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10화 (11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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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티본 평원은 하폰 북부에 위치한 너른 목초지로 서쪽으로 작은 산과 숲 정도만 있을 뿐, 전체적으로 지반이 평탄한 지형에 속했다. 때문에 큰 싸움을 벌이기에 딱 좋은 지형이었다.

히르카 부족장들은 하폰의 토벌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이곳으로 토벌대를 유인했다.

자신들의 고향과 닮은 이곳에서 토벌대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했지만 여전히 수성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그들은 지겨울 정도로 미련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용맹에 찬사를 보내고 싶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그래보았자, 미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하폰의 귀족들을 그들을 비웃으며 티본 평원으로 향했다.

결전의 시간이었다.

여기서 하폰의 토벌대가 이민족들을 몰아내면, 귀족들은 이 여세를 몰아붙여 남은 밀튼의 잔당들을 설득 혹은 토벌하며 깔끔히 정리한 뒤에 휴안을 왕위에 올리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국왕이 버젓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이미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었다.

애당초 밀튼이 이민족들의 손에 죽은 이상 하폰은 귀족들의 세상이 된 것이었다.

한편 루이는 밀튼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밀튼 형님이 벌써 죽을 줄이야.’

의외의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이 개입한 탓에 역사가 크게 바뀐 것이었다. 하지만 후회라는 감정은 크게 들지 않았다. 애당초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인과응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전황을 살펴봐야겠군.’

여차하면 휴안을 도와서 빚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하멜른은 힘이 부족한 상태였다. 당장에 귀족들에게 밉보이는 순간 한 줌의 잿더미로 바뀔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정보에 의하면 휴안이 밀튼을 버리고 군대를 뒤로 물렸다고 했다.

하지만 루이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휴안이 그럴 리가 없다.’

미련할 정도로 착한 그가 밀튼을 버리고 도망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귀족들이 뒤에서 흉계를 꾸민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휴안의 힘보다 귀족들이 가진 힘이 더 강하다는 뜻이었다.

안타까웠다.

꼭두각시가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빠르게 귀족들의 꼭두각시가 될 줄은 전혀 예상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루이는 안타까움에 탄식을 터트리면서도 이내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했다.

일단 귀족들은 이민족들을 하폰 북부에서 몰아낸 직후 밀튼의 잔당을 쓸어버리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분명 적잖게 시간이 소모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바로 루이의 차례였다. 물론 루이가 딱히 밀튼의 편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본래 중립의 입장이란 것이 그런 것이었다.

저들의 입장에선 밉게 보이는 것이다.

자신들은 이토록 고생해서 피를 흘렸는데, 중립이란 자들은 뒤에서 관망만 하며 자기 몸값과 이득만 야금야금 챙긴 것이다. 그러니 벌이 필요했다. 기득권이 된 귀족들은 전쟁 중에 이득을 본 중립파들을 잘근잘근 짓밟을 것이 틀림없었다.

철저한 양육강식이었다.

승리하면 모든 것을 얻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여기서 빚을 하나 만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빚을 발판 삼아서 저들의 심장에 꽂을 비수를 만들어야만 되었다.

“가자.”

이처럼 생각을 정리한 루이는 히르카 부족의 땅에서 벗어나 하폰 북부로 향했다. 그리고 이 시각, 하폰의 토벌대와 히르카 부족의 군세가 정면으로 맞닥들이었다.

양 측 군세가 살기등등했다.

히르카 부족은 루이에게 당한 것이 있었기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고, 하폰의 병사들은 이민족들에 의해서 조국이 잿더미로 변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들 각자 이유가 있는 만큼 살기를 주체하지 못 하고 있었다.

더불어 토벌대는 더 이상 노예병들은 동족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의 전투에서 밀튼이 했던 말이 뼈에 사무치도록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배신자다. 다들 밀튼의 말에 공감하며 깊이 새겨듣고 있었다.

물론 휴안이 여전히 노예병들을 설득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하물며 귀족들조차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다보니 제대로 노예병들이 설득될 리가 없었다.

결국 노예병들은 자신들이 버렸다고 생각하고서 새로이 전의를 다졌다.

희망을 놓은 병사만큼 두려운 것도 없었다. 마치 배수진을 친 병사들과도 같았다. 다들 살아남기 위해서 창을 꼬나 쥐었다.

마지막 결전이었다.

여기서 승리한 쪽이 북부의 지배권을 가져갈 것이 틀림없었다.

“돌격!”

전투는 휴안의 호령 소리에 맞춰 시작했다. 형식적인 것이지만 이들을 이끄는 총대장이 공식으로 내린 명령인 만큼 다들 죽을힘을 다해 고함성을 내지르며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히르카 부족의 부족장들 역시 고함성으로 맞받아치며 하폰의 토벌대를 맞상대였다.

순식간에 서로의 창칼이 오갔다.

양 측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첫 피를 흘린 것은 역시나 노예병들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악착같이 싸워보았자, 결국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지 못 한 노예병에 불과했다. 하폰의 병사들이 내지른 창은 여지없이 노예병들의 조잡한 갑옷을 꿰뚫으며 숨통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귀족들이 거느리고 있는 기사단이 적들을 유린하며 곳곳에서 노예병들을 지휘하고 있는 히르카 부족의 전사 혹은 부족장들을 골라서 죽였다. 일방적인 사냥이었다. 몇몇 기사들은 흥에 취한 듯이 적진 깊숙이까지 들어가서 살육을 즐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르카 부족이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전술을 변칙적으로 바꾸어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로 하여금 정면을 공격하도록 했다.

노예병들이 적들의 힘을 빼고서 좌우로 물러나자, 일만에 달하는 전사들이 말을 타고서 일제히 달려들었다. 성난 기세였다. 적들의 나약함에 방심하고 있던 몇몇 기사단은 순식간에 적들에게 목을 내주고 말았다.

전사들은 질풍처럼 달려들어 하폰의 토벌대를 휩쓸었다. 거센 반격이었다. 귀족들은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병사들을 지휘하지 못 했다. 보기 좋게 혼란에 휩싸인 것이었다. 게다가 전사들이 측면으로 공격해올 것이라고 생각한 탓에 많은 기사단이 좌우에 포진되어 있는 상태였다.

전술에서 진 것이었다.

귀족들은 다급히 좌우 날개를 맡고 있고 있는 기사단을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 호출을 받은 기사단은 즉시 중앙을 구하기 위해서 내달렸다. 물론 이대로 똑같이 되갚아줄 수도 있었지만, 귀족들은 병사들을 믿기 보단 자신의 기사단을 더 믿었다.

그들은 병사들이 히르카 부족의 전사 일만을 막지 못 하고 중앙까지 내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병사들은 죽을힘을 다해서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을 막아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약에 귀족들이 병사들을 좀 더 믿고서 좌우측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단으로 적진을 공격했다면 틀림없이 무수히 많은 부족장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진 상태였다.

귀족들은 도박보다는 안전을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 좌우측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단이 중앙에 도착해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과 맞붙었다. 부족의 전사들은 격렬한 전투를 치렀음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기사들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

비록 적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용맹이었다. 그러나 전투라는 게, 용맹가지고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젊은 전사들은 기사단이 내지른 창에 새빨간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하나둘씩, 그렇게 오천에 달했을 무렵 전사들은 비로소 작전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은 곧바로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을 놓칠 기사단이 아니었다. 하폰의 토벌대 역시 반격의 태세를 갖추며 히르카 부족의 뒤를 바짝 쫓았다.

부족장들은 전사들이 도망쳐오는 것을 보고는 좌우로 비켜섰던 노예병들을 도로 중앙으로 불러 모았다. 적들의 추격을 잠시라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몇몇 노예병들이 극렬하게 저항했다.

중앙으로 가는 순간 기사단의 말발굽 아래 죽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여지없이 히르카 부족의 손에 죽고 말았다. 애당초 노예병들이란 이런 존재였다. 방패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것이 이들의 유일한 쓸모였다.

결국 노예병들은 사방이 꽉 막히고 말았다. 앞으로 가도 죽고, 뒤로 가도 죽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의 기로에서 노예병들은 앞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혹시라도 운이 좋아, 기사단의 말발굽이 자신들을 빗겨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기사단과 마주한 순간 싹 가시고 말았다. 하폰의 기사단은 일말 자비 없이 노예병들을 철저히 짓밟았다. 설혹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뒤이은 병사들이 싸늘하기 짝이 없는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며 창과 검을 휘둘렀다.

노예병의 비참한 말로였다. 그리고 이처럼 노예병들을 처리하며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을 필사적으로 뒤쫓는데, 돌연 서쪽에서 수천의 군세가 나타났다.

“전군, 돌격!!”

하폰의 기사단이 중앙과 멀어지기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던 밀튼의 군대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밀튼이 서있었다.

“……휴안의 목을 벤다!”

밀튼의 두 눈이 사납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진흙탕 싸움!

향향공주 님 : 꼭 죽여야 될 놈이죠.ㅋㅋ

반딧가 님 : 그렇게 따지면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전쟁을 할 때 프랑스는 다른 나라한테 땅을 다 빼앗겨야 됩니다.

[炎風] 님 : 감사합니다. 더 힘내서 글 쓰겠습니다!

노스아스터 님 : 이번편에서 죽이고 싶었지만... 좀 더 있어야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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