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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프리지아 남작이 이만에 달하는 군세를 이끌고서 하멜른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주변 영주들로부터 전해들은 아놀드는 이를 악 물었다.
‘하멜른을 버려야 하는가?’
당장 하멜른이 가진 병사들로는 이만에 달하는 군세를 막을 수가 없었다. 하다 못 해 아자젤이나 아벨과 같은 뛰어난 무장이 있었다면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 하멜른을 지키고 있는 자는 아놀드, 그 뿐이었다.
물론 그의 연인인 레베카가 함께 하고 있기는 했지만, 레베카는 일개 엘프에 불과했다.
엘프 족장인 카샨처럼 지휘에는 걸맞지 않았다.
‘……일단 공주님들만이라도 대피시키자.’
한참을 고민하던 아놀드는 이윽고 결단을 내리고서 루시아와 비비안을 찾아갔다. 그런 다음에 현재 하멜른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준 뒤에 어딘가로 피할 것을 권고했다. 당장 현재로선 이것이 가장 최선이었으니 말이다.
“꼭 도망쳐야 되는 건가요?”
루시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적들이 몰려온다고 해서 하멜른을 떠나기에는 너무나도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루시아는 되도록 이곳에서 오라버니, 루이를 맞이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 생각은 비비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당장 하멜른에 있는 병사의 수는 오백도 안 되는데, 적들은 무려 이만에 달합니다. 게다가 저는 전투에 익숙하지 못 합니다. 저에겐 그들을 이길 힘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니 공주님들만이라도 대피하십시오.”
“그럼 모두가 함께 도망치는 건 안 되는 건가요?”
“그렇게 되면 영주님의 근거지가 사라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주님이 구원을 와주시기 전까지 최대한 버텨보고자 합니다.”
아놀드는 각오를 굳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제로 여기서 하멜른을 적들에게 빼앗기게 되어버리면 루이는 돌아갈 장소를 잃게 되었다.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선 패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돕도록 하지.”
그 때,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공주님, 이 일은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혹여 공주님께서 적들에게……!”
“걱정마라,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단호히 소리쳐 말한 비비안은 아놀드의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하멜른의 지도를 가져왔다. 일찍이 아놀드가 하멜른이란 도시를 구상하면서 상세하게 만들어놓은 지도였다. 비비안은 그 지도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비록 적들보다 아군의 병력이 열세인 상황이지만, 이 도시는 좋은 장점을 여럿 지니고 있다.”
라고 말한 비비안은 지도에 표시된 하멜른의 성벽을 손으로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성벽이 튼튼하고 문이 견고하다는 것이다. 루루가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리도 성벽을 튼튼하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수도에 버금갈 정도로 튼튼하다. 적들에 의해서 그리 간단하게 파괴되진 않을 것이다.”
“…….”
이러한 비비안의 설명에 아놀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비비안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화승총이란 화기 또한 충분하다 못 해 넉넉하게 있는 실정이니, 적들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영지민들 중에서 싸울 수 있는 이를 최대한 뽑아내어 가르친다면 이기진 못 하더라도 며칠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멜른에 남아있는 이들은 전부 노인, 아이, 여성들뿐입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여, 영지민들은 전쟁으로 내모실 생각입니까? 안 됩니다! 그들은……!”
“이곳을 지켜야 되지 않는가?”
“그렇긴 하지만…….”
잠시 말끝을 늘리던 아놀드는 이윽고 말소리를 뽑아내었다.
“……과연 그들이 전쟁에 나서겠습니까?”
아놀드의 물음에 가만히 있던 루시아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제가 설득해볼게요!”
“루시아 공주님?”
“다들 하멜른을 지키고 싶어 할 거예요. 분명……. 분명 나서줄 거라고 생각해요!”
크게 소리쳐 말하는 루시아의 태도에 아놀드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 비비안이 한 마디 거들었다.
“하멜른의 영지민들은 모두 화전민과 노예 출신이라 들었다. 분명 크든 작든 모두가 루루에게 은혜를 입고 있는 셈이지. 그러니 분명 내 뜻에 따라줄 것이다.”
“강제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전의가…….”
“강제할 생각은 없다.”
딱 잘라 말한 비비안은 자기 가슴을 탁 치며 말을 이었다.
“……나와 루시아가 그들로 하여금 싸우도록 설득할 것이다.”
“……!”
비비안의 말에 아놀드는 일순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두 명의 공주님이 직접 나서서 영지민들을 설득해준다면 틀림없이 어느 정도의 호응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하멜른은 아자젤 덕분에 여성의 인권이 상당히 높아서, 여성들 또한 병사에 관심이 많은 상태였다.
‘나쁘지 않다.’
자그마한 희망이 샘솟는 것을 느낀 아놀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리 말한 아놀드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려서 영지민들을 한 자리로 모으도록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놀드는 램지를 찾아갔다. 앞서 두 공주에게 대피하라고 설득했던 것처럼 램지에게도 권고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램지는 이번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드워프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아놀드가 램지를 찾아가서 대피하란 말을 전하자, 드워프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뭐? 이 몸 보고 도망치라고? 네 녀석, 도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
“하지만 이건…….”
“또 뭐! 그 주둥이로 한번만 더 지껄여봐! 내가 확 못을 박아버릴 테니까!”
“…….”
“꺼져! 난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갈테니까!”
라고 소리쳐 말하며 축객령을 내리는 램지의 태도에 아놀드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아놀드가 대장간 밖으로 나가자, 램지의 제자인 비앙카가 그에게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아놀드 씨가 이해 해주시와요. 원래 스승님의 성격이 괴팍하니까요.”
이러한 비앙카의 말에 아놀드는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램지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램지가 얼마나 이곳을 좋아하고 있는 지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하멜른이 좋기 때문에 저리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살짝 서운해 하고 계신 걸 거예요.”
“저게 서운해 하는 겁니까?”
아놀드의 물음에 비앙카는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스승님께선 아놀드 씨에게 함께 싸워달란 말을 듣고 싶어 하셨을 테니까요.”
“…….”
비앙카의 말에 아놀드는 조용히 경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비앙카는 이내 양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하나 보여드릴 것이 있사와요.”
“보여드릴 것이요?”
“영주님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건데……. 이번에 도움이 될 것에요.”
이러한 비앙카의 말에 아놀드는 살짝 기대가 드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었다고 하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루이와 관련된 일 치고는 손해 보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원할 것이 분명했다.
“가봅시다.”
아놀드는 곧바로 비앙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놀드는 비앙카가 만든 발석거를 볼 수가 있었다. 아놀드는 그것을 본 순간, 한 눈에 그것이 수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마치 천군만마라도 얻는 것만 같았다. 아놀드는 기쁨에 환호성을 터트리고는 비앙카에게 부탁해서 몇 개 더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 두 공주님이 영지민들과 대면할 장소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장소에 도착하자, 광장에 무수히 많은 영지민들이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간간히 이종족들도 보였다. 하멜른이 가진 특수성이자 장점이라 볼 수 있었다. 아놀드는 잠시 광장을 살펴보다가 이내 단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잠시 뒤, 그 위로 올라오고 있는 두 공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주님들, 힘내십시오.’
아놀드는 주먹을 꽉 쥐며 단상 위에 올라선 두 공주를 지켜보았다.
============================ 작품 후기 ============================
루시아와 비비안!
검은라벤더 님 : 네, 감사합니다.ㅎ
AliceChong 님 : 그러게요.ㅋㅋㅋ 남작 주제에!
thecrazy 님 : 올인까지는 아닐 겁니다. 원래 매니저 어플이 쉬엄쉬엄 쓰려는 거였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 뿐입니다. 일단 하폰 전기 끝내고, 새로운 단편 하나 쓴 뒤에 차차 생각해볼 생각입니다.
쿠마백작 님 : 네! 맡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