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84화 (8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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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낯익은 풍경이 루이의 눈앞에 그려졌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루이는 불현듯 자신의 몸이 커져있음을 깨달았다.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몸의 크기로 보건가 열여덟 살은 된 듯이 싶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루이는 손을 뻗어보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꿈인가.’

루이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슬쩍 옆으로 돌아보니, 병사들이 만면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신을 뒤따르고 있었다. 낯익은 기사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하나 같이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 거려왔다. 루이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꿈속이라 그런지, 그다지 상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천천히 숨을 토해낸 루이는 자신의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뭐가 그리도 신이 난 것인지, 간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연신 아부하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게 다 왕자님의 은덕으로…….”

저 사탕바림에 얼마나 속아 넘어갔던가?

루이는 속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간사한 귀족들의 목을 베어서 입을 다물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꿈이란 제약에 걸린 몸은 루이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찬 루이는 도로 시선을 돌렸다.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며 지금이 언제인지를 가늠해보았다.

‘젊구나. 그리고 생기가 넘친다.’

그제야 서서히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루이는 자신이 지금 어느 시절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하폰의 수도, 팔칸을 되찾을 때였다.

그렇다.

아슬롯이 죽고, 둘째 왕자 밀튼과 왕위를 다투던 셋째 왕자 휴안마저도 죽고……. 그리고 그 다음에 밀튼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뒤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루시아.’

밀튼의 목을 베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루시아가 반란을 일으켰다.

제 손으로 첫째 공주 엘리자베스와 둘째 공주 비비안 그리고 셋째 공주, 넷째 왕자마저 죽이고서 자신이 여왕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누이라는 말인가? 그 당시 나는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어린 누이의 어리석은 행태에 크게 분노한 상태였다.

‘……내 어린 누이가 죽는구나.’

루이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성탑 위에 올라 자신을 내려 보고 있는 루시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으로부터 7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일까? 16살 성인이 된 루시아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루이는 숨을 죽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금색 머리카락에 어디 한군데 빠지지 않는 몸매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미모까지. 그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어린 누이였다.

루이는 다시금 루시아의 외모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생각은 뚝 끊기고 말았다.

‘넌 어째서 자살을 선택한 것이더냐?’

비록 정쟁에서 패했다지만, 루시아는 아름다운 외모를 이용해 다른 왕국에 망명을 갈 수도 있었다. 비록 왕비는 되지 못 하겠지만, 첩의 자리를 꿰차서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루시아는 그리 하지 않았다.

정쟁에서 패한 루시아는 성탑 위에 올라가 루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루이가 보는 앞에서 마치 저주하듯이 성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너는.’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냐?

이리 묻고 싶건만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

그저 조용히 성탑 아래로 떨어지는 루시아의 모습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낙화하는 꽃과 같구나.

루이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깨어났다.

“영주님!”

루이가 눈을 뜬 순간, 가장 먼저 데이지가 소년을 반겼다. 루이는 화끈거리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에 엎드리고서 자고 있는 오필리아를 볼 수 있었다.

“……영주님, 괜찮으신가요?”

그 때, 데이지가 다시금 물었다. 이에 루이는 콜록, 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물을 다오.”

“네!”

이러한 루이의 말에 데이지는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달며 재빨리 물주전자와 물 잔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물을 한 잔 따라 루이에게 건네주었다. 이에 루이는 곧장 물 잔을 받아든 뒤에 꿀꺽꿀꺽 마셨다.

“후우.”

그제야 시야가 환하게 밝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어깨는 여전히 쓰라렸지만 말이다. 루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창밖이 온통 새까맣게 물들어있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한밤중인 모양이었다.

“다른 이들은? 아벨은? 아자젤은? 클라우드는? 오르가는?”

루이는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물어보았다. 괜히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루이의 말에 데이지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입을 열었다.

“모두 무사하세요. 다친 건, 영주님뿐이에요.”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그런데 오필리아는……?”

“저와 같이 영주님을 간호했어요. 나흘 동안 한숨도 안 자고 간호해서……. 사실 이것도 겨우 재운 거예요.”

그 말에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오필리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고개를 들어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 밑이 검게 물들어있는 데이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한숨도 안 자고서 자신을 간호한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뻗었다.

“데이지, 너도 안 잤구나.”

“네? 아, 저는…….”

“일단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구나.”

이리 말한 루이는 대뜸 손을 뻗어 데이지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

“여, 영주님?”

놀란 데이지가 두 눈을 깜빡이며 루이를 부르자, 이에 소년은 맑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녀를 자기 옆자리에 눕혔다. 그리고는 마치 저보다 훨씬 어린 아이를 다루듯이 데이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어디 한번 말해보거라. 내가 정신을 잃은 뒤에 어떻게 되었느냐?”

“네? 하, 하지만……. 저 일어나서…….”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어쩔 줄 몰라해하는 데이지다. 이에 루이는 오른손으로 데이지의 어깨를 꽉 눌러 일어나지 못 하도록 만들었다.

“일어나 있으면 잠들지 못 하지 않느냐? 이대로 누운 채로 이야기하다가 졸음이 몰려오거든 자거라. 지금은 그냥 간단하게 듣고 싶구나.”

이러한 루이의 말에 데이지는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나보려고 했지만, 루이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도저히 일어나지를 못 했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어 올린 데이지는 루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직후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벨이 정신을 잃은 영주님을 업고 왔습니다.”

그 말에 루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인물이 아벨과 아자젤이었으니 말이다.

“……난리가 났었습니다. 카샨이 직접 영주님을 치료하고, 오필리아는 전투도 미루고 간호를 자청했어요.”

“고생이었구나.”

데이지의 말을 들으니, 오필리아가 어떤 난리를 피웠을지 눈앞에 훤했다. 이에 루이는 슬쩍 웃으며 오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대로 소녀를 엎드려 자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데이지의 도움을 받아 오필리아를 조심조심 침대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제 옆에 눕힌 루이는 다시금 데이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크들이 물러나자, 몬스터들의 대부분이 물러났어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몬스터들이 하멜른을 공격하고 있어요.”

“얼마나 남았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밖에는…….”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지, 데이지는 말끝을 흐리며 양 볼을 붉게 물들였다. 자세히 알지 못 하는 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데이지의 오동통한 뺨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리고 데이지, 너도 날 간호하느라 고생했구나.”

“아, 아닙니다!”

“하하, 고맙구나.”

짧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데이지의 뺨을 마음껏 어루만지고는 이윽고 자신의 옆에서 새끈새끈 쥐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오필리아를 바라보았다.

‘오크 족장을 모조리 죽였으니, 당분간은 약세를 보이겠지.’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루이는 편히 누운 뒤에 좌우에 누워있는 데이지와 오필리아를 제 품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두 소녀가 루이의 품에 안기며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더불어 시큰한 어깨의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다음부턴 더 조심해야겠군.’

루이는 조용히 두 눈을 감으며 통증을 곱씹었다.

============================ 작품 후기 ============================

양 손의 꽃!

향향공주 님 : 아뇨, 하피는 등용 안 합니다.

halem 님 : 엌ㅋㅋ 다쳐서 문제긴 하죠

ppk12 님 : 아뇨, 안 합니다. (진지. 엄격)

트릭스타 님 : 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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