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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재앙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루이의 군대는 히르카 부족의 영토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모든 것을 불태웠다.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첫째 날 불태운 찬드니는 시작에 불과했다. 루이는 한달에 걸쳐서 1만에 달하는 이민족들을 죽였고, 크고 작은 마을 마흔 개를 불태워버렸다.
때문에 2만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이 겨울의 끝자락을 버티기 위해서 인근 마을로 향했다. 하지만 인근의 마을이라고는 오백 명 남짓한 중소규모의 마을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적게는 일백에서 많게는 일천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몰리자, 식량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일주일이면 한 달 식량이 그대로 소모되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겨울의 끝자락이라서 먹을 것도 부족한 처지였다. 물론 마을 청년들이 꾸준히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해보고 있었지만, 갑자기 불어난 입을 채워주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피난민들은 모두 하나 같이 노인과 어린아이들뿐이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이 아니었다. 결국 소규모 마을의 입장에서 보자면 피난민들은 재앙,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여기서 오필리아는 한술 더 떴다.
“살아있는 이민족들의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버려라!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오필리아는 즐겁게 웃으며 끝까지 저항했던 이민족 전사들의 사지를 두 개 이상 잘랐다.
완전히 병신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피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구가 된 전사들을 이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몇몇 전사들은 자신을 버리고 가라며 호소했지만,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살아남은 노인들 중에 부모가 섞여있다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피난민들은 불구가 되어버린 전사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끝끝내 인근 마을까지 데려갔다.
실로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이로서 마을에서 부양해야 될 피난민이 보다 많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잔인했기에 아자젤을 비롯한 다른 장수들이 기겁하며 오필리아를 말렸다. 그러자 오필리아가 오히려 되레 호통을 치며 물었다.
“만약에 우리가 저들에게 패해서 포로가 되었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분명 이보다 더한 악독한 짓을 당했을 겁니다. 특히나 아자젤 아저씨의 부대는 다른 부대보다 훨씬 더 지독한 꼴을 당했을 겁니다.”
이리 말하니 아자젤을 비롯한 다른 장수들의 입이 꿀 먹은 벙어리마냥 다물어졌다. 확실히 여기까지 오면서 본 이민족들의 행태는 실로 악독했다. 심지어 하폰에서 납치한 여성을 여러 전사들이 윤간하는 것도 목격했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아자젤을 비롯한 다른 장수들은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물론 지금 오필리아가 하는 것이 같은 민족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필사적으로 말렸겠지만, 히르카 부족은 하폰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도리를 저버린 야만인들이었다.
괜히 심력을 낭비하면서까지 말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처럼 오필리아의 행동이 용납되자, 소녀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마냥 전장을 헤집고 다니며 사로잡은 전사들의 사지를 잘라내었다. 루이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했다. 이러한 오필리아의 모습이 마치 회귀 이전의 그녀를 보는 듯 했으니 말이다.
“아아악!”
“다리 좀 잘 썰어봐! 안 썰리잖아!”
“끄아아아악! 차라리 죽여! 죽이란 말이야!!”
“뭐야, 벌써 포기냐? 이민족놈, 아까 전처럼 악을 써보란 말이야!”
“으아아악!”
이민족의 팔다리를 도끼로 찍을 때마다 루이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웃음을 터트렸다. 반면에 차례를 기다리는 히르카 부족의 안색은 푸르죽죽하게 죽어갔다.
“뭐야? 지린 거야? 이거 영 안 되겠는데? 아래도 잘라버릴까?”
그 때, 다리가 잘린 히르카 부족의 전사가 실금을 하자, 병사가 낄낄 거리며 도끼로 고간을 겨누었다. 그러자 구경하던 병사들이 하나 같이 크게 소리치며 아우성 댔다.
“잘라라! 잘라버려!”
“이민족들! 좆을 좆대로 놀리더니, 꼴 좋구나!”
광기가 전염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광경에 질색하던 이들도 점차 환호하고 즐거워했다. 수백 년 동안 하폰을 약탈하던 이들에게 드디어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이 병사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지자, 아자젤이 루이에게 가서 말했다.
“오필리아의 행동이 지나칩니다! 주군께서 꾸짖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아자젤의 말에 루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잘 타일러보마.”
이렇듯 아자젤을 돌려보낸 루이는 곧장 오필리아를 호출했다. 그러자 악귀처럼 이민족의 팔 하나를 썰던 오필리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서둘러 피로 얼룩진 옷을 갈아입고, 최대한 예쁘게 꾸며 루이의 천막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안으로 들어서자, 루이가 옅은 미소로 소녀를 반겨주었다.
“이리 오거라, 오필리아.”
루이가 손짓하자, 오필리아는 감격해 마지않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둘러 루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소년은 이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대뜸 오필리아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아차 싶은 사이에 루이의 품에 포옥 안기게 된 오필리아였다.
“와, 왕자님…….”
오필리아는 당혹감 반, 기대 반 섞인 목소리로 루이를 불렀다. 그리고 그 부름에 루이는 다정하게 웃으며 소녀의 몸을 다독였다.
“아자젤이 말하더구나. 네 행동이 지나치고 있다는 것을.”
“왕자님께서 고치라고 한다면 고치겠습니다.”
루이의 말에 소녀는 마냥 이렇게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듯이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했다. 이에 루이는 만족했지만, 여기서 오필리아가 광기를 멈추었으면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내면 깊숙이 자리를 잡아주었으면 했다.
“아니다. 넌 잘 하고 있다, 오필리아, 너는 천재다.”
“처, 천재라니요……. 저는…….”
“오필리아, 너 자신을 낮추지 말거라. 난 너를 믿는다.”
“아아…….”
천천히 들어올려진 루이의 손이 오필리아의 뺨을 어루만지자, 소녀의 입술 사이로 황홀해하는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루이는 그 뜨거운 숨결을 피부로 느끼며 속삭였다.
“다만 네가 너무 뛰어나니 다른 이들이 감히 이해를 하지 못 하는구나.”
“이해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은……. 그러니 지금은 몸을 낮추거라. 그리고 곧 오필리아, 너의 뛰어남을 남들에게 이해시킬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그 때까지 몸을 움츠리거라.”
이러한 루이의 속삭임에 오필리아는 뭔가에 홀린 듯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루이의 목소리가 신이 속삭이는 것처럼 감히 저항할 수 없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오필리아는 신을 받드는 무녀처럼 조심스럽게 루이의 몸을 꼬옥 끌어안으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처럼 이야기가 잘 끝나자, 오필리아는 다음날부터 루이가 언질한대로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혹여 병사들이 과하게 나가려하면 점잖게 꾸짖으며 더 이상 하지 못 하도록 했다. 이에 아자젤과 다른 장수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루이가 제대로 오필리아를 통제했음을 확인했다.
한편 일만의 히르카 부족은 그대로 하폰의 북부를 휩쓸었다.
루이에게 당한 것을 하폰 북부에 푼 것이었다. 그야말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하폰의 귀족들은 난리가 났다. 잠시 주춤했던 이민족들이 돌연 악에 박쳐서 북부를 휩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군세가 무려 1만이었다.
웬만한 성은 일주일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실제로 하폰의 북부 경비를 맡고 있던 성채가 고작 오일 만에 함락되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민족들은 루이와는 다르게 약탈품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부 챙겨서 올려 보내라! 굶주리고 있을 동족들을 생각해라!”
루이가 덜컥 이만에 달하는 피난민을 만들어버린 탓에 부족장들은 점령지를 약탈하고 식량을 각각의 부족으로 올려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문에 루이의 군대가 히르카 부족의 마을을 휩쓰는 것보다 하폰 북부가 휩쓸리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렸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폰 입장에선 여전히 재앙이었다.
결국 사단이 났다고 생각한 귀족들이 잠시 싸움을 멈추고 한 자리로 모였다.
“대체 후작은 뭘 하고 있다는 말이오!”
누군가 쾅! 하고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며 분개했다. 북부에 기반을 둔 영주였다. 이번에 히르카 부족들에게 성 하나를 통째로 잃은 비운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후작은 히르카 부족의 마을을 불태우고 있다고 합니다.”
“불태우다니? 무슨 생각으로!”
“이민족들의 씨를 아주 말려버리겠다며 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1만에 달하는 이민족들이 죽였으며, 2만의 피난민들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보고대로라면 히르카 부족의 대다수가 봄까지 기다리지 못 하고 아사할 거라고 합니다.”
“…….”
이처럼 루이의 전과가 뚜렷하니 화를 낼 수 없게 된 귀족들이었다. 실제로 루이는 목을 벤 이민족들의 머리를 밀튼과 휴안의 진형에 보내기까지 했다. 내가 이만큼이나 잘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 작품 후기 ============================
오필리아는 사랑으로 다스리면 됩니다. 후후
역시 사랑은 만병통치약이죠.
나데스 님 : ㅎㅎ
메카닉덕후 님 : 제가 하폰 전기 쓸 때, 생각한 글 방식이 바로 빠른 전개입니다. 제가 쓴 소설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간의 흐름이 엄청나게 느립니다. 로얄만 하더라도 100편이 넘어가는 분량임에도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이 일주일도 채 안 됩니다. 이걸 고치고자 하폰 전기에선 빠른 전개를 택해본건데... 현재 고통받는 중입니다.ㅋㅋㅋ
아루깽 님 : ㅋㅋㅋ 루이가 귀족들에게 카와이한 엿을 먹여주고 있죠.ㅋㅋㅋ
우월정자매 님 : 솔직히 말해서 루시아와 루이를 이어주고 싶어요! 딱 눈 감고 써볼까 싶지만... 안 될 겁니다. 아마도요. 안 되겠죠. 그러니까 오필리아와 데이지를 고릅시다. 잘 크고 있는 꿈나무들이 아닙니까?
팀워크 님 : 네, 감사합니다!
향향공주 님 : 악독함은 넘사벽이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