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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오크 요새를 점령하고 나자 그 뒤로는 편해졌다.
더 이상 오크들이 습격해오지도 않았고, 이전처럼 견고한 요새가 원정대의 앞을 가로막는 것도 아니었다.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것만 같았다.
루이는 이것이 혹시 오크의 노림수는 아닐까 걱정되어서 경계 병력을 평소보다 더 늘려서 배치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되도록 오크는커녕 다른 어떤 몬스터들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루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샨의 말에 따르면 원정대는 착실하게 다크 엘프와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예정대로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루이는 더 이상 두려워하기보다는 이것을 호기라 생각했다.
여하튼 원정대가 하멜른을 떠난 지 한 달이 되던 날, 루이는 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목이 시렸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눈을 뜬 순간, 루이는 자신의 목에 단검에 겨누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암살자였다.
대체 언제 들어온 걸까? 루이는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자신의 목에 단검을 겨눈 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망막이 어둠에 익숙해지며 주변 사물을 뚜렷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어둠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한 명의 여성이었다.
그것도 매우 수려한 이목구비를 지닌 은발의 미녀였다. 하지만 가무잡잡한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잠깐.’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루이는 상대방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곧 엘프와 같은 뾰족한 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지금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자는 루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다크 엘프였던 것이다.
루이는 다시금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다크 엘프인가?”
루이의 물음에 여성의 눈동자에 이채가 그려졌다.
“알고 찾아왔다는 건가? 그렇군. 엘프들이 협조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내 목적은 그대들을 얻는 것이다.”
루이는 겁도 없이 손을 뻗어 엘프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그러자 열한 살 소년의 조그마한 손이 엘프의 가느다란 손목을 덮었다. 여성은 잠시 멍청하니 루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단검을 좀 더 바짝 소년의 목에 데며 속삭이듯 물어보았다.
“넌 내가 무섭지 않은가?”
피가 배어나오자, 목이 따끔거려왔다. 그러나 루이는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무섭지.”
“거짓말. 너는 날 무서워하고 있지 않구나.”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는 거지?”
“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어째서지?”
다크 엘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루이는 눈꺼풀을 잠시 내렸다가 이윽고 들었다.
“아니, 나는 충분히 두려워하고 있다. 죽음이 두렵기에 그대들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 온 것이다.”
“거짓말. 너는 다른 걸 원하고 있어.”
루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다크 엘프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빛을 머금었다.
루이는 현재 상황을 잊고, 그만 그것에 푹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천천히 말문을 떼었다.
“난 왕국을 원한다.”
“어째서지?”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는 어째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다시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루이는 잠시 다크 엘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되는 걸까? 사실 이제까지 대화를 나눈 것을 돌이켜 보았을 때, 다크 엘프는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알 게 된 이상 거짓말은 무의미했다.
“난 이미 죽음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넌 되살아난 것인가?”
“아니, 돌아온 것이다.”
다크 엘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동시에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다크 엘프는 손에 힘을 풀더니, 루이의 목에 데었던 검을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루이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묻었다.
그 후, 크게 숨을 들이켰다.
“죽음이 느껴져.”
“죽음이 느껴진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네 곁에 죽음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분명히 세상은 피로 물들겠지. 모두가 소리 지를 거다. 고통에 찬 비명소리! 그래, 너는 우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냐?”
다크 엘프는 서슬 퍼렇게 웃으며 물었다.
“얼마나 죽이고 싶은 거지?”
“전부!”
그 모습이 놀랍도록 그로테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부?”
“그래, 전부 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그래서 나는 우리를 이끌어줄 존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죽음의 향기를 뿜어내는 자. 그런 면에서 너는 충분해. 너는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풍기고 있어. 또한 본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그래서?”
어느샌가 질문과 대답을 하는 입장이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루이도 다크 엘프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서로를 응시하며 질문과 대답을 번갈아하고 있었다.
“보고 싶다.”
“뭘?”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
“그런 다음은?”
“널 죽이고 싶다.”
그 말에 루이는 살짝 코웃음을 쳤다.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이로군.”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거지?”
다크 엘프의 물음에 루이는 자신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다크 엘프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널 먼저 죽일 테니까.”
“아아…….”
그녀는 쾌락에 가득 찬 신음성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이윽고 몇 번이고 숨을 헐떡이다가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루이의 양 손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
“우리를 이끌어줘.”
다크 엘프는 사랑에 푹 빠진 소녀처럼 루이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속삭임에 루이는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너희를 이끌어주지.”
이렇듯 루이의 허락이 떨어지자, 다크 엘프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루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목, 다음은 심장 이윽고 배꼽에 다다른 다크 엘프는 자신의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오르가. 그대의 그림자가 되겠다.”
이리 말한 다크 엘프는 정말로 루이의 그림자가 된 것처럼 스르륵 몸을 감추었다.
“놀랍군.”
루이는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지며 상념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가로저은 루이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자, 경계를 서느라 여념이 없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크 엘프의 침입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귀신같은 솜씨였다. 루이는 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해가 뜰 때까지 가볍게 검 연습을 했다. 그리고 이윽고 해가 완전히 뜨자, 루이는 아벨과 카샨을 불러 어젯밤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당연히 두 사람은 루이가 까닥 잘 못 했으면 암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가 괜찮다며 달래자 두 사람은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놀란 가슴을 가라앉힐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루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크 엘프는 정말로 그림자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카샨과 아벨이 루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돌연 카샨이 고개를 번뜩 치켜들었다.
“다크 엘프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루이는 곧장 카샨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자, 오르가를 위시한 열다섯 명의 다크 엘프들이 루이의 앞에 부복했다.
다크 엘프가 루이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다크 엘프 오르가! 흑설탕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