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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
테온과 쿤에게 목숨을 구함 받은 휴안은 두 사람을 크게 치하한 뒤에 자신의 진채로 돌아와 군사들을 정돈했다. 비록 첫 싸움에서 지기는 했지만, 4만의 용병이 합세한 휴안의 군세는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군중을 정돈한 휴안은 여러 귀족들 앞에서 쿤을 칭찬하며 자신의 곁에 두었다. 그러나 하찮은 평민이 휴안 왕자의 곁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귀족들은 마치 사전에 모의한 것 마냥 입을 모아 말했다.
“쿤이라는 자는 근본조차 모르는 자입니다. 혹여 이것이 밀튼의 계략은 아닐까 걱정됩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혹여 왕자님의 위명에 누가 될까 걱정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들 하나 같이 그럴 듯한 말을 하며 휴안을 설득했다. 그러나 휴안은 밀튼과 호각으로 싸워 자신을 구해준 쿤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에 귀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쿤이야 말로 밀튼을 막을 수 있는 사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렸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라고 할 수 있었다. 이에 모든 귀족들이 기겁하며 한 목소리를 내었다.
“검술조차 모르는 평민에게 기사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사 작위까지 내리는 건 지나친 처사입니다!”
심지어 몇몇 귀족들은 왕자가 망령에 들었다면서 군세를 이탈하려고까지 했다. 이에 휴안은 크게 분개하면서도 쿤의 기사 작위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분통을 터트릴 일이긴 했지만, 귀족들이 대거 이탈하게 되면 밀튼의 군세를 상대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휴안의 군세는 보급의 대부분을 귀족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휴안은 좋든 싫든 간에 쿤의 기사 작위를 취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쿤은 서운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담담히 받아들였다. 일찍이 테온이 언질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테온은 휴안의 곁에 있으면서 왕자와 귀족들의 힘을 구조를 단번에 파악했다.
‘너무 우유부단하군.’
조금은 강단 있게 밀어붙여도 될 일에 귀족들의 눈치를 너무나도 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왕에게는 왕의 직무가 있듯이 장수에게는 장수의 직무가 있었다.
즉, 가장 좋은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자리에 있는 자가 유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군영에 모여 있는 귀족들 모두 그다지 전략이 능통해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휴안이 좀 군략을 볼 줄 알았지만, 밀튼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였다.
특히나 병사의 질에서도 차이가 났다.
이쪽의 주력이 징집병과 용병인데 반해서 상대는 잘 훈련된 상비군들이었으니 말이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밀튼에게 밀릴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그 차이는 명확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휴안은 4만의 용병들이 그나마 전투에 능한 자들이라는 것을 활용해서 중앙에 내세워 밀튼의 진중을 휩쓸어 버리려고 했다. 반면에 밀튼은 휴안이 고용한 용병들이 대거 중앙으로 몰리는 것을 보고는 선두에 위치한 병사들에게 금화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이 되자, 휴안은 날이 새기가 무섭게 전투를 개시했다.
이 때, 테온과 쿤은 귀족들의 시기에 밀려서 중군에 위치하게 되었다. 휴안은 이 둘을 반드시 선봉에 내세우고 싶어 했지만, 귀족들의 불과 같은 시기와 질투를 막을 길이 없었다. 때문에 선봉은 오롯 귀족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하튼 4만의 용병들을 이끌게 된 귀족들은 개전을 알리는 북소리에 맞춰 밀튼의 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밀튼은 호탕이 웃으며 소리쳤다.
“모두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이 외침에 선봉에 선 병사들이 일제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다들 일제히 용병들을 향해 금화를 던졌다. 그 때문에 하늘이 순간 반짝거리는 황금으로 물결을 이루었다.
대단한 장관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밀튼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던 용병들은 순식간에 금화에 눈이 멀어서는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몇몇 노련한 용병들은 계속 뛰어가긴 했지만, 젊고 어린 용병들에겐 금화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특히나 군기가 엄격하지 않은 용병들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만약 이들이 정규군, 하다못해 징집병들이었다면 뒤에서 날아올 채찍이 무서워 계속 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돈과 여자, 자유로움을 위해 싸우는 용병들에게는 그런 것이 무의미했다.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뛰어라!”
땅에 떨어진 금화를 정신없이 줍는 용병들을 향해 귀족들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용병들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진형을 헝클어트리고서 오로지 금화를 줍는데만 열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밀튼은 크게 검을 휘두르며 화살을 쏘도록 했다.
그러자 수만 개의 화살이 휴안의 군세를 향해 날아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용병들이 방패를 치켜들어 화살을 막았지만, 뒤따라 오던 휴안의 징집병들은 영문도 모른 채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용병들이 금화에 정신이 팔려 발걸음을 멈춘 사이에 뒤이어 달려오던 휴안의 병사들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게 된 것이었다. 때문에 휴안의 군세는 화살이 닿는 충분한 범위 내에 들어온 것이었고, 밀튼은 구덩이에 빠진 토끼를 사냥하듯이 화살을 퍼부었다.
하지만 밀튼은 단순히 화살을 퍼붓는 것이 아닌 작살로 토끼를 꺼내기 위해서 기사단을 내보냈다.
“기사단, 돌격!!”
각 기사단장의 외침에 맞춰, 수십 개의 기사단이 용병들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화살을 막던 용병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 하고 기사단이 휘두른 창에 맞아 죽었다. 크게 당황한 귀족들은 용병들과 함께 군사를 물리려고 했지만, 뒤에서 징집병들이 막고 있었기에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였다.
“덤벼라!”
그 때, 밀튼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이에 몇몇 용병들이 호기롭게 나와서 밀튼을 상대해보았지만, 그들 모두 검을 몇 번 휘두르기도 전에 목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자, 휴안의 군세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용병들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서 항복을 하거나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애당초 돈을 보고 움직이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겐 끝까지 남아서 싸워야 될 이유가 없었다.
한편 용병들이 밀튼의 기사단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휴안은 다급히 기사단을 내보내서 선봉대를 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승기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귀족들이 휘하 기사단을 내보내기를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눈치 챈 밀튼은 더더욱 기세를 몰아서 용병은 물론이고 뒤에 있던 징집병들까지 철저히 짓밟았다.
첫날에 이은 대패였다.
휴안은 중군까지 밀어닥치는 밀튼의 군대에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끝까지 결사항쟁을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휴안이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전장에 몹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휴안이 병사들을 놔두고서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물론 일반적이라면 병사들은 그 소식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부에서 한 차례 병사들을 놔두고 도망친 전력을 가진 휴안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그 소문을 진실이라 섣풀리 판단하고서 항복하기 시작했다.
도망친 왕자 때문에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병사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자, 그것은 순식간에 백에서 천으로 다시 천에서 만으로 늘어났다. 물론 그 헛된 소문을 전해들은 휴안이 크게 분개하며 소리쳐보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항복한 병사가 수만에 이를 지경이었다.
‘이럴 수가!’
비록 자의는 아니었지만,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쳤던 것이 이토록 뼈아프게 돌아온 것이었다.
“왕자님,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휴안 왕자님!”
그 때, 귀족들이 휴안을 다그치며 말했다. 이에 휴안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윽고 떴다. 일단 살아야 되었다. 살아있어야지 밀튼에게 대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싸움으로 전세가 크게 기울기는 했지만, 농성을 벌이며 시간을 번다면 언제고 역전할 기회가 올 것이 틀림없었다.
이리 생각한 휴안은 귀족들과 함께 전장을 이탈했다. 그리고 이처럼 휴안과 귀족들이 전장을 이탈하자, 남은 병사들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뭉그러져 갔다. 밀튼은 휴안을 놓친 게 아쉽기는 했지만, 완전히 짓밟은 것에 만족하며 추격대를 꾸렸다.
============================ 작품 후기 ============================
휴안의 몰락이군요.
뭐, 자업자득이죠
검은라벤더 님 : 감사합니다.ㅎ
qoewh 님 : 딱 보시고 아시는군요.ㅋ
어둠속희망 님 : 강한 철가면!
비오는날엔우울해 님 : 살람 알라이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