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86화 (8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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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힐렌 기사단의 단장이 루이에게 면담을 요청해왔다.

유스테스 백작이 뻔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에게 면담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 속셈이 뻔히 보였다. 그리고 그 속셈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순순히 기사단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토록 뻔뻔하게 나오니, 면상을 직접 보지 않고는 궁금해서 못 배겼기 때문이었다.

“힐렌 기사단을 이끄는 피터라고 합니다.”

묶어 올린 은색 단발과 검푸른 눈동자 그리고 갸름한 턱과 유려한 콧날을 가진 미소년 상이었다. 잘 생긴 아자젤과 나란히 세워둔다면 무수히 많은 영애들이 이 둘을 보기 위해 몰려들 것이 틀림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광경이 장관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이런 미소년이 기사단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의외로 실력자이거나 눈치 빠른 수완가일 확률이 다분했다.

“그래, 어찌하여 나를 만나자고 청한 것이냐?”

루이는 시치미를 뚝 떼며 물었다.

“영주님에게 혹여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미력하나마 찾아온 것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영주님과 함께 행동해도 괜찮겠습니까?”

한 마디로 공짜로 부려 먹혀 줄 테니, 잘 좀 봐달라는 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무료 봉사고, 나쁘게 말하면 눈도장이었다. 여기서 루이의 눈에 확 들여놓았다가 나중에 영지 기사단을 창설하려할 때, 우리를 잊지 말고 불러달란 것이었다.

기실 자유 기사단의 종착점은 이런 식으로 어느 영주나 국가의 부름을 받아 소속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모진 고생도 끝이었다. 일단 영지나 국가에 소속이 되면 더 이상 힘들게 일거리를 찾아 떠돌 필요도 없었고, 준 귀족으로 행세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루이는 모든 자유 기사단이 노리는 꿈의 영지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번에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을 막아내면서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간 상태였다.

자금도 풍족하고,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도 손쉽게 막아낼 수 있다.

잘 차려진 밥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기회를 힐렌 기사단의 단주 피터가 놓칠 리가 없었다.

“그대는 내가 어디로 갈 줄 알고 그리 묻는 것이냐?”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영주님과 만난 것도 모두 다 아단트 여신님의 은덕이니, 그 은덕에 따르고자 할 뿐입니다.”

말은 청산유수였다.

루이는 꽤나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싫다 하면?”

“포기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쓰신다고 하신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오만인가?”

“겸손입니다.”

피터는 슬쩍 웃어보였다. 그 미소가 아자젤과 무척이나 닮아보였다.

루이는 가만 보면 볼수록 피터를 아자젤과 딱 붙여놓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루이가 힐렌 기사단을 데리고 다닌다고 해서 딱히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따로 급료를 챙겨 줄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식량을 나누어주어야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전쟁을 수행하면 될 뿐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돈이 따로 들지 않는 용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여기서 손해라고 꼽아서 말해보라고 한다면, 추후 루이가 기사단을 만들 때 힐렌 기사단을 부르지 않는다면 나중에 귀가 간지럽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여기서 더 심해지면 힐렌 기사단이 루이를 욕하는 게, 악의적인 소문이 되어 세간이 퍼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 체면에 민감한 자라면 어떻게든 그 소문이 나지 않도록 돈을 주던지 기사단으로 들이든지 할 것이다. 실제로 피터 또한 그리 생각하고서 루이에게 이리 제안한 것일 테고 말이다.

“이 건은 거절하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고양이의 손을 빌릴 정도로 궁색하지 않다.”

이러한 루이의 말에 피터는 고분이 물러났다. 루이가 이리 의사를 표시하니, 구태여 이런저런 말을 덧붙여서 밉게 보일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그의 목적은 루이에게 눈도장을 찍는 것이었고, 부차적인 것은 루이의 군대를 따라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렇듯 각자 갈 길을 떠나게 된 루이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허덕이고 있는 다른 영지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이 때, 정신 나간 몬스터 무리가 루이의 군대를 공격해왔지만, 루이는 그때마다 놈들을 철저히 짓밟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몬스터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영주들은 루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하루에도 수십 편씩 보내왔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물론 루이라고 해도 무작정 돕는 건 아니었다.

도움을 주어서 반드시 얻어낼 것이 있을 때만 움직였다. 무작정 가게 되면 무료로 봉사만 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받아낼 것이 없다고 한다면 루이는 농노로 받아내었다. 일단 농노는 자유민과는 다르게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영주의 사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루이는 오백에 달하는 영지민들을 모을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이 하루하루 먹어대는 식량의 양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루이는 아자젤과 아벨에게 교대로 영지민들을 하멜른으로 데려다주도록 했다.

물론 이렇게 되면 그 만큼 병사들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겠지만 루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 잘 훈련된 정병들인데다가 두 달간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에게 시달리다보니 다들 하나 같이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루이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다보니 어느덧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루이는 마지막 도시까지 구원해주어, 그곳의 영주와 영지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병사들과 함께 입성했다.

“와아아아!”

도시 내의 온 영지민들이 거리로 나와 루이의 군대를 향해 환호성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환호성에 병사들은 어깨를 쫙 펴며 콧대를 높였다. 처음 이런 환호성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잔뜩 주눅 든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신들이 정말로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은 태도를 보였는데, 이런 식의 환영을 몇 번 받고나니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것이었다.

좋은 현상이었다.

비단 사람이란 대접을 받고 살아야 되는 법이었다. 물론 그 대접이 지나치게 되면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되기 마련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적당한 대접이 내려온다면 다들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는 법이었다.

루이는 이런 식으로 병사들이 자신의 일에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도시였던 만큼 루이는 아자젤과 아벨에게 일러 병사들로 하여금 편히 쉴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마음껏 회포를 풀고 싶은 자들에겐 회포를 풀 수 있도록 금화도 풀었다. 덕분에 병사들은 물론이고 도시 내의 창관도 환호성을 터트렸다.

간만에 무수히 많은 손님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듯 병사들에게 자유 시간을 내려준 루이는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소란스런 도시를 돌아다녔다. 물론 이런 루이의 곁에는 언제나처럼 아벨이 붙어 다녔다.

아자젤도 따라오려 했지만, 뒤에서 그의 애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었기에 차마 따라오라고 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아자젤도 각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본인은 매우 즐기는 듯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루이는 아벨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루이의 시선이 노예시장으로 향했다.

노예 시장에선 한참 상품 소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시장 한켠에 마련된 단단한 철제 울타리 앞으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루이는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끼며 아벨과 함께 구경꾼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곧 상자 몇 개를 포개 급조한 것처럼 보이는 단 위에 오른 노예상인이 자기 상품을 한참 소개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오늘 선보일 이 엘프는 카렌 왕국 깊숙한 숲 속에서 잡아온 아주 싱싱한 애들입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쓰레기들과는 다른 상등품이지요! 자, 한번 보세요. 때깔부터 확 틀리지 않습니까?”

노예 상인이 데리고 나온 것은 엘프였다. 확실히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들과는 달랐다. 물론 그 값도 달랐지만 말이다. 보아하니 노예 상인은 루이가 엘프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서 일부러 이 자리에서 꺼낸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약삭빠른 자였다. 루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엘프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인이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엘프들을 내놓자 루이는 고민 없이 손을 들어 엘프들을 구입했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내놓는 거라면 생각할 가치도 없었지만, 양심적인 가격에 내어놓는다면 또 안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엘프 노예를 많이 사서 하멜른으로 데려간다면 카샨이 크게 기뻐할 것이 틀림없었다.

카샨의 충성심을 올리는데 있어서 엘프만큼 잘 먹히는 것은 또 없었다.

뭐, 이러한 이유에서 루이는 엘프가 나오는 족족 구입했다. 몇몇 이들이 호기롭게 손을 들어 경쟁에 나섰지만, 루이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작전인지 아니면 고집인지 모를 몇몇 이들이 끝까지 손을 들었지만, 그 때마다 루이는 과하다 싶은 가격에선 손을 빼었다.

그러자 나중에는 손드는 사람 없이, 오로지 루이만 노예들을 구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예 상인은 헤헤 웃는 낯짝을 하며 루이를 따로 자신의 별실로 모셨다.

“아직 팔리지 않은 엘프들이 남아있는데, 구경해보시겠습니까?”

“아까 그 놈들이 사지 않았나보지?”

그 말에 상인은 뜨끔하긴 했으나, 이내 넉살 좋게 이야기했다.

“장난삼아 손을 든 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전부 다 몽둥이로 후드려 패놓았습니다. 혹시 궁금하시다면 지금 이 자리로 불러오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쓴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루이는 장난기에 동해, 어디 한번 데려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시간도 아깝고 헤헤 웃으며 간이며 쓸개며 다 내어줄 것처럼 행동하는 노예 상인이 안타까워 그만두기로 했다.

더욱이 경매에서 조작하는 것은 어디를 가나 있는 것이었다.

그것에 일일이 화를 내었다가는 밑도 끝도 없는 법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어야 되었다. 옛말에 이러한 말이 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없다고 말이다. 그 말대로 어느 정도 부패해야 모두가 하하 호호 살 수 있는 법이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루이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남은 엘프까지 모조리 구입했다. 그 숫자가 무려 서른이나 되었다. 일개 상인이 데리고 있기에는 다소 과한 숫자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루이는 이내 상념을 꺼트렸다. 어차피 루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카샨이 좋아하겠구나.”

루이는 마차에 가득 실려 있는 엘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에 아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시했다.

============================ 작품 후기 ============================

멀리서도 카샨을 생각하는 루이.

향향공주 님 : 자유 기사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ㅋㅋ 실력이 좋으면 이미 어느 영지나 국가에 소속되었죠

검은라벤더 님 : 네, 감사합니다!

smxdmdmd 님 :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만 돈을 줘가면서 돕는다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죠.ㅎ

슴가매니아 님 : 여기요! 다음편 여기있습니다!

eastarea 님 : 네, 감사합니다! 이번편도 즐독해주세요.ㅎ

샤르미르 님 : 오오, 잘 알고 계시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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