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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고]
아슬롯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몇몇 귀족들은 아슬롯의 죽음을 기정사실화시켜놓고서 수군거렸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슬롯의 눈에 들기 위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아첨을 쏟아내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태도를 게 눈 감추듯이 바꾸어 새롭게 왕태자를 뽑아야 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실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행태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러한 그들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귀족들이 술렁이며 새로운 왕태자로 누구를 올릴 것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서 논의를 했다.
당연히 그 후보자에는 밀튼과 휴안이 올라갔다. 루이도 간간히 거론되긴 했지만 이미 자신의 영지를 가진데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물론 넷째 왕자가 남아있긴 했지만, 그는 왕실에서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인맥도 없고, 능력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야망조차 없는 왕자였다. 딱 자기 왕성에만 틀어박혀 숨만 쉬다가 죽을 위인이었다.
어찌 보면 아슬롯을 제외한 네 명의 왕자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회귀 이전에 루시아에게 살해당한 것을 보면 꼭 그렇다고도 볼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목이 잘려죽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슬롯이 살아있었다면 천수를 누리며 조용히 삶을 끝마쳤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밀튼과 휴안, 루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슬롯만 살아있었다면 말이다.
‘돌이켜보면 실로 참담한 삶이었군.’
현 왕실 가족 모두 무척이나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루이가 천신만고 끝에 왕위에 오르지만, 이미 권력은 귀족들에게 빼앗겨 꼭두각시 신세였던 데다가 그마저도 반란으로 왕좌에서 끌어내려지고 말았다.
그런 비극이 다시금 되풀이 되려 한다고 생각하니, 루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분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더욱이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다. 이미 운명은 두 차례나 루이의 눈앞에 똑같이 나타났었다.
하나는 아놀드와 레베카였다. 두 사람은 루이가 모르는 사이에 연인 사이로 발전한 상태였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함께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루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비비안이었다. 루이는 그저 비비안을 자신의 편에 두고자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그런데 비비안은 회귀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살을 빼는데 성공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회귀 이전처럼 독기를 품고서 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을 뺐다는 사실은 매한가지였다.
벌써 두 개의 운명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리고 이젠 그 세 번째마저도 똑같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 물론 앞선 두 개는 막을 수 있었다. 아놀드와 레베카를 억지로 떼어내고, 비비안은 다시 살찌울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겨날 일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억지로 떼어낸 두 사람이 루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아놀드가 루이에게 실망해 떠날지도 몰랐다. 레베카는 제 언니인 아만다가 하멜른에 머무르고 있기에 남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자신과 아놀드를 억지로 떼어낸 루이를 증오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비비안은 어떠한가? 도로 살을 찌우라고 해서 비비안이 순순히 납득할까? 현재 비비안은 아름다워진 자신의 모습으로 모두에게 우러름을 받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찌 다시 살을 찌우라 할 수 있을까? 설혹 다시 찌운다고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에선 루이를 미워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 번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루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슬롯의 곁을 지키며 간호하는 것 밖에 없었다. 루이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채로 아슬롯을 바라보았다.
“…….”
누가 보아도 아슬롯은 가망이 없어보였다.
“쉬시지요, 왕자님.”
아슬롯의 외숙부가 루이에게 말했다. 몇날며칠 간호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 한 루이의 건강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루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는 이유로 끝까지 자리에 남았다. 그 단호함에 아슬롯의 외척들은 저마다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었다.
사람이 죽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야 되는 말이 있었다. 여기서 루이까지 쓰러지게 된다면 분명 큰 일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외척들은 루이를 정중하게 왕성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다. 그리고 다음 날, 루이는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백성들에게 식량을 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왕족 중에 누군가 큰일을 당했을 때, 온 백성들이 한뜻으로 기도를 올리며 상황이 호전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루이가 이러한 미신을 믿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만큼 마음이 다급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태자 전하의 병세가 위중하니, 백성들에게 식량을 베풀어 기도를 올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곧바로 하겠습니다.”
귀족들은 단 한 마디의 반대도 하지 않고 즉시 식량을 베풀 준비를 했다. 재무상서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루이에게 한 가지 빚을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속셈이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먼저 앞선 마음은 형제간의 우애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암투가 오가는 정계라곤 하지만 형제의 우애를 더럽힐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루이의 제안대로 왕실에서 수도의 백성들에게 아슬롯의 이름 아래에 식량을 베풀었다. 당연히 백성들은 아슬롯의 병세가 하루 빨리 낫기를 기도하며 식량을 받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태자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이쯤 되자 밖을 나돌던 밀튼도 왕성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현재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셋째 왕자 휴안 역시 돌아왔다. 넷째 왕자 로렌스도 아슬롯의 왕성을 방문했다.
당연히 공주들 또한 아슬롯의 왕성으로 몰려들었다.
루이는 왕자들 중에서도 막내였기에 한쪽 구석에 있다가 아슬롯이 자신을 향해 손짓하자,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 아슬롯을 지켜보았다.
“막……. 내야.”
이제 왕태자는 숨쉬기도 어려운 듯이 말을 띄엄띄엄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아슬롯의 방이었지만 가끔씩 훌쩍이는 엘리자베스와 공주, 외척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신관들과 의원들이 내는 작은 소리를 빼고는 방 안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루이는 왕태자의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하구나.”
약속을 지키지 못 했기 때문일까? 곧바로 털어 일어날 거라고 호언했던 아슬롯은 루이에게 사과하고는 숨을 멈추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신관들과 의원들이 다급히 달려와 왕태자를 살려내기 위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아슬롯의 외척들과 엘리자베스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물만 뚝뚝 떨어트렸다. 밀튼과 휴안 그리고 로렌스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왕태자의 죽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루이만큼은 인정할 수 없었다.
“살려내라!”
루이는 아슬롯의 손을 꽉 붙잡으며 소리쳤다.
“……당장 살려내란 말이다!!”
루이의 명령에 신관들과 의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조취를 취했다. 그러나 이미 숨이 끊어진 이를 살려낼 방법은 없었다. 결국 신관들과 의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다 하고는 손을 멈추었다.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왕태자 아슬롯이 죽은 것이다.
“아, 아슬롯……. 아슬롯……. 아아…….”
첫째 공주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죽은 아슬롯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아슬롯의 외척들 역시 더는 참을 수 없단 듯이 눈물을 흘려대었다. 루이는 주먹을 꽉 쥔 채로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겨울 초입, 왕태자 아슬롯의 죽음이었다.
루이가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운명은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미래를 바꿀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도 엄습해왔다. 그러나 루이는 곧바로 마음을 추슬렀다. 아직 커다란 것이 아직 자신의 손에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오필리아와 아벨 그리고 비앙카만이라도 손에 꼭 쥐고 있는다면 반란이 일어나더라도 쉽사리 진압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이처럼 마음을 다잡은 루이는 아슬롯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의 장례식은 무척이나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외척들 역시 그리 하기 원했고 또한 그를 사랑한 백성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죽은 왕태자를 중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새로운 국면으로.
나데스 님 : 히익! 전 남자 싫어요! 살려주세요!
이키다스 님 : 하폰은 담백한 맛이죠. 후후.
halem 님 : 아슬롯이 죽어서 시작이니까요.ㅋㅋ
향향공주 님 : 엌ㅋㅋㅋ 정말로요?
will_S 님 : 아슬롯을 살리면 소설의 목적이 사라져버립니다. 포기하세요! 포기하면 편합니다.
우월정자매 님 : 제가 쓴 소설들을 중에 로얄이란 소설이 있는데, 그거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다 씁니다! 그리고 하폰은 자급자족용이란 성격이 강해서 상관없습니다.ㅎㅎ
소령(小鈴) 님 : 아뇨, 보지 마세요! 소령 님은 깨끗함을 유지해주세요! 엉어엉, 보시면 아니되옵니다. 몇 안 되는 순결한 독자를 이렇게 잃은 순 없습니다!
지나가는1인 님 : 피가 이어진 남매잖아요! 조아라가 금지하고 있습니다.
트립스 님 : 아뇨, 그냥 일 중독자입니다.
잘되기를 님 : 왕도 드러운 상태입니다. 국정을 돌볼 수 없어서 아슬롯이 돌보는 건데, 왕태자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