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8 / 0158 ----------------------------------------------
[예지]
“와아아아아아!!!”
우렁찬 고함성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확실히 수만의 병사들이 내지르는 고함성은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을 견뎌내야지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루이의 병사들 또한 우렁찬 고함성으로 맞받아치며 전투 고양감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창을 치켜든 적병들이 완만한 경사를 가진 언덕을 따라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중간중간 정규병을 다그치고 있는 귀족들이 보였다. 이대로 숫자로 밀어붙여서 루이의 진채를 뚫어버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지극히 정석적인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은 루이의 진채 주변을 적병들이 물샐틈없이 에워싸는 것으로 잠시 현실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했다.
루이는 명령을 내려서 일부러 적들이 진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교묘하게. 마치 실수인 것처럼. 진채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것이었다. 달콤하기 짝이 없는 미끼였다. 여기서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함정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장은 화살과 화승총의 납환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벌떼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적병들은 본능에 이끌리듯이 비교적 취약한 지점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많은 수의 병사들이 쏠리게 되었다. 그걸 본 루이는 준비한 대포로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선두에 선 병사들이 당황했으나, 이미 대포의 포구가 창병들이 모인 곳으로 집중이 끝난 뒤였다.
일렬로 선 대포들은 일제히 불길을 뿜으며 적병들을 휩쓸었다.
쾅! 쾅!
포탄이 폭발하며 수십 명의 적병들을 화마 속으로 집어삼켰다. 물론 살아남은 자들이 있기는 했다. 워낙에 사람이 많으니, 끈질기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총병들의 십자포화로 인해서 간단히 제압당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다른 곳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어디 한 곳 마땅히 공격할 장소는 없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이름난 장수들이 단단히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벨, 아자젤, 쿤, 오필리아.
그 누가 과연 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하물며 루이의 병사들은 거친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도 이겨낸 정예병들이었다. 적들이 이 언덕을 점령할 가능성은 한 없이 적었다. 더욱이 화살받이라도 되어줘야 될 징집병들은 전장에 나섬과 동시에 뒤돌아 도망치기 바쁜 상태였다.
기사들은 앞서 모두 죽은 상태였다.
정규병들로만 언덕을 뚫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해가 질 때까지 밀튼의 병사들은 언덕을 오르기 못 했다. 더 이상 싸우기란 무리라고 판단을 내린 귀족들은 내일 기약하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첫날 전투를 대승리를 장식한 것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승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직 첫날에 불과했다. 진정 역사의 승자로 남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승리할 필요가 있었다. 애당초 역사는 승자의 것이었다.
귀족들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일이야 말로 언덕을 점령해서 루이의 목을 베리라 장담했다. 게다가 이들에겐 믿는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루이, 그 자가 연설한 것을 다른 귀족들에게 알린다면 보다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요.”
“어차피 적들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계속 이대로 시간을 끌게 된다면 결국 적들은 보급을 받지 못 해서 말라 죽게 될 겁니다.”
“수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소! 계속 밀어붙이게 된다면 결국 저들은 피로도 풀지 못 하고 제 풀에 지켜 죽을 것이오.”
귀족들의 말대로 루이의 진형은 장단점이 명확했다. 언덕 위를 차자하고 있는 덕택에 수비에는 용의했지만 적들에게 포위당하게 되면 퇴로 확보는 물론이고 추가 보급조차 받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루이가 가진 병사의 수는 오천에 불과했다. 귀족들이 야금야금 끊임없이 전투를 이어간다면 결국 루이의 병사들은 피로를 풀지 못 해 지칠 대로 지칠 것이 틀림없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귀족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전투를 장기간 잡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 루이의 가신들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몇몇 이들이 루이를 찾아와서 새로운 방법을 강구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루이는 그 때마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그들을 위로해 돌려보냈다.
‘비가 올 것이다.’
루이는 초조해하지 않고 차분히 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자정을 넘길 무렵 부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루이는 이것에 크게 기뻐하며 신호탄을 쏘아 올려 다크 엘프들을 불러들였다. 혹여 그들이 홍수에 휩쓸려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편 비가 온다는 소식에 오필리아는 낙담했다. 화기를 다루는 그녀에겐 있어서 비가 온다는 건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비야 그쳐라!’
오필리아는 내일 전투를 위해서 하늘에 빌고 빌었지만, 무심하게 하늘은 계속 비를 쏟아내었다. 아니, 오히려 부슬비에서 굵은 빗줄기로 바꾸며 폭우를 쏟아내었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륵주륵 쏟아지는 폭우 탓에 한밤중인 것처럼 어둡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비 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가 지독하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교전을 오갔다. 특히나 비와 쏟아지는 적들의 화살이 루이의 병사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비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틈을 이용해서 적들이 야금야금 언덕 위로 올라와 공격하기 시작했다.
루이의 생각보다 비가 적들에게 유리한 이점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버텨라! 버티면 이긴다!”
루이는 직접 진채를 돌아다니며 병사들과 함께 적병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이 덕분인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기세를 잃지 않고 끈질기게 싸웠다. 특히나 난전이 되자, 쿤의 위용이 한층 더 돋보였다.
그는 빗줄기마저 걷어낼 것처럼 힘차게 검을 휘두르며 쉴 새 없이 적들을 베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물밀 듯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루이는 자신의 몸을 세차게 때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어제의 전투를 떠올렸다.
‘만약에 이 때, 적의 기사들이 공격해왔다면…….’
화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 기사들이 순식간에 진채로 넘어 들어와 아군을 유린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루이는 당장 적들에게 기사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계속 아군을 응원했다.
쌔액!
그 순간, 루이를 향해 화살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적들이 쏜 화살이 우연치 않게 루이를 향해 날아든 것이었다. 흔히들 눈 먼 화살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루이는 아차 싶은 생각에서 재빨리 방패를 높이 치켜들어보았다. 그러나 이미 화살이 지척에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주변에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촉즉발이었다.
“까득!”
이처럼 화살이 루이의 몸에 박히려는 찰나, 세람이 날래게 뛰어서 입으로 화살을 낚아챘다.
“…….”
그 광경에 루이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에 세람은 루이가 다쳤다고 생각하고서 입에 입고 있던 화살을 퉷! 뱉고는 소년의 곁으로 다가와 뺨을 핥아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테온이 허둥지둥 달려와 루이의 몸을 꽉 붙잡았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아……. 아아, 괜찮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루이는 천천히 대답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루이는 자신의 뺨을 혀로 핥고 있는 세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맙다, 세람. 덕분에 살았다.”
“멍!”
루이의 칭찬에 세람에 기쁘게 짖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와, 왕자님! 어딜 가시려 하십니까?”
이처럼 루이가 몸을 일으킨 뒤에 다시금 병사들 쪽으로 향하자, 테온이 다급히 소리치며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이에 루이는 잠시 테온을 바라보다가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적들을 막아야지.”
라고 말한 루이는 세람과 함께 적병들과 한창 싸우고 있는 아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테온은 잠시 루이의 팔을 쥐었던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상념에 빠졌다.
그리고 그렇게 한창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돌연 쿠궁! 하는 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어왔다.
“……!”
모두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 한 탓이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서 말이다.
‘왔구나.’
루이는 홀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제방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평야를 휩쓸며 이곳을 향해 덮쳐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양의 물이었다. 기록상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위압적이었다.
콰앙!
쏟아진 물은 삽시간에 밀튼의 진채를 덮치며 병사들을 휩쓸었다. 사방에서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소용돌이치는 물소리가 가득 들려왔다. 심지어 이 순간에도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건 지독하게 끔찍했다.
“신벌이다!!”
그 순간,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병사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신벌이다! 여신님의 벌을 받은 것이다!”
“신벌을 받은 것이다!”
처음 몇몇만 외치던 것은 곧 모두에게 전염되어, 루이의 병사들 모두가 큰소리로 외치며 물에 휩쓸린 밀튼의 병사들을 비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이건 그야말로 신벌, 그 자체였다.
루이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 ∵ ∴ ∵ ∴
신벌이 내렸다.
아르페 평원에서 일어난 일은 순식간에 하폰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십만에 달하는 밀튼의 군대가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서 전멸해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진실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신벌이라고 했다.
혈육을 죽여 가면서까지 왕좌를 차지하려 했던 밀튼 왕자를 아단트 여신님께서 직접 벌한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새로운 왕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많은 귀족들이 루이의 연설을 그곳에 있던 귀족들을 통해서 전해들은 탓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
무수히 많은 귀족들이 분개하며 당장에 밀튼을 대신할 왕을 찾았다. 그리고 그 결과, 왕성에 있던 넷째 왕자 로렌스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루이가 회귀하기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로렌스는 귀족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왕위를 거절했다.
필사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귀족들 또한 필사적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루이가 왕성으로 들어와 왕좌에 앉은 판국이었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로렌스 왕자와 귀족 사이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편 프리지아 남작은 중심으로 몇몇 귀족들이 루이의 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이의 군대는 지금 아르페 평원에 발이 묶여있다. 이 틈에 하멜른을 차지한다면…….’
천하의 루이라고 할지라도 귀족들의 거래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지아 남작은 루이의 군대가 홍수로 불어난 아르페 평원에 발이 묶여있는 사이를 틈타서 재빨리 군대를 모아 하멜른으로 향했다.
이 때, 많은 수의 귀족들이 프리지아 남작의 계획을 듣고는 찬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루이만 잘 구슬리게 된다면 차후 중앙 귀족으로서 우뚝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밀튼을 따르던 귀족들은 신벌이라 일컫는 아르페 평원의 홍수로 인해서 대다수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였다.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합 이만에 달하는 프리지아 남작의 군대가 하멜른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처럼 이만의 군세가 하멜른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자, 일찍이 루이의 부탁을 받고서 주변 정세를 살펴보고 있던 영주들이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 챘다. 아니,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프리지아 남작이 그들에게 협조를 바라는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루이 왕자가 귀족 계층을 탄압하려 하니, 자기를 도와서 하멜른을 점령하는데 일조하라는 것이었다. 더불어 일이 계획대로 풀렸을 시에 섭섭지 않은 보상을 해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영주도 프리지아 남작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본인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는 루이와의 의리를 지키고자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프리지아 남작은 이상하게 여기긴 했으나, 이내 무시하고 하멜른을 향해 전진했다. 하멜른 인근에 존재하는 영주들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세람의 하드 캐리 그리고 프리지아 남작...!
사신 카이스 님 : 감사합니다!ㅎㅎ
나데스 님 : 흑흑, 마음대로 하세요.ㅋㅋ
쿠마백작 님 : 네, 이제 그만 끝내고 신작 내야죠.ㅎㅎ 이거 끝나면 단편 신작 낼 겁니다! 캬!
카이프 님 :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매실농축액2 님 : 네, 감사합니다!
shyuniz 님 : 맞아요. 정말 100% 채우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superrobot 님 : 그 전에 폭우가 왔죠.ㅋㅋㅋ
만능의자 님 : 이미 귀족 계급 없애겠다고 한 것 자체부터가 개판이죠. 그리고 국가 간에 전쟁은 잘 일어나지 않는 편입니다. 여긴 종교가 통일되어 있거든요. 몇몇 이민부족을 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