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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고]
라인펠덴 공작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루이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추운 날씨 탓에 그 동안 제대로 된 목욕을 하지 못 했던 탓이었다. 때문에 루이는 저녁 식사에 앞서 가신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데이지는 루이를 모셔야 되는 입장이었기에 루이를 따라 남탕에 들어서려고 했지만 루이가 점잖게 괜찮다고 말하며 오르가에게로 보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르가의 시중을 들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 또한 자신의 가신으로서 오르가와 함께 씻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데이지는 시녀의 신분임에도 다른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라인펠덴 공작가의 시녀들에게 시중을 받게 되었다. 그 쩔쩔매는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 루이는 소녀 몰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여하튼 아벨과 아자젤 그리고 호울을 데리고서 목욕탕 안으로 들어서자, 다들 루이가 먼저 욕탕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린 뒤에 하나둘씩 물속에 몸을 담갔다. 향료를 뿌린 물은 상큼한 향내를 풍겼고, 따끈한 물속은 그간 쌓인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때때로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이는 어깨를 주무르며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곳곳에 놓인 조각상들은 소년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나 반인반어의 머메이드 조각상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멜른에도 이러한 목욕탕을 짓는 게 어떻겠나?”
문득 루이가 입을 열자, 아자젤과 호울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목욕탕이 하나 있다면 주군의 위상이 한층 더 살 것입니다.”
말은 제법 그럴 듯하게 하고 있었지만, 이 둘의 속내가 훤히 보이고 있었다.
루이는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아들을 데려와 놀기에도 좋겠지.”
“그렇습니다. 헙!”
루이의 말에 아자젤은 눈치 있게 입을 닫았지만, 호울은 그만 흥이 이기지 못한 나머지 무심코 소년의 말에 동의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호색한들이었다. 물론 루이 또한 회귀 이전에는 이들 못지않은 호색한이었지만 말이다.
속된 말로 루이가 품어보지 못한 여인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래봤자, 왕국 제일미는 품지 못 했지만 말이다. 아니, 애당초 피를 이은 남매이니 이성으로 볼 수가 없었다.
“걱정마라, 책망하지 않을 테니. 오히려 나 또한 미래를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러한 루이의 말에 아자젤과 호울이 화색을 띠우며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다들 목욕탕으로 여성들을 데려와 알몸으로 교제할 생각을 하니, 흥이 들뜨는 모양이었다. 루이는 두 명의 호색한들과 어울리다가 이윽고 아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아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루이는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벨, 그대는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느냐?”
이 물음에 아벨은 천천히 눈꺼풀들을 들어 올린 뒤에 당황한 기색 없이 점잖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실로 재미없는 사내였다. 루이는 쯧쯧 혀를 차고는 회귀 이전에 아벨이 누구와 사귀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아벨의 곁에는 딱히 이렇다 할 여성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오필리아를 둘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둘은 서로를 앙숙처럼 여기고 있었다.
애당초 물과 불처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남녀였다.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저은 루이는 아벨에게 짝지어줄 여성을 물색해보았다. 그리고는 이윽고 라인펠덴 공작의 여식을 떠올린 루이는 얼른 입을 열었다.
“아벨, 그대의 나이도 차고 했으니 내가 짝을 지어줄까 하는데 어떤가?”
이러한 루이의 말이 상당히 의외였던 모양인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던 아벨은 이윽고 극구 사양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허나 곁에 여인이 있다면 쓸쓸하진 않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주군. 제가 쓸쓸할 일은 결코 없습니다.”
정말이지 목석같은 남자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벨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벨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윽고 목욕을 끝마쳤다. 그 후, 목욕탕 밖으로 나가자 문 밖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던 시녀들이 다가와 정성껏 물기를 닦아주고 가져온 가운을 입혀주었다.
루이와 아자젤은 귀족 출신이어서 목욕 시중받기에 익숙한 편이었지만, 아벨과 호울은 그렇지 못 했기에 이런 과분한 대접에 쩔쩔매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나 호색한이라 생각했던 호울은 의외로 이런 쪽으로는 면역이 없는 모양인지, 어색하게 뻘쭘한 웃음만 의미 없이 흘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호울의 반응은 아벨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벨은 아예 처음부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시녀의 손에 들린 수건을 냅다 빼앗아 직접 물기를 닦아내곤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나중에 이들이 정식으로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된다면 꽤나 볼만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심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식사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자녀들과 자리에 앉아있던 라인펠덴 공작이 서둘러 일어나 루이를 맞이해주었다. 더불어 자녀들을 장남부터 해서 차례차례 소개시켜주었다.
특히나 여식들을 소개시켜줄 때면 성격까지도 세세히 알려줄 정도였다. 속내가 훤히 보였지만, 그리 불쾌하진 않았다. 더욱이 공작의 여식들 또한 그리 못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호울은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식들에게서 감히 눈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하긴 용병인 그가 언제 이런 아리따운 귀족가의 여식을 보았겠는가? 더욱이 이들 모두 공작가의 여인들이었다. 평소라면 감히 쳐다도 보지 못 할 한참 위의 사람들이었다.
루이는 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고는 여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때마다 여식들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다들 루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라고 하면 하멜른의 영주이자 왕족이었다. 더욱이 돈까지도 많았다. 그런데 이걸로 부족해서 나이까지도 어렸다. 그야말로 누구나가 탐을 내는 황금 사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황금 사과를 두고서 탐내지 않은 여인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여기서 루이의 첩실로 들어가지 못 한다면 후일 나이 많은 늙은이의 첩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애당초 귀족가의 여식은 이러한 용도였으니 말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나긴 했으나, 루이는 가볍게 무시했다. 이런 일에 일일이 동정했다가는 감정이 아주 메말라버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이는 라인펠덴 공작과 적당히 어울려주며 저녁 만찬을 어울렸다.
그리고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다듬고는 다음 날, 아침 곧장 하멜른의 수도 팔칸으로 향했다. 물론 라인펠덴 공작은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것까지 신경써줄 의리는 없었다.
“하나 같이 미인이었지 않습니까?”
그래도 호울은 미련이 남는 모양인지, 입맛을 다시며 라인펠덴 공작의 여식들의 모습을 추억했다. 그 모습에 루이는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내가 나중에 잘 되거든 라인펠덴 여식들과 너를 이어주마.’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뜸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군!’이라며 환하게 웃는 호울이었다.
정말이지 못 말릴 사내였다.
여하튼 짧은 휴식으로 끝으로 마차는 거듭 팔칸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윽고 팔칸에 도착하자, 우중충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수도의 거리가 루이를 반겼다. 다들 아슬롯의 소식에 염려는 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아슬롯은 하폰의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왕태자였다.
‘비극이다.’
이것은 비극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재앙이었다.
루이는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성들을 지나쳐 성 내로 들어섰다. 그러자 미리 소식을 전해 받고서 기다리고 있던 루시아와 비비안이 루이를 맞이했다. 루이는 제 누이들과 가볍게 포옹을 나눈 뒤에 왕태자, 아슬롯이 있는 궁으로 향했다.
‘훨씬 더 상태가 심각하구나.’
침대에 누워있는 아슬롯의 안색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더욱이 보기 좋게 근육이 붙어있던 팔다리는 메마른 고목마냥 앙상하기 그지없었다.
루이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이윽고 겨우 말소리를 내었다.
“형님.”
겨우 뽑아낸 목소리치고는 비교적 담담한 말투였다. 루이는 자신의 부름에도 반응이 없는 제 형을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무릎을 꿇고서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제야 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아슬롯이다.
그리고 이윽고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게, 루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슬롯은 힘없이 입 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루이로구나.”
그 말에 루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하다가 이윽고 천천히 말소리를 내었다.
“어쩌다 이리되셨습니까?”
저도 모르게 책망하듯 묻고 말았다. 아니, 실제로 책망하고 있었다.
왜 아픈 것이냐? 어째서 쓰러진 것이냐? 지독하게도 원망스러웠다. 당신만 아프지 않았더라면……. 너만 죽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평온하게 살다가, 조용히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반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루시아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세월에 묻혀갔을 것이다.
아슬롯이 시작지점이었다.
겨우 시작 지점에 도착한 것이었다.
“가벼운 감기다. 콜록. 너무 걱정 말거라.”
아슬롯은 목이 타는 모양인지, 시녀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냉큼 달려와 마른 입술 안으로 물을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 모습만 보더라도 결코 가벼운 감기가 아니었다. 루이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으십시오. 견뎌 내셔야합니다.”
이러한 루이의 말에 아슬롯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견뎌낼 것이다.”
============================ 작품 후기 ============================
아슬롯...
나데스 님 : 먹지마세요. 상했어요!
우월정자매 님 : 엌ㅋㅋ 확실히 길들여먹는게.. 크흠
향향공주 님 : 엌ㅋㅋ 그렇죠 루시아는 정말..ㅋㅋ
halem 님 : 아슬롯한테 너무 미련가지지 마세요. 죽어야지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AliceChong 님 : 그렇죠. 아슬롯만 안 죽었어도... 애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