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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팔백 명으로 이루어진 원정대가 하멜른을 나서던 날, 수천에 달하는 영지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다들 원정의 성공을 기도하며, 아들 혹은 아버지 그리고 연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꽃잎까지 흩날렸다면 제법 장관이었겠지만, 아직 겨울이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환호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원정대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루이는 팔백 명의 원정대를 이끌고서 숲길을 헤쳐지나갔다. 가는 도중에 오크들이 공격해왔지만, 이미 지긋지긋하게 경험을 해보았던 만큼 병사들은 각 지휘관의 호령에 맞춰 서로 연계하며 오크들을 상대했다.
특히나 오필리아의 활약이 단연 발군이었다.
소녀가 이끄는 부대인 흑장미 부대는 이번이 첫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전장을 오고가며 각 부대를 지원해주었다. 특히나 저 앞에서 달려오는 오크들을 향해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을 때면, 달려오던 오크도 깜짝 놀라며 뒤돌아서기 일 수였다.
누가 보더라도 원정은 손쉽게 성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산맥 안으로 좀 더 들어서자, 상황이 변했다. 그건 바로 돌과 나무를 쌓아 만든 성채와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호숫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가히 난공불락의 성채라 할 수 있었다.
“힘들겠군.”
루이의 말에 아벨과 아자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특히나 저 성채 안에 있는 것은 인간보다 훨씬 힘이 쎈 오크들이었다. 만약에 저곳을 공략하려 한다면 분명 적잖은 피해가 일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멜른의 전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만큼은 피해가고 싶었기에 루이는 되도록 요새를 우회해가고 싶었지만, 앞으로 놓인 광산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쉽지 않았다. 만약 성채를 무시하고 광산으로 향했다가 앞뒤로 공격이라도 받게 되면 큰 피해를 받을 게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소탐대실이라 할 수 있었다.
루이는 일단 오크들을 유인하고자 말들을 성채 앞으로 끌고 나온 뒤에 오크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었다. 그러자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말들이 붉은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에 오크들이 꿀떡꿀떡 침을 삼키며 두 눈을 부릅떴다.
당장이라도 성채를 버리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크를 지휘하고 있는 족장들이 크게 고함성을 터트리며 다그치자, 오크들의 상태가 금세 진정되었다. 상당히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루이는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아벨과 아자젤도 나름대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 때, 오필리아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고기에 독을 발라 성채 앞에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독을 사용하자는 오필리아의 말에 아벨과 아자젤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터에서 독을 사용한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명예니, 긍지니 하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독을 잘 못 사용했다가는 전염병이 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땅은 일시적으로 죽음의 땅으로 변하게 된다. 하물며 전쟁과는 상관없는 백성들에게까지도 피해가 가게 된다.
실제로 독을 사용했다가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영토가 실제로 존재했었다. 하폰 또한 전염병이 돌았던 땅을 다시 사용하기까지 40년이란 시간을 소모했었다. 때문에 독은 전쟁터에서 기피해야 되는 것이었다.
“독이라…….”
하지만 이건 전쟁이라기 보단 토벌이었다. 오크를 상대로 봐줄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물론 전염병이 돌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남아있긴 했지만, 시체를 잘 태우기만 한다면 어찌저찌 될 것만도 같았다.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제안입니다, 영주님.”
그 때, 아벨이 단호히 말했다. 이에 루이는 조용히 아벨을 바라보았다. 그라면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있었다. 이에 루이는 천천히 입을 떼며 입을 열었다.
“괜찮은 제안이지 않느냐, 아벨? 어차피 상대는 오크다. 봐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기는 호숫가입니다. 자칫 독이 호수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전염병이 랄프 산맥 전역으로 퍼질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오크에게 드는 독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말에 루이는 조용히 끄덕이며 오필리아를 바라보았다. 이번 계획을 꺼낸 것이 그녀이니, 분명 무언가 반론을 준비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오필리아는 미리 준비해온 주머니를 꺼내며 대답했다.
“호수를 통해 전염병이 퍼질 위험은 없습니다. 애당초 이곳은 지하수가 풍부합니다. 그 덕분에 오크들이 성채 밖에 해자를 파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까닭에서 설령 호수에 독이 퍼진다고 하더라도 금방 희석될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독은 오크에게도 통합니다.”
꽤나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루이는 흥미가 당기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찾아냈지?”
“연구했습니다.”
“시험을 해보았느냐?”
“해보았습니다. 십이면 십, 백이면 백 다 죽었습니다.”
오필리아는 자신 있게 말했다. 실제로 저번 몬스터 침공 때, 사로잡은 오크들로 실험을 해본 소녀였다. 그리고 이런 오필리아의 태도에 루이는 과연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회귀 이전에도 오필리아는 포로의 처우 이외에도 독을 사용하는데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 모습이 오필리아다워서 마음이 놓일 지경이었다.
“좋다, 사용해라.”
“감사합니다!”
이처럼 루이의 허락하자, 오필리아는 크게 기뻐하며 당장 휘하 부대를 이끌고서 도처에 서식하고 산짐승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하물며 활이 아닌 총으로 잡으니, 그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그리고 그렇게 크고 작은 산짐승 일백여마리를 사냥한 오필리아는 칼로 살을 갈라 피가 베어나도록 한 뒤에 독을 뿌렸다.
“포식해라.”
오필리아는 만면에 미소를 띠워 보이며 성채 앞에다가 들짐승들을 쌓아놓았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루이는 그 모습을 보며, 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래, 바로 이게 오필리아였다.
짧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다음날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보니 성채 앞에 잔뜩 쌓여있던 산짐승의 시체가 사라졌다. 핏물이 성채로 이어져 있는 걸 보니, 오크들이 가져간 모양이었다. 역시 오크 족장에게 통솔을 받고 있기는 해도 그 근본은 몬스터였다.
사람이었다면 결코 가져가지 않았을 것이다.
“길어야 이틀입니다.”
오필리아는 사라진 산짐승의 시체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말대로 저녁쯤 되자, 성채 위에 올라가 있는 오크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독에 중독된 오크들이 죽어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크들은 그것도 모른 채, 죽은 오크의 시체를 토막내서 다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족의 시체는 그저 먹기 좋은 식사거리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독은 다시 2차로 전염되어, 오크들을 떼몰살 시켰다. 정확히 이틀 만에 성채는 텅텅 비어버렸다. 물론 몇몇 오크들이 살아남긴 했으나, 그것도 곧 죽을 것처럼 숨을 꺽꺽 대는 놈들뿐이었다.
“성채에 들어가지 말고 불화살로 태웁시다.”
이처럼 시기가 무르익자, 오필리아는 멀리서 불화살을 날릴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 괜히 성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재수없게 전염병이라도 걸리게 되어버리면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루이는 곧바로 승낙한 뒤에 일제히 불화살을 성채를 향해 날렸다. 만약에 적들이 멀쩡했다면 근처의 호수를 이용해서 불을 금방 진압했겠지만, 성채 안에는 살아있는 오크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삽시간에 화마에 휩싸였다.
“잘 타는군요.”
오필리아는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활활 불에 타고 있는 성채를 밤새도록 쳐다보았다. 어쩐지 이번 일로 소녀의 광기를 일깨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이는 이걸 좋은 징조라 여겼다.
솔직히 이제까지 본 오필리아는 다소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래야지 흑장미지.’
루이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오필리아와 함께 불구경했다. 그리고 이처럼 성채를 불태우고 나니, 우리의 원정대를 가로막는 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해졌다. 너무 쉬워서, 여기가 정말로 랄프 산맥인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여전히 오크와 코볼트, 코볼트 그리고 때때로 오우거들이 공격해오기는 했지만 총 앞에서 제대로 힘을 쓰는 몬스터는 거의 없었다. 루이는 원정대를 이끌고서 전진 또 전진했다. 그리고 이윽고 광산에 도착하자, 곡괭이를 든 코볼트들이 광산 입구를 틀어막았다.
여기서 오필리아가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서 코볼트들을 향해 총을 쏘려했지만, 루이는 그것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코볼트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골치 아파진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저들과 협상을 해야겠구나.”
그도 그럴 것이 코볼트들은 광산의 요정이라 불릴 정도로 광산에 대해서 잘 아는 몬스터였다. 만약 그들이 광산 안에 들어가 틀어박히게 되어버린다면, 광산 안을 정리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모될 것이 틀림없었다.
때문에 루이는 코볼트들에게 싸울 의사가 없음을 전한 뒤에 코볼트 족장을 불러내었다. 그러자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개의 얼굴을 띄고 있는 코볼트 족장이 앞으로 나왔다.
“인간 족장이여, 우리가 할 말은 이것뿐이다. 크르륵, 이 땅에서 물라나라.”
그 말에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전쟁을 원한다면 전쟁을 치루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쪽의 이야기는 들어보고서 결정해도 되지 않겠나?”
“크르륵, 인간 족장의 말은 합리적이다. 듣겠다.”
“좋다, 코볼트 족장. 우린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물러날 생각도 없다. 나 또한 이 광산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다.”
코볼트 족장의 말을 중간에 자른 루이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희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광산은 원하지.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그대들을 고용하겠다. 광산의 광부로 말이다. 물론 대가는 지불하겠다. 그렇군, 그대들에게 금화를 주겠다. 그럼 그대들은 그 금화로 마을에서 식량이든 옷이든 뭐든 구입하는 것이다. 더불어 안전 또한 보장해주겠다.”
“크르륵, 우리는 인간을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면 믿지 마라. 본래 신뢰라는 건,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관계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
이렇듯 루이가 딱 잘라 말하자, 코볼트 족장의 말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코볼트 족장은 한참동안 고민하는 태도를 보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크르륵, 광산에서 채취하는 광물을 제공하겠다. 하지만 광산에는 접근하지 마라.”
“좋다.”
이처럼 간단하게 이야기를 끝마친 루이는 원정대로 하여금 나무 성채를 짓도록 했다. 이곳을 첫 기점으로 해서 새로운 마을을 건설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루이는 두 개의 광산을 가지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월정자매 님 : 원래 에이나는 이럴 용도없습니다. 애당초 노예 수급하려고 약혼한거였으니까요
나데스 님 : 히익?!
잘되기를 님 : 네, 감사합니다.ㅎ
아쉐니트 님 : 루이만 잘 되면 됐죠!
향향공주 님 : ㅋㅋㅋ 에이나가 어디서 감히 오필리아한테! 오필리아는 넘사벽이죠.ㅋㅋ
공부가싫어 님 : 다른 나라는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만... 등장 시킬까 말까 고민중에 있습니다. 등장하면 소설이 길어져서... 되도록 짧고 강렬하게 완결시키고 싶을 따름입니다.ㅋㅋ
AliceChong 님 : 그렇죠. 여기가 바로 천국! 옆에 몬스터만 옆다면요.ㅋㅋ
x8w 님 : 오오,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ㅎ
darknym 님 : 네? 에이나가요? 설마요!ㅎ 어림도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