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13화 (11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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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

루이는 그간 고생한 영지민들을 위해서 축제를 열어주었다.

축제는 삼일동안 열렸으며, 그 누구라도 웃고 즐기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특히나 루이가 이번에 노획한 전리품들을 상인들에게 팔아서 술과 고기 등을 구입했기 때문에 모든 게 풍요로웠다. 견인족들은 풀풀 풍기는 고기냄새에 이끌려 하멜른을 방문 했고, 엘프들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이끌려 하나둘씩 나왔다.

고아원에서 키워지던 오크들 또한 어느새 훌쩍 커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더불어 일찍이 아만다가 말한 대로 오크들에게 예의와 풍습 그리고 대화를 가르치자 차츰 지성을 지니기 시작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다소 어색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성장 속도가 빨랐던 데다가 힘도 좋았다. 나무꾼 둘 셋이 달라붙어도 베기 힘든 아름드리 나무를 오크 혼자서 거뜬히 베었으니 말이다.

오크를 상대하기 위해선 장병 두셋이 붙어야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무튼 축제 기간 동안만큼은 모든 종족이 차별 없이 광장에 모여서 웃고 떠들며 즐길 수가 있었다. 포로들 또한 축제 기간 동안만큼은 하멜른까지 오느라 지친 몸을 잠시 쉴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삼 일간 치러졌던 축제가 마무리 되자, 하멜른은 다시 일상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그간 거리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공연단과 재주꾼들은 다음 대목을 기약하며 다른 영지로 정처 없는 여행을 시작했고, 광장과 대로를 점거했던 노점은 대부분 철거를 끝내 휑한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농기구를 든 영지민들이 가득 채우니, 금세 빈자리가 채워졌다. 게다가 축제 기간 동안 삼삼오오 짝을 이룬 영지민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엘프와 인간, 인간과 견인족, 인간과 오크 등 이색적인 짝들이 단연 돋보였다.

루이는 혹시 엘프와 견인족 혹은 엘프와 오크 같은 이종족 짝은 있지 않을까 싶어 이곳저곳 살펴보았으나, 인간만큼이나 여러 종족을 두루 좋아하는 종족은 또 없었던 모양인지, 무조건 인간을 중심으로 짝을 이루고 있었다.

만약에 학자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두 눈에 불을 켜고서 그 이유를 알아내려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루이의 영지에는 학자가 없었다. 그나마 학자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역시 필립 남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필립 남작은 축제 기간 동안 카샨과 클라우드, 램지 이렇게 넷이서 담합해서 자주 어울려 다니는 바람에 그런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였다.

루이는 눈에 보이는 변화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문득 기분 전환 삼아 영지를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특히나 지난번에 코볼트와 계약을 맺은 광산 바로 아래에 건설 중이던 마을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제 그리로 포로들을 슬슬 옮길 때가 되었다.

때문에 겸사겸사 순시를 하기 위해서 루이는 데이지로 하여금 아벨을 부르게 했다.

“오라버니, 저도 가고 싶어요!”

그런데 이 소식을 또 어디서 들었는지, 루시아가 두 눈을 반짝이며 루이의 집무실을 쳐들어왔다. 더불어 소녀의 발치에는 두 마리의 암수 원숭이가 자리해있었다. 지난번에 루이가 사준 원숭이들이었다.

예전에는 꽤 어린태가 났는데, 원숭이도 오크만큼이나 성장이 빠른 모양인지 제법 덩치가 커졌다. 루이는 잠시 원숭이 두 마리를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자신의 옷자락을 꽉 붙잡는 어린 누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함께 가자구나.”

“와아!”

이처럼 루이가 허락해주자, 루시아는 탄성을 터트리며 그대로 루이의 품에 포옥 안겼다. 올해로 열한 살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어린 누이였다. 작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루시아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는 뒤늦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아벨과 함께 순시를 떠났다.

‘하멜른도 많이 변했구나.’

맨 처음 아놀드와 함께 하멜른의 터를 잡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주공산이었다. 그저 카샤의 가루 하나 믿고서 달려든 것이었다. 그런데 카샤의 가루가 회귀 이전보다 훨씬 더 비싼 값에 팔리면서 무수히 많은 노예를 구입할 수가 있었다. 아니, 노예를 구입하기만 할 뿐이던가? 아슬롯과 휴안에게 막대한 양의 금화를 주어 직접,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런 도움으로 하멜른은 꾸준히 성장할 수가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하멜른의 소식에 화전민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매일 같이 찾아와 성문을 두드렸다. 무서울 만큼 빠른 성장세였다.

실제로 하멜른은 이 지역에서도 손에 꼽히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상인이라면 한번쯤 꼭 들려야 되는 장소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용병들이 호위나 여러 가지 일거리를 노리고서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되었다.

“오라버니, 저길 보세요.”

문득 루시아가 루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이에 어린 누이가 바라보는 곳을 보니, 한 엘프 남성이 하프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보였다. 물론 거리에서 음유시인이 노래를 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광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음유시인이 엘프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와아.”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루시아는 물론이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서 음유 시인의 노래를 들었다. 좋은 현상이었다. 볼거리가 많고,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은 사람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니 말이다.

루이는 음유 시인의 노래를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동전을 던져주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그런 루이를 따라 동전을 던졌다. 이에 음유 시인은 멋들어지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동시에 한 여성이 앞으로 나와서 동전을 줍더니, 엘프와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었다.

‘과연.’

엘프가 어째서 음유시인을 하나 했더니, 자신의 연인인 인간 여성을 부양하기 위해서 이렇게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착착착 굴러가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엘프에게 금전 감각을 가르쳐준 것도 아놀드였다.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거리를 좀 더 돌아보았다. 그러자 염색장, 대장간, 푸줏간, 빵집 등 구역별로 나뉘어 있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물론 어떤 이의 눈에는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애당초 마을이 어느 정도로 커질지도 모르는데 이렇게나 간격을 두고서 세워져 있다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을이 도시가 되어, 어느 정도 인구를 갖추게 된다면 이보다 더 효율적인 것은 또 없었다. 더욱이 시민들이 지내는 거주지까지 분리되어 있으니, 쾌적한 삶이 보장되게 된다.

세상에 그 누가 자신의 바로 옆에 대장간이 들어서기를 좋아하겠는가? 신경쇠약에 걸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물며 염색장 같은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염색에는 여러 가지 천연재료가 들어가지만 그 중에서 오줌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맥주를 많이 마신 사람의 오줌을 최상으로 쳐주기까지 하겠는가?

이러다보니 각 역할에 맞춰 구역별로 나누는 것이 영지민들의 삶을 보다 쾌적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 아주 조금만 불편을 감수한다면 나중에 평생토록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마을이 도시로 성장해야 된다는 단서가 붙어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놀드도 참 대단하군.’

이 모든 것을 홀로 생각하고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놀드가 어떻게 해서 랄프 산맥에 마을을 만들어 카샤의 가루를 채집할 수 있었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비범한 사람은 어디서든 빛이 나는 법이었다.

루이처럼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은연 중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여기서 노력하고 질투하고 소리를 질러 봐도, 자신의 재능은 그들의 천재성에 조금도 미치지 못 했다. 그나마 루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재주를 흉내 내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한심할 따름이었다.

“오라버니.”

그 때, 루시아가 루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제 오라비가 무언가 자책하고 근심하는 것 같자, 걱정이 된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런 어린 누이의 위로에 루이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들의 도움을 받아, 보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루이는 루시아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반드시 이 모든 것을 극복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멜른의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고, 휴안과 밀튼의 싸움을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차후에 일어나게 될 반란군의 지휘관 중에 태반이 루이의 손에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철가면 하나뿐이었다.

그의 행방만 알아낸다면 반란은 이미 진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루이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루시아와 함께 동문을 향했다. 그러자 일찍이 아벨의 명령을 받고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그 뒤에는 많은 수의 포로가 굴비 엮듯이 묶여있었다.

다들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지금부터 랄프 산맥 내부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초입에서 조금 더 안에 들어간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루이는 조용히 그들을 둘러보고는 이윽고 아벨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아벨이 병사들을 호령해 포로들이 이끌도록 했다.

이제부터 이들은 일전에 루이가 코볼트들과 계약한 광산 바로 아래에 만들어진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위험하다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여정이었다. 분명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이 마을을 노릴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불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성벽을 완성시킨다면, 이들은 노예에서 벗어나 하멜른의 어엿한 영지민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루이가 이들에게 약속한 것이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이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각자의 이해가 일치되는 순간이었다. 루이는 보다 안정적으로 코볼트에게 광석을 공급받고 싶어 하는 것이고, 이들은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평민이 되고자 할 것이다.

이러다보니 포로들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병사들의 지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이제 남은 건, 영지를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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