송하기 그지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루이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는 곧 이번 성과를 루이에게 보여주었다.
“굉장하군.”
이번 성과를 확인한 순간, 루이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무려 열 대에 달하는 마차에 담긴 금화가 황금빛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추 금화의 개수만 세어보아도 십만은 넘어보였다. 루이는 눈앞이 어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마차를 살펴보았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하니 카샤의 가루가 이 정도로 날개 돋친 듯이 팔릴 줄은……. 덕분에 꽤나 행복한 고민들을 했습니다.”
하하, 웃는 아놀드의 모습이 마치 10대 소년처럼 보였다. 그만큼 상인으로서 행복하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첫째가 돈이었고, 둘째가 신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돈과 신용 두 개 다 챙긴 상태이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물론 세 번째, 자기 가게를 차려야 된다는 목표가 남아있긴 했지만……. 아놀드는 이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고 있지 않는 듯이 싶었다.
어차피 하멜른 전체가 아놀드의 가게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아놀드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루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그 동안 수고한 아놀드의 노고를 치하해주기 위해서 작은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루이는 오크의 침공을 이야기했다.
“오크 오백이라……. 하지만 주군께선 녀석들을 압도하지 않으셨습니까?”
“맞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하구나. 오크들이 뭔가 다른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러한 루이의 말에 아놀드는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카샤의 가루를 팔기 위해서 수도에 머무는 동안 한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지?”
“랄프 산맥 내에 다크 엘프가 무리지어 살고 있다는 겁니다.”
“다크 엘프가?”
이건 꽤나 놀랄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크 엘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종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허구의 종족이란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었다.
엘프가 타락해서 만들어진 존재, 다크 엘프.
이 얼마나 흥미로운 소재라는 말인가? 더욱이 엘프의 성정과는 정반대라서 살인을 좋아하고, 어둠 속에 산다고 알려진 신비로운 종족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단 한 번도 사람의 눈에 띈 적이 없는 종족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드래곤보다도 희귀한 종족이라고 불릴 지경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레베카에게 물어봤는데, 자기는 그런 종족을 모른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없는 종족이 아닌가?”
“아닙니다. 제가 계속 추궁해 보니, 카샨이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루이는 자그맣게 탄성을 터트렸다. 만약에 정말로 다크 엘프가 랄프 산맥에 존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인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크 엘프가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는 암살자라면 말이다.
여하튼 루이는 당장 이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카샨을 찾아갔다. 이에 아놀드는 허허 웃으며 ‘역시 영주님께선 젊으시구먼.’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멀리서 아만다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던 레베카가 슬쩍 눈을 반짝였다.
마치 ‘당신도 젊잖아?’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눈빛 때문에 그런지, 이 날 밤 아놀드의 숙소에서 남녀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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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