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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고]
루이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비앙카가 화사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야심한 밤중에 소녀의 방에는 어쩐 일이시와요?”
달콤한 목소리였다.
루이는 옅게 웃는 것으로 화답하며 비앙카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녀의 앞에 서며 물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어서 찾아왔는데……. 실례였나?”
“어머나, 어머나. 주군께서 저를 그렇게 각별하게 생각해주시는 줄은 미처 몰랐사와요.”
“그리 생각했다면 앞으로 자주 신경을 써주어야겠군.”
이러한 루이의 말에 비앙카의 입가에 매달린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잠시 루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근처의 의자를 당겨 루이에게 권했다. 이에 루이는 고맙다는 의미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이윽고 자리에 앉았다.
그 후, 비앙카는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오필리아에게 미움 받기는 싫사와요. 하물며 공주님들에게는 더더욱요.”
“어째서? 괴롭힘이라도 당하나?”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사와요.”
“응?”
루이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비앙카가 슬쩍 루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작은 소년의 손이 느껴졌다. 몇 번을 만져도 참 기분 좋은 감촉이었다. 특히나 손바닥에 맺힌 굳은살은 묘하게 그녀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주었다.
비앙카는 조용히 루이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주군이 좋사와요.”
“…….”
“하지만 주군을 둘러싸고 치정싸움을 할 자신이 없사와요. 무섭거든요.”
그 말에 루이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비앙카는 짓궂은 면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회귀 이전에 비앙카와 나눈 대화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당시에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비앙카의 성격을 얼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극히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는 인물이었다.
흥미가 생기면 찾아가고, 흥미를 잃으면 두 번 보지 않았다. 그때도 그랬다. 감옥에 갇혀있는 루이를 내려다보며 ‘결국 철부지 왕자님이였사와요. 실망이네요.’라고 쏘아붙였다.
그 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루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루이가 사형대에 오르는 날에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녀는 그 날, 한 번 본 것으로 루이에게 흥미를 잃었던 것이겠지. 루이는 조용히 비앙카를 마주보았다.
“내가 무얼 해주면 되겠느냐?”
“소녀는 바라는 게 없사와요. 그저 가끔씩 이렇게 와서 소녀의 말동무를 해주시와요. 그거면 충분한 걸요.”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비앙카는 딱 그것만 원하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챈 루이는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비앙카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충분하다면 좋을텐데.’
루이는 비앙카의 손을 마주잡았다. 자신의 손에 비해서 큰 손이었다. 더불어 여성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친 손이었다. 틀림없이 대장일 하다가 이리 된 것일 것이다.
조용히 미소 지은 루이는 고개를 들어 비앙카를 바라보며 가벼운 잡담을 나누었다. 그녀가 원하는대로 말이다. 물론 오필리아 때처럼 달콤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꽤나 재밌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비앙카는 많은 곳을 돌아본 여행자였다.
물론 그 여행 이력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여성 홀몸으로 떠돌아다녔다는 것 자체만 하더라도 대단한 일이었다. 더불어 비앙카가 도적 무리를 단신으로 쓰러트렸다는 이야기에서 루이는 그녀가 상당한 무력을 갖춘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흥미가 생겼다. 과연 비앙카의 출신은 어디일까?
솔직히 말해서 이만한 여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 질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루이가 비앙카의 출신을 알아내려 하자, 그녀는 조신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성의 비밀을 캐내려 하는 남성은 재미없사와요.”
한 마디로 더 이상 알려들지 말란 경고였다. 루이 또한 비앙카가 자신을 떠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저 실례가 되지 않은 선에서 이것저것 물어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대화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중에 루이는 불현듯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도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석거인가?’
놀랍게도 그것은 발석거에 대한 설계도면이었다. 다만 초기에 불과한 모양인지, 그 형태가 실로 조잡해보였다. 더욱이 양 옆에는 새의 날개와도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이에 루이는 내심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비앙카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질문을 던졌다.
“저건 무엇이지?”
이러한 루이의 말에 비앙카는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설계도면을 손바닥으로 스윽 쓰다듬었다.
“소녀의 꿈이에요. 언제 이룰지 모르는 꿈이지만요.”
“꿈이라……. 내가 한번 봐도 되겠나?”
“물론이시와요.”
비앙카는 선뜻 루이에게 설계도면을 넘겨주었다. 이에 소년은 잠시 흐음 소리를 내며 도면을 살펴보았다.
‘그 때, 보았던 것이 어떻게 생겼더라.’
루이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발석거의 형태를 얼추 떠올린 루이는 설계도면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뒤에 비앙카에게 손짓했다. 이에 비앙카는 속으로 ‘왕자님, 너무나도 귀여우시와요.’라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가 손으로 발석거의 모양을 지적하며 말하기 시작하자 비앙카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이 줄을 여기로 당기고, 여기에 줄을 묶을 수 있는 곳을 둔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어떤가? 비앙카, 그대가 생각하기에.”
단순한 지적이었지만 그것은 비앙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단번에 뒤엎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일순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은 쾌감을 느끼며 양 볼을 빨갛게 물들었다. 굉장한 희열이었다.
과연 일생을 통틀어 이러한 희열을 느껴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그녀의 스승인 램지가 만든 화승총을 보았을 때도 이러한 쾌감을 맛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너무나도 황홀한 경험이었다. 비앙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하다가 이윽고 양 손으로 루이의 손을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대단하시와요! 주군께선 천재여요! 소녀는 감탄했사와요! 소녀가 이제까지 고민해온 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아아, 굉장해요.”
“…….”
“좀 더 소녀에게 깨달음을 주시와요.”
그 말에 루이는 뒤늦게 자신이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가 비앙카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화염을 내뿜는 쇠상자 같은 것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정보였다.
무한히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이는 잠시 흥분한 비앙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녀의 생각을 고쳐 잡기로 마음 먹고서 입을 열었다.
“비앙카, 난 그대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우연히…….”
“하지만 왕자님께선 분명 소녀에게 도움을 주셨사와요!”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다.”
“아아, 어쩜 이리도 겸손하신지……. 소녀는 왕자님을 보며 감탄 또 감탄하게 되네요.”
그 말에 루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자신의 평범함을 이야기해보려 했다. 그러나 이미 비앙카의 귀는 굳게 닫힌 지 오래인지, 대단하다 굉장하다라는 말만 연발하며 루이를 추켜세워 주는데 여념이 없었다. 때문에 루이는 결국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다.
‘당분간 조심해야겠구나.’
루이는 이리 생각하며 자신에게 열광하는 비앙카를 달래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겨우겨우 달래준 루이는 비앙카를 놔두고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 후, 침대에 누우려고 보니, 먼저 온 선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루이는 자신의 침대 위에서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루시아를 발견하곤 쓰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어린 누이가 혹시라도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이불을 잘 덮어준 뒤에 그 옆자리에 누웠다.
‘시끌벅적하군.’
꽤나 요란한 하루였지만 결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발석거도 일찍 나올테고.’
비록 이 때문에 비앙카에게 오해를 사기는 했지만, 발석거의 등장은 분명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이었다.
루이는 꼬물꼬물 자신의 품으로 안겨 들어오는 루시아를 살포시 끌어안아주며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루이는 모두를 데리고서 가볍게 태호를 돌아다닌 뒤에 곧장 하멜른으로 떠났다.
오랫동안 하멜른을 비워둘 수는 없었던 까닭이었다. 물론 루시아와 비비안이 내심 서운해 하긴 했지만, 루이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다.
============================ 작품 후기 ============================
이것이 바로 착각계죠?
향향공주 님 : 엌ㅋㅋ 그렇긴 하죠.ㅋㅋ
현책 님 : 원래 남자는 관리를 해주어야.. 크흠.
[炎風] 님 : 엌ㅋㅋㅋ 따지고보면 그렇게 되네요.ㅋㅋ
thecrazy 님 : ㅈㅈ?
보람찬 님 : 엌ㅋㅋㅋㅋ 그럼 남자는요? 아아아 삼형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