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05화 (10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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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루이가 세운 전공이 이처럼 뚜렷하니, 더 이상 추궁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루이가 한낱 봉신에 불과했다면 새로이 명령을 내려서 하폰의 북부를 지키게 할 수도 있었지만, 하폰의 주인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이상 루이는 그 누구의 봉신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밀튼과 휴안은 아니었다.

물론 하폰의 국왕이 버젓이 살아있기는 했지만, 첫째 왕자 아슬롯이 병으로 죽자 그 충격을 이기지 못 하고 드러누운 상태였다. 즉, 제대로 국정을 보살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휴안과 밀튼이 왕세자 자리를 두고서 다투는 것인데, 과연 그 누가 루이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말인가?

물론 병력을 앞세워 강제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한 차례 이민족을 공격해달라고 부탁한 밀튼과 휴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루이에게 새로이 강제 혹은 부탁을 한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더욱이 루이는 현재 히르카 부족의 영토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어디 한군데 요새를 건설하지 않고 여기저기 들쑤기고 다니는 루이에게 전령을 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연락은 루이가 일방적으로 휴안과 밀튼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첫 번째 안건은 자연히 흐지부지 되었다.

“양 측의 병력을 동일한 숫자로 해서 보냅시다!”

북부에 기반을 둔 영주들이 큰 소리로 아우성쳤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이번에는 밀튼 쪽의 영주들이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다.

“동일한 숫자는 불가하오! 비율로 합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밀튼은 8만의 병사를 보유하고 있었고, 휴안은 13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예를 들어 각각 1만씩 빠지게 된다면, 7만과 12만이 되어버린다. 물론 단순히 숫자로 환산했을 때는 동일한 병력이 빠져나간 것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체감하면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세 사람이 다섯 사람을 상대로 싸우다가 갑자기 두 사람이 네 사람과 싸우는 격이었다. 다섯 명의 입장에선 고작 한 명이 빠진 것이었지만, 세 사람의 입장에선 고작 한 명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밀튼의 귀족들은 비율로 하자며 나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휴안의 귀족들 입장에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비율로 하게 되면 당연히 밀튼 측보다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휴안 측이 더 많은 병력을 보내야 되는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양 측의 귀족들은 한 자리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 했다.

오히려 면전 앞에서 상대방을 욕하며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물론 북부 측에 기반을 둔 영주들이 어떻게든 협상을 이어나가 보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북부의 귀족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이 아무리 울부짖는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입장에선 못 들은 척 자기들 이익만 챙기면 그만일 뿐이었다.

“이 개돼지만도 못 한 놈들!”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북부 영주들만 피를 본 셈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어영부영 시간이 흐는 동안 히르카 부족은 꾸준히 북부 영지를 약탈하며 돌아다녔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북부에서 약탈당한 성이 두 군데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두 개의 성도 버려지다시피한 낙후된 성이었기 때문에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이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서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이 털어먹어야 될 마을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전사들의 시선을 옮겨졌다.

“저 성 안에 분명 많은 계집들이 있을 겁니다.”

“속살이 아주 야들야들하겠지요.”

다들 군침을 뚝뚝 흘렸다. 어딜 가든지, 곱게 자란 여성은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그것이 귀족의 여식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은 더 이상 털어먹을 마을이 없자, 서서히 성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겨울의 끝자락에 달했을 때, 히르카 부족의 부족장들은 결단을 내렸다.

북부에 기반을 둔 필립 남작의 본성을 공격하기로 말이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필립 남작에게 전해졌다. 남작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휴안에게 애걸복걸했다. 자신의 성으로 병력을 보내달라고 말이다. 이에 휴안은 기꺼이 병력을 내주려고 했으나, 휘하 봉신들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여기서 우리만 병력을 빼게 되면 저 도적놈들이 어찌할 것 같소?”

“그렇소! 불가하오! 전하도 소탐대실의 우를 경계하셔야 합니다!”

귀족들은 한 목소리로 아우성쳤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필립 남작을 위로했다.

“야만인들이 성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남작의 성은 북부에서 견고하기로 소문난 성이 아닙니까? 저들은 분명 제 풀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만이든 오만이든 모여 봤자 야만인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귀족들이 다독여주자, 필립 남작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병력 요청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밤새 기도로 성과 가족이 무사하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남작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남작의 성은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물론 일만에 달하는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 중에 이천이 죽는 손실이 일어났지만, 중요한 것은 성이 점령당했다는 것이었다. 성 안으로 난입해 들어간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약탈했다.

살육과 방화를 저질렀으며 남자는 노예로 삼고, 여자는 강제로 범했다. 특히나 필립 남작의 아내는 더욱 모진 꼴을 당했다.

도망치지 못 한 남작의 아내는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에게 붙잡혀, 밤새 돌림을 당해야만 했다. 당연히 남작의 딸 또한 어미와 마찬가지로 범해졌다. 아직 나이가 열 살 밖에 안 된 여아였지만 이민족들은 그런 것이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남작의 아내가 목숨을 걸어 내보냈던 다섯 살 아들이 닷새도 되지 못 해 이민족의 전사들에게 붙잡혔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히르카 부족은 말을 타는 유목 민족이었다. 그들에게서 도망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붙잡힌 남작의 아들은 어미가 보는 앞에서 불에 구워져 죽었다. 귀족의 아이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진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을 눈앞에 보자, 남작의 아내의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녀는 돌바닥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 자살했다. 그 딸은 밤낮 없이 이어지는 이민족들의 돌림에 결국 버티다 못 해 죽고 말았다.

필립 남작, 본인을 제외하고 가족이 모조리 이민족의 손에 몰살당한 것이었다.

필립 남작은 피눈물을 쏟으며 휴안에게 재차 병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귀족들이 반대했다.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와서 병력을 보내봤자, 저들은 이미 자리를 떠났을 겁니다.”

이러한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휴안은 끝끝내 필립 남작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 했다. 그리고 이러한 휴안의 태도에 필립 남작은 피눈물을 쏟으며 소리쳤다.

“다음은 네 놈들 차례다!”

이리 소리친 필립 남작은 자신의 병력 삼천을 이끌고서 진형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필립 남작의 외침에 귀족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이민족들에게 성이나 빼앗긴 멍청한 놈.”

“하폰의 수치다!”

이들이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나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히르카 부족의 전사 숫자가 일만에서 팔천으로 줄었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공성을 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수성보다 4배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부족한 병력에서 이천씩이나 줄어들었으니, 자신들의 성이 점령당할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이러한 귀족들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히르카 부족의 족장들은 필립 남작의 성에서 사로잡는 남자들을 노예병으로 삼았다. 덕분에 그 군세는 팔천으로 줄었다가 일만 이천으로 증가했다. 물론 전투력 자체는 이천이란 공백만큼 줄어들었지만, 머릿수만큼은 확실히 챙긴 것이었다.

게다가 노예병의 장점은 동족상잔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쏘지 마! 난 하폰 사람이라고!!”

“으아악! 쏘지 말란 말이야!”

노예병을 앞세워 공격하니, 수성하는 입장에선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공격하자니 같은 민족이란 점이 걸리고, 공격을 하지 않자니 이민족들의 접근을 계속 허용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노예병들이 성문을 계속해서 두드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견고한 성문이라고 하더라도 거듭 두드려지면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결국 지휘관들이 선뜻 선택을 하지 못 하는 사이에 성문이 같은 민족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는 필립 남작의 성과 마찬가지였다. 난입해 들어온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이 성을 수비하고 있던 삼천의 병사들을 순식간에 몰살시키고 약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성 네 개가 더 약탈당하자, 히르카 부족의 군세가 어느샌가 이만에 달하게 되었다. 서서히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던 적들의 군세가 눈덩이 굴리듯이 부풀어 오른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귀족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당장 병력을 차출해서 보냅시다.”

합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병력의 차출은 절대 값이 아닌 비율로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북부에 휴안 측 귀족들이 더 많이 있었던 탓에 그리 결정된 것이었다. 원래부터 우물은 목마른 자가 파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결정이 내려지자 밀튼에서 칠천, 휴안에서 일만 이천씩 해서 도합 일만 구천의 병력이 북부로 보내지게 되었다.

히르카 부족의 군세의 대부분이 노예병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압도적인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망할 놈들! 일부러 늦게 지원했어!”

“개자식들!”

애당초 서로 왕좌를 두고서 다투는 군대였다. 화합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밀튼의 군대는 휴안의 군대가 이민족들과 싸우다가 동귀어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았고, 휴안의 군대는 졸지에 이만이나 되는 군세를 홀로 감당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압도적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전투는 도리어 이민족들에게 밀려서 쫓기게 되었다. 때문에 군대의 사기를 형편없이 추락했다. 휴안의 귀족들은 밀튼의 귀족들을 겁쟁이라고 비난했고, 밀튼의 귀족들은 싸움도 제대로 못 하는 멍청한 놈들이라며 놀려대었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자, 휴안의 군대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히르카 부족을 쫓아가 격살해야 되는 토벌대가 한 없이 느린 거북이마냥 느릿느릿하게 쫓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살판이 난 것은 히르카 부족의 족장들이었다. 적들은 한 없이 느리고 약한데, 자신들은 빠르고 강한 것이었다. 더욱이 자신들의 영토에 있는 루이의 군대도 점차 활동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 까닭은 역시 히르카 족장들과 똑같았다.

계속 마을을 약탈하다보니 어느샌가 약탈할만한 마을이 전부 불에 타버린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좀 더 큰 마을을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루이가 가진 일천의 병력으로 큰 마을을 공격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다.

이것이 일천의 군세를 가진 루이와 일만의 군세를 가졌던 히르카 부족의 족장들의 차이였다.

“아예 이 땅을 우리 땅으로 만들어버립시다!”

“크하하,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땅이다!”

히르카 부족의 족장들은 저마다 술잔을 돌리며 차례로 성을 약탈했다.

한편 루이의 군대는 약탈할만한 마을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러던 중에 한참 전투 중인 부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부족민들끼리 싸우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복수를 위해서 북부까지 올라온 필립 남작의 부대였다.

그걸 발견한 루이는 처음에는 못 본 척 할까 싶었지만, 이미 이렇게 본 이상 그냥 지나치는 건 군대 사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남작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남작을 구해주자, 필립 남작은 스스럼없이 루이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입을 열었다.

“후각 각하와 함께 행동하고 싶습니다. 히르카 부족을 모조리 몰살시킬 수만 있다면 제 영혼이라도 내어드리겠습니다!”

============================ 작품 후기 ============================

후훗, 개판이네요.

LunaticF 님 : 사랑으로 길들이는 거죠.ㅎㅎ

로넨그린 님 : 여기서 루이가 오필리아에게 키스 도장 한번 뙇 찍어주면...캬

향향공주 님 : 엌ㅋㅋ 그러네요. 역시 오필리아는 사랑이죠

아스라히i 님 : 아.. 루시아가 다른 놈팡이한테 시집이라니! 그런 꼴은 절대 못 봅니다. 역시 답은 루이와 루시아의 결혼이군요!

하늘낭인 님 : 히익! 그런 막장이라니!

메카닉덕후 님 : 조아라에서 근친은 막고 있습니다. 예전에 근친 한번 썼다가 연락 받았어요. 수정해달라고요.ㅋㅋㅋ

오호운 님 : 곧 있으면 왕좌의 게임 새로운 시즌 나온다는데! 정말 기대되더군요.ㅎㅎwinter is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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