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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휴안과 히르카 부족의 싸움은 순리대로 흘러갔다. 딱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휴안의 기사단이 히르카 부족의 전사들을 도륙내고 본진까지 말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승부의 갈림길이었다.
물론 휴안의 군대가 보다 빠르게 결착을 낼 수도 있었지만, 도박보단 안전을 선택하는 바람에 싸움이 이리도 지지부진하게 이끌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휴안의 기사단이 히르카 부족의 마지막 숨을 거두어가려고 하니 말이다.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밀튼의 군대가 발목을 붙잡았다. 서쪽 숲에서 잠자코 있던 밀튼의 군대가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그 선두에는 밀튼이 서있었다.
휴안의 귀족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것이 있었기에 다급히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걸 병사들이 제대로 들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밀튼의 군대가 자신들을 돕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같은 토벌대였으니 말이다.
이러다보니 찰나의 시간 동안 혼선이 빗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밀튼을 선두로 한 기사단이 순식간에 휴안의 군대를 덮쳤다. 마치 거센 폭풍을 보는 것만도 같았다. 밀튼이 지휘하는 군대는 휴안의 군대, 히르카 부족의 군대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휩쓸었다.
영문도 모른 채 창칼에 찔려 죽는 병사들이 수천에 달했다.
휴안은 자신의 형인 밀튼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병사들이 도륙당하고 있는 것을 보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해가 생겼구나!’
그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 직접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미 밀튼은 휴안의 짓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휴안을 보자마자 목을 베려 들 것이 틀림없었다.
그걸 귀족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모든 귀족들은 휴안을 뜯어 말리는 동시에 다급히 탈출을 시도했다. 기사단이 히르카 부족의 적진 깊숙이 들어간 이상, 이대로 밀튼의 군대를 맞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사단을 불러온다면 충분히 해볼만도 했지만 그러기 전에 자신들의 목이 먼저 날아갈 판이었다. 귀족들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밀튼의 기사단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렇게 된 이상, 밀튼의 군대와 아군을 공멸시킵니다. 덤으로 히르카 부족도 함께 공멸시키는 겁니다.”
프리지아 남작이 꾀를 내었다. 이대로 병사들을 놔두어 밀튼의 발목을 붙잡고, 그 사이에 자신들은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었다. 물론 귀한 전력인 기사단에게도 전령을 보내 전장 이탈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히르카 부족이 다시금 활개를 피울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밀튼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자신들 대신에 히르카 부족과 맞붙을 게 분명했다.
겉보기에 더없이 훌륭한 계획이었다. 귀족들은 이대로 밀튼의 군대가 이민족들과 공멸하기를 바라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티본 평원 초입에 존재하는 다리까지 송두리째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귀족들이 병사들을 버린 셈이었다.
병사들은 귀족들의 도주 소식에 이를 갈았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밀튼의 군대를 막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전방에서 활약하던 기사단이 줄줄이 전장을 이탈하자, 히르카 부족의 군대가 다시금 활개를 피우기까지 했다.
사방이 꽉 막힌 것이었다.
뒤늦게 휴안이 본진을 버리고 귀족들과 함께 도망쳤다는 것을 깨달은 밀튼이 분통을 터트렸다. 심지어 다리까지 불태운 그의 행동에 밀튼은 휴안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였다. 휴안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지금 당장 전투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밀튼은 히르카 부족을 몰아내기 위해서 휴안의 군대를 지휘하는 총책임자를 찾았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도망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일반 병졸들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높은 자가 백인장들이었지만, 그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다.
이들 모두 설득하는 동안 오히려 히르카 부족에게 당할 상황이었다.
결국 밀튼으로서는 남은 휴안의 군대와는 별개로 히르카 부족을 상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밀튼의 군대는 휴안의 군대를 한 차례 휩쓰느라고 피로한 상태였다. 게다가 지난 날, 히르카 부족의 군세를 뚫고 나올 때 쌓였던 상처와 피로가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다.
다들 지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히르카 부족을 이기기란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이민족을 상대로 후퇴라니!’
밀튼은 부득 이를 갈았다. 불명예도 이런 불명예가 따로 없었다. 물론 이 일을 가지고 밀튼이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할 후손은 단 한명도 없었지만, 이건 밀튼 스스로에게 치욕적인 일이었다.
“왕자님, 물러나셔야 합니다!”
“적들이 몰려옵니다!”
후퇴를 종용하는 부장들의 말에 밀튼은 눈을 부릅떴다.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 생각하며 후퇴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히르카 부족의 군세 뒤쪽에서 새로운 무리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적의 원군인가 싶었지만, 군대 깃발을 본 순간 밀튼은 자신의 원군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핫!”
밀튼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히르카 부족의 후미를 점령한 군대는 바로 루이의 군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밀튼이 루이의 군대를 발견했듯이 히르카 부족의 족장들 역시 루이의 군대를 발견했다.
족장들은 그 즉시, 육천의 군대로 루이의 군대를 공격하도록 했다. 겉보기에 루이의 군대가 삼천 조금 넘어 보이니, 그 두 배의 군대라면 충분히 섬멸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 큰 오산이었다.
“사격 개시!”
루이의 외침에 맞춰, 오필리아가 이끄는 흑장미 부대와 각 부대의 궁수들이 히르카 부족들의 군세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짙은 흑색 화약이 연기를 뿜어내고, 수백 개의 화살이 적들을 향해 쏟아졌다. 특히나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는 총성이 울려 퍼질 때면 적들이 어김없이 붉은 피를 뿜어내며 고꾸라졌다.
그 장면에 있는 힘껏 고함성을 터트리며 달려들던 병사들도 주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마법이니, 저주니 떠들며 몸을 벌벌 떨었다. 그것은 더없이 즐거운 광경이었다. 드래곤이 내뿜는 숨결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루이는 사격을 모두 끝낸 병사들을 뒤로 물린 뒤에 총공격을 명령했다.
적들이 혼란에 빠진 순간만큼 나약한 순간은 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 대장의 목을 베는 자에게는 금화 다섯 개를 주겠다!”
“와아아아!!”
적 대장의 목에 포상금이 걸리자,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귀가 확 뜨인 병사들은 저마다 무기를 치켜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별도의 수입은 항상 즐거운 법이었다. 개인을 위해서 쓰거나, 가족을 위해서 쓰거나, 계집질을 하기 위해서 쓰거나, 술을 마시기 위해서 쓰거나, 도박을 하기 위해서 쓰거나……. 돈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했다.
다들 혼란에 빠진 적들을 유린하며 적 대장의 수급을 챙겼다.
그리고 이처럼 이천의 군세를 전멸시킨 루이의 군대는 거듭 히르카 부족의 본대를 향해 전진했다. 당연히 이 소식을 전해들은 히르카 부족의 부족장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했다. 앞에는 휴안의 군대가 있었고, 옆에는 밀튼의 군대가 있었다. 심지어 후미에는 루이의 군세가 버티고 있었다.
흡사 사방이 꽉 막힌 것만 같았다.
물론 한 방향을 뚫으려고 한다면 뚫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뒷덜미가 물어뜯기에게 되는 것이었다. 이들은 잘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었다. 태반이 노예병들이었고, 소수가 전사들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끝까지 싸우던가, 정예병들을 이끌고 도망쳐야 되었다.
“저들은 지쳤다! 여기서 버티면 우리가 승리한다!”
“이미 이 땅에 이주해온 부족민들이 태반이오! 우리가 물러난다면 그들이 어찌 될 것 같은가!”
히르카 부족의 부족장들은 어리석지만, 우직한 선택을 했다.
이곳에서 결판을 내자고 말이다. 실제로 모든 군세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물론 루이의 군세가 기운 넘치는 상태이긴 했지만 삼천에 불과했다. 히르카 부족의 부족장들은 죽음을 각오하고서 각기 전선을 지키도록 했다. 전사들 또한 부족장들의 말에 따라 하폰의 토벌대에 용감히 맞서 싸웠다.
자기들만 살겠다고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친 휴안의 귀족들과는 사뭇 대조되는 태도였다.
비록 유목민족이기는 했으나 그들은 진정한 전사였다. 그러나 존경이나 경애할 뜻은 없었다. 저들은 분명한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폰의 영토를 침범해서 약탈하고 무단으로 땅을 점령한 침략자였다. 루이는 자비 없이 그들을 공격했다. 밀튼 역시 자신의 군대를 이용해서 히르카 부족들을 압박했다.
히르카 부족은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잘 훈련된 병사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이 그들의 정해진 운명이었다. 물론 루이의 회귀 이전에 이들이 대체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았을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루이는 마지막까지 저항한 히르카 부족의 부족장의 목을 베는 것으로 전쟁의 끝을 알렸다. 노예병들은 자신들을 전선으로 내몰았던 히르카 부족이 전멸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얽히고설킨 더러운 싸움이긴 했지만, 결과는 썩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이번 일로 휴안의 군세가 형편없이 밀튼에게 밀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버려진 병사들만 하더라도 족히 일만이 넘어갔다. 물론 여기서 밀튼이 고분이 휴안에게 일만의 군세를 돌려준다면 모를까, 바보가 아닌 이상 고분이 넘겨줄 리가 없었다.
어딘가에 가두어 둔 뒤에 노역을 시킬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면 몸값을 요구하거나 노예로 팔아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쟁에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아, 물론 노예병들 역시 같은 신세였다.
‘……이 기회에 모조리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루이는 포로로 붙잡은 노예병들과 휴안의 군대를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처럼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밀튼이 다가왔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다. 루이는 인기척을 느끼고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피로 온 몸이 얼룩져 있는 밀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악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였다. 괜히 휴안의 귀족들이 지레 겁을 먹고서 도망친 게 아니었다. 루이는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오랜만이라……. 그래,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겠지.”
밀튼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루이의 가슴 한켠에 싸해졌다. 어딘가 낯이 익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곧 루이의 머릿속에 현재 밀튼의 모습과 회귀 이전의 밀튼의 모습이 겹쳐서 보였다.
그때도 이러했다.
피에 젖은 밀튼이 루이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니,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밀튼의 목을 베었던 풍경과 비슷해보였다. 기실 전쟁터의 풍경이란 거기서 거기였다. 온 천지가 시체로 가득하고, 피비린내가 나고, 진절머리가 나는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은 전쟁의 연속이었구나.’
전쟁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런지 회귀 이후의 삶도 전쟁으로 점철되어있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노릇이란 말인가? 광대노릇이 따로 없었다. 루이는 저도 모르게 쓰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웃는 것이냐?”
“형님을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천연덕스런 루이의 대답에 밀튼은 쓰게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그 또한 루이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막내인 루이에게 도움을 받기까지 했다. 실로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니 웃기구나. 그래, 루이. 전쟁을 치러보니 어떻더냐?”
“지독합니다. 그리고 추악합니다. 하지만…….”
잠시 말끝을 늘어트린 루이는 멀리서 포로들을 수습하고 있는 오필리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름답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독하고 추악했다. 하지만 승자의 입장에서 있으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은 또 없었다. 밀튼은 조용히 루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되었구나.”
기특하단 어투였다. 흡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법한 소리였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았다. 생각해보면 루이와 밀튼의 나이 차이도 꽤 있는 편이었다.
‘아아.’
문득 자신의 군략이 밀튼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고 배운 것이었다. 한 때, 왕위 때문에 형의 목을 베었지만, 그는 루이에게 있어서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던 루이는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궁금하신 게 있어서 절 찾아오신 게 아닙니까?”
“…….”
루이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자, 밀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실제로 밀튼은 한 가지 용무가 있어서 루이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화승총의 존재였다. 비록 멀리 떨어져서 전투를 치렀다고는 하지만 화승총의 존재를 감출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포로로 붙잡은 이들을 심문만 해보아도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화살도 쏘지 않고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 그것은 실로 무서운 무기였다. 밀튼조차도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헛된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점차 윤곽이 뚜렷해질수록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화승총이야 말로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무기라는 것을 밀튼은 확신하고 있었다.
“화승총 열 정을 드리겠습니다. 설계도면도 챙겨드리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것이고, 좋게 말하며 이게 최선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밀튼은 후자로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더 달라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밀튼의 욕심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막내에게 추태를 부릴 정도로 막나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실제로 밀튼은 이 이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승총 열 정을 대가로 루이에게 그 값을 지불하려고 했다. 이에 루이는 금화 대신에 포로를 요구했다.
그들을 하멜른으로 데려가서 영지민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더욱이 명분으로는 랄프 산맥 개척이란 것을 앞세우자, 밀튼은 아무런 의심 없이 흔쾌히 포로를 루이에게 넘겨주었다.
겉보기엔 서로가 win-win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살펴보자면 그리 밝지만은 못 했다. 일단 포로들만 하더라도 당장 밀튼에게는 부담이었다. 무려 이만이 넘어가는 포로들이었다.
그들을 전부 먹여 살리는 것은 무척이나 벅찬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루이가 포로들을 넘겨 달라다고 하니, 밀튼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더욱이 헐값이긴 했으나, 루이가 화층총 열 정과 함께 약간의 금화를 지불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루이는 화승총 열 정을 넘겨주면서도 자신만만했다.
‘밀튼은 화승총을 만들어내지 못 할 것이다.’
설혹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대포처럼 변형된 것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화승총이란 게, 단순히 총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화약이 필요했고, 그에 따른 재료가 필요했다. 그것들을 전부 조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밀튼의 눈앞에는 휴안이란 적이 있었다.
전쟁 도중에 무기를 개발한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최소한으로 잡아도 3년은 걸릴 일이었다.
이처럼 내면의 계산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에도 불구하고 두 왕자의 거래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루이와 거래를 끝마친 밀튼은 루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더 했다.
그건 바로 휴안이 버리고 간 병사 일만을 루이에게 무상으로 넘겨주는 것으로 북부에 남아있는 히르카 부족의 잔존 세력을 일소시키는 일이었다. 당장 밀튼에게는 북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반면에 루이는 영지민으로 쓸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서로의 이해가 일치되자, 루이는 기꺼이 휴안이 버리고 간 병사 일만을 건네받았다.
이후, 밀튼은 정비를 끝마치자마자 북부를 떠났고 루이는 일만을 더한 이만 오천에 달하는 병사들을 이끌고서 하폰의 북부를 정리했다. 호랑이가 날개를 얻은 격이었다. 더욱이 휴안이 버리고 가기는 했으나, 이들 모두 훈련이 잘 된 병졸들이었다.
루이는 곧 군대를 나누어 히르카 부족이 점령하고 있는 성을 각기 공략하도록 했다. 비록 하폰 북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이민족들의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오합지졸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전사들은 모조리 일전의 전투로 죽은 지 오래였다.
때문에 히르카 부족은 별다른 힘을 쓰지도 못 하고 모조리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이 때, 루이는 적들을 포로로 삼거나 죽이는 일은 각 지휘관들의 판단에 맡겼는데, 재밌게도 오필리아와 필립 남작은 부족민들을 보는 족족 모조리 죽였고, 아자젤과 호울, 피터는 각각 많은 수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이러한 결과에 루이는 포로의 유무에 상관없이 각 지휘관들을 칭찬했다. 더불어 북부를 마지막까지 붙들어 매고 있던 히르카 부족을 크게 쳐부순 루이는 이 날, 한바탕 크게 잔치를 벌여 장졸들을 위로했다.
이 때, 루이는 각 지휘관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오필리아의 나이가 아직 어리기는 했지만, 루이는 이 날만큼은 특별히 오필리아의 음주를 허락했다.
당연히 오필리아는 기쁜 마음으로 루이가 내려주는 술잔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그 모습이 도저히 이민족들을 학살하던 지휘관이 모습이 아니어서, 지켜보던 아자젤과 호울, 피터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요물이 따로 없다면서 말이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은 오필리아와 소녀의 양부인 필립 남작이 그 세 명에게 따로 눈총을 주었다.
============================ 작품 후기 ============================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서 일단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