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30화 (13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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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하멜른의 영지민들이여! 그대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한다.”

천천히 말문을 연 비비안은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로 좌중을 훑어 보이며 힘 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이곳으로 이만에 달하는 적들이 들이닥쳐 오고 있다. 허나 지금 이곳을 방어할 수 있는 병사는 오백 명 밖에 되지 않는다. 고작 오백이다. 오백의 병사로 이만의 적병들을 막아내야 되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 그 누구라도 지금 이곳이 얼마나 위험에 빠진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곳, 하멜른을 적들에게 내어주게 된다면 그대들의 아들, 남편, 연인들이 마땅히 돌아와야 할 자리를 잃게 된다.”

비비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대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땅을 잃고 예전처럼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대들은 새로운 삶을 바라고서 이곳, 하멜른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궁핍한 삶을 버리고, 노예로서의 삶을 버리고, 자신의 의지로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 이곳에 정착한 것이 아니더냐?”

라고 물은 그녀는 발로 단상을 강하게 밟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하멜른을 잃게 된다면 그대들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의 자식도. 그리고 그 다음의 자식도.”

비비안의 말소리가 강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대들뿐이다.”

여기까지 말한 비비안은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겠다. 그대들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그녀는 꽉 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하멜른을 지켜주겠는가?”

이러한 그녀의 물음에 좌중이 술렁였다. 몇몇 이들이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한명 선뜻 말문을 여는 이는 없었다. 아놀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누구 한 명 나서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순간, 비비안의 옆에 있던 루시아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절박함이 가득 담겨있는 루시아의 목소리가 광장 안을 가득 채웠다.

“……저는 오라버니가 만들어낸 이 장소를……. 소중한 이 장소를 지켜내고 싶어요. 여러분은 그렇지 않나요? 이 하멜른을 아끼지 않으시나요? 이곳이 소중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여러분이 저와 똑같이 하멜른을 아끼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다들 웃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게 너무나도 기뻤어요.”

루시아의 목소리는 비비안처럼 힘이 실려 있지는 않았다. 압도적이지도 않았고, 강맹하지도 않았다. 마치 부드러운 봄바람과도 같았다. 단지 미약한 바람일 뿐인데도 이상하게도 모두의 귓속에 잘 파고들었다.

“전 이곳을 지켜내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작아요. 작고 초라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런 저라도 알 수 있어요. 아주 작은 힘이라도 모이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걸요.”

여기까지 말한 루시아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걸 바로 루이 오라버니가 가르쳐주셨어요. 작은 힘이 모여서,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걸요!”

양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루시아의 태도에 비비안 또한 동조하며 한 걸음 크게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도와다오!”

“도와주세요!”

두 공주의 외침이 광장 안을 가득 채웠다. 아니, 광장뿐만이 아니었다. 광장 밖에서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의를 불태우는 이들도 있었다. 다들 숨을 죽이더니, 이윽고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돕겠습니다! 뭐든지 시켜주세요!”

“저도! 저도 돕겠습니다!”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싸우게 해주세요!”

“공주님, 저도 싸우겠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리고 이윽고 모든 이들이 고함성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와아아아아!!”

그것은 하나의 소리가 되었다. 루시아와 비비안은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옅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내 비비안이 루시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더니 이윽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하멜른은 그대들이 일궈온 땅이다! 그 땅을 적에게 넘겨줄 것이냐?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로부터도 이 땅을 지켜온 그대들이다! 그대들은 충분히 강하다! 하멜른의 영지민들이여, 이 땅을 지켜내자!”

“와아아아아!!!”

이처럼 마지막으로 비비안이 전투 의지를 고양시켜주자, 순식간에 그것은 불처럼 모든 이들을 집어삼켰다. 아놀드조차도 숨통이 컥컥 막혀올 정도였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단상 위에 서있는 두 공주를 바라보았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희망의 불씨가 활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놀드는 그 날로 즉시, 싸우길 원하는 자들에게 무기를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남녀노소 상관없었다. 힘이 센 자는 창과 방패를 들고 성벽 위로 올라갔고, 힘이 약한 자는 뒤에서 부상자의 구호와 무기의 운반대, 취사대를 담당했으며 그 중에서도 화기 사용에 재능이 보이는 자는 곧바로 화기를 건네받아 사용법을 익혔다.

모든 것이 아놀드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비록 상인 출신이지만 오랫동안 루이의 뒤를 받쳐 주다보니 생긴 능력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적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될 뿐이었다. 아놀드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프리지아 남작이 이끄는 군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삼일을 더 기다리자, 뿌연 연기를 내며 몰려오고 있는 이만의 군세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왔군.”

아놀드는 성벽 위에서 적들을 내려다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천생 상인인 그가 감당하기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막중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 아놀드.”

그 때, 레베카가 그의 손을 꽉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처럼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말하자, 아놀드는 그제야 떨림을 멈추고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의 손을 타고서 전해져오는 그녀의 온기가 그의 감정을 가라앉혀주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레베카.”

아놀드는 그렇게 레베카의 위로를 받으며 담담히 적들을 마주했다.

한편 하멜른까지 진격한 프리지아 남작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하멜른엔 병력이 더 이상 없을 텐데……. 어째서 성벽에 저렇게 많은 병사들이 올라와 있는 거지?’

그는 성벽 위의 병사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루이 왕자가 이끄는 병사들이 벌써 도착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들이 아르페 평원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야 되니까. 그렇다면 저건……. 일반 영지민들을 무장시킨 것인가?’

프리지아 남작은 마치 뱀처럼 성벽 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곧 투구를 깊이 눌러쓴 이들이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곤 스산하게 웃어보였다.

‘잔머리를 굴렸군.’

그러나 어디까지나 시간벌기용 잔머리에 불과했다. 전쟁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노인, 여자, 아이가 끼어들 것이 못 되었다. 하물며 그것이 훈련을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 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게다가 저들의 근본은 노예와 화전민들로 이루어진 천한 것들. 패배자 놈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웃음을 터트린 프리지아 남작은 자신이 끌고 온 군세를 향해 소리쳤다.

“적들은 영지민을 급조해서 만든 군대다! 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가?”

이리 소리친 프리지아 남작은 자신의 군대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적들에게 가르쳐 주어라! 전쟁이 무엇이지!”

남작은 곧장 하멜른을 향해 머리를 돌리며 재차 소리쳤다.

“유린해라!!”

그는 명백하게 하멜른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리지아 남작이 이끌고 온 병사들과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아아!!!”

2만의 군세가 하멜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병사들 또한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 영지민들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병사들은 커다란 고함성과 함께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으론 비비안의 연설에 동의합니다.

이리잉여 님 : 네, 항상 감사합니다!

돔페리뇽 님 : 미녀와 로리.ㅋㅋㅋ 확실히 미녀와 로리는 위대하죠

Astraya 님 : 거의 정리하는 단계죠.

검은라벤더 님 : 네, 감사합니다.ㅎ

14C2A58H2 님 : 네? 매니저 어플은 한참 남았는데요?ㅋㅋㅋ 제가 쓰고 있는데도 끝이 안 보입니다.ㅋㅋ

쿠마백작 님 : 당연한 해피한 하렘엔딩이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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