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18화 (118/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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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

미래가 변했다.

이 사실에 부정할 여지는 일말도 없었다. 휴안은 밀튼에게 패했고, 밀튼은 곧 휴안의 목을 베어서 피로 점철된 왕좌에 앉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국왕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아슬롯이 병으로 죽은 이후로 자리에 드러누운 국왕은 더 이상 국왕이라 할 수 없었다.

애당초 국왕이 멀쩡했다면 밀튼과 휴안이 이렇게까지 왕세자 자리를 두고서 다툴 리가 없었다.

결국 밀튼은 늙고 병든 국왕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왕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을 남은 귀족들이 좋게 볼 리가 없었다. 늦든 이르든 귀족들이 파벌을 이루어 루이를 찾아올 것이 틀림없었다. 덧붙여 밀튼이 본격적으로 미쳐가기 시작한다면, 그 세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종 청소와 침략 전쟁이었다.

여기서 밀튼이 가장 먼저 지목하는 인종은 바로 로데인이었다. 상업을 평생 업으로 삼고서 살아가는 로데인은 대체로 부유했으며, 하나의 나라를 이루지 않고 대륙 곳곳에 넓게 퍼져있다. 물론 속설에 의하면 그들만의 황금 도시를 만들어서 몇 년에 한 번씩 모인다고는 하는데,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떠도는 소문 중에 하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데인들이 가진 재산을 두고 생각해본다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정말로 그들이 재산을 하나로 모은다면 충분히 황금 도시를 만들고도 남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짓걸이를 할 로데인은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돈에 환장한 그들이 장사를 일시에 멈추고 몇 년에 한 번씩 모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여하튼 밀튼은 그들이 악의적인 방법 혹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쌓았다며 욕을 하고 무자비하게 잡아들인다. 다만 평소였다면 귀족과 백성들이 이런 밀튼의 패악에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왕자 전쟁으로 삶이 피폐해져 있던 백성들은 무작정 분노를 로데인에게 쏟아내었다.

그것이 끔찍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밀튼은 그것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로데인이 사라진 하폰은 상업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금전 순환이 완전히 멈추고, 영지 간에 교류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귀족들은 상업으로 인한 금전이 들어오지 않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물론 몇몇 귀족들이 다급히 상단을 만들어 보지만, 로데인이 오랫동안 개척해놓은 길을 귀족들이 하루 이틀 안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하폰에서 도망친 로데인들이 하폰의 상업을 완전히 망가트리고 가는 일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케이크의 달콤함을 맛보고 나면, 남는 것은 갈증뿐이라고 말이다.

그 말대로였다. 로데인의 돈을 긁어모으긴 했지만, 남은 건 온통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들뿐이었다. 어느 곳은 식량이 부족했고, 또 어떤 곳을 불을 지칠 장작이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밀튼이 취할 건 하나 밖에 없었다.

적의 피로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결국 밀튼은 로데인이 가장 많은 국가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밀튼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신만만해선 로데인을 죽여 얻은 군비로 군대를 꾸렸다. 하루가 다르게 팔칸으로 군대가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전쟁이 나게 생긴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귀족들이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루이를 새로이 왕좌에 올리기로 말이다.

밀튼을 죽여 루이를 국왕으로 추대한 뒤에 하폰 밖으로 도망쳤던 로데인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다. 그 계획은 실로 훌륭했다. 루이는 그들의 충실한 꼭두각시가 되어서 밀튼을 쓰러트리는데 가장 앞장섰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로데인들이 하폰으로 넘어오기를 원했기에……. 물론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이권들이 존재했지만 로데인들이 적극적으로 금전을 지원해준 덕택에 결국 밀튼을 쓰러트릴 수가 있었다.

‘밀튼 형님…….’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밀튼의 목을 베었을 때, 루이는 온 세상을 얻은 것만 같았다. 이 손으로 형제의 목을 베어, 하폰의 주인이 된 것이었다. 그 때만큼은 정말로 순수하게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바보 같은 생각이고 행동이었다.

밀튼을 죽인 직후, 루이의 곁에서 아부를 하던 귀족들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루이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몇몇 귀족들은 자신의 딸과 루이를 억지로 결혼시킨 뒤에 외척 행세를 하기까지 했다.

그 누구도 하폰을 위해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하폰은 귀족들의 손에 의해서 놀아나면서 썩어문드러져 갔다.

물론 루이도 이 굴욕적인 현실에 저항하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자신이 아끼던 시녀의 죽음뿐이었다.

그렇다, 그건 경고였다.

이렇게 죽기 싫다면 얌전히 있으란 귀족들의 오만한 경고였다.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하지만 금세 루이는 수긍했다. 어차피 저항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이 고통에 신음하더라도 루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향락만을 위해서 살았다.

매일 같이 여자를 품에 안고, 술을 마셨다.

결국 자신 또한 밀튼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한 가지 다른 게 있다고 한다면 귀족들의 뜻에 거스르냐, 아니면 따르느냐의 차이였다.

‘……여기서 난 어떤 선택을 해야 되지?’

급변하는 사태에 좀처럼 결단이 내려지지가 않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휴안에게 막대한 금전을 빌려줬기 때문에? 하지만 거기서 휴안에게 막대한 금전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반년 이내로 전쟁이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루이가 북부에서 이민족들의 땅까지 들어가서 공격했기 때문에?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이민족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선 이민족들의 땅까지 들어가서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루이가 가진 병력이 너무나도 적었다.

다시 질문, 그럼 하멜른을 너무 크게 키웠기 때문일까? 하멜른이 이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면 귀족들이 루이로 하여금 북부를 막자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 정도는 크게 키워야지만 간신히 시일을 맞출 수가 있었다. 어불성설이었다.

마지막, 팔칸을 떠났기 때문에?

결국 원점이다.

역사가 회귀 이전과 마찬가지로 돌아갈 뿐이었다.

‘나는…….’

그릇된 선택은 없었다. 그러나 전부 다 그릇되었다.

머리가 지근거려왔다.

∴ ∵ ∴ ∵ ∴

열흘이 지나자, 휴안이 하멜른을 방문했다. 물론 그 곁에는 테온과 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그 동안 모진 고초를 겪은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때문에 하멜른의 경비를 맡고 있던 병사들이 그만 실수를 저지를 뻔 했지만, 다행히도 아벨이 그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루이의 사람이 된 직후, 한동안 왕성에서 지내면서 어깨 너머로 휴안의 얼굴을 봐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덕택에 휴안은 무사히 루이와 만날 수 있었다.

“루이야.”

잘 생겼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지고, 휴안의 얼굴에는 온통 상처뿐이었다. 루이는 안타까운 마음에 휴안의 몸을 꽉 끌어안아주며 반겨주었다. 더불어 휴안을 이곳까지 데려와준 테온과 쿤에게도 최고의 대접을 해주었다.

이날 휴안은 간만에 근심을 잊고 편히 쉴 수 있었다. 더욱이 루이는 그간 고생했을 휴안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작은 연회를 열기까지 했다. 테온과 쿤도 루이의 초대를 받아서 참석했다. 그리고 이윽고 연회가 시작되자, 구운 사과와 꿀과 우유를 넣고 구운 밀빵 그리고 기러기 통구이, 각종 잼, 마당에서 숯으로 구워 가져 온 새끼돼지 통구이와 치즈, 제철 과일, 소시지와 햄까지 호화스런 만찬이 차례차례 나왔다. 더불어 얼마든지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맥주와 데운 포도주도 준비되어 나왔다.

휴안은 루이의 호의에 크게 감격하며 진탕 먹고 마셨다. 그러다 마음이 풀어진 모양인지, 루이에게 해야 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다 하며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그 대부분은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었지만 루이는 따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딱히 대답해야 될 필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휴안이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휴안의 하소연은 루이에게만 한정 된 것이 아니라 루시아와 비비안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단순한 술주정이었다.

‘그것보다 저 둘이 마음에 걸리는군.’

물론 두 사람이 귀족들로부터 자신의 형인 휴안을 보호해준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이 익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얼굴에 흉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쿤이라는 사내가 더더욱 그러했다.

‘……어디서 본 걸까?’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보아도 도저히 쿤이란 사내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혹시나 철가면은 아닐까 싶었지만, 그 특유의 기세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더욱이 쿤이란 사내에게선 고독함보다는 순박함이 더 잘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외모가 흉측한 탓에 사람들이 그에게 쉽사리 접근을 하지 못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 쿤에게 스스럼없이 접근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그건 바로 오필리아였다. 그런데 뭐라고 할까? 죽이 잘 맞다고 해야 될까? 아니, 고양이와 쥐처럼 오필리아가 일방적으로 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봐, 덩치. 네가 방금 먹은 게 뭔지 알아?”

“……?”

“고블린 고환이야! 쫀득쫀득한 게 식감이 좋지?”

“우엑!”

“깔깔깔! 거짓말이야!”

“…….”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러니 도저히 쿤을 철가면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철가면이 휴안의 편에 붙어있었다면 밀튼도 이토록 쉽사리 휴안의 군대를 이기지 못 했을 것이다. 막말로 철가면이라면 혼자서 적진으로 달려 들어가서 밀튼의 목을 간단히 베었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이 날만큼은 모두가 코가 삐뚤어질 만큼 술을 마셔대었다. 끝까지 마시지 않으려는 테온이란 자가 있긴 했지만, 휴안이 억지로 먹인 탓인지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그 또한 술에 취하고 말았다.

루이는 잠든 손님들을 시녀들에게 맡긴 뒤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잤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루이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침대 옆에 뭔가 따뜻함과 더불어 인기척이 살짝 느껴졌다. 놀라진 않았지만 정체가 궁금해져 이불을 내려보니, 루시아가 쌕쌕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루이가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시아가 몰래 들어와서 함께 잔 모양이었다.

여전히 어리기만 한 어린 누이였다. 루이는 루시아의 머리를 가볍게 몇 번 쓰다듬어주고는 가슴께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올려있는 물병에 담겨있는 물을 잔에 따라 마신 루이는 바람도 쐴 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꽤 달게 잠을 잔 모양인지 벌써부터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루이는 가볍게 몸을 풀곤 바깥 우물에서 세수를 했다. 그런데 문득 테온이 아놀드와 함께 영주관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벌써부터 친해진 모양인지,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기색을 내비쳐 보이고 있었다.

루이가 한동안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는데, 이런 소년의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테온과 아놀드가 방향을 바꾸어 루이 쪽으로 다가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영주님.”

“간밤에 편히 주무셨습니까?”

두 사람의 인사에 루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어딜 그렇게 다녀 오냐고 묻자, 아놀드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테온을 칭찬해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거리를 한번 훑어본 것만으로 도시 구조를 거의 완벽하게 파악했습니다. 더욱이 제가 설계한 계획 또한 알아차렸습니다. 영주님, 이 사람은 매우 뛰어난 관리입니다. 관리로 임명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테온이 아놀드를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지는 몰라도 아놀드는 입술을 마르도록 테온을 칭찬했다. 그리고 그 칭찬에 테온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이에 루이는 테온이 대체 어떤 인물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동안 고민하는데, 불쑥 얼핏 본 이름이 떠올랐다.

‘왕을 투표로 뽑아야 된다는 논문을 썼던 자와 같은 이름이군.’

순간 설마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루이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에 테온이 그 논문을 쓴 자라고 한다면 휴안이 그를 자신의 곁에 둘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왕을 투표로 뽑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밀튼에 버금 갈 정도로 위험한 사상이었다.

그건 적어도 루이와 같은 왕족에게 있어선 말이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어김없이 어쌔신 크리드 찍는 루시아!

저 잠입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군요.껄껄.

팀워크 님 : 네, 항상 감사합니다!

고태유 님 : 그렇죠. 다 먹는 게 확실히 이득이죠.ㅎ

반딧가 님 : 원래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ㅎㅎ

eastarea 님 : 휴안.ㅠㅠ

AliceChong 님 : 밀튼이 나쁜 건 아닌데, 사상이 좀 글러먹어서. 게다가 뼛속까지 남성 우월주의자죠

qoewh 님 : 아카데미 서술에서 보셨겠지만, 논문 만큼은 보존하고 인정하려고 애를 씁니다. 애당초 허황된 말이라고 해서 논문을 파기시켰다면 지금의 민주주의도 없었을 겁니다. 나쁘든 좋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역사이고 후손들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장은 훌륭할지 몰라도, 미래엔 부정한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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