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31화 (13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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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프리지아 남작의 병사들이 수십 겹의 횡렬 대형을 이루어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적의 전술은 다수의 보병을 전면에 내세워 적들이 쏘는 화살을 막고, 공성 전차를 이용해서 성문을 때려 부수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담백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하멜른의 성문이 수도의 성문에 버금갈 정도로 튼튼하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성문까지 접근한 충차가 거세게 성문을 두드려 보지만, 굳게 닫힌 성문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서 프리지아 남작의 계획이 살짝 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작은 태연하게 대처했다. 성문이 제아무리 튼튼하다고 하더라도 성문은 성문이었다. 성문 때문에 피해를 입을 일은 없었다. 프리지아 남작은 계속해서 충차로 성문을 두드리는 동시에 궁수대를 활용하며 성벽 위를 공략했다.

그러자 수많은 화살이 성벽 위의 사람들에게 꽂히며 끔찍한 비명소리를 만들어내었다.

공포가 성벽 위를 순식간에 잠식했다.

전쟁에 면역이 없던 영지민들은 토악질을 하거나 울음을 터트렸다. 혼란, 그 자체였다. 그나마 레베카와 아만다가 이끄는 엘프 부대가 분전해준 덕택에 적들의 화살 공격에 반격할 수 있었다.

“뭐하는 것이냐? 부상자들은 어서 뒤로 옮겨라! 멀쩡한 자들은 활과 화살을 들어라! 방패가 있다면 자신과 아군을 보호해라!”

아놀드가 크게 소리치며 병사들을 다그쳐보았다. 그러나 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아놀드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그런데 그 때, 루시아와 비비안이 성벽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에 아놀드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고, 공주님? 여기에 올라오시면 안 됩니다!”

아놀드의 외침이 순식간에 성벽 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루시아와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이에 루시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근처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어서 이분을 옮겨야 되요!”

이러한 루시아의 외침에 들것을 든 사람들이 데이지와 함께 서둘러 달려와 다친 사람들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비비안이 오른손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대들이 여기서 무너지면 하멜른은 끝이다! 무뢰한들에게 하멜른을 내어줄 셈이냐? 무기를 들어라! 그대들의 손으로 하멜른을 지켜내는 것이다!”

“와아아아아!!!”

비비안의 외침이 큰 도움이 된 모양인지, 그제야 사람들이 활과 화살을 들고서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문을 두드리고 있는 충차를 향해서는 쇳물을 뿌리며 적들의 끈질긴 공격을 뿌리쳐내었다.

더욱이 이쯤에서 화승총을 든 부대가 앞으로 나와 근접한 적들을 정확하게 맞춰주자, 프리지아 남작의 군세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버러지들이!!”

갑자기 상대측의 기세가 살아나자, 프리지아 남작은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간단히 함락시킬 것만 같았던 도시가 의외로 거세게 반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프리지아 남작은 성문을 뚫기를 포기하고 대형 사다리를 꺼내들었다.

성벽 위에 거점을 만들어 단숨에 무너트릴 속셈이었다.

실제로 검과 검으로 맞부딪히게 된다면 하멜른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해질 테니 말이다.

“사다리를 접근시켜서는 안 된다!”

이 점은 아놀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적들이 성벽에 사다리를 걸칠 수 없도록 집요하게 화살을 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적들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 한복판이 그들을 반쯤 미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하멜른에는 엄청난 부가 축적되어 있다는 소문이 하폰 전역에 널리 퍼져있었다. 실제로 하멜른에서 카샤의 가루가 생산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성벽 위에는 여자와 아이, 노인들뿐이었다.

성벽 위에 올라서기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이 이들의 것이었다.

프리지아 남작도 그 점을 알고서 유린하라 한 것이었다. 승리만 한다면, 하멜른을 점령하기만 한다면 약탈은 무한정 허용되는 것이었다.

“깃발을 들어라!”

적들이 성벽,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아놀드는 이를 악 물고서 비앙카를 불렀다. 비축된 석재가 부족한 탓에 되도록 늦게 사용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아놀드의 신호에 맞춰 깃발이 들어 올려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발거석가 묵직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밧줄을 끊는 것과 동시에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이 하늘 높이 날았다.

쿵!

“아아아악!!”

명중률은 극히 낮았지만, 일단 맞기만 하면 그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사다리를 옮기던 병사들은 물론이고 대형 사다리까지 돌에 깔려 으깨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그것을 지켜보던 프리지아 남작의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설마하나 도시 안에 저런 물건이 있을 줄은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화승총에 이어서 투석기라니……. 프리지아 남작은 이를 꽉 깨물면서도 이내 좋은 방향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자신이 하멜른을 점령하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카샤의 가루도! 화승총도! 투석기도! 전부 다 그의 것이었다.

프리지아 남작은 보다 많은 병력을 내보내며 끈질기게 공격했다. 갈고리를 동원해서 성벽 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놀드가 투석기까지 이용한 것이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적들의 병력 소비도 커진 셈이니, 이번 첫날만 잘 버텨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버티면 이긴다! 이것만 버텨라!”

아놀드는 크게 소리치며 직접 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쓰러트리기까지 했다.

악착같이 달려드는 적들이 흡사 악귀와도 같았다. 그러나 하멜른을 지키려는 이들의 마음 역시도 악귀와 같았다. 다들 두 명의 공주가 말했듯이 여기서 밀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고리가 성벽에 걸린다면 검으로 줄을 끊었고, 사다리가 걸쳐진다면 다함께 힘을 합쳐서 밀쳐내었다. 이 과정 속에서 화살에 맞아 죽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슬퍼하기보다는 죽은 이가 하던 일을 묵묵히 마저 해냈다.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특히나 여기선 견인족 여성들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후각과 청각이 민감한 그녀들은 성벽 위로 적병들이 올라올 때마다 득달 같이 뛰어와 발로 걷어차서 그들을 떨어트리거나 날카로운 손톱을 목줄기에 찔러 넣었다.

‘대, 대단해……!’

이처럼 견인족 여성들이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적병들을 해치워주자, 성벽 위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반면에 적들은 성벽 위에 올라가는 족족 떨어지거나 죽어버리니, 서서히 하멜른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프리지아 남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저항이 거세자,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때문에 보다 많은 병사들을 들이부었다. 지휘관이라면 마땅히 하지 말아야 될 실수였다. 하지만 프리지아 남작은 전쟁보단 간계에 능한 인물이었다.

잔머리나 굴리는 그가 전쟁의 생리에 밝을 리가 없었다. 그저 하멜른을 우습게보고, 간단히 함락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서 이만의 군세를 이끌고 왔을 뿐이었다. 실제로 이만의 군세면 어지간한 도시는 간단히 무너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멜른은 달랐다. 애초에 루이는 하멜른은 큰 전쟁에 대비해서 만들어 놓았었다. 높고 크고 단단하게, 제아무리 적들이 밀려온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덕택에 아놀드는 주어진 병력으로 프리지아 남작의 병력을 차츰 밀어낼 수가 있었다.

“적들이 물러난다!!”

결국 해가 질 때까지 프리지아 남작은 하멜른을 차지하지 못 하고 군사들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

이것은 하멜른의 영지민들에게 단순히 적을 몰아내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첫날을 견뎌냈고, 이것은 곧 이후의 날들도 견뎌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들 전투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기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죽은 이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죽은 동료의 주검을 챙겨서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다들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누구 한 명도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그들은 용감히 싸웠으며, 적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이며, 자매였으며, 가족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비비안은 그들을 직접 화장시켜주며 기도문을 외워주었다. 비록 아단트 신전의 신관은 없었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공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직접 기도문을 외우고 불을 붙여주니 다들 만족했다.

이보다 더한 명예도 없었다.

기도를 외워주는 공주님과 죽은 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주는 공주님이 있었다.

다들 먹먹한 가슴을 끌어안고서 적들로부터 반드시 하멜른을 지켜 내리라 마음을 먹었다.

============================ 작품 후기 ============================

아놀드가 참 고생이 많네요.

뇌수막염 님 : 하멜른의 과학 기술력은 세계 제일이죠!

매실농축액2 님 : 네, 감사합니다!

나데스 님 : !!

사신 카이스 님 :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ㅎ

AliceChong 님 : 안 그래도 프리지아 남작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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