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12화 (112/158)

0112 / 0158 ----------------------------------------------

[다른 삶]

[다른 삶]

금의환향이었다.

무수히 많은 재화와 포로 그리고 승리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다수가 생존했다는 것이었다. 금의환향에 필요한 조건은 모조리 갖추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하폰 북부로 향했던 병사들을 맞이하는 영지민들의 환호성이 유난히도 컸다.

영지민은 그간 모아둔 봄꽃잎을 가져와 병사들을 향해 뿌렸다.

온 세상이 꽃잎으로 물드는 듯했다. 분홍빛이었다. 루이는 내심 감탄했다. 실로 멋진 풍경이었다.

역시 승리라는 것은 달콤했다.

루이가 손을 들자, 모든 영지민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양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뒤이어 지휘관들이 손을 흔들자,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수줍어하던 병사들도 하나둘씩 손을 들더니, 나중에 가서는 루이보다 더 열성적으로 손을 흔들 정도였다.

소란이라면 소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찌나 시끌벅적하던지, 엘프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서 구경나올 정도였다.

포로들은 그런 엘프들을 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하긴 엘프란 게,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시아는 영주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가.’

루이는 타고 있는 말을 다그쳐 좀 더 빠르게 영주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윽고 영주관에 가까워지자, 피처럼 붉은 융단이 백 미터 이상 깔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더욱이 양 옆으로는 병사들이 나열해 서있었다.

인간부터 시작해서 엘프와 오크, 심지어 견인족들도 있었다.

혀를 내두를 광경이었다.

특히나 이 광경을 보는 필립 남작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오필리아는 남작의 양녀라고 벌써부터 아버지! 라고 소리치며 남작을 챙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병사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꽤나 오랫동안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에서 내린 뒤에 융단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영주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병사들이 한쪽 무릎을 굽히며 루이에게 예를 취했다.

무척이나 멋들어진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감상하며 절반 정도 걷자, 루이를 대신해서 영지를 돌보고 있던 아놀드와 아벨 그리고 카샨, 레베카, 아만다, 클라우드……. 심지어 세람까지도 보였다.

‘많이 컸구나, 세람.’

하마터면 못 알아 볼 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가 잠시 북부로 나가있는 동안 세람의 키가 루이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었다. 역시 견인족이라서 그런지 성장이 무척이나 빨랐다.

그래도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모양인지, 루이의 눈길을 받자마자 꼬리를 맹렬하게 살랑살랑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세람이다. 물론 클라우드의 눈빛을 한번 받자마자 깨갱하며 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서, 루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주관 입구에 두 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루이의 웃음이 뚝 멈췄다.

“루시아. 비비안 누님.”

아단트 여신의 현신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와 여인이었다.

루이는 보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두 팔을 벌리자, 루시아와 비비안이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루이의 품에 안겼다.

“오라버니!”

“루루!”

솜털보다도 가벼운 두 여인이었다. 루이는 혹여나 두 사람이 다치지는 않을까 싶어 조심조심 끌어안아주며 얼굴을 확인했다. 사랑스런 누이들이었다. 다만 눈 밑의 기미가 마음에 걸렸다. 그 동안 밤잠을 설친 걸까? 루이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며 루시아와 비비안의 눈가를 어루만져주었다.

“얼굴이 왜 이렇습니까?”

루이의 말에 두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이처럼 루시아와 비비안, 두 사람이 쉬이 대답을 못 하자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올렸다.

“영주님이 걱정되어서 매일밤 늦게까지 기도를 올리시느라 이리 되신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루이의 기분이 한없이 치솟았다. 동시에 미안하기도 했다. 자신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밤새 푹 잤으니 말이다. 루이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두 사람의 이마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그리고는 손을 꼭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갑시다.”

이리 말한 루이는 두 사람을 데리고서 영주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루이가 곧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만찬이었다. 루이는 자리에 앉은 뒤에 루시아와 비비안을 양 옆에 앉혔다. 그리고 뒤이어 차례대로 아놀드와 아벨, 아자젤이 자리에 앉고 카샨과 클라우드, 필립 남작, 오필리아, 레베카가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루이는 두 공주와 자신의 가신들을 둘러보며 잠시 감회에 잠겼다.

일순 콧등이 시큰해질 정도로 감정이 요란하게 휘몰아쳤다.

회귀 이전에 비해서 너무나도 풍요로웠다. 이전에는 고독했다면 지금은 시끌벅적했다. 루이는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다들 호감이 가득 담긴 눈인사를 하며 루이의 안녕을 기원했다.

행복하다 못 해 까무러칠 정도였다.

그렇다, 바로 이런 풍경이었다. 루이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왕위에 올라 이런 풍경을 줄곧 보기를 소망했다. 더불어 자신의 옆에 루시아가 함께 해주기를 원했다. 사랑스런 누이와 함께 하는 자리였다. 루이는 남몰래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려 루시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어린 누이의 입술 사이로 앗 하는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루이의 손이란 걸 깨달은 루시아는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작은 손을 연신 꼬무락거리며 루이의 손을 꽉 붙잡았다.

더 이상 놓치기 싫다는 듯이 말이다.

루이는 그것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일단 식사부터 하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숟가락으로 그릇을 쳤다. 그러자 다들 그간 못 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놀드와 아벨 그리고 아자젤은 마치 친형제인 것처럼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했다. 물론 아벨은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아자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놀드는 그런 아자젤의 말에 맞장구치며 웃고 있었다.

아벨과 아자젤이 서로 앙숙처럼 지내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샌가 형제만큼이나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좀 더 넘어가자, 필립 남작이 카샨과 클라우드, 램지를 붙잡고서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혹시 이종족과 함께 식사하는 걸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반기는 듯했다.

다행인 일이었다.

그리고 호울과 피터는 용병과 자유기사 출신답게, 맛깔난 입담으로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식당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비비안은 그런 그들을 구경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새침하기만 했던 그녀의 마음이 여기선 다정다감하게 녹아있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분명 하멜른이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인 것이 틀림없었다.

“오라버니.”

문득 루시아가 루이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불렀다. 아직 빠지지 않은 젖살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루이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사랑스런 어린 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물론 눈도 마주쳐주었다. 그러자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어쩔 줄 몰라해하는 루시아다.

루이는 그런 어린 누이의 반응을 즐기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처럼 식사가 진행되자, 루시아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루이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루시아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재밌게만 들렸다. 물론 비비안도 언제 다른 이들을 구경했냐는 듯이 루이와 루시아 사이에 끼어들어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 모두 어디 한군데 빠질 데 없는 뛰어난 미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듣기에 더없이 좋았다.

‘좋구나.’

절로 행복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될 수 있다면 이 행복을 평생토록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휴안은 밀튼에게 이리저리 밀리며 도망쳐 다니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기반이 튼실한 휴안이었으니 말이다. 따르는 귀족이 무수히 많다는 것은 그 바탕에 깔린 자금과 병사가 풍요롭다는 뜻이었다.

간단히 무너질 휴안이 아니었다. 루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돌연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누이와 마주하고는 상념을 떨쳐내었다. 그래,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루이는 다정다감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했지?’라고 물렀다.

당연히 이 질문을 하는 동시에 루이는 두 누이에게 바가지를 긁히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