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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루시아의 생일이 가까워지자 루이는 잊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
직접 루시아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처럼 루이가 어린 누이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겠다며 뜻을 밝히자, 에이나가 루이를 직접 찾아가 함께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약혼녀로서 함께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동행을 허락했다.
그리고 이처럼 에이나의 동행이 확정되자, 오필리아가 이에 질세라 루이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그러나 루이는 오필리아가 이제 막 부대를 창설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이 오필리아에게 있어서, 특히 흑장미 부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오필리아도 잘 알고 있었기에 눈물을 머금고서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루이는 아벨과 견인족 소녀인 세람을 호위로 삼아 하폰의 수도, 팔칸으로 향했다.
여행길은 순조로웠다.
더위는 날이 갈수록 무더워졌지만,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데다가 강변을 끼고서 수도로 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히 덥다 싶으면 강에 발을 담그고서 쉬고는 했다.
특히 에이나가 이 시간을 좋아했다.
분명 성인이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된 탓인지 에이나는 안 그런 척 해도 발장구를 무척이나 즐겼다. 특히나 가끔씩 루이가 에이나의 새하얀 발을 주물러주기라도 하면,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곤 했다.
루이는 그런 영애를 짓궂게 놀리며 여행을 나름대로 즐겼다.
회귀 이전에는 성 안에만 틀어박히느라, 제대로 보지 못 했던 것을 또렷하게 새기는 것이었다. 물론 회귀 이전에 반란군들에게 쫓기느라고 세상 구경 한번 제대로 하기는 했었지만, 그 때는 도망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주범 중에 한 명이 바로 지금 루이의 곁에 서있는 아벨이었다.
당시 그가 어찌나 악독했던지, 아벨이란 이름을 들어도 입술을 벌벌 떨던 사람이 수천수만에 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오필리아에겐 안 됐지만.’
왜냐고 묻는다면 잔인함을 들 수 있었다.
아벨의 경우, 포로로 잡은 이들을 그나마 인간으로 대접해주었다. 먹을 것을 주고, 몸값을 지불하며 풀어주었다. 그러나 오필리아는 달랐다. 포로로 잡으면 팔 다리 중에 하나를 무조건 자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귀와 혀까지도 잘랐다.
심지어 그녀는 포로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밧줄로 묶은 뒤에 말로 하여금 일시에 내달리게 하여 찢어 죽이는 놀이를 즐겨했다.
즉, 당시 왕국군이 아벨이란 이름에 벌벌 떨었다면, 오필리아란 이름에는 기겁하며 오줌을 지렸다고 보면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운이 좋았군.’
만약에 오필리아에게 사로잡혔었다면 꽤나 모진 꼴을 당했었을 테니 말이다.
‘귀족놈들에게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둘 걸 그랬나?’
되도 않은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루이다.
사실 지금에 와서 이렇게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치가 떨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는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무려 3년 동안이나 반란군과 싸웠다.
무려 3년 동안.
그것도 직접 전장에 나가서 말이다.
그리고 그 긴 싸움 끝에 결국 이기지 못 할 것 같아 수도로 돌아왔더니, 귀족놈들이 루이에게 창칼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결국 루이는 반란군에게 패해서 지는 것이 아니라 귀족의 배신으로 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어찌나 억울하던지……. 지금도 가끔씩 울화가 치밀 때가 많았다.
“끼웅.”
그런데 그 때, 세람이 낼름 혀를 내밀어 루이의 손등을 핥았다.
루이가 화났다고 생각하고서 위로할 생각에서 핥는 모양이었다. 기특한 견인족 소녀였다. 루이는 천천히 화를 가라앉히며 세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귀족 부인네들이 탐낼만한 예쁜 황갈색의 꼬리가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렸다. 확실히 고급품이었다. 실제로 아놀드가 가끔씩 세람의 꼬리를 탐내는 걸 여러 번 봤으니 말이다.
분명 상인으로서 탐이 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람은 항상 아놀드만 보면 으르렁대고는 했다. 분명 본능일 것이 틀림없었다. 키득키득, 웃던 루이는 불현듯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에이나의 시선을 느꼈다.
“에이나, 그대도 탐이 나는가?”
이러한 루이의 물음에 에이나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람의 꼬리가 탐나는 게 아니더냐?”
그 물음과 동시에 세람의 호박색 눈동자가 에이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냐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시선에 에이나는 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왕자님. 그런 뜻에서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이더냐?”
이 물음에 에이나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사실대로 말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에이나가 루이를 한동안 넋을 빼고서 쳐다본 건, 루이가 세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듯이 자신의 머리 또한 쓰다듬어주었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에이나는 이도저도 못한 채 우물쭈물 대다가 이윽고 한 가지 궁색한 꾀를 내어 대답했다.
“저도 견인족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 말에 루이는 조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람과 친하지 않은 줄 알았더니, 친해지고 싶었던 모양이로구나.”
허허, 웃은 루이는 에이나에게 세람을 보냈다. 이에 세람이 싫다며 저항했지만 루이가 엄하게 어서 가라고 하자, 결국 낑낑 소리를 내며 에이나의 무릎 위에 제 머리를 올려놓았다. 동시에 세람의 호박색 눈동자에 언짢은 기색이 떠올랐다.
마치 그 시선이 ‘너 때문에 주인님한테 쫓겨났잖아!’라면서 책망하는 듯했다. 더불어 ‘제대로 못 쓰다듬기만 해봐!’라고 협박하는 듯했다. 실제로 세람은 루이 몰래 에이나에게 자신의 멋들어진 어금니를 보여주고 있었다.
명백한 무력 시위였다.
이에 에이나의 표정이 해쓱해졌지만, 이내 그녀는 용기를 내어 세람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상급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느껴졌다. 정녕 이게 머리카락인가 싶을 정도였다.
에이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세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일순 세람의 표정에 ‘오호, 이거 제법인데?’라는 감탄사가 떠올랐다.
“우웅.”
심지어 꽤 기분 좋은 소리까지 내었다.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 에이나였다. 실제로 세람은 하폰의 수도, 팔칸으로 향하는 동안 몇 번이고 에이나를 제 발로 찾아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 희망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에이나와 세람은 생각 이상으로 친밀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예상지도 못 하게 좋은 관계를 쌓게 만든 루이는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하멜른을 떠난 지 보름이 되던 날, 하폰의 수도 팔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루이가 팔칸에 도착한 것은 해질녘이었는데, 시내의 혼잡도는 평소 이상으로 대단했다. 만약 루이의 마차에 왕실 문양이 찍혀있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시내의 번잡함에 꽉 막혀 한 밤 중에야 왕성에 도착할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왕실 문양이 찍혀있었기에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주어 비교적 수월하게 길을 지날 수 있었다.
“여기가 수도로군요.”
에이나는 신기하단 듯이 마차 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테일 백작령, 그것도 성에서만 살던 영애에게는 수도의 풍경은 다소 자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팔칸의 곳곳에선 작은 축제가 연일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얼마 있지 않으면 루시아의 생일이기도 했다.
물론 루시아도 루이와 마찬가지로 딱히 이렇다 할 외척이 없었기 때문에 매년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 했지만, 올해부터는 달랐다. 왜냐면 루이가 성공한 왕족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카샤의 가루로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그것의 파급력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기에……. 특히 귀족 부인들에게 있어선 절대적이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옛말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고, 그 남자를 여자가 지배한다고 말이다.
“구경하고 싶으냐?”
“하오나 왕성에서 공주께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괜찮다. 내 약혼녀를 위해서 자그마한 시간 정도는 기꺼이 낼 수 있다.”
이러한 루이의 말에 에이나는 황송해하면서도 크게 기뻐했다.
사실 세상 그 어느 여자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려 약혼자가 자신을 위해서 이런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것이었다. 에이나는 호의를 달갑게 받으며 팔칸을 구경했다.
팔칸 여기저기에는 루시아를 형상화한 지푸라기 인형과 나무 조각상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큰길은 물론이고 좁은 골목길까지 악대와 어릿광대가 구경꾼들을 거느린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슬쩍 마차의 창문을 열자, 거리의 열기가 확 와닿았다. 더욱이 아름다운 달빛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음유시인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물론 이때다 싶어 모여든 설법자들도 있었다.
루이는 마부로 하여금 자신이 잘 아는 거리를 크게 돌도록 했다. 그리고 그 거리를 에이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때, 세람도 끼어들어 루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직 어린 견인족인 만큼 호기심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아벨도 호위에 집중하면서도 루이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그 또한 아무래도 시골 출신인 만큼 수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꽤나 색다른 조합의 청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루이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거리의 유래와 얽힌 설화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이윽고 이야기를 끝마친 루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던 세 명의 남녀를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서둘러 왕성으로 들어가야겠구나.”
이 말에 세 남녀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긴 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이 루시아 공주의 생일 축하인 만큼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표정을 고쳤다. 그리고 그 모습에 루이는 내심 웃음을 삼켰다.
에이나와 세람이라면 몰라도 아벨이 저런 표정을 지어보일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이처럼 마차를 몰아 왕성으로 들어서자, 루이는 곧장 루시아의 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루시아는 마치 루이가 이 시간에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중간에 깜짝 나타나 루이를 놀래켰다.
“오라버니!”
“루시아!”
자신의 품에 포옥 안기는 루시아의 자그마한 체구에 루이는 허허 웃으며 어린 누이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보게 된 어린 누이였다.
루이는 루시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춰주며 해후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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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준비한 8연참이 모두 끝났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