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89화 (89/158)

0089 / 0158 ----------------------------------------------

[겨울이 오고]

[겨울이 오고]

구름이 달을 가리자, 어둠이 사방을 뒤덮었다. 루이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춥고, 무섭도록 차다. 데이지가 충분히 장작을 넣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뼛속까지 시려왔다. 혹여 감기에 걸린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심리 문제인가.’

겨울이 두렵다.

하멜른의 1년은 성공적으로 손에 쥐었지만, 아슬롯의 병세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병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매달 신경을 써서, 아슬롯에게 귀한 약재를 보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의사라도 수소문해볼까 싶었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이미 왕국에서 모든 걸 다 해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을 막아 하멜른에 거주하고 있는 수만 명의 목숨은 구할 수는 있을지라도, 정작 중요한 한 명의 목숨은 구해내지 못 하는 것이었다. 지독한 무기력함이 루이의 전신을 억눌렀다.

이 순간만큼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끔찍했다.

루이는 엊그제 도착한 서신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형님.’

아슬롯의 상태가 위중하다.

그 외의 문구가 더 적혀있었지만, 루이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었다. 그렇다, 왕자의 전쟁이 발발하려하는 것이었다. 물론 밀튼과 휴안은 아직 그런 낌새를 보이고 있지 않았지만, 귀족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더욱이 아슬롯이 왕을 대신해 업무를 보던 중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것은 큰일이었다.

왕은 이미 침대에 누운 지 오래였고, 왕태자마저도 침대에 눕게 되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라는 말인가? 실로 끔찍했다. 왕위가 불안한 국가는 내전에 휩싸이기 마련이었다. 루이는 이 일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될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좀처럼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밀튼을 암살하자.

이건 미친 짓이었다. 만에 하나 밀튼을 암살하려다가 실패를 하게 된다면? 설혹 성공하더라도 정체가 들킨다면? 루이가 아무리 하폰의 다섯 째 왕자라고 하더라도 이건 용서가 될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귀족들이 득달같이 루이를 죽이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휴안을 밀어주자.

이것 역시 미친 짓이었다. 휴안은 끔찍할 정도로 이타주의자였다. 분명 귀족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릴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것이 루이에게 나쁜 건 아니었다. 비록 왕족이긴 하지만 하멜른이란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후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수도에 남아있는 루시아는? 비비안이야 외척이 든든하니, 적당한 혼처를 잡아서 시집을 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루시아는 그렇지 못 했다. 외척은커녕 아는 귀족조차 제대로 없었다. 물론 이전에 루이가 루시아를 하멜른의 후계자로 지목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계자에 불과했다.

실권이라고는 조금도 손에 쥐고 있지 않은 후계자였다. 단지 이름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귀족들의 입맛에 맞춰, 시집을 가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예순이 훌쩍 넘어가는 노인네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휴안 역시 병을 죽게 된다.’

이 또한 결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루이가 휴안을 밀어줘 승리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당사자가 병으로 죽고 만다. 더욱이 죽기 직전까지 귀족들에게 이래저래 휘둘리며 왕권을 깎아먹을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후세는 휴안을 역대 가장 어리석은 왕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락까지 떨어진 왕좌에 루이가 앉게 되는 것이다.

최악이다.

차라리 루이가 왕자의 전쟁에 참여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나 이것 또한 불가능했다. 하멜른에서 준비한 병사가 아직 절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랄프 산맥은 정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루이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인다면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은 언제든지 이빨과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세 가지 모두 실현 불가능했다.

“꺄웅.”

이처럼 루이가 고민에 빠져있는데, 덜컹 소리와 함께 방 문이 스르륵 걸리더니 그 틈 사이로 견인족 소녀 한 명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소녀는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루이의 눈치를 살살 보았다.

보아하니 오늘밤은 루이와 함께 자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에 소년은 기꺼이 손짓해서 세람을 불렀다. 그러자 혀를 길게 내밀고서 헥헥 대더니, 그대로 루이의 침대 위로 껑충 뛰어오르는 견인족 소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루이가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세람, 문은 닫아야지?’라고 말하자,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침대에서 내려가 문을 닫고 다시 돌아오는 세람이다.

“잘 했다.”

“멍!”

루이가 칭찬해주자, 세람은 힘차게 짖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여전히 고급 털이었다. 아니, 오히려 요 사이에 풍성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에이나가 세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털을 골라주던 것 같던데, 그러한 까닭에서 털이 좀 더 풍성하고 윤기가 흘러 보이는 모양이었다.

부드럽게 미소 지어보인 루이는 이불을 들추고, 세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불 안으로 들어와, 자기 꼬리를 소년의 무릎 위에 올렸다. 그러자 풍성한 털의 온기가 느껴졌다.

역시 이건 최상품이었다.

“고맙구나.”

“아웅!”

귀를 쫑긋 세운 세람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제 머리를 루이의 가슴에 비볐다. 정말로 사랑스러운 견인족 소녀였다. 수명만 길었다면 무심코 청혼해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견인족의 수명은 무척이나 짧다. 물론 그 만큼 성장 또한 빠르지만, 인간과 결혼할 대상으론 적합하진 않았다.

엘프가 인간을 혼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천천히 숨을 들이켠 루이는 다시금 상념에 잠겼다.

‘팔칸으로 가보아야 되는 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아슬롯의 죽음은 이미 확정된 것이었다. 더불어 왕자의 전쟁 또한 일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이것은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다. 물론 그 운명이란 게, 지나치게 음울한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천천히 숨을 토해낸 루이는 세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견인족 소녀의 귀가 쫑긋 세워져선 이리저리 파닥파닥 거렸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던 루이는 이윽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야겠군.’

이렇듯 마음을 다잡은 루이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날이 밝자 루이는 하폰의 수도, 팔칸으로 향하겠노라고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이번 인선으로는 아벨과 아자젤 그리고 호울을 지목했다. 덧붙여 오르가를 직속 호위로 삼고 시녀 일행에는 데이지를 포함시켰다.

이번 기회에 데이지에게도 수도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말이다.

여하튼 이처럼 인선이 정해지자, 아놀드는 한시 바삐 준비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윽고 준비가 끝나자, 루이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 안은 의외로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호쾌한 호울이 있었다. 용병 출신답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나이로 치자면 호울이 가장 많았다.

그러다보니 분위기는 호울이 주도하고 있었다. 루이 또한 분위기가 너무 우중충한 것은 싫었기에 용납했다. 그러자 가만히 호울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아자젤이 동참해서 서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 둘은 어쩌다 여자 아야기가 나오면 서슴없이 음담패설을 주도 받았다.

정말이지 부끄러움이라곤 조금도 없는 사내들이었다. 루이는 혹여 데이지가 엄한 소리를 들을까 싶어, 자기 옆에 앉혀두고서 음담패설이 흘러나올 때면 소녀의 귀를 손수 막아주었다. 물론 이 때, 데이지를 행복해 죽으려했지만 말이다.

한편 루이의 호위를 맡은 오르가는 오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호울과 아자젤을 쳐다보았다. 혹여 아자젤에게 반한 건 아닌가 싶어 루이가 ‘왜 그리 쳐다보는 것이냐?’라고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오르가는 신비롭단 말이 딱 어울리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답했다.

“생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생기가?”

“그렇다. 저들의 생기를 보고 있자니, 어서 빨리 죽이고 싶단 충동이 일어난다.”

“…….”

“나는 진심으로 기쁘다. 이토록 생기가 넘치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쁘다.”

이러한 오르가의 말에 호울과 아자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워낙에 말이 많은 종자들이었기에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나중에는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던지, 아벨이 눈살을 찌푸리며 적당히 좀 하라고 주의를 줄 지경이었다.

실제로 루이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여행 자체는 유쾌했다. 아슬롯의 죽음을 확인하러 간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빠르게 마차가 바퀴를 굴리며 가는데, 라인펠덴 공작 가에서 정중하게 루이를 초대했다.

부디 자신의 성에서 하룻밤 머물러달라고 말이다.

속셈이야 뻔했다. 루이의 환심을 사서 카샤의 가루를 얻거나 아니면 첩으로 제 딸들을 보내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루이 또한 반기는 일이었다.

라인펠덴 공작가라고 하면 유력 가문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인연을 남겨둔다면 틀림없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이러한 까닭에서 루이는 기꺼이 초대를 받아 라인펠덴 공작의 성으로 향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인펠덴 공작은 루이를 정중하게 맞이했다.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의 대우였다. 괜히 공작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루이는 라인펠덴 공작과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루시아를 보러 갑니다.

나데스 님 : 히익! 전 여자가 좋습니다!

halem 님 : 오라버니 생일!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향향공주 님 : 네?ㅋㅋㅋ 엌ㅋㅋ

아쉐니트 님 : 슬슬 정리할 시간이죠

마리오넷 님 : 이 소설에서 로맨스는... 하아, 글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