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26화 (12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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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루이의 연설은 모든 귀족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그들을 루이를 향해 서슴없이 손가락질을 했으며, 심지어 변절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까지 했다. 이건 밀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릿발과도 같은 시린 눈동자로 루이를 쏘아보며 자신의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전군, 돌격!!”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

밀튼의 외침에 맞춰, 수십만의 병사들이 일제히 진격을 시작했다. 귀족들 또한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 그리고 변절자 루이를 처단하기 위해서 몸소 선두에 나섰다. 다들 루이의 목을 베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루이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수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언덕을 오르며 힘차게 진격해오는 모습을 그저 이렇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절로 저려오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루이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밀튼의 군대가 다가오자, 영책에 배치되어 있던 쇠뇌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사람 키만 한 큰 화살이 섬뜩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았고, 이윽고 병사 서너 명을 꼬치처럼 꿰며 땅에 박혔다. 게다가 화살이 땅에 박히면서 돌조각 같은 것이 튕겨져 나가더니, 비산하며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팔이며 다리를 박살내버렸다.

언덕을 오르던 병사들의 다리가 우뚝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귀족들이 크게 소리치며 병사들을 다그치자 그제야 진격이 재개되었다. 이에 루이는 아벨과 카샨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궁수들이 활시위에 화살을 메기고서 하늘을 향해 쏘았다.

높이 쏘아져 나간 화살은 곧 지면의 이끌림에 따라 적들을 향해 매서운 속도로 내리꽂혔다. 여지저기서 끔직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적들의 숫자가 워낙에 많다보니 빗맞은 화살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쇠뇌와 화살의 공세에 진격이 늦춰지자, 두터운 갑주를 차려입은 중갑 보병들이 돌출하듯 앞으로 나왔다.

중갑 보병은 갑주를 잘 갖춰 입은 만큼 값비싼 병과이지만,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하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그들이 방패를 치켜들고서 돌격해온다면 기사가 아닌 이상 상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때문에 앞으로 나선 중갑 보병들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가치를 선보이기 위해서 돌격에 나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공세가 회복세로 돌아서며 서서히 언덕이 적들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살이 힘을 쓰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처럼 아자젤을 위시한 기사단을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기로 내보냈다간 순식간에 적들에게 둘러싸이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루이의 생각 범위 내였다.

루이는 마른 미소를 지어보이며 적들이 충분히 언덕 위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언덕의 4분지 3이 적들로 가득 찼을 무렵, 루이는 오필리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에 소녀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는 휘하 부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재빨리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순간에 심지가 타들어갔고, 5초 정도가 지나자 쾅! 소리와 함께 폭발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언덕을 거의 다 올랐던 중갑 보병들은 폭발에 휩싸인 채로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그 뒤에 있던 경갑 병사들은 말 할 것도 없었다. 고열을 동반한 후폭풍 그리고 비산하는 철조각이 병사들의 온 몸을 넝마처럼 만들었다.

귀족들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폭발음에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언덕을 오르던 병사의 태반이 죽거나 불구가 된 상태였다. 선두에 있던 귀족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밀튼 역시도 폭발에 휘말린 모양인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잃은 밀튼의 군대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대기 시작했다.

“물러나라! 물러나서……! 컥!”

폭발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귀족들이 다급히 소리쳐보지만, 그 때마다 아벨이 쏜 화살이 정확히 적의 머리통을 꿰뚫으며 남은 귀족들을 철저히 죽여 나아갔다. 그리고 후방에 있던 귀족들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다크 엘프들에게 암살당했다. 루이의 연설에 적들이 정신을 팔린 사이에 다크 엘프 족장 오르가를 위시한 열다섯 명의 다크 엘프들이 적진 깊숙이 파고든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귀족들의 무력이 강했다면 이토록 쉽게 암살이 이루어지진 않았을 테지만, 후방에 있던 귀족들 대부분이 약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다크 엘프에게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루이의 수중에 이토록 뛰어난 암살자들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 했었고 말이다.

만약에 루이가 이토록 철저하게 준비한 줄 알았다면 밀튼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만큼 화살을 쏘아대며 차근차근 정석대로 병력을 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에게 모욕을 당한 밀튼과 귀족들은 정석을 무시하고 곧장 언덕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상황은 여기까지 치닫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적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은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슈슉 소리와 함께 뒤늦은 화살이 루이의 군대를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이에 루이는 미리 준비해둔 나무 방패를 들어 올려서 몸을 가렸다. 이건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나무 방패를 높이 치켜들고서 화살이 멎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처럼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밀튼의 병사들이 방패에 몸을 숨기고는 산개한 채로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전의 폭발에 대비한 방법 같았다. 실로 훌륭한 수였다. 저렇게 산개하고서 달려든다면 또다시 폭발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처음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루이는 꾹 참고서 적들이 언덕 위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윽고 산개해있던 적들이 하나둘씩 언덕 위에 올라오자, 비로소 적들의 화살이 멈추었다. 자칫 잘 못 했다간 아군에게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턴 오롯 보병들의 소관인 것이었다.

언덕 위로 오른 적병들은 기세등등하게 함성을 내지르며 루이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맞붙기만 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아직 모르는 것이 하나 남아있었다.

함정 없이도 루이의 군대는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크워어어어!!”

오크를 비롯한 수인족들이 언덕 위로 올라온 적들을 향해 사납게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당연히 같은 인간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적들에게는 전혀 예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오, 오크!”

“어째서 여기에 오크가? 크악!”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오크와 견인족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다. 여기에 쿤이 직접 나서서 적들의 수장까지 베어주자, 오크와 견인족들은 더더욱 미친 듯이 활개를 치며 적들을 죽여 나아갔다.

물론 적들이 일제히 언덕 위로 올라온 상황이라면 이들만으로 막는 건 도저히 무리였겠지만, 함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겠답시고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탓에 정작 언덕 위에 올라온 적들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제껏 움직이지 않고 있던 기사단이 언덕 앞에 정렬해 섰다. 전마들은 흥분에 투레질을 하며 땅바닥을 발굽으로 긁어대고 있었다. 기사들 또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일천의 기사가 돌격 준비를 마치자, 비로소 명령이 내려졌다.

돌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천천히 행렬을 지어 걷기 시작하던 전마들은 이윽고 삼각 진형을 갖춰 맹렬한 기세로 내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동안 기사들은 창끝을 앞으로 내밀며 루이의 군대가 갖추고 있는 진형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최선두를 달리는 광채 나는 은색 갑옷 사이에 고양감이 엿보였다.

기사들답게 두려움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전장이 짙은 화약 냄새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아군들이 피범벅이 된 채로 뒹굴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은 무심히 짓밟으며 언덕 위로 내달렸다. 그리고 이처럼 일천의 기사가 쇄기 진형으로 내달려오자, 오필리아 역시 준비했다. 이제껏 아끼고 있던 화승총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기사 시대의 종지부를 찍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탕!

오필리아가 최선두에 서있는 기사를 향해 총 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기자, 탕! 소리와 함께 짙은 흑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기사 한 명이 고꾸라졌다. 명중이었다! 기사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지만, 이미 돌격 중이었기 때문에 멈출 수도, 방향을 꺾을 수도 없었다.

총병의 일제 사격을 막을 방법은 조금도 없었다.

탕탕탕!

순식간에 사방이 흑색 연기가 자욱해졌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수 백 명의 기사들이 영문도 모른 채 피를 뿌리며 고꾸라지고 말았다. 뒤따라 달려오던 기사들은 갑자기 고꾸라지는 아군에 의해서 속절없이 낙마를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선두가 쓰러지면 쓰러지는 대로, 낙오하면 낙오하는 대로 꾸역꾸역 루이의 군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사가 최강이다. 라는 구시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었다.

탕!

일천의 기사는 언덕 위에 세워진 루이의 진채에 도달하기도 전에 전멸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남은 사천의 기사들이 낭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일찍이 밀튼에게서 화승총의 존재를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예상지도 못 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설혹 예상을 했다고 하더라도 인정하기가 싫었다.

단지 몇 개월 익힌 것만으로 기사와 대등한 전력이라니? 그것은 곧 자신들이 몇 년간 노력한 것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하지만 지금 이것으로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사들 또한 존재했다.

전의를 잃지 않은 기사들이 전원 언덕을 향해 내달렸다. 오필리아는 차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의 몸이 총알을 박아주었다. 와라, 얼마든지 와봐라. 너희의 시대를 끝났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탕!

오필리아는 전율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 작품 후기 ============================

그렇게 이상했습니까?

사신 카이스 님 : 감사합니다!

hjhhyj0413 님 : 더 나은 미래!

halem 님 : 조율을 할 겁니다. 사실 왕까지 투표로 뽑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밀튼은 도발하려면 왕까지 거론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 말한 거였습니다.

비오는날엔우울해 님 : 전투가 아직 더 남아있습니다. 한, 두개 정도요.

최종신호 님 : 쓰긴 쓸 겁니다. 귀족들은 싹 정리해야죠.

돔페리뇽 님 : 광역 어그로가 맞긴 합니다. 하지만 귀족의 몰락은 필연입니다. 루이가 처음부터 귀족들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했었고요.

반딧가 님 : 투표에 관한 이야기는 테온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루이는 그걸 보고 이용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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